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제정신이야? (1)
술렁 술렁.
교황청의 연회장이 술렁거렸다.
넓은 연회장엔 사제들뿐 아니라, 귀족, 기사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한 곳만 쳐다보았다.
바로 청의 팀이었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성자 후보에겐 교황으로서의 길이었고, 일반적인 사제들에겐 출세와 연관된 길 일이니까.
그래, 좋은 일이긴 한데……
“들었어? 이번에 청의 팀에 배정된 임무?”
“허… 견습한테 마도제국으로도 모자라서, 포로로 잡힌 성기사를 되찾아오라고?”
“와… 그걸 견습이 어떻게 해결해? 금이 진짜 작정하고 청을 죽이려고 하는구나.”
“견습이면 마법사들에게 단번에 목이 따이지…….”
시발!
눈빛들이 어째 죄다 명복을 비는 동정의 눈빛인데! 하물며 왜 임무를 성공할 거라고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데!
아니, 눈빛만 안 좋은 거면 참을 수라도 있지.
“아, 어쩔 거야! 성기사들이 아무도 우리한테 안 오잖아!”
그래, 문제는 이것이었다.
금의 펜타곤은 나라를 벗어나 위험지대로 가는 임무였다. 그런 만큼 호위가 필요한 법.
‘헬라만 벗어나도 마족들이 우글거리니.’
어디 마족뿐인가.
헬라 교황청 사제들은 대륙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다. 아니,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6계위 성직자만 되어도 나라에서 손님으로 모시고, 7계위 이상이다? 왕국에서는 아주 귀빈급 대우였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헬라>는 대륙에 뿌리를 내린 5대 메이저 신앙의 총본산이자, 사제를 배출하는 주역이었으니까.
하다못해 고작 견습들의 <펜타곤>만 해도 오지 사람들이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했다.
어디 그뿐인가?
‘사제의 절반 이상이 귀족 자제란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고?
시발!
몸값을 노리고 도적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다는 소리다! 유괴의 대상이라고!
덕분에 견습들은 성기사들과 합동 임무를 하고 오는 게 관례가 되었다.
뭐, 사병이나 용병을 고용할 수도 있지만, 그런 세속적인 행위가 성스러운 펜타곤에서 용납될 리가 없다.
‘그러니까 최대한 좋은 성기사들을 데려가야 하는데에에에!’
좋은 기사는 개뿔!
“시발! 아무도 안 와!! 안 온다고!”
거의 노골적이다 싶을 정도로 청의 팀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물며 이번 펜타곤이 보통 펜타곤이야?
차기 교황이 될 거란 자들이 모인 펜타곤이었다.
그런 만큼 현역 성기사들부터, 후배들을 데려오는 상급 성기사들까지. 눈에 익은 유명한 성기사들이 나타날 정도로 어느 때보다 관심이 뜨거웠지만…….
“시발. 진짜 노골적으로 우리만 피하네.”
“…영애들도 아무도 안 오잖아.”
“나는 아까 아는 성기사한테 인사하러 갔는데, 슬슬 피하더라.”
그리고 그 상황에 분노하는 사람이 한 명.
“뭐야, 어이없는 때끼들이네. 우리 팀에는 왜 안 오는데?”
아이작의 불만에 청의 팀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오겠냐?
오겠냐고!!
청의 팀은 아이작의 멱살은 못 잡고, 얼굴만 부여잡았다.
“이미 소문이 쫙 퍼진 거지…. 사실상 죽으러 가는 임무 받았다고.”
성기사들도 결국 출세를 바라는 이들이었다.
도와준 사제들이 펜타곤에서 좋은 평가를 낼 수록, 성기사들도 좋은 평가를 받아 승진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다들 알짜배기 팀을 고르고 싶어 하지, 꽝을 뽑고 싶어 하겠는가!
그러자 아이작은 더욱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시험에서 협동하면 보너스잖아. 왜 안 와?”
청의 팀은 목이 턱 막힌 듯 가슴을 쳤다.
난이도? 지금 네놈이 난이도를 논해?!
난이도도 정도껏 있어야지! 살인마가 있는 마도제국에 가겠냐고!
“허, 배짱 없는 것들.”
배짱은 시발, 니 새끼가 너무 배 밖으로 나온 거고!
하지만 그걸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형들은 왜 아까부터 뭘 만드는데? 공작 수업 시간이야? 기특하게 노잣돈이라도 벌어오려고?”
“유서 쓰는 거야! 씹새야!”
“너 때문에! 너 때문에!!”
청의 팀은 헬라 전통 방식의 유품을 만들면서 거의 울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다 뒤지고 오라며 조롱 중이었다.
대장을 잘못 둬서 지옥으로 간 걸 축하한다며.
“…젠장. 나는 얼마 전에 태어난 아기가 있는데.”
대장 아이작은 놀란 듯이 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형! 노안이다 싶었는데, 결혼했구나! 추카해!”
“우오와와악! 동생이다 동생!”
팀원들이 넋을 잃은 듯 천장을 보았다.
“니네 집에서는 뭐라 안 하냐……?”
“난리 났지. 청은 정신이 있냐고 하더라.”
팀원 대다수가 귀족 가문의 자식들이었다.
그런 만큼 당연히 항의가 있었다. 물론 대부분이 가신 가문이라 에슈아에 크게 목소리를 못 내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각하와 이야기를 해보시겠다고 했는데…….”
“그래…? 부럽다. 우리 집은 어린 분이어도 청의 후계자시니, 전부 생각이 있으실 거라면서 도시락까지 싸주시더라…….”
그 말에 팀 전원이 아이작을 보며 침묵했다.
생각…이라.
“…저게 생각이 있어 보이냐?”
아이작은 푸헿푸헤헿헿 웃으면서 짐 싼 가방을 확인하고 있었다.
“광산, 광산, 푸헿푸힣!”
…저새끼는 지금 무슨 소풍 가는 걸로 착각하는 건가……?
“역시 애라서 모르는 거야…! 거기가 어떤 곳인지!”
마도제국.
마족의 땅과 인접해 있는 나라로, 헬라가 사제들을 기른다면 마도제국은 마법사를 기르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간 사제들은 거의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지금은 수백 년의 전쟁 끝에 합의하에 종전을 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불구대천지원수라 볼 수 있는 곳.
장소만으로도 그런 곳인데, 뭐? 14년 전에 금의 펜타곤을 뒤집어 놓은 마족까지 있다고?
“넌 14년 전에 어떤 학살이 일어났는지도 모르지?”
“그래 봐야 마족이잖아? 수련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수련… 뭐?!
“…수련이 될 마족이 아냐! 상급 마족이라고!”
그러나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상급 마족이라고 해봐야 다 내 밑인데.
“아오, 너희 집 천재 숙부가 킹을 못 딴 유일한 항목인 것도 모르냐!”
천재 숙부? 릴라이?
“그래! 우리처럼 금의 펜타곤 때문에 출정 나가셨는데, 그때 동기 팀이 몰살당했대! 재미로 어린 사제들을 사냥하는 놈이라고! 너희 숙부가 꼬박 14년을 찾던 놈이기도 하고.”
릴라이가 찾는 녀석이라면 7계위 이상 되려나?
뭐, 어떤 마족인지는 몰라도 오히려 좋은 기회였다. 신성제국이라 쓰지 못했던 마법을 마음껏 테스트해볼 수 있을 테니까.
현재 실력으로 신들과 짝퉁을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을지 가늠해볼 기회다.
그리고 어린 사제들만 골라서 사냥하는 놈이라면, 대충 어떤 성향의 마족인지도 감이 온다.
교황이 일부러 청의 팀에게 배정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망신?
포기해도 청의 대망신이지만, 실패하면 그걸로 안 끝나겠지.
‘청의 존속 문제로 이어질걸.’
문제는 놈들이 그 임무를 해골왕에게 맡겼다는 거고, 또 해골왕이 실패할 리 없단 거지.
만약 성공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 누구도 청을 무시할 수 없을걸?
“괜찮아. 나만 믿고 따라와.”
팀원들은 이마를 짚었다.
결국 무책임한 듯한 아이작의 말에 키나가 한심하다는 듯이 보았다.
“생각이 없구나, 에슈아. 수련 목적이라니.”
키나의 실망했다는 듯 질책에 팀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키나! 네가 한마디 해주…….”
“수련을 하려면 날 데려가야지. 왜 날 팀원 명단에서 뺀 거야?”
키나의 진지한 눈빛에 팀원들은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아… 틀렸어!
이 팀, 글렀어!!!!
“아냐! 포기하지 마! 그래도 아직 성기사가 남아있어!!”
“그래! 아직 남아있는 성기사 중에 1순위 기사단이 있었어!”
청의 팀원들은 눈을 부릅뜨고 기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보았다.
금의 펜타곤에 동원되는 기사들은 대부분 2품 기사들. 적당히 실전 경험도 있고, 외부 사정에도 밝다. 견습들을 호위하기에 최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 계약이 되었지만,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기사들이 네 그룹.
하나는 만인이 선호하는 1그룹으로, 황실 기사단인 만큼 실력도, 인망도 높다. 단장급이 껴 있고, 여기저기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다 보니 아직 금의 펜타곤에서 계약이 안 됐다.
2, 3그룹은 실력은 평범하지만 무난한 2품 기사들.
4그룹은 놀랍게도 제국에서 정말 유명한 천재 상급기사가 한 명 껴 있지만…….
‘절대 계약은 피해야 한다.’
‘쟤들 만큼은 피해야 해!!’
그도 그럴 게, 4그룹은 실력은 제일 좋은데 사제들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놈들이었다. 임무 중에 사제들이 죽어도 신경도 안 쓰는 놈들.
실제로 위험 상황에서 호위 임무를 저버리고 사제들을 버리고 와, 크게 다쳐서 온 전적이 있었다.
호위기사로서는 최악의 상대들. 선호도 제일 최악 순위였다.
‘그런 놈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는 의문이다만.’
얼굴을 보아하니 억지로 끌려온 듯한 얼굴.
“아무튼 1그룹! 무조건 1그룹을……”
그런데 그때였다.
“아! 금의 팀이 채갔어!”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저 1그룹 기사단을 연결해준 게……
“저거 몰렉의 아버지 아냐?! 몰렉 백작이잖아!”
“몰렉? 우리 팀의 그 몰렉?!”
<화합>에서 슈리를 배신하려 했고, 성녀에게 아이작의 일을 일러바치려다가 된통 당한 그 몰렉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우리 팀 사람이 금의 팀에 좋은 일을 해?!”
그 의문에 답하기라도 하듯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긴 왜야. 내가 들어갈 팀이니까 그렇지.”
“몰렉!”
몰렉 백작과 함께 나타난 몰렉은 풉 아이작과 슈리를 보며 비웃었다.
“그러니까 화합 때 배신했어야지.”
“뭐?!”
아들과 함께 나타난 몰렉 백작은 아이작을 보며 혀를 찼다.
“청에 망조가 들었군요. 과거의 명성만 보고 아들을 거기에 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아이작은 이놈은 뭐냐는 듯 보았다.
“죄송하지만, 아들과 그 친구들은 청의 팀에서 나와 금의 팀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아하. 그러니까 1그룹을 연결해주고 아들을 그 팀에 집어 넣었다는 거구만?
교황청이 잘도 허락했다.
뭐, 그만큼 금의 팀의 물주가 된 듯하지만.
실제로 몰렉은 금의 팀에 굽신거리고 있었다. 금의 펜타곤에서 모든 경비를 책임지는 듯했다.
‘뭐, 꽤 입김이 센 가문인 듯한데.’
뭐 귀족들을 선동해서 여론을 만들 만하다.
하지만 아이작은 풉 웃었다.
“백작님께서 생각을 잘못 하셨네요. 만약 우리가 성공해서 돌아오면 개쪽 되시는 건데요.”
몰렉 백작은 아이작을 비웃었다.
누가 머리보다 힘인 성녀 가문 아니랄까 봐.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귀족들 모두가 청의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대하겠다는 듯 청의 팀에서 팀원들을 빼갔다. 순식간에 인원이 줄자, 남은 청의 가신들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젠장! 이러면 차선책! 2순위에서라도 뽑아야 해! 아니 3순위라도 좋아!”
“4순위만 아니면 돼!”
곧 앞에서 대장을 호명했다.
“아직 성기사 그룹과 계약하지 않은 팀은 나오세요!”
“아. 내가 해결하고 올게. 나만 믿어.”
팀원들은 기대하듯 아이작을 보았다.
“오오 그래! 청의 직계 파워!”
“그래, 2, 3그룹이다! 살게 해줘!”
마침내 아이작이 교황청 사제와 교섭을 하듯 이야기하자, 교황청 사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청의 팀은 4그룹으로 결정했습니다!”
청의 팀은 환호했다.
“그래, 그렇지! 4그룹…….”
…엥? 4그룹?
그 말에 연회장 전체가 술렁거렸다.
청의 팀은 완전히 얼어 붙었다.
4그룹?
그러니까 사제들을 끔찍하게 싫어해서, 임무 중에 내팽개치고 가는 그 천재 성기사네 그룹?
실력만큼은 누구나 탐낼 정도라 가질 수만 있다면 최고라 하지만, 글쎄.
그 누구도 따르지 않고 인성에 문제가 있는 그 그룹? 기사단장도 교황청도 포기한 걔네? 문제아?
“…진짜로?”
아이작은 피식 웃었다.
‘왜 천재 소리를 듣나 했더니.’
가장 뛰어난 성기사를 고르는 일쯤이야 마왕의 눈으로 고르는 건 일도 아니지.
“제일 실력이 좋은 놈이래. 잘했지?”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