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겨우 그거냐? (1)
≪금수음로≫.
짐승을 이동시키는 성법 소환진.
아이작도 잘 아는 성직자들의 성법이었다.
보통은 마족의 시체 등 더러운 걸 연행하는 통로라 인간은 이용하지 않는다.
성직자들의 퀸, 고귀한 신분의 추기경은 뭐,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걸 직접 타고 와?
그게 무슨 말이겠는가. 추기경이 지금 존나 빡쳤다는 것이다.
“그래…. 존니 빡쳤겠지. 푸헤…엑?!”
아이작은 동시에 잡히는 멱살에 혀를 깨물 뻔했다.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 동시에 아이작의 멱살을 잡았다.
한쪽은 적의 추기경, 또 한쪽은 슈리… 낌슈리?!
“아이즈앍! 너 씨, 진짜 쯕땅히 쫌 흐해라!!”
왜 자꾸 적의 신앙을 건드려!!
슈리는 적당히 좀 하라는 듯, 미치겠다는 듯이 아이작의 멱살을 탈탈 털고 있었다.
뭐, 슈리가 이러는 것도 당연하다.
적(赤)은 어떻게든 에슈아를 이단 심문으로 엮어서 공을 쌓으려 하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아이작은 최악의 신앙심부터 시작해서 해골왕의 뼈다귀, 저주받은 손까지. 끌려갈 건덕지가 셀 수 없이 많았다.
에슈아로서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 상대란 것이다.
아니, 솔직히 적과 얽히는 걸 좋아할 성직자가 있긴 할까?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단 심문의 신앙 앞에선 몸을 사려야 하거늘!
“그런데 이 쉐끼가!”
“악, 때끼야 말로 해. 악, 목 조르지 말고. 울지 말고.”
하지만 추기경은 좀 진정이 된 건지, 다시 같잖은 말투를 썼다.
“아이작 군? 무슨 생각으로 마도 황자를 데리고 온 겁니까?”
“무슨 생각이라니요. 각하께 도움이 되시라고 드린 건데.”
아이작의 말에 추기경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움?
지금 도움이라고 했나?
물론 적의 추기경도 처음엔 좋았지.
-황자님을 노리고 온 걸지도 모릅니다. 취조 전문인 적의 신앙에서 배후 조사를 철저하게 해주세요.
아이작의 요청에 적의 추기경은 몹시 흥겨웠다.
왜?
왜긴 왜야.
마법사들을 털 수 있는 기회는 몹시 소중했다.
그리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마법사들이 사제들을 노리는 무기를 갖고 있던 건 맞다. 조사를 할 명문도 충분했다.
하물며 적의 추기경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 마법사들의 목적과 배후가 누구인지.
‘금과 에슈아가 꽤나 곤란해지시겠소.’
배후? 그래 봐야 아이작을 불구로 만들기 위한 교황가와 에슈아의 넷째 놈의 조합이겠지. 덕분에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아서 얼마나 곤란했는지.
이거면 이 나라에서 제일 고귀하신 금도, 청도 동시에 털 수 있었다.
그러니 웃음이 안 나오겠는가.
‘아이작 에슈아. 어리석은 꼬마가 공에 눈이 멀어, 가문이 위험해지는 것도 모르고 적에게 손을 내미는구나.’
적의 추기경은 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살벌하게 웃었다.
그는 상대가 부모든 절친이든 애인이든, 건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웃으며 화형대에 올려보낼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다.
<적(赤)>.
‘내부의 적을 없앰으로서 사람을 지키는 신앙.’
그들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이 더 위험하다 보는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오직 의심과 결단, 행동력뿐.
‘그래. 이거면 십사육마의 대면권, 아니 그 이상의 것과도 맞바꿀 만하지.’
물론 청의 꼬마는 바보같이 자기 가문을 적에 팔아 넘긴 셈이 되었다만.
아니, 그래야 했는데…….
마법사를 취조하던 적의 이단심문관들은 열 받아 죽을 뻔했다.
-신성제국은 이 따위로 취조를 하오?
-예?
-제국이란 게 이렇게 야만적이냐고 물었는데?
-아니, 실례지만 전하.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아직 이름만 물었…….
-아니이이!! 감히이 이름을 묻다니! 이놈의 나라는 인권을 개무시하네! 성직자들은 모두 이 따위요?!
아… 거기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야 했는데.
마법사들을 심문하려고 하자마자 마도제국 황자란 놈이 옆에서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특히 에슈아에 대한 질문만 캐내려고 하면, 벌레 보듯 보던 황자 놈이 갑자기 눈을 번득 떠가지고는-
-어떻게 아이작 형님의 가문에 대한 걸 물을 수가 있소? 성직자들은 도의라는 게 없단 말이오??
-네에까짓 놈들이 감히 청의 자제에 대한 걸 묻다니!
-네 이놈들! 아이작 형님의 취향을 알려면 한참 멀었다!
그쯤 되니 적도, 추기경도 눈치를 챘다.
이 황자 배후에 아이작 에슈아가 있구나.
그러니 적의 추기경으로서는 얄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부러 배후 조사를 요청한 거구나.’
단지 범인일 금을 협박하기 위해서였을 뿐. 진짜로 배후 조사를 시킬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추기경의 표정에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그래그래. 얼굴만 봐도 마도 황자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눈에 보인다.
‘머리 꽤나 돌아가는 놈 같아서 딴생각을 할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있군.’
실제로 아이작의 목적은 금의 견제였다.
괜히 몇 천 년 동안 왕관을 내려놓지 않은 놈들이 아니다.
금가는 초대 황제와 친형제였던 만큼 황가의 피가 섞여 있다. 혈통도, 지지 세력도, 능력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하고 우월하단 의미다.
괜히 키나가 또 하나의 프린스라 불리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어지간해선 타격을 입을 놈들도 아니지.’
그러니 성벽을 야금야금, 아니 여기저기 터트려서 속살을 드러내게 해야했다.
적의 가주도 그걸 알기에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이 꼬맹이가 감히 우릴 이용해?’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작의 제안을 거절 할 생각은 없다.
왜냐고?
잘만 하면 절대 손댈 수 없었던 금을, 정말 자기들 앞에 꿇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추기경은 살벌한 뱀눈으로 아이작을 보았다.
“설마 이대로 넘어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니죠? 부하가 피해를 입는 건 즐거운 게 아니라 불쾌한 일인데?”
피해 배상을 하라는 그 차가운 눈에 아이작이 능청스러운 여우처럼 웃었다.
“왜 그러세요. 지금 하나도 안 불쾌하시잖아요. 오히려 굉장히 즐거우실 텐데. 부하의 고통마저 즐기지 않으세요?”
그 말에 신사적으로 웃고 있던 적의 가주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그 순간 슈리는 공포를 느꼈다.
“이상하다. 아무한테도 들킨 적 없는데. 청의 가주가 말했나?”
“!”
갑자기 공기가 바뀌었다.
웃고 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다.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살인마와 조우한 것 같았다.
숨이 턱 막힌 슈리는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이작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적의 추기경의 눈이 가늘어졌다. 당장이라도 둘을 인적 드문 곳으로 납치해 죽일 기세다.
“견습 하나 없애는 건 일도 아니거늘. 누가 말했을까?”
9계위의 강력한 성력이 성직자들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큭.’
아실리도, 슈리도 기에 눌린 듯 침을 삼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추기경이 나타나자마자 도망친 애쉬는 아마 밖에서 기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일하게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있는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이게 뒈질려고. 말하긴 누가 말해.
내가 봐온 추기경들이 몇인데 모를 것 같냐?
‘대대로 적가의 가주는 싸이코들이거든.’
맨정신으로 사람을 고문하고 화형대에 던져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의 수장쯤 되면 감정이 아예 없다는 쪽이 맞다. 설령 늘 웃고 있을지언정, 눈이 한 번도 웃은 법이 없는 게 그 증거.
아이작은 되레 코웃음을 쳤다.
“즐거우셨으면 대가를 내놓으시죠. 설마 잊은 건 아니시죠?”
되레 공격하는 말에 적의 추기경은 내심 놀란 듯했다. 주제도 모르고 꼿꼿하게 선 고개를 숙이게 하려 했는데, 이걸 견뎌?
적의 추기경은 아이작의 목을 조를 듯 손을 뻗었다.
“청은 자식들에게 목숨을 잃는 법을 가르치나 보군?”
“……!”
그 살의를 느낀 듯 아실리가 급히 나서려고 했다.
위험하다.
이대로면…….
짤랑.
“!”
적의 추기경은 패 하나를 내밀었다.
그건 교황청 감옥의 출입패.
그가 그걸 내밀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주기야 하겠다만, 정말 아이작 군이 그 마수를 처리했습니까?”
“!”
조사 과정에서 마수를 확인한 그들이었다.
그리고 그 마수는 14년 전 수배한 마족 중 하나가 아닌가.
“견습이 잡을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즉, 아이작이 마족과 내통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다.
그러나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그건 청의 가업비밀이고요. 적은 청과 다르게 마족을 잡는 재주가 더럽게 없으니 이런 것도 잘 모르시겠죠. 하긴, 그러니 아드님도 청에 처발렸지.”
아이자아앍!!!
슈리는 얼굴을 부여잡았고, 추기경이 큭 웃었다.
이 맹랑한 꼬맹이가??
아이작은 빨리 내놓으라는 듯 적의 가주가 든 패를 훽 빼앗아갔다. 이 변덕쟁이가 괜히 또 변심을 부리면 곤란하지.
‘이것만 있으면 부하를 만날 수 있다.’
처형식 때 부하를 빼돌리기 위해선 필수였다.
아이작이 패를 빼앗아가자, 적의 가주는 아쉽다는 듯 그를 보았다. 증거만 있다면 진작 잡아갔다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적의 추기경은 풉 웃었다.
“뭐, 신과 계약할 때 잡아가도 충분하니까요.”
그 말에 슈리는 얼어붙었다.
설마 아이작의 신앙심을 눈치챈 건가?
‘젠장, 간택받은 신도 겨우 하급신이라 들었는데……!’
“하지만 그전에 금의 펜타곤에서 살아남아야 할 텐데. 부디 힘내시길.”
어딘가를 보는 적의 추기경은 그 말만 하고 사라졌다.
아이작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저 때끼는 왜 우리가 당연히 금에서 탈락할 것처럼 말하는 거야? 임무도 성공했구만.”
하지만 추기경이 그렇게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아이작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가는 사람이 있었다.
‘젠장, 진짜 살아서 돌아왔잖아!’
그는 다름 아닌 청의 팀에서 첩자 노릇을 하던 몰렉이었다.
청이 죽으러 간다며 비웃으면서 금의 팀으로 완전히 이적했던 그는 이를 갈았다.
‘빌어먹을, 금의 펜타곤은 가져온 물건으로 점수를 채점하는데!’
물론 금의 팀은 자기들이 최고라며 의기양양했지만, 직접 눈으로 보러 온 몰렉은 손톱을 깨물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마수를 직접 잡아서 오다니, 미쳤어?!’
저거면 틀림없이 최고점이다. 청이 우승하게 된다.
그리고 청을 배신한 만큼, 이 상황이 매우 곤란한 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아버지인 몰렉 백작이 귀족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청을 까고 다녔는데… 우승이라도 해봐라!
‘젠장.’
하지만 괜찮다.
‘증거품이 없으면 탈락이지, 뭐.’
심사장에 갈때까지, 마지막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다.
그걸 알기에 몰렉은 서둘러 움직였다.
‘다른 놈들을 시키면 괜히 이야기가 새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부려 먹기 마침 좋은 상대가 있지.
실력도, 물건 처리도 확실하게 할 대상.
몰렉이 찾은 대상은 멀지 않은 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짤랑!
“!”
몰렉은 돈 꾸러미를 던진 건 다름 아닌 역마들.
“소문을 듣자 하니 청의 팀이랑 임무지에서 크게 한바탕했다지?”
“!”
“네놈들이 활약할 기회를 주마. 이건 선금이다. 성공하면 이거보다 더 잘 쳐주지.”
역마들은 사제들은 싫어하지만 돈은 좋아한다. 그 증거로 역마들은 몰렉이 보이는 돈 꾸러미에 내심 놀랐다. 금액이 상당하다. 자신들은 평생 벌어도 얻지 못할 금이 있었다.
“일이라 하시면?”
“청의 팀이 가져온 마수의 머리와 핵을 태워. 증거품을 없애버리라고.”
그 말에 역마들의 대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아… 없애라고요?”
“그래. 어차피 사제들한테 좋은 감정 없는 네놈들이잖아.”
곧 스릉, 쇠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검이 몰렉의 목을 향했다.
역마들은 감히 그딴 말을 지껄이냐는 듯, 소름끼치게 웃었다.
“과연 없애야 할 것은 어느 쪽일까?”
…예?
“새끼가, 감히 아이작 도련님의 물건을 노려?”
…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