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화. 뭔가 이상한데……? (1)
황태자궁.
황태자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
“그래? 결국 청은 다른 기사들을 골랐다고?”
그말에 직속 시종이 죄송하다는 듯 눈치를 살폈다. 설마 아이작이 황태자가 보낸 기사가 아니라 다른 팀을 고를 줄이야.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황태자의 행동이지.
왜냐고?
왜긴 왜야!
‘대놓고 청의 팀을 도와주라고 하시다니.’
교황청을 감시하기 위해 황실기사단을 투입한 건 맞지만, 설마 그와 별개로 아이작에게 이리 관심을 가지실 줄은 몰랐다.
‘청이 황실에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은데.’
하지만 명령은 명령.
그래서 투입된 황실기사단도 아이작 공자가 자신들을 선택할 때까지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금의 팀에 선택되고 나서도 최정예는 아이작이 고를 수 있게 다른 그룹에 섞여 있었다.
그랬는데 설마 엘리트들을 발로 찰 줄이야……!!
그러니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작 공자의… 눈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요? 역시 전하께서 너무 높게 평가하신 듯합니다만…….”
“알렌. 이번에 금의 펜타곤에 보낸 실론 경은 단장에 실력도 수준급이지만, 사실 성령 혼혈이야.”
“예?”
“마기에 취약해서 마족한테 약하단 의미지.”
“예?!”
그말에 시종이 기겁했다. 함께 보고를 하러 온 기사도 입을 쩌억 벌렸다.
“혼혈…이었습니까?”
“매일 함께 있는 저희도 전혀 몰랐는데요.”
“그보다 성령 혼혈이 가능한…….”
뭐,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은 알려줘도 상관 없다 할 정도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황실은 비밀로 하라 했던 것이지만…….
“만약 그걸 알고, 아이작 공자가 일부러 역마를 고른 거라면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은데.”
황태자가 눈을 반짝였지만, 시종과 기사는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그런 의미로 만약 아이작이 거기까지 알고 고른 거라면 이미 보통 인물이 아니다.
교황급의 눈을 가졌다는 의미니까.
“반면 역마들은 전원 마족 혼혈. 특히 역마의 대장은 상급 마족의 피를 이어서, 마족의 마기에 절대 중독되지 않지.”
“……!”
“아무튼 황실기사단도 청의 팀에 도움이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역마를 고른 걸 보면 설마 인질만 구하는 게 아니라, 마족과 직접 싸울 셈인가?”
그 말에 시종과 기사는 더욱 식겁했다.
‘14년 전 마족이 어떤 마족인데! 절대 잡을 수 있을 리 없다.’
그건 상급 성기사들도 목숨을 걸어야 할 수준이었다.
“기껏해야 납치된 성기사들의 유품을 들고 오는 게 고작일 겁니다.”
“예. 실력만 보면 역마들이 막강한 패가 되겠지만… 애초에 못 다룰 겁니다. 그들의 ‘손버릇’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은 사제들의 주머니부터 털고 마족들 소굴에 던지는 개새끼들이었던 것이다.
“에휴. 그래서 황실의 옷이 완성이 되거든 떠나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사실 시종은 기사를 고르자마자 떠나려는 아이작을 필사적으로 붙잡았었다.
-아, 아이작 공자?! 황실의 옷은 받고 가세요! 뭐가 그리 급합니까!
-사이즈 쟀으니 댔짜나? 돈 줄 거 아니면 나 간다.
이 꼬맹이가 황실 시종에게 말버릇이 고약한 건 둘째치고, 뭐 돈?!
“어휴, 그 손버릇 나쁜 역마 놈들도 황실 옷을 입고 있는 사제들이면 그래도 함부로 못 대할 텐데요.”
괜히 옷을 받고 가란 게 아닌데, 그 꼬맹이 놈.
-받고 가세요! 그래야 역마들한테 무시 안 받습니다!
-응, 난 그런 거 없어도 돼.
되긴 뭐가 돼! 이 빌어먹을 꼬맹아!
결국 시종은 안 봐도 훤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금쯤 벌써 역마들에게 당해서 길거리에서 자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황태자의 명을 받고 아이작 일행을 쫓아간 전령도 그리 생각했다.
그래, 분명히 그랬는데…….
뭐지…. 이 광경은……?
신성제국의 국경 인근 마을.
아이작에게 따라붙은 전령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중이었다. 눈앞에는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자 똑바로 외친다. 나는!”
“나는……!”
“버러지 때끼입니다!”
“버, 버러지 새끼입니다!”
“안 들린다. 다시!”
“나느은!”
“개 버러지 호로 때끼입니다!”
“개 버러지 호로 새끼입니다앍……!!”
나무 위 전령의 눈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뭐지.
왜 눈을 씻고 보고 또 다시 봐도.
왜… 마을 왈패들이 발가벗고 꼬마 성직자에게 정신교육을 받고 있는 거지?
백금발의 꼬마를 앞에 두고, 5명이 거대한 통나무를 어깨에 얹고 앉았다 일어났다…….
“야! 너, 거기! 통나무 기울었짜나! 똑바로 안 해?!”
“아니…. 여기 인원수가 모자라서… 흐억!”
“아니, 옷이라도 좀 주쇼! 밑이 신경 쓰여서 못 하겠는…….”
“없어! 때끼들아! 이미 당과로 전부 바꿔왔어!”
“아니, 우리 옷을 왜!”
“왜에? 왜라고 했냐? 그러게 누가 지갑에 돈 없으래? 돈 없는 니들 잘못이지!”
…미친, 성직자가 삥을 뜯고 있는데?
하지만 더 미치고 환장하겠는 건 아이작에게 기합을 받고 있는 왈패들이다.
그들은 이를 꽉 물면서 속닥거렸다.
“야…. 뭐야! 말이 다르잖아!”
“왜 우리가 이런… 시발!’
그래, 원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저놈들의 돈이랑 물건만 빼앗으면 되는 거였는데…!’
헬라 사제들의 펜타곤은 어디에서나 유명했다.
특히 신성제국 접경지 마을이라면 더더욱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왈패들은 어제저녁, 술집에서 뜻밖의 짭짤한 의뢰를 받았던 것이다.
-내일 점심쯤, 이곳에 백금발 꼬마가 껴 있는 교황청 견습 사제들이 지나갈 것이다.
행색을 보니 파발 담당의 성기사들이었다. 그런데 하는 말이 괴이했지.
-그놈들을 적당히 교육시키고, 가진 돈과 돈이 될 만한 건 전부 빼앗아라.
-성공하면 절반을 주지.
푸핫! 이게 웬 떡이냐 했지!
펜타곤을 치르는 견습 사제들이면 대다수가 세상 물정 모르는 핫바지 귀족 자제들.
교황청을 대표해서 나온 그들이라면 사제로서의 사명을 다하려 할 것이었다.
하물며 청이면 약자를 위한 신앙!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선인들이 키워내는 곳이니, 더 밥이지!
‘적당히 어린애 하나 붙잡고, 협박만 해도 가진 걸 다 내놓을 걸?’
그런 불한당 짓을 보고도 그냥 넘길 놈들이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그랬는데…….
-아, 밥 먹으러 가야 하니까 길막 하지 말고 비켜, 띱때들아.
무시해?! 사제가 눈앞에서 일어난 강도 짓을 무시해?!
그래서 결국 작전을 바꿔 공갈, 협박 쪽으로 갔지.
뭐… 흔히 부딪친 후에 옷이 더러워졌다, 어깨가 다쳤으니 돈 내놔라 작전이다.
그리고 보통의 사제들은 재수 없는 셈 치며 돈을 주고 싸움을 피한다. 하물며 수행 중인 돈 많은 귀족 자제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 그래야 하는데…….
-이 때끼들이 지금 먼저 부딪쳐놓고 사과를 안 해?! 아앙?! 니들이랑 부딪쳐서 팔이 부러졌자나! 어찌 책임질 거야! 아앙?!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를 드는 건 뭔데!
심지어 왜 무기가 딸랑이인데! 시발!
그 뒤는 뭐, 말할 것도 없다.
기껏해야 딸랑이를 들고 다니는 꼬마를 제압하는 게 뭐가 어렵나 싶어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해왔다.
그리고 당당하게 어깨 탈골을 주장하며 눈을 번득이는 꼬마한테 옷 빼앗기고, 이 모양이다.
“하 때끼들. 돈도 없으면서 부딪치지 말란 마랴. 남의 팔! 이렇게! 아작 내놓고 돈이 없어요, 돈이!”
안 부러졌잖아, 새끼야…….
양심이 있으면 부러졌단 팔로 딸랑이 날리지 마라.
반면 왈패들을 교육 중인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히죽 웃고 있었다.
‘하, 이 해골왕이 살다 살다 삥을 다 뜯겨본다.’
사제들이 호구 취급받는 건 알았다만, 어떻게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삥 뜯기는 대상이 되냐.
‘그거 알아? 신들조차 나한테 삥 뜯을 생각을 못 했어. 그런데 으디서!’
[…그냥 뜯을 가치가 없던 게 아닐까요?]
안 닥쳐?!
[생긴 게 빈곤해서…….]
닥치라고!
뭐, 아무튼 새로 태어난 몸이 노려지기 쉬운 법이란 건 잘 알았다.
그래서 혼내줬을 뿐이다. 슈리를 이용해서 말이다.
물론 약간의 도움은 줬다. 놈들의 눈에는 안 보일 위스퍼로 왈패들의 다리를 붙잡고, 넘어트리고 딱 요리하기 좋게 만들어줬다.
그러나 기껏 활약하게 해줬더니, 정작 청의 팀들은 은혜도 모르고 얼굴을 부여잡고 있었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
‘시발…. 이 새끼, 제국에서는 양반이었구나.’
이게 이 새끼 본성이구나.
제국에서 나오자마자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하지만 뭐, 이제 와서 그걸 눈치채면 어쩌겠나.
형이니 자신이 어르고 달래야지.
그래, 선배로서 기강을 세워야지!
“아이작…? 우리 그래도 교황청과 청을 대표해서 나온 거다. 하물며 청은 사람을 공격하면…….”
“형. 남의 것을 탐하는 놈들이 사람이야? 짐승이야?”
“…짐승이지.”
“짐승은 몸으로 알려주지 않으면 몰라요. 자, 이제 문제없지?”
…정말 문제없는 거냐?
“하, 자식들이. 얼마나 애들 꺼 뺏고 다녔으면 이리 돈이 많아. 푸헿!”
…정말 문제없는 거냐?!!!
아니나 다를까.
주변에서 술렁거렸다.
“저, 저 아이들 청의 사제들 아니에요?”
“청이… 돈을 뜯고 있어…? 갈취를?”
그 속닥거리는 소리에 슈리는 나무에 머리를 박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청의 팀이 아이작을 질질 끌고 오고 나서야 아이작은 멈췄다.
“이제 그만 하라고?”
“그래! 우린 성직자야! 정도껏 해야지! 수행 중에 삥을 뜯는 게 뭐냐!”
슈리를 포함한 청의 팀이 눈을 부릅뜨자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할 수 없지. 돈 뜯는 건 포기할게.”
그래, 그렇지!
드디어 이 새끼가 정신을 차렸…….
“촌장님. 우리가 얘네 잡아줬자나여. 사례금 왜 안 주세요? 안 주면 안 될 것 같은데.”
시발!
대상만 바꾼다고 되는 게 아니야!
하지만 소란에 불려 나온 촌장은 허허 웃었다.
“청의 사제님들이 오셔서 평온을 찾아주셨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드릴 수 있지요. 돈은 무리지만, 충분히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아이작은 흡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아, 그럼 여기 영주님 성은 어디에요?”
“서, 성이요? 거긴 왜……”
“이런 건달들이 설치고 다니는 게, 사실 영주님 성에 마가 끼어서 그래요. 그거 퇴치해드릴 테니까, 사례금 주실래요?”
아이자아아악!!!
얼마나 더 뜯어내려고 하는 거야아아앍!
슈리가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귀족은 건들지마, 귀족은!!!”
“평민은 건드려도 되고?”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와, 사람이 어떻게 그래. 형이 그러고도 청이야? 사람이냐고.”
슈리는 고혈압으로 쓰러질 것 같았다.
…다른 놈도 아니고 이 새끼한테 이딴 말을 들 어?!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청의 사제님들이 마을에 마가 끼었대…….”
“믿어도 되나?”
“청의 사제님들은 믿어도 되긴 하는데…….”
몰려드는 관심에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휘었다. 캬, 역시 성녀 가문! 이미지가 좋으면 이런 게 좋구나!
마왕 때는 이런 일, 한번도 없었는데!
아이작은 푸히후헿 웃었다.
“맞아요. 저희 청의 사제들이에요! 골치 아픈 건달들부터 무릎 통증까지, 싹 다 이곳에 모인 마족 때문입니다. 특별히 청의 사제들이 싼 가격에 싹 처리해드립니다! 선착순 100명!”
시벌 놈아! 돈벌이에 청의 이름 팔지마!!
슈리는 얼굴을 움켜쥐었다.
“하… 교황청이 이거 알면 금의 펜타곤이고 자시고. 성자고 뭐고 그냥 파문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아이작과 합류하기로 한 역마들.
“…저놈들이죠? 이번에 합류하기로 한 청의 팀.”
“어…….”
역마들은 마을에 먼저 도착해 마을의 건달들에게 접촉했다. 곧 도착할 청의 팀의 돈을 모조리 빼앗으라고.
뭐, 이득도 이득이지만, 사실 기세를 빼앗으려고 한 것이었다. 사람의 주권을 빼앗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력이니까.
그래서 역마의 대장이 시킨 것이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그래…. 그랬는데…….
“…뭐냐 저거.”
뭔가…….
제대로 이상한 놈이 걸린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