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88화 (88/272)

제88화. 지금 뭐라고 했나? (1)

일이 끝난 아이작은 총총 걸음으로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캬, 그래! 이거지! 성직자들이 없으니까 마법도 쓰고. 최고구나!

빌어먹을 성직자 새끼들! 내가 니놈들이 없으니까 이리 기분이 째진다!

안 그래도 미성년 사제는 중독 때문에 당류는 먹으면 안 된다고, 이빨 썩는다고 사사건건 방해하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천하의 개꼰대 슈리 놈도 이번 일을 알면 당과 50개쯤이야 봐주겠…….

“아이작, 너 사탕 압수야!!”

“…….”

숙소로 돌아오자, 눈을 부릅뜬 슈리가 있었다.

그리고 뭐? 사탕 압수? 이 찌벌놈이 이젠 하다 하다 어르신의 유일한 낙을 빼앗네??

“도대체 어딜 갔다 오길래 위치 추적이 안 돼!!!”

이 때끼. 추적하고 있었냐.

“너한테 뭔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만약 네가 여기서 죽기라도 하면……!”

하, 징글징글한 성직자들!

이런 건 왜 옛 부하 놈들하고 똑같은데!

하지만 슈리가 이토록 화를 내는 이유가 있긴 있었던 모양이었다.

“너 사라진 하루 동안 마법사들이 여기에 왔었다고!”

뭐, 인마? 마법사?

그 새끼들이 왜 와?

역마들도 걱정하며 말했다.

“이 근처에서 엄청난 마력이 뿜어졌었습니다. 그래서 마도제국 마법사들이 여기까지 수색을 왔었고요.”

아. 마법을 쓰면서 마력이 퍼졌구나.

뭐, 어쩔 수 없었다. 에슈아 저택의 엄청난 수의 마력핵을 다 흡수해도 이제 5계위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어떻게 상위 마족을 찍어눌렀겠는가?

‘조금 무리를 하긴 했지.’

마력핵을 상당히 과부화시켜서 힘을 끌어올렸다.

‘팔열지옥을 연 것도 사실 많이 일렀어.’

<팔열지옥>은 해골왕이 주로 쓰던 마법이다.

이번에 쓴 흑승지옥은 여덟의 지옥 중 고작 1번째 수준의 지옥이었지만, 사실 지옥문을 끌어내는 것 자체가 상당한 상위 마법.

이게 뭔 말이냐고?

뭐긴!

적의 앞이라 차분한 척했지, 속으로는 심장과 혈관이 터지고 온몸은 아파서 뒤지는 줄 알았다고!

지금도 고작 콧김 마법 하나 불러냈다고 아파 죽겠다고! 오면서 각혈까지 했다고, 찌발!

내가 씨, 부하 놈 하나 구하겠다고 이렇게 개고생을… 하, 됐다.

아무튼 그만한 상급 힘을 이끌어냈으니, 이를 관측해낸 요망한 놈들이 있었단 의미다.

“마법사들은 납치된 사제가 없냐고 계속 캐묻고! 널 찾으러 갔더니 숲에서는 핏자국이 발견되고! 너는 추적도 안 되고!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너도 마족에게 발견되어서 사냥당한 줄 알았잖아!”

사냥은 무슨. 애초에 니들이 날 추적할 수 있겠냐.

곧 슈리는 됐다는 듯 아이작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서 해독제는?”

해독제에?

“그래! 해독제! 지금 애들 빈사 상태야! 모든 성력이 마력으로 바뀌어서 죽기 직전이라고!”

“키야! 딱 좋구ㄴ… 아니아니, 큼큼. 얻어왔어. 형아.”

…이 새끼. 방금 딱 좋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동공 지진을 일으키는 슈리와 달리, 청의 팀은 눈을 반짝였다.

“얻어냈구나! 그래, 그러면!”

“그보다 이거부터 보관해놓을래? 중요한 건데 무거워 죽겠다.”

아이작은 피곤해진 듯, 문 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수상한 보따리가 있었다.

“뭐야, 이건 뭔데 이리 무거워?”

“뭐, 먹진 말고.”

“먹지 말라니, 이 새끼, 도대체 뭘 가져온… 아아악!!”

가방을 열어본 슈리와 청의 팀은 비명을 질렀다.

“머리! 머리가아아아!”

“아니…! 너 저 거대한 마력핵은 도대체 뭐…….”

입을 뻐끔거리는 청의 팀의 모습에 아이작이 쯧 혀를 찼다.

“뭐긴 뭐야. 이걸로 금의 펜타곤에서 우리가 완벽한 킹을 받았단 거지. 찌발 놈들이. 감히 이딴 과제를 내? 아마 돌아가면 표정 볼만할 거다.”

이 새끼, 뭐 하다 왔나, 했더니!

슈리는 이마를 짚었다.

“너 잊었어? 금의 펜타곤의 과제는 탈환이야!”

“그래. 탈환. 그거 했는데?”

…뭐?

“성기사들. 이 근방까지는 데려왔는데, 하나같이 뭘 처먹었는지 무거워서, 원. 지금 형들이랑 기사들이 가서 들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새끼야. 지금 이게 뭐라…….

“지금 뭘 데려왔다고요?”

이번엔 기사들조차 놀랐다.

“아이작 님, 그게 무슨……!”

“납치된 성기사들을 데려왔다고?”

“마족이 있는 그곳에서?”

“너 내가 뭘 잡아온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아니, 씨. 이게 그 마족의 마력핵이라고?!

“아, 그래! 못 믿겠으면 저기 나가보던가.”

“?!”

그 말에 기사들이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뜻밖의 소리가 들려왔다.

“대장님! 켄이 있어요! 정말 저기 수풀에 쓰러져 있어요!”

“샤울도, 젠도 있습니다!”

“뭐?!”

멀지 않은 곳에서 울부짖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상황을 깨달은 그들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성기사들이 납치된 일대엔 마법사들이 쫙 깔려 있었다.

바로 납치된 성기사들과 그들을 납치한 마족을 노리는 것이었다.

‘성기사들을 데려가서 제국에 몸값을 요구하려 했겠지.’

그런데 사제들이 출입하는 걸 허락하겠는가?

한마디로 비협조적인 마법사들을 떠나, 그 장소에 들어가는 것조차 일이란 의미였다!

그래서 성기사들을 탈환하려면, 어떻게든 마법사들과 먼저 싸우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찌저찌 마법사들을 뚫고 가더라도, 안에 있는 마족까지. 괜히 금의 신앙이 아이작 팀을 죽이려고 작정한 거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었다.

그랬는데…….

‘이 무슨……!!’

“뭐야! 너 어떻게 된 거야! 당장 말 안 해?!”

팔짱을 낀 아이작은 눈알을 또르륵 굴렸다.

사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아무리 그래도 ‘마왕이라 애 하나 군기 잡고 왔어요’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음, 우리한테 약 탄 여자가 마침 마법사더라고. 우리들을 기절시켜서 마도제국에 팔려 했었나 봐.”

“뭐? 마법사? 우리를 마도제국에 넘기려 했었다고?!”

“인신매매?!”

“그래, 우린 그 유명한 교황청의 사제들이잖아? 우리가 임무로 여기 온다는 사실을 들었겠지. 아무튼 때마침 마족에게 납치당한 이슈도 있겠다, 납치한 후에 마족한테 잡힌 걸 구해줬단 식으로 신성제국이랑 딜을 할 생각이었나 봐.”

“이… 미친! 사람이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런 짓을!”

푸헿, 역시 순진한 놈들. 이걸 믿는구나.

“그래서 교황청에 이 사실을 전할 거라고, 그러면 교황청이 나설 거라고 협박했더니 쫄더라고.”

“쫄아? 그 사람이 너 같은 꼬맹이한테?”

그들이 의심스럽게 아이작을 보자, 아이작이 눈을 번득였다.

“왜, 못 믿겠어? 어떻게 했는지 그대로 시연해줘?”

아이작이 딸랑이를 슥 꺼내자 청의 팀은 어째서인지 납득했다.

“응. 알 거 같아.”

“안 봐도 너무 잘 알지.”

“애초에 그딴 게 뭐가 중요하겠니…….”

“아무튼, 성기사들이 납치된 곳을 알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유명한 장소였는지 안다더라. 하물며 마법사들 몰래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대?”

“지름길?!”

그래. 공간이동 마법이라고, 개 지름길이지. 푸헿. 덕분에 마법사들을 건너뛰고 성기사들만 슉 빼왔지.

하지만 이를 모르는 슈리가 발작했다.

수상쩍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이작이 마법사들의 땅에 들어간 건 명백한 진실.

“이런 무모한 놈을 봤나! 함정이면 어떻게 하려고!”

“뭐, 형들을 마법사들이랑 싸우게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마법사들이랑 붙으면 우리 중 반드시 사망자가 나왔을걸. 신앙의 수호자로서 가신들을 죽게 할 순 없잖아.”

“……!!”

“아이작……!”

아이작을 보는 청의 팀의 눈이 감동하듯 흔들렸다. 이 자식, 시건방진 꼬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그러나 슈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아이작을 보았다.

…이 자식이 그 정도로 에슈아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리 없는데?

“아무튼 기사들도 아직 안 먹히고 비상식량으로 붙잡혀 있길래 꺼내왔지. 이놈은 지키고 있던 마족. 쿨쿨 자고 있길래 베어왔지. 아무튼 난 형들 해독하고 올 테니, 니들은 그거 정리하고 있어.”

아이작은 마력핵을 품속에 넣으며 히죽 웃었다.

하루 쯤 묵혔으니, 잘 숙성됐겠지.

‘마력을 쪽쪽 뽑아 먹어볼까.’

그런데 청의 팀원들이 짐을 정리하며 이상한 말을 했다.

“아무튼 별일 없어서 다행이다. 수색 온 마법사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네가 납치되지 않았냐고 계속 캐묻더라. 걱정된다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아이작은 기가 찼다.

뭐? 걱정?

“옘병하고 앉았네. 마법사놈들이 왜 사제를 걱정해? 그 음흉한 때끼들이…….”

“말이 심하군요.”

“!”

1층 로비로 들어오는 후드 차림의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근방을 수색 중인 놈들같았다.

‘숨기고 있지만 폼을 보니 어디 귀족이랑 시녀 같은데.’

마법을 쓰는 놈들이다.

뭐, 이 일대는 아직 중립국이지만 마법사의 땅이었다. 마법사가 있는 게 당연하지.

“일행이 무사히 돌아온 것 같으니 다행이군요. 그 유명한 에슈아 직계 사람들이 우리 영역에서 죽으면 골치 아파지니까요.”

역시 대륙의 5대 신앙. 마법사들에게도 가문의 이름은 유명한 듯했지만-

“야, 낌슈리. 니가 말했냐? 에슈아라고?”

그럴 리가 있냐는 듯한 슈리의 시선에, 수색대가 아이작을 훑으며 웃었다.

“이런, 본인들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에슈아 사람은 십만 군중 속에 있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근방에서 마족을 보진 못했습니까?”

아이작이 코웃음을 쳤다.

이 음흉한 놈들. 역시 성직자를 납치한 마족을 쫓고 있는 거군.

뭐, 그럴 수밖에 없지.

그 마족은 무려 14년 전, 교황청 견습 사제들을 초토화시킨 놈. 하물며 성기사들의 추적을 피할 정도라면 얼마나 강하겠어? 마력핵이 어마어마하겠지.

‘뭐, 드래곤들에 성령까지 탐내는 놈들이다.’

실제로 이번 처형식에서도 십사육마의 마력핵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 마당에 지네 땅에 들어온 마족을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하지만 감히 내 먹이를 줄 것 같아? 시벌놈들.

‘뭐, 애초에 니들은 늦었지.’

그리고 슈리는 침을 삼키며 아이작을 보았다.

저녀석, 치밀한 놈이었다.

‘완벽한 킹’이라고 말한 이상, 목과 함께 마력핵을 증거로 바치려는 거겠지.

하지만 마력핵을 마법사들에게 빼앗기면 증거는 사라진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마족하고는 마주한 적 없으니, 꿈 깨시고 돌아가시죠.”

그러나 마법사는 아이작을 수상하게 훑어보았다.

“마족의 마력핵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럴 리가요. 아저씨들이 가지고 있는 거겠죠.”

묘한 교류가 흘렀다.

슈리는 침을 삼켰다. 마법사와 사제들은 사이가 안 좋다. 잘못하면 바로 전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법사가 아이작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고작해야 교황청의 견습이 그 마족을 혼자 마주치고 살아있을 리 없지.”

푸헿! 멀쩡하게 살아있다 못해 되레 조지고 왔다만?

하지만 마법사들은 자기들끼리 뜻밖의 말을 속닥거리며 나갔다.

“이러면 ‘할라크’가 한 말과 다르지 않나.”

“!”

그 말에 슈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가 아이작을 황급히 붙잡았다.

“아이작.”

응, 그래. 나도 들었단다.

할라크는 에슈아의 망나니 숙부의 가명이라고, 이놈한테 들었다. 혹 연관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슈리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숙부가 자신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 리 없단 것이다.

“동명이인이겠지. 흔한 이름이니까.”

“아닐걸?”

“뭐? 그게 무슨…….”

“아무튼, 정리하고 있어. 난 형들 해독하고 있을 테니까.”

“아니, 야! 설명은 하고 가, 새끼야!”

그러나 아이작은 썩 꺼지라며 슈리와 청의 팀을 몽땅 바깥으로 내쫓았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온 아이작은, 안에 있는 한 여자를 향해 말했다.

“자, 그럼 대가를 받아보실까.”

아이작은 파르르 떨며 엎드리고 있는 애쉬를 보며 씩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