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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86화 (86/272)

제86화. 말이 다르잖아? (2)

청의 팀은 침음을 흘렸다.

“…슈리야.”

“…그래.”

“분명히 그랬지. 아이작이 에슈아가의 후계후보라고…….”

“…어. 나도 후보 중 하나지만… 그래.”

그들의 눈이 청처럼 푸르고 넓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녀님의 아이라고…….”

“…응, 그래.”

그렇지. 그런데…….

“야, 거기 너! 이거 물에 먼지가 들어갔짜나! 새로 떠와!”

“아, 이거 접시가 네모라서 마음에 안들어. 다른 그릇에 가져와!”

“아씨, 이거 소스가 접시에 튀었자나! 닦아 와!”

“아나, 음식 다 식었자나! 장난해? 같은 걸로 다시 만들어와!”

……….

뭔데. 쟤 또 왜 저러는데.

청의 팀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아니, 음식이 나왔으면 그냥 처먹으면 될 것이지. 성직자 주제에 종업원은 왜 괴롭혀?

뭐, 식당에 전세를 낸 값을 생각하면 저 정도야 사장도 어깨춤을 추면서 백 개라도 더 만들어올 것 같다만… 그래도 저건 진짜 아니지.

하물며 다른 종업원한테는 팁까지 준 주제에, 저 새끼. 유독 한 종업원만 건들고 있었다.

응. 그러니까 미인 종업원에게……….

빠직.

“야. 이거 납득 가능하냐?”

“아니.”

청으로서… 아니 성직자로서… 아니 남자로서 참을 수 없다!!

결국 청의 팀이 박차고 일어났다.

“야, 아이작! 너 아까부터 저 예쁜 누나가 이래저래 서비스 주면서 살갑게 대해주고 있는뒈에에에!!!!!”

“지 혼자 관심을 처받고 있으면서어어어! 새끼가 복에 겨운 줄 모르고오오! 어?!”

“청이 그렇게 가르쳤냐? 그렇게 가르쳤냐고! 새끼가 까져서!”

관심을 받지도 못 하는 청의 팀은 입에서 불을 뿜어댔다.

가뜩이나 에슈아 놈들은 얼굴이 훤칠해서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슈리도 그렇다만, 특히 아이작이… 저눔의 새끼가 예쁜 누나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물론 같이 있으면 서비스 음식이 늘어나서 좋긴 하다만, 들러리가 된 기분도 한두 번이지!

자고로 청이면! 여자 보기를 돌 보듯이 해야지, 어?! 아니…! 너무 돌처럼 보다 못해 용암처럼 대하는 게 문제긴 하다만!

“너 적당히……!’

그러자 여자 종업원, 아니 인간으로 변장 중인 애쉬가 방긋 웃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제가 사제님들께 실수를 한걸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상냥한 웃음에 청의 팀은 울컥했다.

‘아… 저 얼마나 마음이 아름다운 분인가……!’

젠장. 천녀(賤女)같은 얼굴로 채찍을 휘두르는 아이작만 보다가 진짜 천녀(天女)를 보니까 마음이 사르르 녹을 것 같다.

그러나 정작 애쉬는 속으로 이를 뿌득 갈고 있었다.

‘그래, 참아야지. 먹이가 코앞에 있는데.’

아이작을 실제로 보니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귀한 혈통인 건 둘째치고, 슬금슬금 느껴지는 위대한 해골왕의 마력까지.

그러니 참아야지.

하지만 이놈들은 못 참겠네.

“우리 아이작 님이 바꿔오라지 않나. 왜 자꾸 일을 두 번 시키게 하는 거지?”

“맞습니다. 이 정도면 일부러 멕이는 거 아닙니까? 아앙?”

이 빌어먹을 기사놈들이, 아이작의 옆에서 노골적으로 아이작의 편을 들고 있다.

그 모습에 청의 팀들도 어이없다는 듯이 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작 님?’

…쟤들, 사제 싫어하는 애들 아니었냐?

‘동료들 구해주러 간단 말에 저리 넘어가다니…….’

‘역마의 악명이…….’

그러나 애쉬는 열이 뻗치면서도 쉽게 본색을 드러내진 못했다. 다름 아닌 이 기사들 때문이다.

마족 혼혈이라는 점도 힘이 상쇄될 위험이 있어 골치 아프긴 하지만…….

‘특히 저 대장 놈, 골치 아픈 기원을 가졌군.’

결국 그녀는 기사들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아까부터 입에 안 대고 계시던데요. 수행하시는 몸이시면 잘 드셔야 할 텐데, 드시죠.”

“아. 우린 고용된 몸이라 고용주의 음식에는…….”

“성기사님들이 계시면, 마을도 마족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지거든요. 따로 드리는 거니 사양 말고 드시라고 합니다.”

“아, 그러면…….”

그러나 기사들이 음식에 손에 대려는 순간. 아이작이 가로막았다.

“아이작 님?”

아이작은 애쉬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 니가 먹어.”

“뭐?!”

청의 팀이 기겁을 해서 아이작을 보았다.

하지만.

“네가 먹어봐. 약 탔을 줄 누가 알아?”

도를 넘는 행위에 청의 팀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일어났다.

“아이작!”

그러나 정작 애쉬는 당황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독을 탄 걸 들킨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었다.

성직자들은 절대 감지 못 할 약인데.

그때 청의 팀이 이제 그만하라는 듯 가까이 다가왔다.

“야, 아이작! 너 적당히 해! 청이 마족도 아니고, 사람을 의심하면 못 쓴다!”

그들은 일제히 포크를 집어 들었다.

“맞다! 이분의 결백은 우리가 증명해주마!”

“똑똑히 봐라! 먹어도 멀쩡… 꾸엑.”

음식을 먹은 청의 팀이 단체로 쓰러졌다.

쿵, 쿵쿵!

“……!!”

“야, 너희!!”

열다섯 명 중 슈리와 한둘을 제외한 전원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광경에 아이작이 혀를 끌끌 찼다.

“하, 븅딱들.”

슈리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아이작은 오히려 잘 됐다는 듯 웃었다.

“뭐, 그래도 기절시키는 수고는 덜었네. 어차피 기절시킬 예정이었는데, 독을 쓸찌 몽둥이를 쓸지 고민 중이었거든.”

뭐, 인마??

그러나 아이작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아이작은 애초에 청의 팀원들을 마족과 싸우게 할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놈들이었다. 아직 어린 싹들을 죽게 할 순 없지 않은가?

위스퍼가 바로 나섰다.

[성령을 불러서 해독시킬까요?]

왕급 성령은인 샬라크는 교황청 사제로부터 구해줬더니 제법 말을 잘 들었다. 지금은 해골왕 시절 심어둔 <망자초>의 유통에 대해 알아보러 갔고 말이다.

성령을 부르겠냐는 위스퍼의 물음에, 아이작은 거절했다.

‘아냐, 원래 사람은 몸으로 고생해봐야 말을 잘 들어.’

어차피 한 번쯤 겪게 할 수순이긴 했다.

그런데 성령으로 순식간에 케어되면 정신 못 차리겠지.

‘뭐, 그래도 형들이니까 최대한 빠르게 해독을…….’

“아이작 님. 이거 성력을 마력으로 바꾸는 기생독입니다!”

…성력을 마력, 뭐?

“이거 해독이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저 여자가 간교하게!”

…해독… 꼭 해야 할 필요는 없지?

[주인님?]

그러나 역마 대장의 말을 들은 아이작의 눈이 돌아가 있었다.

아니, 그럴 만하지 않나!

‘시발, 더러운 성력을! 무려 마력으로 전환하는 독이라고?!’

왕급 성령 덕분에 마력을 성력으로 바꾸는 법은 알았다.

하지만 그 반대라니!

아이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 잘만 하면 신성제국 안에서도 빨대… 아니 마력농장… 아니아니 교황청 사제들에게서 마력을 뽑아 먹을 수 있단 거잖아!

“…아이작?”

슈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새끼, 왜 동료가 독에 당했다는데 침을 줄줄 흘리는 건데.

그러나 아이작의 눈은 이미 맛이 가 있었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확인했다.

“그… 정말 성력을 마력으로 바꾸는 독이라고? 정말로? 진짜?”

“예! 서두르지 않으면 점점 마력이 늘어날 겁니다! 가진 성력이 모두 마력으로 바뀔 수 있어요!”

아이작은 입을 틀어막았다. 숨기고 있는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숙성! 이건 무조건 숙서엉!!!

냅둘수록 수확할 마력이 늘어난다!

그러나 아이작의 모습에 애쉬가 본성을 드러내면서 웃어보였다.

“역시 수를 못 쓰는구나. 그놈들을 살리고 싶으면 백금발, 네놈은 날 따라와라. 따라오면 네게 해독제를 주지. 말해두지만 너만 따라와.”

당황하던 청의 팀과 기사들은 바로 눈을 부릅떴다.

뭐? 지금 해독제랑 아이작을 맞바꾸자고?

“감히 어디서 수작을!”

“왜. 해독제가 필요하지 않은 거냐? 내가 아니면…….”

“해독을 왜 해.”

“그래! 해독을 왜…….”

……예?

…뭐?

아이작 일행은 자신들이 지금 뭘 들은 거냐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지금… 해독을 왜 하냐고 했어?

그 떨리는 동공에 아이작은 커흠 기침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시발, 본심이 나올 뻔했다.

아이작은 슈리와 역마 대장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 독은 시전자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풀리게 되어 있어. 내가 저 여자를 쫓아가는 척 유인할 테니까 그동안만 버텨. 너희가 성력을 불어넣고 있어줘.”

“연명이군요?”

그래! 그래야 독이 성력을 먹고 마력이 더 쑥쑥 자라지!

그리고 자신은 저 여자를 쫓아서 그 독 기술의 정체를 알아내고 빼앗아온다!

[주인님, 입꼬리 주체 좀.]

괜찮아! 이 새끼들 등신 놈들이라 눈치 못 채!

그러자 슈리가 굉장히 수상하게 노려 보았다.

“…나도 마를 상대하는 청이야. 그런 방법이 있단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아이작은 바로 승천하는 입꼬리를 스윽 붙잡았다. 젠장, 이래서 머리가 좋은 꼬마는 골치 아파.

“들었어. 어떤 사람한테.”

슈리는 미간을 좁혔다.

“불안한데… 믿을 만한 사람이야? 유인할 만한 일이야?”

“어! 신이거든! 신의 목소리를 들었어!”

“……??”

…시발 더 수상한데?

이 새끼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잖아!

슈리가 눈으로 욕을 하자, 아이작은 지금 자신을 무시하냐는 듯 더욱 눈을 부릅떴다.

“야, 낌슈리. 너 내가 어떻게 옛날 성녀님들의 기술을 알려줬다 생각하는 거야? 내가 들었어! 신이 된 고귀한 성녀님들한테!”

[…주인님, 양심 어디에……?]

닥쳐!

지금 천하의 [생존] 기원을 가진 해골의 집착을 무시하냐?! 난 신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내 몸도 팔 수 있어!

슈리는 굉장히 수상하다는 듯 보았지만, 딱히 반박하진 못했다. 실제로 아이작한테 특별한 기술을 몸소 배운 게 바로 자신임으로.

곧 역마의 대장이 검을 뽑았다.

“아이작 님이 유인하신다면 저도 호위하겠습니다.”

아이작은 바로 눈에 불똥이 튀겼다.

“안 돼!”

시발! 니들이 쫓아오면 마법으로 저걸 족칠 수가 없잖아!

아이작은 진지하게 역마의 대장을 붙잡았다.

“지금 형들을 지켜줄 수 있는 건 너희뿐이야!”

“…예?”

“슈리 형 혼자서 얘들 감당할 순 없어! 너희가 도와줘. 어쩌면 저 여자 패거리가 더 있을지 몰라! 우리 소중한 형을 지켜줘.”

슈리는 의외라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이작… 너.”

동시에 역마들도 내심 가슴이 떨리는 눈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기껏해야 파발꾼, ‘역마’들이었다.

‘사제들이 우리에게 이런 막중한 임무를…….’

사제들이 자신들에게 맡기던 임무가 무엇인가

마족의 피가 섞여 믿지를 못하겠으니, 편지나 나르라 멸시하던 놈들이 아닌가.

-봉인된 편지니, 뜯어볼 수도 없을 것이다. 다른 곳으로 빼돌려도 위치를 알 수 있지.

-제아무리 비천한 마족 새끼들이라도 짐 옮기기 정도는 하겠지?

하지만 성기사의 임무는 ‘지키는 것’이다. 거기에 큰 자부심을 느끼는 이들이었다. 사람을 지키는 일이라니, 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특히 상급 기사이면서도 기사임을 부정당했던 역마의 대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아이작님은…….”

아이작이 역마의 대장의 품에 몰래 뭔가를 집어 넣었다.

그건 다름 아닌 푸른색 목걸이.

“이걸 가지고 있어.”

“이건……!”

아이작이 역마의 대장에게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슈리한테도 비밀인데, 이거 가주님한테 받은 보물이야. 가진 사람을 내 앞에 소환할 수 있어. 위험해지면 널 부를게.”

역마의 대장은 믿기지 않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세상에, 청의 가주한테 받은 에슈아의 물건이라니! 자신들은 평생 보지도, 만져볼 수조차 없는 물건이다.

“…어찌 이리 귀한 걸……!”

“널 믿으니까 주는 거야.”

물론 에슈아의 물건이란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거, 왈패들한테 뺏은 목걸이거든. 그저 약간의 청의 성력을 담아놓았을 뿐.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 그냥 대가로 받은 거라고 해.”

아이작은 새삼 감동한 듯한 역마의 대장을 보며 히죽 웃었다.

그래, 거짓말과 비밀의 조합은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을 증가시키지. 푸헿.

* * *

어두운 밤이었다.

애쉬는 아이작을 깊은 숲속으로 끌고 갔다. 인근에서 마력의 기운을 느낀 성기사들이나 사제들이 모려오면 골치 아팠기 때문이다.

‘인적 없는 곳에 도착하면 본모습을 드러내 저 꼬마를 잡아 먹어야지.’

애쉬는 상상만 해도 흥분되었다. 안 그래도 귀한 혈통이라 맛도 맛이겠지만, 무엇보다 위대하신 해골왕의 힘이라니!

‘아아, 느껴진다. 저놈이 먹은 왕의 힘이……!’

저놈의 배를 갈라 위대하신 왕의 육신을 먹는다면, 그 얼마나 영광스럽고 황홀할까? 얼마나 강해질 수 있을까?

그렇게 마족의 힘을 드러내도 아무도 모를 만큼 마을에서 멀어졌을때.

애쉬는 멈춰섰다.

“겁이라도 먹은 건가? 도망가지도 않고 참으로 멍청한 꼬마로구나. 해독제를 준다는 말을 믿고 호위도 없이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사제들은 참으로 멍청해.”

“그래. 멍청하지. 왕도 못 알아보고, 인간을 먹네, 마네.”

“…뭐?”

순간, 애쉬의 눈앞에 붉은 핏방울이 튀겼다. 동시에 그 핏방울 만큼이나 붉은색 마안이 어둠 속에서 번득였다.

보석을 박아둔 것 같은, 아름답고도 소름이 돋는 빛깔.

애쉬는 눈을 의심했다.

150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아니 존재할 리가 없는 왕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꿇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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