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지금 뭐라고 했나? (6)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나?”
교황청. 금의 사제들은 제 귀를 의심했다.
경전을 들추며 부지런히 뭔가를 적던 손은 아까부터 멈춰있었다.
아니, 멈춰있기만 하면 다행이지.
“청의 견습팀이 신성제국에 돌아왔다고?”
“생존자들과 함께?”
거, 경전으로 찍으시겠습니다.
보고를 하러 온 수습 사제가 땀을 삐질 흘렸다.
하여간 누가 구성원 전원이 초 엘리트, 순혈 귀족인 금의 사제들 아니랄까봐. 말을 섞는 것도 황송하게 여기라는 눈빛봐라. 보고하는 것도 무섭다.
‘뭐, 그럴 만도 하다만.’
“현재 청의 팀은 수도로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확인 결과 청의 팀의 인원수가 늘어났는데, 전원 납치된 생존자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국경의 교황청 수도원에서 생존자들이 치료를 받고 있다는 보고도 받았습니다.”
수습 사제의 보고에 금의 사제들은 허어, 시선을 한곳에 두지 못했다.
모든 일에 있어 변수 없이 완벽하게. 엘리트인 자신들이 최고로 끝나야 직성이 풀리는 그들이었다.
그런 의미로 금이 주최한 금의 펜타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뭐?
“청이 역마들의 방해에서 살아남았다고?”
아니, 그 이전의 문제다.
생존자들을 구했다고? 마법사들의 땅에서??
‘도대체 뭔 짓을 한 거냐. 에슈아.’
그리고 도대체 뭐 한 거냐…. 에슈아 넷째 놈과 마법사 놈들!
엘리트들인 만큼, 이 상황이 어떤 미래를 야기할지 눈치챌 수밖에 없다.
결국 어찌 된 거냐는 그 표정에 수습 사제는 슬그머니 한 발 자국 물러났다. 부디 저 경전이 날아오지 않음 다행이겠는데.
“실은… 마법사들이 공격을 하지 못했다 합니다.”
“왜??”
“그것이… 청의 팀이 구한 생존자 사이에 마도제국 황자가 있었다고.”
일동 침묵.
그리고 1초 뒤, 반문.
“…지금 뭐라고?”
“누가 있어?”
“황자요…. 브리타니아의 막내 황자, 히베리우스 브리타니아요…….”
일동 또 다시 침묵.
“…그러니까 마족에게 납치된 사람들 중에 황자가 있었단 말이냐?”
금의 사제들은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공기가 싸하다.
가장 상석에 앉아서 경전을 읽는 베리트 추기경의 손짓은 이미 멈춘 지 오래.
무섭다.
깔끔하게 이마를 넘기고, 머리털, 속눈썹 하나까지도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귀한 걸로 갈아끼웠을 듯한 귀족이었다.
시허옇다 못해 손을 대면 냉기가 느껴질 것 같은 피부에, 뱀파이어 공작처럼 생긴 추기경이 자신들을 잡아먹을 것 같다.
“누가 있었다고?”
칼날 같은 목소리에 금의 사제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추기경이 빡칠 만하다.
‘하필 납치된 사람 중에 마도제국 황자가 있을 게 뭐람!’
‘환장하겠네!’
심지어 그걸 아이작 팀이 구했다고?
그게 무슨 의미겠는가!
‘아무리 적국이어도 황자다.’
잘만 하면 황자를 구해준 건으로 마도제국에 빚을 지울 수 있다.
즉 죽으라고, 망신을 당하라고 임무지에 보냈더니, 되레 상상을 초월하는 공을 쌓았다는 의미다!
‘아니,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금의 신앙은 청의 팀이 못 돌아오게 함정을 파뒀다. 마법사들의 습격 말이다. 견습들은 어차피 습격받아 죽는다 한들 뒤처리가 쉬웠으니까.
그런 신분이었다. 아무리 귀한 집안 출신이라도 교황청에 들어간 시점에서 모두가 평등한 신분으로 강등된다.
즉, 견습은 가장 최하위의 미천한 신분.
그랬는데…….
“아이작 에슈아가 마법사들의 배후 조사를 강력하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황자를 암살하려 한 범인을 반드시 찾겠다고.”
그 빌어먹을 꼬마가?
이렇게 나온다고?
견습들은 파리 목숨이지만, 황자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건 조사는 철저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당연히 배후까지 탈탈 털게 된다. 그럼 자신들도 손을 못 쓰게 된다.
아니, 잘못하면 자신들이 황자 시해의 누명까지 쓰게 생겼다.
결국 베리트 추기경은 이를 우득 갈았다.
‘아이작 에슈아.’
그놈의 아비 놈도 자신을 골치 아프게 하더니. 누가 그 재수 없는 놈의 아들이 아니랄까 봐. 아비며 아들이며 쌍쌍으로…….
그런데 그때, 시종이 다가와 베리트 추기경에게 속삭였다.
“각하. 청의 가주가 베리트 영지에 쳐들어와 깽판을 치고 있다고 합니다. 아들내미를 데려간다고…….”
…아니, 할아비까지 세 쌍으로 지랄하네.
빌어먹을.
* * *
“캬. 꼴좋다, 꼴좋아!”
신성제국 헬라의 수도 로만.
아이작은 마중을 나온 유모 아실리의 말에 깔깔깔 뒤집히고 있었다.
“그러니까 넷째 놈이 베리트 영지의 별장에 있었단 거지? 할아버지는 거길 또 쳐들어가고?”
“네. 서재에서 넷째 도련님을 발견하자마자 머리채를 잡고 던져버리셨죠.”
뭐, 교황가가 문을 열어줄 리 없으니 시종도 안 부르고 문을 박살 내며 들어간 건 덤.
아이작은 또 깔깔깔 뒤집어졌다.
보통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지만, 할아버지 성격 진짜 끝내준다.
‘그래도 설마 교황가에 냅다 쳐들어갈 줄은 몰랐는데.’
부부는 끼리끼리 만난다고, 멜리사와 똑같지 않은가.
“아뇨. 본인은 그래도 기별은 보내고 방문하니, 가모님보다 천만 배 낫다며…….”
아니, 기별 편지보다 본인이 먼저 도착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래도 누구처럼 벽이 아니라, 문만 박살 내니 수천만 배 낫지 않냐며…….”
문이나 벽이나. 결국 부순 건 똑같은 거 아냐?
“그래도 설마 할부지가 그 정도로 해줄 줄은 몰랐는데.”
“말도 마세요. 도련님의 편지를 보시곤 저택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가주님께서도 화가 많이 나셨어요.”
아무래도 가주는 아이작이 떠난 두 달 동안 오매불망 아이작의 편지만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실제로 유모인 아실리만 보면-
-안 왔냐.
-예.
아이작한테 편지 온 게 없냐고 물었고, 또 점심을 먹고 나면-
-아직도 안 왔냐.
-예에.
점심 때 묻고 나면, 또 그날 저녁에 와서는-
-진짜 보낸 게 없느냐?
-예…….
-왜 안 보내냐.
아무래도 가주는 아이작의 편지가 받고 싶긴 한 모양이었다. 틀림없이 생사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겠지.
그런데 드디어 도착한 편지에…….
-할부지. 나 죽을 뻔함. 넷째 쑥부가 우리 죽이려 함. 마법사 동원해서 죽이려 했음.
이라는 메시지가 담겼으니…….
-이 미친 새끼가!
가주는 아이작에게 살아서 오라고만 했다. 임무는 실패해도 되니 돌아만 오라고.
그랬는데, 뭐?
금도 아니고, 집안 새끼가 누굴 죽여?
청의 가주는 분노하고, 고엘이 보기 드물게 빡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 형님이 아이작도 아니고, 친조카를 죽이려해?!
-형니임! 왜 그러십니까! 아이작도 친조카입니다! 똑같이 사랑해주세요!
-릴라이, 넌 제발 좀 닥쳐!
그 이야기에 아이작은 계획대로라는 듯 배를 잡고 웃어젖혔다.
좋다, 아주 좋아!
일단 가주가 되려면 적들이 연대를 못 하게 내부부터 휘저어놓아야지!
“에슈아의 두뇌이신 벤야민 님도 드물게 화나셨어요. 재무 담당을 화나게 하셨으니, 여파가 클 겁니다.”
“째무?”
에슈아에 그런 놈이 있었어?
그러나 아실리는 질색하듯 저택의 일을 떠올렸다.
-이 새끼는 누구 편이야? 지금 청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을 한 거냐?!
-벤야민 님?
-아이작이 임무를 실패하거나 죽으면, 청의 이미지 큰 손실이건만. 이 새끼는 유산 없다! 사회에 환원해!
-나 아직 안 죽었다.
-아버지는 가만히 계십시오! 재무 담당 일입니다!
-이 패륜 새끼들이?
그 말에 아이작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이 미친 성직자들아아앍!!!
“환원할 거면 나한테 하라고! 여기! 선량한 삐해자한테!”
안 되겠어. 정신교육을 해서 재산 분배를 제대로 시켜야겠어.
그나저나 재산 담당이라니. 그런 예쁜 숙부가 다 있었군?
아이작은 아직 생면부지의 가족들에게 큰 호기심이 생긴 듯했지만, 정작 슈리는 한숨을 쉬었다.
“넷째 숙부는 왜 하필 베리트가의 별장에…….”
“일부러 그런 거겠지.”
“뭐?”
“배신하지 말란 의미로 금가에 있던 거야.”
“……!”
그 교활한 속내가 보이는 놈이기에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아직 얼굴은 못 봤지만 머리가 상당히 굴러가는 놈이다. 그리고 썩어빠진 새끼.
[주인님 같은 놈이네요.]
아실리는 쓰게 웃었다.
“그 덕분에 금도 난처해졌겠죠. 그리고 새해에는 에슈아 직계가 모두 본가에 모이는 만큼 넷째분과도 마주치실 텐데…….”
아실리의 걱정 어린 표정에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
“그게, 이번 일도 그렇고, 그 넷째분이 아이작 도련님을 죽이시려는 것 같아 불안해서요.”
“없애? 조카를?”
“네. 아이작 도련님은 마수에게 이미 상처가 있어서 혼자 잡을 수 있다고 하셨죠?”
드러누워 있는 아이작은 눈알을 또륵 굴렸다.
음, 사실 유모에게는 거짓말을 해뒀다.
아직 견습 주제에 14년 전 마족을 혼자 잡았다고 해? 상급 기사에겐 더럽게 수상해 보일 것 아냐?
그래서 상처가 있어서 비교적 쉽게 에슈아의 수면약이 통했다고 둘러댔다.
“그럼 넷째분이 저주를 걸어둔 건지도 모릅니다. 도련님이 마수를 베는 순간 저주를 받게 하려고요.”
…저주라니 넷째 놈, 진짜 에슈아 맞아? 또라이 새끼 아냐?
[주인님이 하실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뭐 인마?
[주인님이 더 심하죠.]
꺼져. 에슈아에서 내가 제일 착해.
그러나 아실리는 굉장히 걱정했다.
“넷째 분은 가주 자리에 집착하고 있어서요. 두각을 드러내는 아이작 도련님을 미리 제거하려는…….”
“걱정 마, 상처가 있긴 했지만 성기사의 상처는 아니었어. 야생의 상처겠지. 저주 같은 건 안 걸렸다고.”
그 말에 아실리는 크게 놀랐다.
성기사가 잡아놓은 게 아니라면, 쉽게 잡을 수 있는 마수가 아닐 텐데!
“그럼 정말 아이작 도련님이 순수하게 잡으신……!”
“그랬다고 했잖아. 뭐, 일단 이걸 교황청까지 가져가야 해결되겠지만.”
금의 펜타곤은 가져온 탈환품을 가지고 점수를 매긴다. 그리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쪽이 승리.
“이 정도 마수면 아마 엄청 큰 점수를 받을걸?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해야지.”
곧 아실리는 크게 놀란 듯, 그리고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도 함께 호위하겠습니다. 또한 그 마족을 잡아주신 도련님께는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실리가 왜?”
“그 마족은 사실 제게도 원수거든요. 당시 견습이었던 릴라이 님과 저는 같은 청의 팀이었고, 당시 금의 펜타곤에서 살해당한 릴라이 님의 친우분은 제 친오빠입니다.”
“아.”
그렇게 된 것이었구만?
“물론 14년 전 또 한 명의 마족은 찾아야겠지만……”
아니. 그놈은 진마라서 니들로는 절대 못 잡고.
애초에 그 진마가 또 14년 전 마수를 풀어놓은 게 좀 걸리긴 한다. 마치 릴라이나 에슈아 사람을 유인하려는 것 같지 않은가.
‘뭐, 나야 와준다면 공적을 쌓을 수 있어서 좋은 일이지만.’
감히 가짜 해골왕 따위를 키워?
아무튼 이제 임무도 일단락되었겠다, 무사히 돌아가서 평가를 받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아실리는 눈을 반짝였다.
“도련님께는 성기사의 재능이 있으신 듯합니다.”
아니. 성기사만큼은 딱 질색이란다.
힘을 봉인하고 아이작에게 끌려온 애쉬도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감히 마왕님께 천박한 성기사라니, 그딴 말도 안 되는 소릴.
그런 애쉬를 수상하게 보는 아실리가 미간을 좁혔다.
“저 그런데 도련님…. 계속 여쭙고 싶었는데 저분은?”
마족의 기운이라도 느낀 걸까. 평소엔 몹시 유순하지만 정체를 훑는 듯한 서늘한 초록 눈빛.
피부 가죽까지 벗겨내는 듯한 살벌한 눈빛에 애쉬는 땀을 주륵 흘렸다.
‘굉장히 강한 상급 기사다.’
걸리면 퇴마당할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살려달라는 애쉬의 눈빛에 아이작은 코를 후볐다.
“아, 이쪽은 마도제국 쪽에서 날 등쳐먹으려던 누나.”
“예! 맞아요! 등쳐먹… 쿨럭?!”
그 말에 애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니! 왕이시여! 왜 그런!
곧 더욱 살벌해지는 아실리의 시선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애쉬는 정정해 달라고 쩔쩔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날 잡아먹으려고 한 대가다.’
“뭐 넷째 건도 너무 걱정마, 처리해줄 사람을 알고 있으니까.”
…처리해줄 사람?
슈리는 불안한 듯 아이작을 보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난리가 난 곳이 한곳 더 있을텐데 조용하네.”
“한곳 더라니요?”
그때 아이작에게 편지가 날아왔다.
‘!’
성력으로 도착한 부유하는 편지였다.
곧 아이작이 편지를 뜯자, 편지가 공중으로 팍 떠오르더니 빛을 냈다.
아실리는 바로 살벌하게 검을 뽑았다.
‘저건 소환진 성법!’
그것도 공격용 신수를 소환하는 성법이었다. 경계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뜻밖에도 눈앞에 나타난 건 사람…….
사람?
그것도 매우 귀한 사람……?
“아이작 에슈아!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더니, 이게 또 뭐하는 짓이냐!”
빡친 인물의 등장에 아이작은 푸헿 웃었다.
우리 귀여운 마도제국 황자가 잘 움직이고 있나 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