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화. 청을 무시하지 마라 (4)
적의 추기경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 모습에 청의 팀원들은 공포에 떨었다.
적의 추기경이 웃고 있다.
웃고 있는데… 눈이 안 웃고 있어! 그리고 뱀눈을 보이기 시작했어!
황혼의 색으로 물든 것 같은 눈이 핏빛으로 변하고 있다고, 시발!
한마디로 무지하게 열 받았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사태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어? 혹시 그거인 줄 모르셨어요?”
아이자아앍!! 너 진짜!
“아, 그러니까. 보여주겠다고 한 게 그거였다고?”
“눼. 마음에 안 드셨나요?”
마음에 들겠냐, 새끼야!
청의 팀은 입에서 영혼이 뽑혀 나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적의 추기경의 얼굴을 볼 수는 없는데, 아무튼 심장을 뽑아갈 것 같다.
그랬기에 그들은 다급하게 아이작을 붙잡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빨리 빌라는 듯, 아니 제발 빌어달라는 듯 속삭였다.
“너 미쳤어?!”
“왜 하필 적가한테 그러는 건데……!”
“머. 왜.”
뭐어?
왜에?
진짜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거짓말 안 하고 진짜 적가한테 걸리면 뒤지…아니 죽는 것이었다!
“너도 알잖아! 쟤들, 이웃 나라 왕조까지 몰락시킨 무서운 놈들이라고!”
마녀사냥으로 영원할 것 같았던 가문이 몰락했다. 적의 신앙의 대륙 정벌로 유명한 ≪가시군≫ 출정으로.
어디 그뿐인가.
“해골왕 추종자와 내통자들을 찾아내서 그 공으로 승승장구하는 놈들이야…!”
그 말에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해골왕 추종자와 내통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해골왕 추종자는 뭐. 이단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러려니 하고.
“눼통자?”
“그래, 신성제국을 멸망시키려고 해골왕에게 정보를 빼돌리는 놈들!”
…그런 기특한 녀석들이 있었어?
“해골왕을 신성제국에 들이려고 인간을 배반하는 놈들이야!“
그 해골왕 이미 여기에 계신다만.
“맞아! 해골왕이 엄청난 대가를 지급하고 있다잖아!”
그 짝퉁 새끼가 지금 누구 돈을 쓰고 있는 거야, 시발.
“아무튼 적의 신앙은 없던 죄도 만들어서 화형시키는 놈들인데……!”
뭐 알 만하다.
어쨌거나 신들은 해골왕에 대한 것이라면 치를 떠는 놈들이었다. 해골왕과 연관된 것은 씨를 말리려는 것이겠지.
그래서 해골왕과 연관된 자들을 잡아들이는 적의 신앙에게 더 큰 축복과 보상을 내리는 것이고.
“그러니까 적이 에슈아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거지…! 해골왕과 제일 연이 깊으니까!”
아하, 그러니까 타락한 자가 있는지 시뻘겋게 눈을 뜨고 감시를 하고 있으시다?
“그래! 그리고 너어는 가뜩이나 해골왕의 육신을 먹었잖아! 더욱 건수를 잡아서 처넣으려는 놈들이라고……!”
한마디로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리다.
‘만약 내가 변절자라면, 적(赤)은 신에게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되겠지.’
그러나 위스퍼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고작 변절자라니요. 아예 마왕 본인이신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뭐 청에게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묘한 기술을 익힌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웃고 있던 추기경의 뱀눈이 아이작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수색하는 듯한 눈에 아이작이 미세하게 미간을 좁혔다. 마치 몸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기분 나쁜 눈빛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은 그 눈빛의 정체를 알았다.
‘탐지 성법.’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는 술법이다.
괜히 아이작이 적의 추기경과 조우하기 싫어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마력핵과 정체를 들킨다.
적의 추기경 정도면 영혼의 기억까지 읽을 수 있었다. 숨은 마족을 찾아내는 놈들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그리고 그 증거로 추기경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왜인지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아이작이 빡친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에 놀란 위스퍼가 덜덜 떨며 외쳤다.
[꺄아와앍! 저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 마력 안 뿜었…….]
‘닥쳐.’
[넵.]
곧 아이작이 웃었다.
위스퍼는 완벽하게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놈이 기시감을 느낀 이유는 손 때문이겠지.
적의 성력을 쪽쪽 빨아 먹은 덕분에 다행히 뼈 손은 거의 복원했지만, 추기경이라고 또 지워버린 마력의 흔적을 느낀거겠지.
하지만 심증이지 증거는 못 된다. 증거는 완벽하게 없앴으니까.
‘뭐, 아무튼 이단심문에만 넘어가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공작가의 직계 자손을 이단심문으로 넘기는 게 쉬운 줄 알아?
적(赤)이 유일하게 건들지 못하는 게 황실이니, 정치적으로는 황실하고 친하게 지내면 되거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9계위 <이단 심문> 성법을 상쇄할 마력만 키우면 그만이거든?
‘뭐 그러려면 마법사나 마족을 두들겨 패서 마력핵을 먹으면 된다만…….’
신성제국이 좀 넓은가? 그놈들 땅에 갈 일이 없다는 게 문제지.
‘적당하게 힘을 올릴 수 있다면, 이 건방진 놈들도 확 손볼 수 있을 텐데.’
하여간 성력은 잘 뽑아먹었다만, 적가에 속한 신들은 죄다 건방지다. 어디 손봐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신들이 움직이기 전에 빨리 마왕의 힘을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견습 중에 마법사를 만날 일이 있을 리 없고.
그렇기에 이를 간 아이작이 순진무구하게 웃었다.
“각하께서는 제가 어릴 때 해골왕의 뼈를 먹은 것도 기억을 못 하시나 봐요.”
“……”
이 꼬맹이가?
“그리고 즐거움이 부족하셨으면 금의 펜타곤에서도 즐거움을 선사해드릴까요?”
그 말에 청의 팀원들이 얼어붙었다.
…이번엔 금의 추기경의 아들을 줘 패려고?
시선을 받은 키나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적의 추기경이 풉 웃었다.
“이번엔 무슨 대가를 바라길래?”
그 말에 아이작이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었다.
부하를 구하려면, 일단 항마석으로 만든 부하의 수갑부터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부하를 미리 만날 필요가 있단 거지. 물론 원래라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해골왕을 따른다는 십사육마를 미리 보고 싶어요.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감옥의 열쇠를 주세요.”
“……!”
적의 추기경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인지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금의 펜타곤을 성공한다면 내줄 수는 있다만, 가능할까? 어차피 너희는 다음 금의 펜타곤에서 사라질 텐데.”
뭐, 인마?
이 새끼가 또 뭔 개소리를 하나 했는데, 실제로 연회장의 분위기가 묘했다.
대부분은 청의 팀을 질투하고 부러워하는 시선이었지만, 가장 이를 갈고 있어야 할 적이 의외로 청팀을 보며 실실 쪼개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키나를 신경 쓰긴 해도 성적 욕심을 내며 으레 청을 견제하던 금의 팀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청을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아니, 저건 오히려… 불쌍하게 여기는 눈빛?
그래서 왜 저딴 기분 나쁜 시선을 보내나 싶을 그때.
“금의 펜타곤의 임무가 배정되었어!”
앞에 벽보가 붙자 사제들도, 견습들도 모두 술렁거렸다.
“역시 금의 펜타곤! 단기 출정 임무야!”
“<탈환> 임무다!”
한마디로 교황청에서 벗어나 외부로 나간다는 의미다.
-각 임무지에서 위대한 헬라가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아올 것.
그래, 거기까지는 잘 알고 있지.
문제는 어디로 파견되느냐지.
괜히 파견지에 따라 사망자가 나오는 것이 아닌……
아이작은 시선을 느끼곤 눈살을 찌푸렸다. 적의 추기경은 뭔가를 기대하듯 아이작만 보고 있었다.
“청의 팀이 어디로 가게 될지 궁금하느냐?”
안 궁금하니까 그렇게 피식피식 처웃지 말고 말하렴.
딸랑이 날리기 전에.
“≪크라샨디아≫란다.”
어딘데 그게.
그러나 아이작과 다르게 청의 팀은 얼어붙었다.
“마도제국의 영토잖아!”
마도제국……?
“마도제국은 헬라랑 천적 아냐? 거기 사제만 보면 죽이는 미친 나란데?”
“미, 미쳤어? 그런 곳이 임무지라고?”
“죽으라고 하는 거잖아!”
마도제국은 마법사들의 나라. 마법사들은 사제들과 원수며 서로 죽이려는 관계다.
신성제국을 넘보고 있어서, 붙잡히면 최소 포로, 고문이다.
청의 팀이 멘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교황청, 드디어 미쳤나?’
아무리 금의 신앙이 청을 싫어해도 그렇지, 이건 인간적인 도리를 넘어섰다!
“왜 다른 놈들이 실실 웃나 했더니……!”
아무리 그래도 한번도 마도제국으로 임무지를 배정한 적은 없었는데!
“심지어 거기면 마족의 영토 바로 옆이잖아!”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푸하하 실소가 터져나왔다.
“1등을 한 팀이 가장 어려운 임무를 맡는 거지?”
“어려운 임무? 야, 저딴 임무를 어떻게 성공하냐?”
“하긴, 어려운 임무일수록 보상은 크겠지만, 상급들도 가기 싫어하는 곳에 견습이 어떻게 가.”
“저거 성공하면 십사육마의 관리를 맡는다며? 뒤의 펜타곤 치를 것도 없겠다, 야.”
“그래, 목숨이 아까우면 포기하겠지. 풉.”
그러자 키나가 바보들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마도제국의 영토라 해봤자 거기는 헬라와 교류가 있는 곳이야. 죽을 일은……”
“아니 죽을 거야.”
“!”
어째서인지 슈리가 몸을 떨었다.
“얼마전, 그 인근에서 성기사들이 견습들이랑 상급 가리지 않고 납치당했어.”
“납치?!”
“범인은 14년 전에 금의 펜타곤에서 사제들을 잡아먹은 상급 마족이라고! 지금도 조사 중인 출입 금지 지역인데……!”
모두가 공포에 떨었지만 아이작의 눈이 반짝였다.
…상급 마족?
…거기에 마도제국이라고?
그러니까…마력핵 광산?
아이작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듯 찢어졌다.
아이작은 웃는 게 들킬까 봐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적의 추기경은 안쓰러워하며 아이작의 어깨를 잡았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 가엾게도. 하지만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아도 괜찮단다. 아이작, 네가 ‘살려주세요.’라고 한마디만 한다면 내 권한으로 장소를 바꿔줄 수도 있다.”
“!”
그말에 모두가 기대하듯 아이작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아무리 그래도 죽기는 싫었던 것이다.
고개를 숙인 아이작이 마치 흐느끼듯 작은 어깨를 떨었다.
“정말 장소를 바꿔주신다고요?”
적의 추기경은 그 모습에 쾌감이라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역시 죽는 건 무섭긴 하겠지. 이걸로 적의 펜타곤에서 아들을 괴롭힌 복수는 할 수 있겠군.
“그래. 그러니 한마디만 하렴. 자, 살려주세…….”
“싫은데요?”
…뭐?
“싫다고요! 안 바꿔주셔도 될 것 같아요!”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한 그 웃음에 모두의, 아니 추기경의 표정이 볼만했다.
…이놈이 미쳤나? 정녕?
* * *
그 무렵, 수도의 청의 저택.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격분한 릴라이가 이럴 순 없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임무 지역이 마법사들의 땅이라니요! 그것도 납치당한 성기사들을 되찾아오는 임무라니요! 이건 S급 임무입니다! 그냥 죽으러 가라는 거잖습니까!”
“릴라이 님!”
“교황청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청에 1등을 주나 했더니. 임무 배정은 성적순이라서 그렇게 배정을 해? 하다 하다 교황가가 그리 치사하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마법사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사제들을 싫어하는데! 아무튼 당장 취소하지 않으면 교황청을 박살 내겠다고……!”
“아서라. 이미 아버지께서 똑같은 말을 하며 깽판… 아니 항의하러 교황청에 가셨다.”
“형님!”
고엘은 한숨을 쉬며 릴라이를 보았다.
하여간 이놈의 성녀 집안은 머리보다는 힘밖에 모르지.
그러나 릴라이는 침착한 고엘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듯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상급 기사들도 사체가 되어 돌아오는 곳입니다! 하물며 이번엔 대상이 그 마족…….”
릴라이는 이를 갈았다.
14년 전, 자신의 견습이었을 때 친구를 앗아갔던 그 마족이었다. 그 잔인함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고엘은 코웃음을 쳤다.
“뭐, 아이작 팀에 맡기는 것도 이상할 게 없지.”
“예?”
고엘은 대답 대신 미간을 좁혔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금의 저택에서 교황가가 숨기고 있는 걸 보지 않았던가.
‘최고신을 뽑아냈으니 아이작을 죽이려고 작정한 거지.’
하지만 고엘은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아무래도 가문의 가주가 되는 건 나겠구나.]
“!!”
그들에게 날아오는 고래 신수가 있었다.
그 신수가 누구의 것인지 바로 눈치챈 고엘과 릴라이의 눈빛이 바뀌었다.
‘넷째.’
고엘처럼 교황의 핏줄로, 청의 가주 자리를 노리고 있는 에슈아 제일의 망나니였다.
아무래도 서품식 이후로, 청의 가주가 아이작에게 관심을 쏟는 걸 신경 쓰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물며 아이작은 어째서인지 소실된 성녀 가문의 비전을 알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재밌는 막내가 있다면서? 아쉽군, 죽기 전에 보고 싶었는데.]
릴라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인간은 분명 타지에서 수배된 마족들을 잡는 임무 중일 텐데. 아이작의 임무지 근처와 가깝다면 가깝…….
동시에 뭔가 깨달은 릴라이의 눈이 험악해졌다.
‘설마 이번 금의 펜타곤과 연관이 있나?’
아이작을 죽이려고 금에게 사주를 했다든가?
하지만 고엘이 혀를 찼다.
“뭐, 아버지가 가셨으니 테스트 내용은 적당히 바뀔 겁니다.”
“바뀌어요?”
“아무리 그래도 견습한테 외교 문제로도 번질 수 있는 그딴 임무를 주겠느냐. 금으로서는 설치지 말라고 겁을 주는 거지.”
“아…….”
솔직히 고엘로서도 너무한다 싶다.
아들이 마법사들에게 죽는 건 원치 않았다.
“뭐, 다른 임무를 고르게 되면 청의 명예는 떨어지겠지만, 아이들의 목숨이 더 중요하니까. 걱정 마라. 아이작 그놈도 대가리에 정신이란 게 박혀 있으면…….”
그런데 그때였다.
청의 가주를 쫓아갔던 기사들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돌아왔다.
“큰일입니다! 도련님!”
“아이작 도련님이 이미 그 장소로 임무를 승낙해버리셨대요……!”
고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게 대가리에 정신이 안 박힌 놈이란 걸 잊었구나.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