제78화. 청을 무시하지 마라 (2)
지독한 새끼…….
아마 그것 말고는 아이작을 설명할 말은 없겠지.
음. 그러니까 결국 아이작이 적(赤)의 목걸이를 가져갔다는 의미다.
“아이고오, 겨우 찾았네! 이렇게 꼭꼭 숨겨놓으니 내가 찾지를 못했짜나, 형아들아!”
“…이씨 미친놈! 나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무시하고 딴 놈만 팼으면서!”
…비록 만인의 앞에서 또라이라고 광고를 한 게 문제지만.
‘이래서 할아버지가 펜타곤에서 떨어지라고 기원하신 건데…….’
더 소문 나기 전에 가정교육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게 어딜 봐서 선인을 배출하는 청이냐.’
하지만 이미 드러난 걸 어쩌겠는가. 중요한 건 적의 펜타곤에서 이겼다는 거지!
“자, 안에서 보석만 꺼내면 청의 승리…….”
물론 그사이 체력을 회복하고 있던 나이저가 바로 탈환 작전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끄래, 그렇게 안 나오면 섭하지!”
아이작은 머리에 청의 성력을 길어 나이저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빠각!
성녀의 성법에 갈비뼈가 부러진 나이저는 고통에 괴로워했다.
‘커헉, 시발 또…! 저 이상한 성법을!’
하지만 쓴 장본인도 피해를 입는 건 마찬가지였던 걸까. 정작 박치기를 날린 아이작도 머리를 움켜쥐었다.
“찌발!! 아파 띠지겠네!”
망할 성녀의 기술!
너무 파괴력이 강해서 괴물 같은 육신이 아니면 몸이 버틸 수가 없다. 그래서 제일 단단한 부위로 쳤건만!
“역시 거지 가튼 썽녀들 성법… 읍읍!”
슈리가 다급하게 아이작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만인의 앞에서 청을 욕하게 둘수는 없었다.
‘이 멍청이, 그 몸으로 뭘 쓴다고!’
도대체 어디에서 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작이 알려준 파괴성법은 지나치게 강했다. 육체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사용자의 뼈도 동강 나는 것이다.
슈리도 아이작한테 하도 맞아서 맷집을 키우려고 수련장에 갔으니까 쓸 만한 거지.
이제 막 몸이 자라서 뼈가 작고 약한 아이작에겐 아직 힘들다.
슈리에게 알려줄 때야 출력을 가장 약하게 냈으니까 멀쩡했던 거겠지만, 실사용 때는 다르지.
아무튼 썽녀 뛰지라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아이작을 막는 그때.
“청의 승리!”
심판의 최종 선언이 떨어졌다.
그 선언과 함께 경기장은 큰 함성으로 가득 찼다.
“아니, 잠깐 내 돈! 적에 올인했는데, 이렇게 되면……!”
“만세! 청의 도련님들 만세!”
멀지 않은 곳에서 기사들이 희비에 갈리는 것이 보였다.
슈리는 새삼 승리를 실감했는지 크으 주먹을 꽉 쥐었고, 적의 견습들은 이딴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인정하는 거냐는 듯 이를 갈았다.
“저깟 놈들한테……!”
키나의 마비에서 겨우 풀려난 적의 견습들의 눈이 매섭게 올라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슈리에게 뭔가를 속삭였다.
키를 맞추며 들어준 슈리는 약간 못마땅해했지만 알겠다는 듯 그들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좋은 승부였다.”
“!!”
슈리의 인사에 적의 견습들은 치욕스러운 듯 이를 악물었다.
원래 사람은 제 밑에 있다고 생각한 놈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법이다.
“뭘 처웃고 있냐? 빌빌거리던 놈이 동생 덕 보고 기어이 올라가니까 좋냐?”
“화합도 동생의 힘으로 올라간 거잖아. 틀리냐?”
“!”
슈리가 움찔했다. 하필 슈리가 가장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귀신같이 찔렀다.
슈리가 적당히 하라는 듯 노려보자, 적의 견습들은 이거라는 듯 외쳤다.
“넌 동생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지?”
“아카데미 때처럼 계속 병신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평생 동생의 그늘에서… 푸학!”
아이작이 모래를 던졌다.
“아이작!”
아이작은 몹시 화가 난 듯 씩씩거렸다.
“그만해! 형들은 보고도 몰라? 이런 힘이 있으니까 가만히 있던 거잖아. 우리 형이 착해서 니들이 그간 멀쩡했지, 안 그럼 니들 다 진작 뒤졌어!”
“뭐, 뭐야?”
“그거 알아? 우리 청은 원래 인내하라고 가르쳐! 인간을 파괴할 정도의 강한 힘을 가졌으니까.”
그 말에 슈리는 누구보다 가장 어이없다는 얼굴로 보았다.
…니가 지금 청의 교리를 입에 담아?
“그래서 싸움은 절대 못 하게 하지. 니 새끼들은 그딴 것도 모르냐?”
…그렇게 잘 아는 놈이 그렇게 두들겨 패? 시벌 놈아?
청을 대표하는 놈이 사람을 두들겨 패냐고.
“나는 성자라 패도 용납이 되지만, 형은 정직해서. 아무튼 그 교리를 지키는 게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약을 파네…. 새끼가.
그리고 나도 성자 후보야 새끼야.
뭐, 슈리가 아카데미에서 늘 가만히 있었던 건 그런 이유만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갈색 머리라 그런가. 청에 녹아들지를 못하네.
-야, 슈리 에슈아. 네가 실수를 하니까 더 눈에 띄잖아. 똑바로 해. 청의 명예를 떨어트리지 말고.
아무래도 원수 가문의 피가 섞인 만큼,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이긴 하니.
뭐, 그래도 아이작 덕분에, 체면치레는 하게 된 것 같아서 고맙긴 하다만.
그러나 아이작은 이게 본론이 아니라는 듯 더욱 밉살맞게 웃었다.
“적의 신앙은 청과 다르게 기분대로 쏟아붓는 게 교리인가 봐. 천박하게 승패 굴복도 못 하는 것 보면.”
아이작의 말에 적의 견습들은 눈에서 불꽃을 튀겼다. 마치 부모가 뺨이라도 맞는 걸 본 듯한 얼굴.
“이 새끼가 감히 적을 욕하… 푸컿!”
그 순간 돌처럼 단단한 물체가 적의 견습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범인을 확인한 적의 견습들은 새하얗게 질렸다.
“저놈한테 적당히 놀아나라, 병신들아.”
“나이저……!”
괴물같은 팔꿈치로 부하를 날린 나이저는 이를 악문 채 서 있었다.
“졌으면 깨끗히 승복해. 적의 명예를 어디까지 떨어트릴 셈이냐.”
“……!!”
슈리는 내심 놀랐다.
‘그 공격을 맞고도……!’
팔이 완전히 부러지고, 온몸이 박살 났는데도 벌써 회복해서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적가의 혈통은 무시 못 한다. 괴물이다.
하지만 정작 나이저는 히죽거리는 아이작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이 새끼, 일부러 슈리한테 인사를 시켰어!’
대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퍼포먼스였지만, 글쎄.
이놈은 황실과 관료들이 집중하고 있는 이 자리이기에, 일부러 슈리를 시켜 부하들을 자극한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이 속닥거리고 있었다.
“적의 신앙은 청에 비하면 상당히 난폭하군요.”
“원래 그런 신앙인 건 알지만 저래서야…….”
“그에 비하면 청이 참 멋있네요. 강한 힘을 가졌기에 참을 줄 안다니.”
“어허, 그럼 신년에 제국을 대표할 사절단 신앙은 청이 될까요?”
이 어린놈의 자식이 같잖은 수작을 부려?
하물며 귀족들이 있는 곳이라면 뭘 하든 정치적 흐름으로 이어질 텐데……!
실제로 구경꾼들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오늘 청이 쓴 기술은 도대체 뭐였지?”
“청은 5대 신앙 중에서 제일 하락세인 곳 아니었습니까? 아무리 견습들이라고 해도 잘나가는 적에게 이길 줄이야…….”
“견습이니까 더 눈여겨볼 만한 거죠. 신앙의 미래 아닙니까.”
“교황의 손자를 들여온 수완은 어떻고요!”
사람들의 관심은 최고조였다.
그리고 고작 견습들의 펜타곤이 이토록 주목을 받는 이유는 펜타곤이 신앙 전쟁의 축소전이기 때문이다.
펜타곤 결과로 신앙의 힘과 성장세를 가늠할 수 있고, 귀족들은 어디에 투자를 할지 정확하게 계산을 한다.
그러니 나이저는 아이작을 노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소의 청이라면 절대 못 할 짓을.’
속세와 거리를 두기 위해 정치적으로 엮일 생각을 안 하는 이들이었으니까. 물론 다른 말로 하면 정치 수완이 젬병인 놈들이란 의미지만.
그런 의미에서 어떻게 청에서 저딴 놈이 태어났지?
‘몰락해가는 가문 주제에 감히 적을 농락해?’
나이저의 이가 갈렸다.
이 자리만 끝나면 두고 보자. 주신의 석상을 날린 것만 봐도 분명 뭐가 있는 놈이었다.
‘저놈의 신앙심을 낱낱이 밝혀서 이단심판으로 넘겨주마.’
청의 맥을 끊어서 5대 신앙이란 말을 못 붙이게 해주리라.
청의 공작가? 어쩌라고?
이 제국에서 적의 압수 수색을 피할 수 있는 놈들은 없었다.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손아귀에 의해 멸문한 가문이 얼마나 많았는가.
황실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그때였다.
“제국을 대표할 최연소 사제가 인상적이었군. 황실의 연무장을 빛내준 승리자들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보내주게.”
“……!”
황태자였다.
황실 대표로 참여한 그의 말에 경기장이 술렁거렸다. 황실이 물건을 하사하는 일도 흔한 일은 아니었지만, 최연소 사제라니!
“아이작 공자를 말하는 게 맞죠?”
황실이 관심을 가지는 건가?
그리고 그 말이 귀족들에겐 어떤 의미가 되느냐.
“올해의 국가 사업은 청이 가져가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청이 황실의 비호를 받는 건가?”
나이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황실이라고??
귀족들이 술렁거렸다.
“호오, 이거 잘 붙어야겠군. 그런 의미에서 릴라이 경… 어? 릴라이 경?! 어디 갔지? 릴라이 경!”
릴라이는 기쁜 듯이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하이에나들이 아닌, 아이들의 성장이었다!
‘설마 적을 이길 줄은 몰랐는데.’
하물며 정말 그 힘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녀님들의 힘을 부활시키다니!
확인을 해봐야… 아니! 그전에 일단 칭찬부터 해줘야지.
하물며 아이작은 자라지도 못할 것 같던 아이가 청의 명예를 드높여주기까지 하다니.
청으로서는 복덩이가 아닐 수가 없다.
그러나 릴라이가 조카들에게 달려가던 그때였다.
“릴라이 경.”
“!”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릴라이는 황급히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헬라의 또 다른 태양을 뵙습니다. 전하.”
기사들과 함께 있는 황태자 무리였다.
15살쯤 될까. 흑발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깊은 금색 눈.
샤블리스 알렉프리크 헬라.
수많은 나라가 존재하는 이 대륙에서 헬라 황실의 권위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황태자인 그는 검에서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내며, 기사들을 이끄는 제국의 차기 수장이었다.
“경이 빼어난 조카들을 두었소.”
“황공하옵니다, 전하.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아이들인데 부끄럽습니다. 전하께서 좋게 평가해주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선물까지 하사해주시다니, 아이들도 몹시 기뻐할 것입니다.”
보통은 별것 아니라며, 수고하라며 마무리하고 떠나는 게 보통이다.
그래, 보통 그래야 하는데.
“그래. 그것 말인데.”
“예……?”
선물을 준 목적이 있는 걸까. 황태자는 묘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청의 견습들의 사제 옷을 지어주려는 쪽으로 하려는데, 어떻소?”
저, 전하?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당황한 듯 황태자를 보았다. 릴라이도 당황한 듯 얼이 빠져 있다가, 곧 답했다.
“아, 예! 대단히 좋아할 겁니다. 견습들은 옷을 하나씩밖에 지급받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금의 펜타곤에서는 국외로 나가니 더욱 빛을 발하겠죠. 황실의 옷이면 가히 가보로 삼을 것입니다.”
“그럼 재단사를 보낼 때 나도 잠시 들러도 되겠소?”
“…예?”
…이분이 왜 이러시지?
“아니. 바쁘신 전하께서 굳이 발걸음 하지 않으셔도…….”
“그대의 조카를 보고 싶다는 의미요.”
예?
황태자가 고작 견습 사제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왜??
아무리 공작 가문이라도 신분 차가 있는데.
하물며 황실은 사제 쪽하고는 얽히기 싫어할 텐데?
그러나 당황하는 릴라이에게 황태자가 다가와 속삭였다.
“참. 청에게 정보 하나를 주자면.”
“!”
“막내 조카한테 금의 펜타곤은 포기시키는 게 좋을 수도 있을 것이오.”
“그게 무슨……!”
“특히 교황은 아이작 에슈아 공자를 죽이려고 하니, 조심하고.”
“……!”
교황, 금의 펜타곤.
그 단어에 릴라이는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다음 테스트는 국외로 나가는 일인 만큼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도 안 잡힌다.
물론 입양 이야기까지 꺼낸 판에 금이 아이작을 죽이려 할까 싶지만, 교황청을 예의주시하는 황태자가 저리 말하는 데에는 분명 근거가 있는 거겠지.
하지만 괜찮았다!
아이작이라면 분명 해낼 것이었다.
괜찮을 것이다. 분명.
* * *
아니. 괜찮지 않아.
아이작은 썩은 표정으로 청의 생활관 안을 보고 있었다.
밖은 청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야수화에서 풀린 청의 팀원들도 결과를 듣고는 환호하며 아이작에게 공을 돌렸다.
“들었냐? 무려 황태자 전하께서 옷을 지어주신댄다! 미친 거 아니냐!”
“거기에 킹까지 따다니!”
“이거면 우리 생각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래, 다 계획대로고 성공적이지.
예상치 못한 건 이거지.
“야. 너 집에 안 가?”
바로 청의 생활관에서 벗어날 생각을 안 하는 키나 베리트다.
아이작은 못마땅한 듯 눈썹을 치켜떴다.
“적의 테스트 끝났잖아. 이제 너 필요 없어. 이제 집에 가도 돼.”
심지어 이 자식. 금(金)가의 소공작에, 교황의 손자 주제에 청의 허리끈까지 안 풀고 있다.
시녀들이 가자고 옆에서 버티고 있어도 안 간다.
“마, 맞습니다. 작은 주인님. 가셔야 합니다. 가주께서 빨리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지금 이러는 것만으로도 니 부모 속 뒤집히고 있을걸?
아니,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열불 나고 있을걸?
경기장에서 나갈 때 마주친 니 아버지의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실제로 키나를 데리러 온 시종은 땀을 삐질 흘렸다. 사실 이건 베리트 추기경뿐만 아니라 교황께서 직접 명하신 것이었기 때문이다.
‘금의 펜타곤에서 청을 처리하신다고 하셨거늘.’
손자가 청에 있으면 골치 아프다는 걸 보니 뭔가 제대로 하시려는 거겠지.
즉, 키나가 여기에 있으면 청에 손을 대기 힘드신 게 틀림없다.
하지만.
“안 가.”
“뭐?”
“네가 청의 사제가 되라고 했잖아.”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내가 언제 시벌 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