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화. 뭔가 이상한데……? (2)
아이작 에슈아.
소문으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뭐, 가장 유명한 건 그 머리 색이겠지.
‘하필 교황가에서 나와야 할 색이 에슈아에서 나오다니.’
하지만 아무리 유명하다 한들, 그중에 본인의 공이 있나? 역마들은 아이작 팀이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래봐야 다 똑같은 사제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작이 자신들을 택했을 때 오히려 천운인가 싶었다. 꼼짝없이 애새끼들의 시험에나 끌려가 애 보기나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놈들의 목적지가 자신들과 같다니!
-아악, 살려줘!
무려 파발 임무 중 동료가 잡혀갔다. 구하러 가려 했지만, 상부층에서 막았지.
그리고 그 동료를 납치해 간 마족이 누군 줄 아는가?
놀랍게도 아이작에게 명령이 떨어진 그 마족! 14년 전의 그 마족이었다!
그리고 목적지가 같은 사제?
이게 웬 떡이야!
‘이놈을 이용해 동료를 구하러 간다.’
하지만 그러려면 일단 사제 꼬맹이들의 주권을 빼앗아와야겠지.
뭐, 날고 기어봐야 꼬맹이들일 뿐.
어렵지 않다.
…그래. 어렵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 저희 물먹은 겁니까?”
마을의 작은 식당.
아이작 팀과 만나기로 한 다섯의 역마들은 이를 뿌드득 갈고 있었다. 분명 점심을 먹고 만나기로 했는데…….
이놈의 꼬맹이들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자신들이 너무 일찍 온 것이 아니냐고?
웃기지도 않았다. 일부러 2시간이나 늦게 왔다. 일부러 기다리게 해서 기선을 제압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놈들이 불만을 터트리면 이쪽의 승리.
어차피 그놈들은 호위가 없으면 안 되는 놈들이었다. 우세한 건 자신들이었다.
아무튼 기선제압!
그래…. 그러려고 했지. 그러려고 했는데… 젠장, 이 미친 새끼들이 한술 더 뜰 줄은 몰랐지!
쾅!
“지금 5시간이 말이 됩니까?!!”
“이 꼬맹이 새끼들이 어떻게 5시간이나 늦을 수가 있습니까?!”
졸지에 자신들이 기다리는 처지가 될 줄이야! 아이작 팀을 기다리던 역마들은 열이 뻗쳐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무려 5시간이었다!
“청 이 새끼들… 약속에 철저한 놈들 아닙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자신들이 아는 청은 시간관념이 뚜렷해서 그 사람만 봐도 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인데.
“혹시 저희들의 소문을 듣고 멕이는 거 아닙니까?”
“아닌데. 청의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어쨌거나 물먹은 건 물먹은 것이다. 그렇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쩌 봐, 내가 아직 있을 거라 했지?”
“?!”
아이작 팀이 어기적어기적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시간 약속 철저한 슈리는 고개를 못 들었고, 청의 팀은 시선을 피했다. 오직 아이작만이 뻔뻔하게 사탕을 물고 있을 뿐이다.
역마들은 살의 가득한 눈으로 핏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청은 시간관념이 이것밖에 안 됩니까? 분명 오늘 점심이라고…….”
“응, 우리한테는 지금이 점심이야. 웬 왈패들한테 맞아서 팔이 부러지는 바람에 일어날 수가 없었거든.”
“……?”
팔이 부러진 건 분명 왈패들 쪽이었을 텐데?
아니, 그게 아니지.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입니까? 고작 왈패들 가지고…….”
“고작? 무려 마도제국의 사주를 받고 온 놈들이었다고! 외교 문제로 불거질 문제를, 고자악?”
마, 마도제국? 이 꼬맹이가 어디서 사기를 쳐?
하지만 차마 그게 아니지 않느냐고 할 수가 없어서 눈썹만 꿈틀거렸다.
“그, 큰일을 겪으셨군요.”
“목숨이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그러자 아이작이 이 등신들 좀 보라는 듯 푸헿 웃음을 흘렸다.
“이 때끼들, 바보네. 마도제국이 고작 동네 왈패들에게 일을 시킬 리 없짜나! 니들 대가리엔 우동 사리가 꼈어?”
“……?!”
…이 꼬맹이 새끼가 자신들을 가지고 놀아?
“왜? 찔려? 찔리는 구석이 있으면, 니들이 이동 경비 책임지든가. 파발꾼이면 말은 좋은 말 쓰겠다.”
이 맹랑한 새끼가 하다 하다 물주 취급까지 하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피해를 입은 건 저희들인데, 늦은 사람들이 이리 뻔뻔하게 나옵니까? 이래서는…….”
“왜, 같이 일 못 하겠어?”
“!”
역마들이 움찔하자, 아이작은 우리들만 늦었냐는 듯 같잖다는 눈으로 역마들을 노려보았다.
“늦은 건 우리뿐이 아닐 텐데? 너희도 대놓고 두 시간이나 늦었짜나. 가게 주인한테 확인 끝났거든?”
“그건…….”
“우린 왈패들을 잡느라 놀란 심신을 회복하고, 무제한 고기 뷔페를 먹느라 늦은 거지만, 너희는 늦을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아니. 니들도 이유가 전혀 안 되는데?
“일부러 주권 잡으려고 나쁜 버릇 들인 거 잘 알겠는데. 말해두지만, 그딴 수 안 먹혀.”
“뭐라고?”
“알았어? 다른 사제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몰라도. 니들은 우리말 들어야 해.”
역마들은 기가 차다는 듯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이쯤에서 누가 우위인지 제대로 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호위가 필요없나 보지?”
그래. 위험지대 간다는 견습들이 호위가 얼마나 중요할까.
귀하신 몸이랍시고, 무섭고 더러운 일에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성기사들을 찾는 사제 놈들.
그것도 성적이 걸린 일이면 더욱 갈등을 피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니들이야말로 크라샨디아에 갈 필요가 없나 보지? 동료를 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이작의 말에 역마들이 움찔했다.
설마 이 자식, 다 알고 이러는 건가?
그들이 살벌하게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릴라이 경한테 내막을 들었나 보지?”
“아니, 우리 숙부님은 공과 사가 철저하신 놈… 분이라, 그런 거 말 안 해. 하지만 안 봐도 훤하지.”
아이작은 킥 소악마처럼 웃었다.
“맘에 안 들면 버리고 가는 놈들이, 미쳤다고 5시간이나 기다려? 니들은 우리가 필요한 거잖아.”
“……!”
“뭐, 우리가 필요한 이유야 빤하지. 우리한테 이점이 있든가, 목적지가 같다는 것일 텐데.”
아이작은 쯧 혀를 차며 형들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런 덜 떨어진 청의 견습 따위가 필요할 리도 없고.”
뭐, 새끼야???
청의 팀은 기가 찬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었다.
“그나마 가치가 있는 건 청의 직계인 이 몸이나 슈리 정도일 텐데. 아무리 니들이 병신이라도 공식 파트너로 배정받은 상황에서 유괴를 시도하진 않겠지.”
“…….”
“애초에 니들 옷차림을 보면, 호위치곤 지나치게 중무장이야. 강한 적을 상대하겠다는 의미인데, 니 때끼들이 우리 임무를 도와주려고 그러고 오진 않았을 거고. 즉! 우릴 미끼로 삼아 마족이라도 찾을 생각이었다. 틀리냐?”
“……”
역마들은 당황한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저 꼬맹이는 독심 마법이라도 익힌 건가?
“뭐, 크라샨디아에 나타난 마족이 안 그래도 성기사들을 납치해갔다 했으니까. 자, 그럼 설명 끝났지? 이제 누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똑바로 계산했음 좋겠는데.”
쓸데없이 머리 굴리지 말고 자신들을 따라오란 의미였다.
“참고로 너희들 의견은 받지 않아. 우리는 금의 펜타곤을 처리해야 하거든.”
그 말에 역마들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저 꼬맹이, 건달들 때려잡을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이단 새끼들……!”
아이작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아니, 지금 누가 이단 때끼인데.”
“해골왕 같은 놈 같으니!”
“야. 잠깐만. 뒤질래?”
성녀님의 아들이라고 좀 기대했지만, 역시 사제들은 다 똑같다.
뭐, 신분이 높은 사제직엔 보통 귀족들의 자제가, 성기사에는 평민들이 많았다. 사제들이 성기사들을 으레 천시하며 고기방패 취급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가뜩이나 크라샨디아에서 할라크인지 뭔지. 뭔 멀대 기사 놈이 동료를 구하러 가는 것도 막은 판에…….”
들여보내 주지 않을 거면 인력이라도 보내달라 했지만, 기껏해야 파발꾼을 구할 인력은 없다며 거절당했다.
하지만 그 말에 아이작과 슈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할라크?
특히 슈리가 미간을 좁혔다.
‘그 이름은 넷째 숙부의 가명인데.’
이 임무, 교황청이 내린 것도 그렇고. 설마 이 일에 넷째 숙부가 연관되어 있나?
‘넷째 숙부면 가주 자리를 노리기 위해, 나랑 아이작을 없애고도 남을 사람…….’
하지만 생각은 깊게 할 수 없었다.
챙!
“대장님!”
역마들 중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던 한 명이 검을 뽑아 들었다.
“평소라면 몰라도 이번엔 다르다. 너희가 없으면 우린 크라샨디아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너희들의 다리를 잘라서라도 데려갈 것이다.”
검에서 피어오르는 기운에, 청의 팀이 기겁을 했다. 그건 성기사들만의 특화된 기.
‘7계위의 힘!’
동시에 청의 팀이 이럴 줄 알았다면서 아이작을 보았다.
“봐! 저놈들이 우리를 따를 리 없다고 했잖아! 새끼야!”
“가기도 전에 파국이잖아!”
“아이작! 쟤들은 모두 마족 혼혈이야! 애초에 함께 할 수가 없었다고!”
그 외침에 울컥한 역마들이 이를 갈며 검을 뽑았다.
“젠장, 섞이고 섞여서 이미 물 탄 술 수준인데, 그딴 것도 마족 피냐!”
“하나씩 부러트려서 도망치지 못하게 해! 저놈들을 미끼로 삼으면 그 마족도 튀어나오겠지!”
동시에 대장이 먼저 튀어나왔다. 다른 역마들에 비해서 마족 피가 상당히 진한 편인 그는, 단번에 눈치챈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귀한 혈통이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꼬마 놈이 마족이 환장할 사제인지!
슈리 또한 놈이 노리는 게 누구인지 단번에 눈치챘다.
‘아이작을 인질로 잡을 셈이야!’
“아이작! 물러ㄴ …으악?!”
땅이 크게 뒤흔들렸다.
기사들도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동시에 그들은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마, 마법?”
어째서 마법이!
아이작은 눈을 부릅뜨며 딸랑이를 들었다.
“성기사란 때끼가 지금 감히 마법을 써?!”
“뭐, 뭣? 그게 무슨 모함… 크윽!”
어디에선가 날아온 황금 딸랑이가 대장의 얼굴에 적중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는 듯, 대장이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는 그 순간.
울렁.
“…허억?”
대장은 아이작에게 손도 대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동시에 아이작이 대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검 넣어라.”
“……!”
동공이 떨리는 대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왜일까.
그 말에 목은 바싹 타들어 가듯 말라가고, 몸이 절로 움직였다.
아이작은 마치 상관이 부하를 칭찬하듯 툭툭 토닥였다.
“그래, 말로 하니까 잘 알아듣잖아.”
그 광경에 역마들 모두가 놀란 기색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일 놀란 건 다름 아닌 대장 쪽이었다.
‘거역을 할 수가 없다.’
아니, 기로 꺾인 건가? 설마 이딴 꼬맹이한테?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
그 혼란스러워하는 눈을 보면서 위스퍼는 시원하게 웃어젖혔다.
[마족 피를 가진 주제에, 감히 어느 분에게 깝치는 건지!]
아이작 역시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좋든 싫든 마족은 강자에게 굴복한다. 그게 본능이었다. 그렇게 대장의 피에 섞인 마족의 피가 본능적으로 해골왕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뭐, 그나마 인간이니까 이 정도로 끝난 거지. 진짜 마족이었으면 쉽게 안 끝났다.
‘뭐, 그래서 이놈들을 고른 거지만.’
말을 잘 들으니, 오히려 미끼로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힘이면 마족 피를 흥분시켜서 더 훌륭하게 써먹을 수 있거든.
“아무튼 대장이 검을 넣었으니, 니들도 꿇어라. 금의 펜타곤 하러 가자.”
아이작의 말에 역마들은 기가 찬 듯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만, 뭐 이딴.
“…사제들은 그렇게 펜타곤이 중요해? 애초에 왜 우리를 골랐는데? 그냥 말 잘 듣는 놈들로 데려가지!”
“맞아! 어차피 사건 현장에 다녀왔다는 증거만 가져갈 거면서……!”
그러자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뭔 소리야. 금의 펜타곤 하러 간다니까.”
“허, 그래! 그러니까 보관된 성기사들의 유품을……!”
“탈환. 그러니까 잡혀간 성기사들을 데려오는 게 임무잖아.”
“…엥?”
뜻밖의 말에 역마들은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아이작은 목표가 그게 아니라는 듯 말했다.
“14년전 마족을 사냥하고, 납치된 놈들 전원 구출한다.”
“……!”
“거기에 너희 동료가 껴 있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말에 역마의 대장은 굉장히 놀란 듯 아이작을 보았다.
“…설마 아이작 님은 저희의 동료가 납치된 걸 알고… 저희를 고르신?”
어? 아니. 그거 아닌데.
그러나 그들은 저분이 성자라는 듯한 눈빛으로 말문을 잃은 채 아이작을 보았다. 설마, 그런 목적으로 자신들을 뽑았을 줄은 몰랐는데.
“…그래, 그래서 저희 사정을 그리 잘 알고 계셨던 것이군요!”
아니. 아니라니까?
“죄송합니다! 마족을 처리하는 일이라니! 기꺼이 돕겠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니, 우리, 아니 저희 장비를 빌려드리겠습니다!”
역마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그들은 아이작에게 완전히 호의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이지.
좋은 일인데…….
“야. 우리 임무가 언제 상급 마족 처리로 바뀌어 있었냐……?”
“…그냥 물건만 가져가면 되는 거 아니었어?”
정작 청의 팀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지금 14년 전 마족 사냥이라니.
…눼?
우린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시발 이 새끼야. 이거 협의 안 된 내용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