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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95화 (95/272)

제95화. 겨우 그거냐? (2)

교황청이 두 달 만에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게, 두 달 만에 견습들이 모이는 것이었다. 금의 펜타곤을 위해 파견 나갔던 견습들이 삼삼오오 교황청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뿐이 아니었다.

“금의 펜타곤의 킹은 어느 팀이 가져갈 것 같습니까?”

“장난하세요? 금의 펜타곤에서는 금의 팀이 킹을 못 딴 전례가 없어요.”

“풉, 적은 청에게 빼앗기기나 하고.”

이번엔 금의 사제들도 대거로 참여했다. 그들은 청과는 다른 의미로 후배들을 사랑했다.

청은 끈끈한 사형사제(師兄師弟)의 느낌, 백은 따스한 형제자매님의 느낌, 적이 철벽의 선임‧후임의 느낌이라면-

금은 엘리트들의 지연에 가깝다.

순혈 귀족들로만 이루어진 만큼 명성도 부심도 대단했고, 후배들은 선배들의 위업에 흠집을 내지 않으려 완벽을 기했다.

“백이야 수장부터 근본 없는 평민 출신이라 쳐도, 청은 왜 평민들도 받아들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평민과 친화적인 신앙은 청과 백뿐.

더러운 피들과 결을 함께하기 싫어하는 그들은 늘 청이 거슬렸다. 뭐, 제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성녀 가문이 좋게 보일 리가 없지만.

“그래도 금의 펜타곤에서 속이 시원해지겠군요.”

“청의 사제들이랑 그 가주가 기세등등한 게 얼마나 거슬리던지.”

“쓸모 없는 신앙은 빨리 사라지면 좋은데…….”

하지만 정작 주인공인 견습들은 아이작 일행을 보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바래버린 회색 사제복이지만, 허리를 감싼 띠는 분명 한 점의 탁함이 없는 고결한 청색.

“…이 미친! 청의 팀이 진짜 돌아왔잖아!”

“…쟤들 어떻게 돌아왔냐?”

어떻게 돌아오긴.

꼬맹이한테 딸랑이로 맞아가면서 돌아왔지!

교황청에 도착한 청의 팀은 흡, 입을 틀어막으며 제국에 절을 했다.

“시발, 헬라여! 빌어먹게 그리웠다!”

“망할 꼬맹이!!”

“빌어먹을 아이작 에슈아!”

“나가서 객사나 해라!”

신성제국을 나가 있는 동안 얼마나 괴로웠는지!

물론 나갔다고 해도, 국경 바로 근처의 중립국가였다. 따지고 보면 앞 동네에 나간 셈이지만, 그럼에도 진짜 뒤지는 줄 알았다!

“망할 아이작!”

그 모습에 다른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저리 저주를 퍼부을 정도면… 얼마나 개판이었단 거야?”

“아직 어린앤데 따돌리기나 하고. 아이작이 불쌍해…….”

주변의 동요에 아이작은 울상을 지으며 다가왔다.

“맞아… 형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하지. 저주를 퍼붓다니.”

아이작이 슬픈 듯이 그들을 꼭 끌어안았다.

“형들… 아이작이 부족해서 미안해. 내가 더 형들을 깍듯하게 모실게.”

“세상에 어쩜 저리 어리고 예쁜 아이가……!”

그러나 정작 아이작에게 안긴 청의 팀은 동공지진을 일으켰다.

새끼야! 손에 딸랑이는 치우고 말해!!

‘하, 망할 꼬맹이. 어떻게 제국에 돌아오자마자 본성을 싹 감추냐!’

진짜 가증스럽고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다.

“너 이 자식…! 남은 함정들은 우리한테 쏙 넘기고 가고!”

“너는 머리만 챙겨서 홀라당 수도로 나르냐?”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아니, 뭐. 목적도 달성했는데 귀찮게 왜 걸어가.

원래 발로 뛰는 건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진 멍청한 성직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물며 척 봐도 마법사들이 자신들을 제국으로 못 돌아가게 하려고 함정을 파둔 게 보이는데.

“뭐, 그래도 나 아니면 어디서 수련하겠어. 돌아오는 동안 실력 좀 쌓았지?”

뭐가 어째?!

마도 황자의 찬스로 스윽 편하게 수도에 먼저 도착한 아이작은 얼굴빛이 몹시 좋아보였다.

뭐, 팀원들에게는 배후 조사와 마수의 목이 훼손될 수도 있음을 핑계로 먼저 가겠다고 한 거지만…….

“우리도… 우리도…! 비싼 워프 쓰고 싶었다고!”

“시골이라 해도 기껏 마법사의 땅까지 갔거늘!”

청의 팀은 억울한 듯 땅을 탕탕 쳤다.

텔레포트는 정신을 갉아 먹는 마법사들의 사술이라 하여 성직자들은 잘 쓰지 않는다.

“아무튼!! 마법사들이 몰려와서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알아?! 근데 혼자만 튀고! 니가 그러고도 리더냐! 신앙의 수호자냐고!”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왜 이래. 니들은 모르겠지만 귀한 왕급 성령을 몰래 붙여줬는데.

뭐, 척 봐도 질 떨어지는 마력핵을 가진 놈들이라, 애들 수련용으로 던지고 온 거지만.

“이 몸이 까르쳤으면 그깟 놈들은 다 쩌리하고 와야지. 마력핵은 가져완냐? 레슨비 없서?”

“뭐가 어쨰오아엙!”

청의 팀은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정작 견습 사제들은 식겁한 듯했다.

“마, 마법사들을 상대하고도 살아남았다고?”

“저 녀석들, 그동안 힘을 얼마나 키운 거야?”

“도대체 뭘 어떻게 가르치면……!”

그런 상황이니 그들은 크게 술렁거릴 수밖에 없다.

“오늘 ‘최종 심사’에서 쟤들이 제일 좋은 점수 받는 거 아니야?”

“!”

청에 관심이 쏠리자, 금의 팀이 헛웃음을 흘렸다.

지금 이건 금의 펜타곤이었다.

선배 사제들, 하물며 주교들과 추기경이라는 대선배들까지 참석해 후배들의 업적을 칭찬해주는 중대한 자리.

이런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

“장난해? 쟤들이 마법사의 땅에서 뭔 활약을 해서 돌아왔을 리 없잖아.”

뭐, 생존자를 구해온 소식 따위 자신들도 들었다. 하지만 생존자들 만으로는 최고 점수를 받지 못한다.

왜냐고?

자신들은 더 값진 걸 탈환해 왔거든!

‘키나가 힘써줬지.’

적의 펜타곤에서 청의 팀에 도움을 준 것으로 항의를 했더니, 키나가 의외로 순순히 말을 들어줬다.

-알았어. 이번엔 확실하게 금이 이기게 해주지. 금의 펜타곤이 어떤 자리인지는 나도 잘 아니까.

-그럼!

-적국에 넘어간 헬라 선조들의 유물을 가져오지.

-아싸! 그거면 완벽해!

그들은 키나의 도움을 받아 원래의 탈환물보다도 더 값진 걸 가져올 수 있었다.

그리고 금의 펜타곤은 신성제국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물질적‧정신적 가치가 중요하다.

그래서 임무를 받으면 머리를 잘 굴려야 했다.

그런데 생존자들?

기껏해야 혼혈에 평민 기사들이 뭐? 그딴 놈들이 신성제국에 무슨 가치가 있다고?

그뿐이 아니다.

‘애초에 몰렉이 청의 팀을 박살 내고 오겠다면서 나갔지.’

혹시 모르니 청의 팀의 물건을 훼손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이 내린 결론은, 금의 완벽한 승리! 거기에 이변은…….

그때였다. 연회장이 다른 의미로 크게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오셨습니다!”

“!!”

뭐? 황제 폐하라고?

모두의 놀람 속에서 금발의 황제와 그의 뒤를 따르는 흑발의 황태자가 나타났다.

모든 이들이 예를 갖추었다. 등장만으로 분위기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올해 금의 펜타곤의 심사 결과 발표는 영광스럽게도 폐하께서 직접 맡아주실 것입니다.”

모두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상에, 폐하께서 오신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펜타곤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고작 견습들의 시험이었다. 본래는 황가의 일원이 참석하는 것 정도로 끝낸다.

하지만.

“고개를 들라.”

“!”

“이번 금의 펜타곤에선 제국에 이로운 공을 세운자들이 있어, 감사를 표하고자 왔다.”

금의 견습들은 속으로 쾌제를 질렀다.

제국에 이로운 공이라니!

자신들을 말하는 게 틀림없다!

동시에 금의 선배 사제들은 후배들을 몹시 자랑스럽게 보았다. 역시 자기 후배들이면, 황제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는 얼굴.

‘황제도 교황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암. 그렇지, 그래야지.’

체통은 지키지만, 황제가 온 것에 좋은 것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이다.

곧 최종 심사가 시작되고, 각 팀들이 가져온 탈환품들이 공개되었다. 신앙의 직계팀부터 다른 이들로 구성된 팀까지, 다양했다.

“백의 팀이 가져온 것은 흩어져 있던 고서들입니다.”

“오오. 제법이군. 연구하면 가치가 있겠어.”

“적의 팀이 가져온 것은 300년 전, 천재 장인 아르테가 만든 성검입니다.”

“오, 그 장인의 물건은 지금도 가격이 꽤 높지.”

“하늘독수리팀이 가져온 것은 처음 발견된 신수입니다.”

“오. 최초라면 제국의 이름에 도움이 되겠어.”

“올해 견습들은 제법이군요. 작년엔 이 정도 물건이 나오진 않았는데.”

사제들의 칭찬이 계속될 때, 금의 사제들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못했다.

하찮다. 전부 하찮아!

자신들의 것에 비교하면 애들 장난 수준!

“그리고 금의 팀. 수백 년 전 헬라가 도둑맞은 황실 물품을 가져왔습니다.”

“헉……!”

황실의 물품이라고?

금의 견습들은 테이블 위에 화려한 남성용 목걸이를 내려놓았다.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저건 보통의 물품이 아니다.

“황실 대대로 전해졌던 보물.”

“야만족이 가지고 갔던……!”

황제도 감탄했다.

“혼례 때 물려받는 물건으로 성군이셨던 할아버님 대에 도둑맞은 물건이오. 헬라의 은인 나라에서 선물로 받은 귀한 물건인데, 도둑맞고 상심이 크셨소. 그걸 되찾아오다니. 실력에 감탄하는 바요.”

크, 역시 키나다.

<탈환>에 가장 잘 부합하는 데다가, 역사적인 부분까지 계산해서 저것을 구해오다니. 역시 완벽해!

뭐, 솔직한 욕심을 말하자면… 원수국인 마도제국에서 뭔가를 탈환해오는 것이 최고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무리였겠지.

그래. 견습에게 이 정도면 최상급 물건이었다.

‘우리보다 더 공을 세운 놈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폐하께서도 이걸 아시고 직접 오신 거라고.’

다른 팀들도 이미 금의 승리를 직감한 듯 이마를 짚었다. 역시 이변은 없단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청의 팀.”

“!”

모두의 시선이 아이작에게로 쏠렸다.

“청의 팀은 크라샨디아에서 마족에게 납치된 성기사들을 전원 멋지게 구출해왔습니다.”

“오, 마법사의 땅에서? 그것만으로 대단하군!”

“역시 청!”

다른 신앙의 사제들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일단 마법사들의 땅에 들어갔다는 용기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듯했다.

그러나 금의 견습들은 가볍게 웃었다.

‘생존자들을 그냥 데리고 온 것만으로는…….’

그러나 사제들은 마수의 머리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청의 팀은 14년 전, 사제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마수까지 처리했습니다. 마법사들도 노리던 놈을 직접 처리하고, 생존자들을 구해와 14년 전 헬라의 아픔을 씻었죠.”

곧 마력핵까지 가지고 오자, 장내가 크게 술렁거렸다.

“그 마수를 직접 잡았다고?!”

“청이?”

금의 팀의 얼굴이 굳었다.

아니, 잠깐만.

마수를 잡아? 누가? 쟤가?

가짜…는 아니다. 그렇다기엔 마력핵이 있었다.

‘그보다 쟤들이 물건을 어떻게 들고와?’

‘몰렉은? 걔가 확실하게 처리해둔다고 하지 않았어?!’

하지만 그들은 곧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냐. 아직은 괜찮다.

마수는 좀 놀라긴 했지만, 잘해봐야 자신들의 성과와 아주 조금 비슷해졌을 뿐이다.

가치만 놓고 보면, 오히려 황실의 물품이…….

“하물며 청의 팀은 마도제국의 황자 히베리우스 롬 브리타니아를 구해냈습니다.”

…시벌, 뭐라고?

뭘 또 구해?

마도제국의 황자?

금의 사제들은 물론, 의기양양하게 금의 자리에 있던 몰렉 백작의 얼굴은 빠르게 굳어갔다.

불길했다.

매우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은 이제부터가 본론이라는 듯 씨익 웃었다.

“저희는 황자 히베리우스 브리타니아에게 본인의 목숨을 구해준 대가를 요청했습니다. 200년 전, 원수국 마도제국이 헬라에서 가져갔던 물품 중 한 가지의 반환과, 그간 크라샨디아가 요구했던 말도 안 되는 통행료의 철회입니다. 마도제국도 이를 받아들였구요.”

“!!”

크라샨디아.

현재 신성제국이 골치 아파하던 외교 문제 중 하나.

마도제국이 헬라의 수출입에 피해를 주고자, 헬라의 짭짤한 수출입 통로인 크라샨디아에 과한 통행세를 매긴 일이었다.

동시에 당황한 사제들이 빠르게 견적을 냈다.

크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도제국은 너무 셌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과거, 아팠던 헬라의 이름을 드높혔음은 물론, 현재로서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탈환품이라고 생각하오.”

교황청 연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황제는 사실 청의 공적 때문에 직접 온 듯, 하하 웃었다.

“물론 금의 팀이 가져온 황실의 보물도 황실의 명예를 올려주는 귀한 물품이오. 하지만 과인은 황실의 명예보다 내 백성들인 제국민의 목숨이 더 귀하다고 생각하오.”

“……!”

“청의 팀은 현재 붙잡혔던 성기사들의 목숨뿐 아니라, 수많은 제국민의 목숨도 구해주었소. 수출입은 일반 제국민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치는 문제. 괜한 피해를 입고 있던 수많은 제국민의 목숨을 구해준 셈이오. 그 공을 높게 쳐주고 싶구려.”

“……!”

금의 사제들은 땀을 주륵 흘렸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물론 심사 결과도 과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만.”

황제가 심사단을 보았다. 심사단의 표정에, 금의 사제들은 입을 떡 벌렸다.

…잠깐.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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