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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82화 (82/272)

제82화. 제정신이야? (2)

아이작 에슈아.

뭐, 괴상한 놈이라고는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은 했지. 생각은 했는데…….

“아이작 팀이 역마(驛馬)들을 뽑았다고?”

설마 자살에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베리트 추기경은 뜻밖의 소식에 실소를 흘렸다.

이번에 임무지를 배정한 건 바로 베리트 추기경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에게 절대 해결 못 할 과제를 내준다? 그럼 아이작이 죽든 청이 죽든, 어쨌든 이득이겠지.

물론 변수는 있었다.

‘성기사 계약.’

그리고 아이작이 황실기사단인 1그룹을 뽑는 경우였다.

‘그 교활한 황태자 같으니.’

황태자는 금의 펜타곤이 시작되자마자 성기사 그룹에 황실기사단을 슬쩍 껴넣어 버렸다.

‘지 아비를 닮아, 아니 제 아비보다 더한 놈 같으니.’

틀림없이 감시 목적이거나, 눈여겨 보는 듯한 아이작을 도와주라고 넣은 거겠지.

그리고 황실기사단 소속인 1그룹?

괜히 황실기사단이 아니다. 펜타곤에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그나마 있겠지.

즉 아이작도 바보는 아닐 테니, 황실기사단을 뽑을 것이란 이야기였다.

그랬는데…

‘설마 그 고삐풀린 망아지들을 뽑을 줄이야.’

역마.

유명한 놈들이었다. 물론 능력만 보면 황실기사단보다 뛰어나지만, 거기에 속한 놈들은 모두 성직자를 싫어하는 이단자들.

그 때문에 이 신성제국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파발꾼으로만 쓰는 성기사들이라 조롱받는 놈들.

소식을 들은 금의 사제들도 풋 비웃었다.

“가뜩이나 마법사들이 진을 치고 있는 땅입니다. 호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하필 뽑아도 신의가 없는 그딴 놈들을…….”

“글쎄요, 청의 사람이 바보도 아니고. 그냥 뽑았을까요?”

“설마 아이작 에슈아가 그 역마들을 길들일 목적으로 가져갔단 겁니까?”

“하긴, 괜히 교황 성하께서 내치지 않으신게 아니죠. 한때 교황도 길들이려 했으나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능력만 보면 제일…”

그말에 몇몇 사제들이 미간을 좁혔다.

“만약 그놈이 정말 길들이기라도 한다면요?”

그들은 침을 삼켰다. 만약 정말 그리되면 아이작은 막강한 무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베리트 추기경이 후룩 차를 마시며 말을 잘라냈다.

“성녀 가문의 자식이라 해봐야 솜털이다.”

“!”

“그리고 그놈들은 사제들을 좋아할 수가 없어. 그걸 길들인다면 그야말로 성자겠지.”

“……!”

애초에 교황도 품지 못한 놈들을 고작 견습이 품을 수 있을 것 같은가?

베리트 추기경은 교황의 전언을 떠올렸다.

-잘 지켜봐라.

대상은 다름 아닌 아이작.

그리고 그 의미는 ‘경계’였다.

물론 그 경계가 베리트가에 한정된 문제인지, 신성제국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 아이에게 뭘 느끼신 건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드문 일.

‘처리한다.’

뭐, 제일 좋은 건 베리트가에 와서 최고신을 소환해주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것이 될게 아니면 세상에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게 낫다.

애초에 성녀 가문의 존재는 성가셨다. 신과 가까운 절대적 존재는 교황가 하나여야만 하는데.

“어차피 그 꼬마들로는 역마는커녕 14년 전 마족도 잡지 못해.”

뭐, 문제가 있다면, 그 없애려는 청에 자꾸 키나가 기웃거린다는 건데…….

“그래서 키나는? 분명 오늘까지 집에 오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했을 텐데?”

키나가 청에 붙어 있으면 될 것도 안 된다. 그러나 시종은 눈알만 굴렸다.

“그게… 차라리 벌을 받으시겠다며 찾지 마시라고…….”

우득.

베리트 추기경의 찻잔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놈의 새끼가 진짜?

* * *

그리고 멘붕이 온 건 청에서도 마찬가지.

“아이자악!”

골라도 하필 역마를 고르니!

연회장에서 들려온 소식에 릴라이는 벽에 머리를 박았다. 성기사를 고르는 것도 시험이기에 관여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힌트를 줬는데!

예로 들면 자꾸 컵을 두 개 들고 간다든가, 간식을 두 개를 준다거나, 계속 티를 냈는데!

그랬는데……!

‘역마라니읽……!!’

릴라이도 성기사인 만큼, 동료들에 대한 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역마? 그놈들은 사제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진짜 증오했다.

왜냐고?

왜긴 왜야!

마족 혼혈이니까!!

‘뭐, 이 사실을 아는 건, 교황청에서도 일부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추방하지 않는 건 그의 「기원」이 매우 우수하기 때문이지. 헬라에서 버리면 오히려 다른 나라에 득이 된다는 의미였다.

아무튼 자신도 친해져 보려 했으나, 성직자 가문이란 이유로 무시당했다!

‘순혈인 아이작을 좋아할 리 없는데……!’

아니, 좋아하지 않는 걸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놈들은 어떤 마족을 쫓고 있다.’

그런데 제 발로 마족을 찾으러 가는 임무에 들어간다고?

‘젠장! 아이들을 미끼 공물로 삼아서 마족을 추적하지나 않음 다행이지……!’

모두가 같은 생각인지, 성기사들은 아까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술렁거리고 있었다.

청은 정녕 죽음을 즐기는 변태인 거냐, 릴라이는 조카를 사지로 몰아넣는 게 취미인 거냐. 그런 눈빛들이다.

‘14년 전 마족을 쫓는 것만으로도 죽으러 가는 임무인데…….’

‘애들인데 죽겠네, 죽겠어.’

아니나 다를까, 연회장에 낯익은 얼굴이 나타났다.

“아!”

“청의 추기경님!”

청의 가주, 일라이가 아이작의 앞에 나타났다.

“하, 할아버지?”

슈리는 청의 가주의 화난 표정에 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이번 일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일까.

“아이작. 따라와라.”

“!”

청의 팀은 제발 살려달라는 듯 양손을 들었고-

“아아! 빛… 빛이다!! 청의 가주께서 오셨어……!”

“제발 저희를 살려주세요……!”

“아씨 할아버지, 이거 놔여. 놓고 말하라고.”

아이작은 구시렁거리며 청의 가주에게 질질 끌려갔다.

결국 아이작을 방에 박아넣은 청의 가주가 대뜸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야.”

“!”

굉장히 화가 난 음성이었다. 그 살벌한 성력에 아이작의 피부가 저릿 저릿할 정도.

“이번 임무가 장난이 아니란 건 너도 알 텐데.”

그래, 새끼야. 나도 장난 아니야.

“아니면 네놈이 아직 어려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게냐?”

거 나보다 어린놈이 어디서 눈을 부릅뜨냐고 할 순 없어서, 예쁘게 말했다.

“아뇨. 제대로 이해했습니다. 금이 저희를 없앨 목적으로 임무를 내린 거잖아요.”

가주의 눈빛은 더욱 험악해졌다.

“그런데 왜? 백과 적의 신앙에서 승승장구하더니, 그 일로 기고만장해졌느냐? 그것도 아니면 성자가 되고 싶어서 온갖 관심을 끌어모으는 것이냐?”

오, 할부지 화 많이 났네. 평소에 저택을 깨 부수고 지랄해도 이리 화를 내진 않았는데.

하지만 뭐, 그럴 만하긴 했다.

자신의 말로 스무 명이 넘는 귀족 자제들이 사지로 가게 되었다. 하물며 생각 없이 받아들인 것 같으니 청의 우두머리로서 화가 날 만도 하지.

아무튼 가주의 눈 밖에 나긴 싫으니 예쁜 말부터 해줘야겠다.

“할아버지. 제가 임무를 바꿔 달라고 했으면 청의 명예가 떨어졌겠죠. 전 그게 싫었습니다.”

자, 어때. 예쁘지? 예뻐 죽겠지?

그러나 예뻐 죽기는커녕 가주는 되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네놈이 지금 청의 명예를 입에 담아?”

아니 어이가 없다 못해 두 다리를 부러트릴 기세라 아이작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왜! 예쁜 말 해줬잖아! 지금 해골왕 못 잡았다고 조롱받고 살다 보니 명예가 개 똥값이 됐나!

[아뇨…. 명예를 운운하는 게 하필 주인님이라서…….]

안 닥쳐?!

그러나 청의 가주는 오히려 실망했다는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넌 가신들의 목숨이 하찮으냐? 그깟 자존심 때문에 마음대로 이용할 정도로?”

“!”

점점 차가워지는 가주의 눈빛에 아이작은 낌새를 눈치챈 듯 미간을 좁혔다.

음, 이거 안 좋아.

거짓말 안하고 잘못하면 가주 자리 물 건너가겠어.

그랬기에 아이작이 숨을 흡 들이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깟 자존심이 아닙니다.”

“!”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이번 임무를 포기했으면, 목숨은 건졌을지언정 청은 죽습니다. 그들이 청의 신앙을 없애고자 하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청은 약자를 지키는 신앙. 바닥에 떨어지려 하는 청의 명예도 그 대상에 속한다고 봅니다.”

어때, 가주 놈아.

정답이지 새끼야?

자신이 생각해도 꽤 마음에 드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주는 어째서인지 코웃음만 흘렸다.

“꿍꿍이가 뭐냐.”

뭐, 인마?

“꿍꿍이가 뭔데 ‘마력을 쓰는 놈’이 청의 명예를 논하며 거짓말을 하는 게냐?”

“!”

“왜 그런 표정이지? 네가 마력을 쓰고, 탐하는 걸 이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주, 주인님!]

아이작은 내심 당황했다.

음, 역시 성직자들의 우두머리.

마력핵까진 몰라도 해골왕의 마력을 직접 쓰는 것까진 인지를 한 건가.

“내 널 가만히 지켜본 건, 네가 내 아픈 손가락이었기 때문이다. 네 부모를 잃게 한 것에 대해 내 나름의 책임을 느껴서. 하지만 말만 번지르르한 네놈을 더이상 신뢰하기는 힘들겠구나.”

젠장, 역시 꼰…완고한 성녀가문. 혀만 놀려서는 오히려 반감을 사는 군.

그럼 할 수 없지. 정공법으로 가는 수 밖에.

[정공법이라니요. 설마 정체라도 밝힐 생각이신…!]

“할아버지. 지금껏 비밀로 해왔지만,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해골왕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습니다!”

[……구라쳐도 천벌 안 받습니까?! 청의 신앙 거짓말 금지인데요!]

닥쳐! 청의 신따위! 어차피 기척도 안 느껴지거든?!

위스퍼가 동공지진을 일으켰지만, 아이작이 더없이 진지하게 가주를 보았다.

“빌어먹을 해골왕 때문에 저는 부모님을 잃었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깟 해골왕을 못 잡은 걸로 청이 무시받고 있고요. 치욕스러워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옛날에 한번쯤 져주시지.]

“그리고 제가 해골왕의 마력을 쓰고자 한 건, 해골왕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해골왕을 없애려고요.”

[……그냥 본인 머리 깨면 끝나실텐데.]

그러나 정작 가주는 상당히 의외인 표정이었다.

‘눈을 보면 거짓은 아니다.’

정말 해골왕을 미치도록 증오하고 있다. 원수라고 생각할 정도로.

“할아버지. 청에서는 위험하더라도 적을 먼저 알라했습니다.”

“그래서 마력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예. 그리고 교리를 중시하시는 그 뜻은 알겠지만 에슈아가 사라지면, 식솔들도 죽고 해골왕도 죽일 수 없게 됩니다. 그 공식 토벌 임무를 금가나 다른 신앙이 가져가게 되겠죠. 성자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더욱 내줄 생각 없어요. 해골왕을 죽이는 건 저여야 합니다.”

“그래서 에슈아를 지켜야 한다고?”

그래! 미쳤다고 내 밥을 딴 놈한테 넘기겠냐?

그 짝퉁새끼!

“명예를 포기하면 목숨은 건질지언정, 할아버지의 손가락들이 죽습니다. 부디 가족들을 소홀히 하진 말아 주세요. 할아버지의 손가락들도 다 같이 품으셔야 할 약자들입니다.”

“허.”

가주의 기가 찬 눈빛에 아이작이 말을 이었다.

“물론 저도 승산 없이 가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역마를 뽑은 거구요.”

그러자 가주는 내심 놀란 듯했다.

이 녀석, 설마 눈치챈 건가? 역마들이 정체를?

결국 뭔가를 생각하던 가주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청의 명예를 위해, 네가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다고 하려 왔었거늘.”

그말에 아이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뭐야, 이자식. 설마 화가 났던 이유가 자신이 죽으러 가겠다고 해서였어?

‘아니 그럴리 없나?’

그러나 가주는 무슨 생각인지 측은하게 아이작을 보았다.

“너도 결국 청의 사람이구나.”

그 말은 무슨 의미일까.

가주는 할 수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뭐, 14년 전 마족을 처리한다는 임무 성공은 기대도 안했다.

“임무는 실패해도 좋으니 팀원들과 살아서만 돌아와라. 만약 네가 금의 펜타곤에서 살아 돌아오면…….”

아이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돌아오면?

“그땐 정식 후계자로 인정해주지. 후계 수업을 해주마.”

고개를 숙인 아이작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래! 그거지! 바로 이거야!

푸헿!

* * *

아이작은 곧장 짐을 꾸려서 수도에서 빠져나왔다.

뭐, 팀원들은 이미 유서를 품고 울고 있었지만 말이다.

“기사들하고는 이 앞 마을에서 합류하기로 했어.”

“젠장,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살아 돌아간다!”

“우오!”

팀원들이 앞서나가고, 아이작이 따라가려는 그때, 위스퍼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임무를 진행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 그래야 부하를 구하고 에슈아 재산도 내 게 된다!’

[그러고 보니 시키신 대로 14년 전, 그 마족에 대해 조사를 좀 했습니다만.]

‘그래? 어떤 놈인데?’

[난폭하더군요. 어린 사제들을 먹어 치웠습니다. 특히 뇌를 신나게 파먹었어요.]

아이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인간 섭취는 해골왕이 최고 금기로 걸어둔 절대 금제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도 유효한 조항.

‘그니까 누구냐고.’

[어… 그게…….]

‘뭐, 해골왕이 사라지고 태어난 마족이라면 내가 모르는 놈일 수도?’

[아뇨. 어쩌면 아시는 마족일 수도 있겠습니다. 서쪽 군단장 소속 마족이라 합니다. 십사육마는 아니지만…….]

아이작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 그러니까 병아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새끼들이 감히 내가 말한 규율을 어겨?’

가만두나 보자.

그리고.

그렇게 마을 쪽으로 향하는 아이작을 바라보는 한 여자가 있었다. 14년 전의 그 마족이었다.

“찾았다. 위대하신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에슈아의 꼬마랑, 맛깔나는 꼬맹이들.”

애쉬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작을 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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