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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92화 (92/272)

제92화. 지금 뭐라고 했나? (5)

청…….

5대 신앙 중 백과 함께 가장 정직하고 불의를 싫어하는 신앙.

백이 평화를 따진다면, 청은 특히 기사도를 따지는 놈들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무기를 들지 않은 상대로는 절대 공격을 하지 않는 놈들.

아무리 마법사들이라도 청이 얼마나 기사도에 미친 새끼들인지는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 분명 아이를 사랑하며 약자를 위한…….

“찌발놈들아! 내 말 안 들리냐! 이 꼬마의 목이 날아가도 괜찮다는 꺼냐! 앙?!”

뭔데.

뭔데 청의 사제가 어린애의 목에 칼을 겨누고 협박질인데!?

아니, 저거 청을 논하기 이전에 성직자인지부터 논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짓이 무슨 마족 새끼…….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저분이 왜 저기에 계시는 겁니까!”

다시 보고 또 봐도 마도제국의 막내 황자, 히베리우스였다.

그리고 문제는 그 히베리우스다.

사제에게 칼로 목숨을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럼 하다못해 벗어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찌 마법도 안 쓰고 사제 따위에게 잡혀 계신 거란 말인가!

‘저분이 성기사도 아니고, 사제 놈 하나 제압 못 하실 리 없는데.’

어리지만 혼자서도 장정 여럿을 꿇리는 분이셨다.

그 말인즉슨…….

‘뭔가 약점을 잡히신 게 틀림없다!’

마법사들의 눈이 변했다.

특히 아이작과 만났던 마법사 칼로스는 황자와 면식이 있을 정도의 남자였다.

황자가 사제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도대체 얼마나 응급 상황인 건지.

‘우리가 도움을 드려야 한다.’

칼로스의 눈짓에 맞춰, 후방에 있던 마법사들이 은신으로 은밀히 사라졌다.

사제들도 고위급으로 가면 마법사 못지않은 공격력과 탐지 능력을 갖추지만, 기껏해야 저 사제들은 견습들.

6계위 마법사의 은밀 마법이면 충분하다.

아니나 다를까, 은밀하게 움직인 움직인 마법사들이 단숨에 황자의 곁에 도달했다.

아무리 상대가 견습이라 해도, 마와 싸우는 청이니 감지 능력은 발달해 있을 터. 은신 상태였지만 조심해서 수풀에 숨었다.

그리고 마력을 가진 자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서둘러 황자를 불렀다.

“…황자님! 여기! 저희 손을 잡으십시오!”

다급한 손이 황자를 향해 뻗어나갔다. 손만 잡으면 공간이동으로 황자를 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 있다.

“황자님!”

그러나 정작 목소리를 들은 꼬마 황자는 아이작에게 송충이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다리까지 엉겨붙는 게 코알라가 따로 없다.

그러고서는 하는 말이…….

“눼 이놈드을! 황자 하나 구하지 못하고 뭣들 하는 거냐! 니들이 그러고도 위대한 제국의 마법사들이더냐!”

황자니임?!!

당황한 은신 마법사들이 뻗은 손을 애타게 흔들었다.

“여기! 여기입니다!”

“그러니까 손을!!”

그러나 은신 마법사들을 본 황자는 더더욱 아이작에게 안기는 것이었다. 아니, 아이작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다 못해 다가오는 은신 마법사들을 걷어찬다.

빠각! 빠각!

그러고는…….

“눼 이놈드으으으을!!!! 빨리 이 나를 구하지 못할까! 고얀 놈드을!”

아니! 황자니이임!

미치겠네!

마법사들은 단체로 멘붕에 빠졌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못 들을 리 없는 아이작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다.

“자, 알았으면 마력핵을 두고 물러나라!”

“눼 이놈드을!! 물러나라지 않느냐아!!”

“…….”

…시벌, 그래. 황자님이 저놈에게 넘어간 건 아주 자알 알겠다.

왜 사제 따위에게 흥이 붙으신 건지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다.

‘저분은 우리 제국의 미래시다.’

신성드래곤을 다루는 신성제국 황실에 대항할 불세출의 천재.

차기 황제가 될 최강의 검사이자 황태자인 샤블리스의 목을 따야 하는 위대한 마법사였다.

“알았다. 네놈의 말에 따르겠다. 가진 건 모두 줄 테니 황자님을 풀어다오.”

그들이 품에서 주섬주섬 소지품과 무기를 내려놓았다. 한눈에 봐도 부티가 풀풀 나는 물건들에, 아이작의 눈이 흐흐 반달이 되었다.

“니들이 우릴 공격하려 한 건, 제국에 자알 전달하겠다.”

그 말에 칼로스는 움찔했다.

아니, 이거 잘못하면 외교 문제로 넘어간다.

바로잡고 넘어가야 했다.

“뭔가 착각이 있었던 듯하오. 우리는 마족을 사냥하고 있었을 뿐…….”

슥.

아이작이 다시 황자의 목에 검을 슥 가져갔다.

“니들은 마족 잡고 있는데, 사제를 죽이는 무기를 처들고 있냐?”

…너는 처들고 있어도 되고?

“꼬우면 말아. 시체나 주워가든가. ‘우린 우릴 공격한 마법사들 중 하나인 줄 알았어요.’라고 할 거야.”

마도제국의 사령관 칼로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빌어먹을 꼬맹이!

* * *

사제와 성기사, 즉 성직자들은 본래 다양한 견문을 익힌다.

변화무쌍한 마족들에 대항하고, 다양한 병세를 가진 이들에게 능숙,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뭐… 한마디로 기이한 걸 많이 보는 이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저딴 건 처음 본다.

“푸헿!! 마력핵이다!!!”

…마력핵을 보고 좋아하는 사제라니.

“마력핵! 마력핵! 마력핵!”

하다 하다 저 새끼, 이젠 마력핵 앞에서 탭댄스를 추고 있네…….

그 돈 좋아하는 새끼가 마법사들의 물건은 보지도 않고, 마력핵에 뽀뽀를 해……?

청의 팀은 마력핵을 제단에 바치며 절까지 하는 아이작을 보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성직자들에게 있어 마력핵은 돌덩어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거, 뭐라 설명해야 하냐?”

“…뭐, 마력핵은 돈이 되니까.”

“…아니면 청의 사람이라 그런가? 뭔가 훈장이나 명예의 상징이라든가.”

“오…. 역시 청의 수호자. 청의 명예를 챙기는 건가.”

하지만 정작 그 청의 수호자는 침을 닦았다.

‘캬아아! 역시 마도제국의 마력핵!’

시발! 이거지! 엿 같은 청에 있던 돌덩어리 같은 거랑은 비교도 안 되네! 얼마 만의 양질품이냐!

아니, 청에 있던 것도 쓸 만은 했지만, 애새끼들이 보관을 개떡같이 해가지고!

그러니까 이건 그런 느낌인 거다.

똑같은 고기라도 신선하고 고급진 부위의 고기가 있고, 상해버린 고기나 줘도 안 먹는 쓰레기 부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 신성제국에서 먹었던 건 살점도 없는데 양도 더럽게 적고, 심지어 구데기가 꼬인 썩은 고기!

하지만 이건? 신선하게 보관한 생 중의 생고기! 간만에 음식다운 걸 먹을 수 있다는데, 안 행복하겠냐? 어?!

내가 찌발, 진짜 개 같은 신성제국에서 10년 동안 얼마나…….

[주인님. 표정 관리 좀.]

“…크흠, 크으음.”

아이작은 그제야 동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입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벌레 보듯 하는 청의 팀과 다르게, 마도제국 황자 히베리우스는 다른 반응이었다.

“크으, 역시 뭘 좀 아는 형님이오! 마도제국이 가진 마력핵은 신성제국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지! 거 알아보겠소? 때깔하며, 냄새하며, 마블링하며! 급이 다르다니까!”

아이작을 벌레 보듯 하는 시선들이 황자에게로 옮겨졌다.

그러나 황자는 진심으로 감격한 듯했다. 신성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황자는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하, 신성제국엔 마력핵 보관도 못 하는 버러지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사람이 청에 있다니! 역시 인품으로는 견줄 곳이 없는 신실하고 멋진 신앙답소!”

…이 미친놈아.

그 신실한 청이 니 새끼 인질로 잡으려 했다고. 그보다 얘네 좀 이상해… 무서워.

하지만 청의 고민을 알 턱이 없는 황자는 아이작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형님! 뭐든 말만 하십시오! 성에 돌아가면 청에게 큰 보상을 하겠습니다! 헬라는… 뭐, 마음에 안 들지만 형님이 계신 곳이라면 좀 봐줘도 되지요!”

왜 황자나 되는 놈이 아이작에게 인질로 잡혀주는 짓을 했나 싶었건만.

‘설마 아이작을 마음에 들어할 줄이야…….’

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막내 황자 히베리우스는 마도제국에서도 후계로 밀고 있는 천재적인 마법사였다.

하지만 이번엔 마수에게 무력하게 잡혀 있었지.

그런데 그걸 아이작 처리한 것이다! 그것도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형이 혼자서! 어린 황자에겐 도취될 만한 무훈이었던 걸까.

[아니면 주인님의 마력핵을 느꼈을지도요.]

뭐, 마법만 놓고 보면 10계위에 도달했던 아이작이 압도적 우위였으니 말이다.

“형님! 혹시 마도제국으로 귀화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저희가 잘 해드리겠습니다!”

덕분에 슈리는 땀을 삐질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작의 시커먼 속내는 둘째 치고, 신성제국의 황태자가 이 상황을 달가워할지 모르겠다.

청에게 옷을 선물한다는 것만 봐도 황태자는 아이작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하필 적국인 마도제국의 황자가 넘보다니.

만약 아이작이 성자라도 되면, 이거 정세적으로 난리도 아니겠는데.

‘뭐… 키나가 있어서 쉽지 않으려나.’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최강의 성자 후보이며, 이미 정세적으로도 차기 교황은 키나로 좁혀지고 있는 추세였다.

‘물론 나도 질 생각은 없다만.’

다른 성자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아직 성인식을 치르기 전이었고, 모든 후보들이 신과 계약을 하지 않았으니, 두고봐야…….

“삘어먹을 신성제국! 죽어라! 마력핵 최고! 푸헿!!!”

아… 경쟁자 한명 은 이미 제친 것 같기도 하고.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다. 슈리는 심각한 얼굴로 아이작을 붙잡았다.

“정말 넷째 숙부가 그 마법사를 동원했다고 가주님께 말씀드릴 거야?”

그래, 이게 진짜 문제였다.

마법사들에게서 증거품. 그러니까 사제들에게 치명적인 검들을 얻은 아이작은 이 사실을 알린다고 했다.

그리고 사제가 마법을 쓰면 처형감인 만큼, 마법사를 이용해 사제를 죽이려 한 것도 거의 금기 사항. 이는 넷째 숙부에 대한 명백한 저격이 아닌가.

하지만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당연하지. 경쟁자를 없애야 하는걸?”

그러자 슈리는 진심으로 걱정하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니라면 너 진짜 큰일 나는 거야! 아직 네가 가족들을 안 만나봐서 모르겠지만… 넷째 숙부님은 성격이 진짜 장난이 아니야. 증거도 없이 생사람 잡는 거면, 너 진짜…….”

뭐어? 생사람?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얼마 전 만난 마법사 놈들이 우리한테 에슈아 직계‘들’이라 했지? 그 마법사 놈이 우리를 어떻게 알아봤겠어?”

슈리는 뭔 이야기를 하나 싶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너도 알다시피 에슈아 사람들은 외적으로 눈에 많이 띄어. 얼마 전에 절세미인인 레아 누님을 봐서 알잖아. 너만 해도 백…….”

“맞아, 내가 좀 잘생겼어? 이 잘난 얼굴을 보면 한눈에 알아보겠지만.”

아니. 니 새끼는 머리 색이 동동 뜬다고 하려 한 건데.

“하지만 낌슈리. 넌 아니잖아.”

……시벌놈아, 뭐라고??

“머리 색도 은발이 아닌 갈색이야. 좀 밝긴 해도 에슈아를 바로 상징하진 않아. 하물며 얼굴도 뭐, 나보단 훨씬 못 하지.”

이 새끼를 두들겨 팰까??

“아무튼 마법사들이 견습 사제들 사이에 에슈아 사람이 끼어있다는 걸 알리도 없고. 에슈아의 넷째 놈이 사주한 거야.”

뭐, 사실은 애쉬를 부려서 검의 기억을 읽어낸 것이지만, 마법을 썼다곤 할 순 없으니까.

‘뭐, 이야기가 충분히 퍼졌을 만해. 가주 놈이 금의 펜타곤에서 돌아오면 정식 후계자로 인정해준다 했으니까.’

조카들에게 후계 자리가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반면, 아이작의 말에 슈리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아무리 후계 문제로 자신들을 탐탁지 않게 여길 거라지만, 그래도 숙부님이 자신들을 죽이려 한다고?

“넷째는 성녀 핏줄이 아니라 교황 핏줄이라며? 고엘이랑 친형제잖아. 금의 펜타곤을 하는 김에 금의 신앙과 손잡았을 확률이 매우 크지.”

“…….”

슈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씨. 너야 피가 반만 섞인 숙부지만, 나는 진짜 큰아버지인데!

떨리는 슈리의 동공에 아이작이 슈리의 어깨를 콱 부여잡으며 섬뜩하게 웃었다.

“야아. 그러니까 더 문제인 거야. 큰아버지가 널 죽이려 했어. 너라면 끔뻑 죽는 네 아버지가 가만히 있겠냐? 발칵 뒤집혔을걸?”

“아직 이 일을 모르실 텐데 발칵은 무스… 야.”

이 새끼 설마?!

그사이, 뭘 보내놓은 건가?

아이작이 푸헤헤헿 웃었다.

“청도, 금도, 황실도, 교황청도. 지금쯤 발칵 뒤집혔을거얼?”

신성제국, 헬라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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