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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85화 (85/272)

제85화. 말이 다르잖아? (1)

아, 그러고 보니 누가 그랬던가.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야 말이 다르잖아!!”

“합의도 없이 네 맘대로 목표를 바꿔버리면 어떡해!”

아이작은 청의 팀원들의 항의에 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게 인간들이지. 별것도 아닌 일로 합의를 따지는 빌어먹을 짐승들… 아차. 나도 이제 인간이구나.

하, 그래. 그럼 합의에 익숙해져야지.

아이작은 딸랑이를 들었다.

“지금부터 합의할 건데, 마족 잡기 싫은 사람?”

“…….”

오늘따라 더 포악하게 빛나는 황금딸랑이의 모습에 청의 팀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싫다고 하면 저 딸랑이가 날아와 얼굴을 구겨놓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인간은 합의의 생물이지. 이제부터 14년 전 마족을 쳐잡고, 성기사들을 탈환해서 금의 펜타곤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해결해 킹을 받을 생각인데. 혹시 지금 여기서 X같은 이견을 달 사람?”

시발 놈아! 세상은 그런 걸 합의라고 하지 않아!

물론 평소라면 청의 팀들도 이쯤에서 물러났겠지만, 사안이 사안이었다.

청을 따르는 가신 가문?

주인 가문의 명령에 복종?

야이씨, 그것도 정도껏이지!

이번 만큼은 그들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마족 퇴치도 문제지만 사실 쟤들이 제일 문제야!”

“피는 못 속인다고 우릴 배신할 거야!”

역마들이 핏대를 세울 만했다.

“허. 저놈들이 아이작 님의 가신들이라고 봐주니까 자꾸 말을 X같이 하네.”

“아이작. 애초에 쟤들이 왜 파발 임무만 하는 줄 알아? 쟤들은… 아악!!”

역마에게 멱살을 잡힌 청의 팀은 비명을 질렀다.

멱살을 잡은 역마의 팔뚝에는 굵은 핏줄이 서고, 손톱조차 날카로워졌다.

그뿐인가.

눈은 찢어진 듯 마족 동공으로 변하고, 이빨도 날카롭게 변했… 변해?!

시발! 이거 마족이잖아!

청의 팀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성법을 발동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괜히 사제들이 혼혈들을 짐승 취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흥분하면 마족의 피가 반응해서 마족화가 진행된다. 그리고 마족의 본성은 식(食)!

“크아와락!”

“아악! 먹지 마! 살려줘!”

역마들이 덮치려고 들자, 아이작이 나섰다.

“때끼들, 정신 안 차리냐!”

빠각! 빠각! 빠각!

아이작의 딸랑이가 가차 없이 역마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딸랑이에 맞은 역마들은 금새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작은 똑바로 하라는 듯 쯧, 혀를 찼다.

“이런 식이니까, 저 바보들이 니들을 못 믿짜나.”

“죄… 죄송합니다. 원래는 이렇게 빨리 변이하는 일이 없는데.”

응, 없겠지. 내가 흥분시킨 거니까.

“왜 흥분하지 자꾸……?”

왜긴 왜야, 노예로 부릴려고 푸헿.

“뭔가가 머리를 누르는 것 같더니, 확 눈깔이 돌아가서.”

그래. 내 마력인 위스퍼가 니들을 만지면 피가 끓어오르는 구조거든.

역마들의 대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마도 제국의 영토와 가까워지다 보니 마력이 영혼을 메만지는 건가?”

차마 핥았다고는 말 못 하겠군.

“그래도 아이작 님은 대단하시군요…! 원래는 돌아가는데 한참 걸리거든요!”

“맞습니다! 이렇게 공격 한 방에 원래대로 돌아가다니!”

푸헿!

그거야 당연하지!

내 마력에 반응해서 끓어오르는 거니, 반대로 죽일 땐 겁을 주면 그만이거든!

“역시… 이만한 힘을 쓰시는 걸 보면 아이작 님이 성자님이신 게 틀림없습니다!”

아니, 성자가 아닌 마왕의 힘이다만.

뭐, 아무튼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자, 봐. 형들. 내가 있으면 괜찮다니까? 무서워할 필요없지?”

그러나 청의 팀은 여전히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역시 안 돼! 이 임무는 다른 성기사들에게 맡기고, 너는 물건만 가지고 오는 걸로 하자!“

아이작은 슬슬 짜증이 밀려올라오기 시작했다.

새끼들이.

나름 한 팀이라고 좋게 타일렀더니,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가?

아이작의 눈이 험악하게 빛났다.

“내가 지켜주겠다는데 뭐가 문젠데?”

그러나 청의 팀은 문제가 많다는 듯 아이작을 붙잡았다.

“…형들이 되어가지고 동생이 죽으려는 걸 그냥 지켜보겠냐!”

…눼?

뭔소린가 했더니, 청의 팀들은 입술을 꽉 깨물면서 탄식했다.

그들은 모두 아이작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가진 듯했다.

“너, 실은 청과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무릅쓰고 여기에 온 거잖아.”

아닌데. 마력핵 먹으러 온 건데.

“우리도 안다. 몰렉 같은 놈들은 팀을 옮기면 그만이지. 하지만 우리 같이 오랫동안 청에 충성을 바쳐온 곳은 받아줄 곳도 없어. 그리고 청의 명예가 떨어지면 청을 따르는 우리 가문들 역시 같이 몰락해.”

“청의 수호자로서 청을 지키고, 거기에 딸린 우리들까지 지키려고 하는 건 잘 알고 있다.”

어… 미안한데, 니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만약 거기서 네가 임무를 바꿔달라 했으면, 우리들의 명예도 함께 떨어졌겠지.”

…니들 명예 알 바 아니고.

그러나 청의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나단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 임무를 받아들여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고맙다.”

“그뿐이 아니야. 적의 펜타곤에서도 좋은 소리를 들었다. 다 네 덕이야.”

“하지만 적의 펜타곤도 그렇고, 금도 그렇고. 수호자 가문이 가신 가문을 키워주는 건 관례라 쳐도, 아직 어린 네가 너무 혼자 무리하는 것 같다.”

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굳이 정정해줄 필요는 없나.

“그래서 우리 모두 상의했어. 형들이니까, 최소한 네 짐을 덜어주자고.”

“이번엔 우리가 널 지켜주자고.”

“슈리도 그 부분에 있어서 동의하면서 도와달라 했고.”

슈리는 크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아. 설마 이놈들, 그래서 유서쓰면서 싫다고 하면서도 따라온 거였어?

걱정이 되니까?

어쩐지. 몰렉처럼 배신하고 나간 애들이 있는 마당에, 이 열다섯 명만큼은 여기까지 잘도 쫓아왔다 싶었다.

솔직히 가신 가문이라 해도, 꼭 자신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뭐, 더러운 성직자들 치고는 제법인데.’

솔직히 마족들과는 다르긴 하다.

마족들은 본인의 목숨이나 이득이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놈들인데. 자신이 이놈들을 이해 못 할 만도 했다.

‘아니, 그것도 아닌가.’

지금, 아이작은 인간이었다.

아직 해골왕 때의 사고방식이 남아있어 청의 사고방식은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대가없이 따라주는 것이 바로 인간.

혼자서 살아남으려 하지 않아도 되는 곳, 가끔은 이유없이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는 곳.

그렇지.

수백 년 동안 그리워했던…….

“에휴. 재수 없는 꼬마지만 성자가 될 녀석이니까. 우리가 널 끝까지 돕고 챙겨야지.”

“그래. 그런 의미로, 쟤들이 사온 네 당과랑 술은 우리가 미리 다 버렸다. 성직자들은 금욕이 미덕이잖아.”

…응, 역시 개같은 성직자들. 니들은 다 척결 대상이야.

그런데 그때였다. 짐 정리를 맡던 팀원이 급하게 뭔가를 들고 뛰어왔다.

“큰일 났어! 아이작의 가방에 저주받은 물건이!”

아이작은 물론, 팀원들 모두 그 물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새?”

“피가 묻은 거 같은데, 죽은 거야?”

하지만 그 새를 본 아이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새끼.’

반면 슈리는 다가가지 말라는 듯 사람들을 물렸다.

“누가 저주하려고 죽은 새를 넣은 건지도 몰라. 조사부터 철저히 해봐야…….”

“됐으니까 내놓고. 낌슈리 니들은 내가 말하는 거나 사와.”

“뭐? 잠깐……!”

아이작이 형들을 몽땅 내쫓아버렸다. 그리고 험악하게 참새를 들어올렸다.

“일어나. 머리통 따서 구워먹기 전에.”

[히익!!]

죽어 있는 줄 알았던 참새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그래, 배불러서 졸고 있는 줄 알았지.

“하급 마족 때끼가 겁도 없이 내 가방에는 무슨 볼일로?”

아이작이 딸랑이로 참새를 내리찍으려고 하자, 참새는 흐악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젠장! 혈주(血蛛)께서도 너무하시지. 이딴 흉포한 성직자한테 보내시다니!]

뜻밖의 이름에 아이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혈주라니,

“너, 설마 십사육마가 보낸 놈이냐?”

* * *

혈주는 아이작이 모를 수가 없는 놈이었다.

왜냐고?

왜긴 왜야, 지금 교황청 감옥에 갇혀 있고, 아이작이 구하려는 녀석이니까 알지!

그리고 놈은 뜻밖의 정보를 들고왔다.

[갸악! 빌어먹을 성작자 놈아! 무기 안 치워?! 젠장, 네놈이 뭐길래! 그 분은 옥중에 계시면서도 날 보내신 건지!]

아무래도 갇혀 있는 부하가 자신의 소식을 듣고는 어떻게든 연락을 취해온 듯 했다.

이 덜덜 떠는 하급 마족은 자신이 본 적이 없는 놈이니, 아마 부하의 인맥인 거겠지.

그리고 혹시 모르니, 자신이 해골왕이란 정보는 숨긴 것 같다만.

“무슨 정보를 들고 왔지?”

[어유, 성직자 따위에게 뭔 정보를 으아악……!]

아이작이 목을 조르자, 참새가 엉엉 울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쬐송합니다! 이제부터 잡으러 가는 놈이 어떤 놈인 줄은 아시는 겁니까? 어떤 짓을 해왔고, 어떤…….]

“그딴 것까진 관심 없는데.”

어차피 다 마왕 밑의 놈인 것을.

[어오! 상대는 그 무서운 애쉬라고요! 이번에 네놈들이 피해를 본 서품식 알죠? 거길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입니다!]

“장본인이라니, 그 해골왕의 분신을 보낸 놈?”

[그래요! 마도구를 반입하고, 해골왕 님의 분신을 만들어서 서품식을 엉망으로 만들고, 성자를 죽이라고 지시한 놈이요!]

아이작은 헛웃음이 나왔다.

아하.

그러니까 그놈이었어?

그 짝퉁 해골왕을 서품식에서 당당하게 띄우고, 마족을 들여보낸 놈이?

그리고 나는 그놈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다짜고짜 죽을 뻔했던 거고?

참새는 더욱 흥미로운 말을 전했다.

[아무튼 해골왕 님의 힘을 먹고, 신성제국의 결계를 뚫고 침입할 정도의 놈이라고요. 본인은 처형식에서 죽어도 되니, 애쉬라는 마족은 절대 상대하지 말라시는데…! 에잉! 이놈이 뭐길래 귀한 마족의 정보를 이딴 성직자에게……!]

“호오. 해골왕의 힘을 먹었다고? 해골왕 놈이 힘이라도 내줬나 보지?”

그 말에 참새는 바로 눈을 부릅떴다.

[무엄하다! 해골왕님이라고 부르지 못할까! 그리고 그 해골왕은 가짜다, 이놈… 꾸엑. 아니, 가짜입니다!]

“오? 왜지?”

[위대하신 해골왕님의 아우라가 없거든요!]

“오?”

[하지만 그것도 감옥에 계신 혈주의 추측일 뿐이라.]

뭐,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지.

진짜는 여기에 있으니까.

[에휴, 괜히 가짜라며 체제에 반대하시다가 인간들에게나 잡히시고. 아무튼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네놈도 죽기 싫거든 괜히 깝치지 마… 꾸엑! 아니, 조심하십쇼! 해골왕 님은 가짜여도, 애쉬가 먹은 힘은 진짜니까요.]

음, 이해했다.

그러니까 자신의 힘이 마족진영에 남아있는 건지도 몰랐다. 신계에서 자폭하고 남은 잔해가 남아 있을테니까 말이다.

전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님이요. 위대한 해골왕 님의 육신을 먹은 꼬맹이 맞죠? 애쉬가 해골왕 님의 힘을 아주 뽕맛 보듯 맛 봤으니 미친 듯이 님을 노릴걸요? 지금도 애쉬가 숨죽이고 크라샨디아에서 네놈이 오길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목숨이 아까우면 거기에 가지 말라고요!]

“그래, 잘 알았다.”

[알았으면… 으악! 뭐 하는 짓! 푸허억!]

참새를 주머니에 박아 넣은 아이작은 웃었다.

아무래도 부하는 자신이 걱정이 되어서 부하를 보낸 듯했다.

뭐, 충성심이 높은 놈이니 이해는 한다. 그리고 소문을 들어봐도 14년 전에 신성제국을 농락했을 정도로 난동을 부린 놈 같고.

하지만.

‘설마 내가 상급 마족한테 질거라 생각하는 건가?’

150년을 안 봤더니, 주인의 힘을 잊어버린 건가? 그쯤 되니 아이작은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였다.

“아이작! 물건 사왔다!”

아이작이 지시한 허브를 사가지고 온 청의 팀이 숨을 헐덕이며 돌아왔다.

“네가 말한 약초랑… 어? 뭐야. 그 새는? 어디 갔냐?”

“아, 털 발라서 냉장고에 넣어놨어.”

“뭐?!!”

“아무튼, 내일 아침에 떠날거니까 밥이나 먹어. 주문해 뒀으니까.”

청의 팀은 똥개 훈련 시킨 거냐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때, 음료수와 음식들이 나왔다. 그런데 척 보기에도 호화로운 요리라, 청의 팀의 눈이 돌아갔다.

“아이작, 너…! 우리를 위해 이런 걸 주문하다니……!”

아닌데. 니들 시켜줄 돈 없는데.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리며 음식을 가져온 여자 종업원을 보았다.

“이런 거 시킨 적 없는데.”

여자 종업원은 화사하게 웃었다.

“아, 수행 중인 청의 사제님들로 보이셔서요. 사제님들에게 공짜로 대접하는 거에요.”

“우와, 아이작 부럽다. 저런 미인 누나가……!”

다들 커흠, 기침하며 종업원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뭐여, 이거. 어딜 봐도 마족인데.

그리고 참새에게 들은 정보로나, 몸에 풀풀 풍기는 서쪽 마족의 냄새로나. 아마 이놈이 참새가 말한 그 녀석 같은데.

그러니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야. 숨죽여서 기다린다며.’

말이 다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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