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누워서 떡 먹기지 (1)
하, 시발.
그래, 고통 좋지.
고통이야말로 살아있다는 증거니까!
변태 같긴 하지만, 아무런 감각도 못 느끼던 해골 때를 생각하면 천만 배는 행복해! 행복한데!
“끄와앍! 뀨악 튜얅!(찌발! 그걸 이렇게 느껴야 겠냐고옭!)”
가주에게 엉덩이를 철썩철썩 처맞은 아이작은 죽겠다는 듯 쓰러져 있었다.
찌발, 망할 가주 놈!
말실수 조금 했다고 할부지가 쪼잔하게 손자를 때려?!
[말실수 조금이 아닌 거 같은데요.]
허! 뭐! 그래 봐야…….
-푸헿! 가주 자리? 까짓것, 별거 아냐! 이빨만 까주면 돼! 가주 놈이 좋아할 몇 마디만 해주면 껌이라고! 동료 좀 아끼는 말 해주고, 교리나 몇 마디 읊어주면 돼!
음… 뭐, 그래.
너무 속내를 드러내긴 했구나. 스읍.
입을 슥 닦는 아이작은 살짝 숙연해졌지만, 그래도였다!
“찌발노오오옴! 아무리 그래도 9계위 성직자가 견습한테 폭력을 휘둘러어?! 엉덩이 움푹 파인 거 안 보엵!? 이거 권력 남용이고, 갑질이야앍! 그딴 힘으로 휘두르면 허리 남아나겠냐! 할부지 손자 장가도 못가앍! 망할 할배, 나가 죽ㅇ……!”
벌컥.
“나가 죽? 뭐라고 했느냐?”
“…딸꾹.”
그사이 문을 열고 들어온 가주가 눈을 번득였다.
“이젠 이 할아비한테 죽으라고 하는구나.”
“…딸꾹, 딸꾹!”
“펜타곤에서 좀 배운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야.”
찌발놈. 또 타이밍 그지 같이 들어오네.
“하… 어쩌다가 저런 망나니 놈으로 자랐는지.”
어떻게 자라길 기대했던 건데?
“할아비한테 재롱은 왜 안 피우는 건지.”
“딸꾸욱!(뭘 바라는 거냐, 때끼야!)”
뭐, 좀 아프긴 했지만 괜찮았다.
‘청의 신앙은 아이한테 엄청 약하거든!’
어디 그뿐이야?
“집에 갈 준비는 했느냐?”
그래! 저놈이 집에 가두려는 게 문제지, 가주 자리를 안 주겠다고 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영영 쫓겨날 줄 알았는데.’
천하의 마왕조차도 순간 헉, 하긴 했다.
그럼에도 엉덩이를 맞는 걸로 끝나고, 가주 자리도 주겠다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내 능력이 맘에 들었나 보군.
다만 가정교육 수준으로는 안 되겠다며, 성녀 수업을 하자는 게 문제다만… 미쳤냐!
그 녀석들처럼 또라이 될 일 있어?!
[이미 또라이셔서 괜찮을 것 같은데요.]
닥쳐! 위스퍼!
그리고 그런 가주의 말에 릴라이가 한숨을 내쉬며 들어왔다.
“아버지. 곧 청의 펜타곤입니다. 갑자기 집에 데려가시면 주변에서 뭐라고 할 겁니다. 아이작이 쌓은 공으로 모두가 처형식을 기대하고 있고요.”
그래, 때끼야.
이제 네 맘대로 못 한다니까?
가신들이랑 원로들, 심지어 다른 사제들까지 뭐라 하면서 들들 볶을걸?
걔네, 전부 내 편이야!
금의 펜타곤 이후로 내 팬이 얼마나 늘었는 줄 알아?!
그러나 그런 아이작의 속내를 읽은 듯, 가주는 같잖다는 코웃음을 쳤다.
“흥. 청의 펜타곤? 저놈이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아이작이야말로 코웃음을 쳤다.
아, 뭐래. 청의 시험 개껌이거든?
백만큼은 아니어도, 킹이 쏟아지는 시험이라고 들었거든?
실제로 청의 펜타곤은 난이도가 높지 않기로 유명하다.
적과 금이랑은 달리, 기본만 다졌다면 어린 사제들에게 가혹하게 굴진 않겠단 것이다.
하물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신앙의 직계팀은 어드밴티지가 있기 마련이다.
과제가 청의 사제들이 늘 익히는 종목이라든가… 점수를 후하게 준다거나… 쉽다거나…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이미 시험 문제까지 다 정해진 마당에, 그거 하나 해결 못 할 것 같아?’
그만큼 청의 시험을 치르는 이들 모두가 예상했다.
원래부터 킹을 따기 어려운 종목도 아니고, 시험관들도 청의 기사들인 만큼, 청의 수호자들에게 관대할 것이라고.
‘직계인 아이작이랑 슈리는 더더욱 킹을 못 딸 리가 없잖아?’
그래. 그렇겠지.
“우리 청은 심신 모두를 중시하는 신앙. 돌을 깨는 훈련은 심신 모두를 단련하기 좋다. 각자 할당된 돌을 깨라.”
편애가 있겠지…. 편애가 있을 텐데.
“찌발! 다른 애들은 돌이 한 갠데, 왜 나만 돌이 수백 개냐고옭!!”
…편애가 지나치다 못해, 이거 차별인데?
교황청 수련장에 모인 사제들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견습 사제들의 앞에는 어린아이만 한 청색 돌이 놓여있었다. 에슈아 땅에서만 나오는 청석으로, 성력으로만 깨지는 특별한 돌이었다.
물론 힘만으로 깨지진 않는다.
정신과 힘이 완벽한 밸런스를 이루었을 때만 깨질 만큼, 상당히 난이도가 있는 돌인데…….
아이작한테는 그런 돌이 한 개도 아니고 하나, 둘, 셋… 열…. 아오, 씨. 끝도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진 거야.’
‘…왜 쟤만 난이도가 높냐?’
‘보통은 반대 아니냐……?’
불만을 안 가질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이 시험관인 청의 기사를 노려보며 돌을 가리킨다.
“쩌어기. 이거 개수가 좀 이상한데. 치워줘.”
“그, 그게 말입니다. 막내 도련님…….”
청의 상급 기사가 직계 도련님 앞에서 쩔쩔맸다.
그래, 그렇지.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이상한데…….
“전혀 안 이상하다. 그게 네 할당량이다.”
“!”
말한 건 시험관 옆에서 채점지를 넘기는 청의 가주. 견습 전원이 동공 지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추기경이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아이작도 화를 냈다.
“각하! 이거 뭔가 잘못된 것 같쯥니다! 이유를 설명해 주십찌오!”
“이유는 없다.”
뭐, 인마?!
그뿐이 아니었다.
준비된 건 돌 깨기 하나만이 아니었다.
“마족들은 언제나 성직자들을 유혹하지. 마와 가장 가까이서 싸우는 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 의미로 청의 과제는 탐욕 테스트다.”
가주의 손짓에 청의 기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이 견습들에게 하나씩 내민 건, 거대한 보석함.
“거기 들어있는 보석은 가져가는 대로 전부 너희 것이 되지만, 하나라도 가져가면 탈락이다.”
그래… 여기까지는 예년과 똑같다.
딱 하나만 빼고.
그들은 아이작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보석과 황금, 금화에 입을 떡 벌렸다.
‘청! 너무 노골적이잖아!’
‘왜 아이작의 보석의 갯수만 다른데!’
다른 견습들은 눈앞에 보석이 열 개 정도밖에 없지만, 아이작만 산더미다.
“다시 말해두지만, 손끝만 대도 탈락이다. 탐욕을 참아서 너희의 참됨을 증명해야 한다.”
그 말에 사제들은 기가 찼다.
‘저딴 거에 넘어가는 놈이 어디에 있어!’
다들 너무 아이작을 무시한다는 시선이었지만, 정작 슈리와 청의 팀은 시험 내용에 굉장히 납득하는 얼굴이었다.
‘할아버지…. 아이작을 집에 끌고 가려고 작정하셨군.’
‘아이작이 저걸 그냥 넘어갈 수 있을 리 없지.’
누가보더라도 아이작을 탈락시키려고 내놓은 과제다. 물론 정작 장본인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쳤지만.
이 가주 놈이 진짜?
“어이가 없네. 나를 개무시해도 유분수…….”
그 말에 청의 추기경이 304캐럿 다이아몬드를 꼭대기에 스윽 장식하듯 얹어놓았다.
올려놓자마자 아이작의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아이작이 홀린 듯 보석에 다가가려는 순간!
“아이자악!!!”
청의 팀이 필사적으로 아이작을 막았다.
“얌마! 정신 차려! 겨우 저딴 걸로 펜타곤에서 떨어질 일 있어?!”
“추기경께서 직접 오신 것도 의외지만… 정신 차려!! 가신들을 지켜야지!”
그러자 청의 가주가 걱정 말라는 듯 눈을 번득였다.
“아. 참고로 청의 펜타곤은 개인전이니까 저건 신경 쓰지 말거라.”
“아, 진짜요?”
“개인전이면 뭐…. 힘내라.”
가신들이 우르르 떨어지자, 화들짝 정신 차린 아이작은 빠직 핏대를 세웠다.
‘우씨, 이거 역시 잘못됐어!!’
* * *
후. 열 받는다.
‘아니, 할아버지, 이렇게 편애할 건 없잖아……!’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손자를 탈락시키려고 작정을 해! 그래서 너무하지 않느냐, 항의를 하러갔더니, 뭐라고 하더라?
-너는 청을 이끌 사람이며, 사람들의 관심을 사고 있다. 자만에 빠질 수도 있으니 더욱 엄격하게 잣대를 올릴 필요가 있다.
이 자식이 진짜!
그리고 할아버지는 특별 과제라며 아이작에게 책을 우르르 쏟아놓고 갔다.
전부 청의 성전이었다.
-이걸 다 읽으면 네 성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움이 되긴, 개뿔이.
전부 신들의 언어로 쓰인 어려운 고서적이잖아. 보통 추기경급만 읽는 9계위 성법들이었다.
딱 봐도 아이작이 포기하고 도망가는 걸 노린 것 같은데, 더 열 받는 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오오, 역시 후계 수업……!”
“역시 아이작을 후계로 지목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그래서 청의 펜타곤도 아이작 공자에게만 엄하게 낸 거라던데……!”
“괜히 그러실 리가 없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이미 귀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에!
청의 가주가 후계자로 아이작을 지목했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귀족들의 분위기나 아이작을 보는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아이작에게 잘보이려고 오는 놈들까지 늘었다.
그 사실만으로 아이작에게는 좋은 흐름이었지만, 실상은 고통이라 문제지.
[그래도 나름 공부가 될 거 같은데요?]
아니, 고통이야! 심지어 이걸 100장씩 베껴? 도대체 언제 적 깜지냐고!
‘하, 누가 미련한 인내의 신앙, 성녀 가문 아니랄까 봐. 구닥다리 때끼들.’
그래! 사람은 자고로 머리! 머리를 써야지!
‘몸이 편한 게 최고야! 누가 요즘 같은 시대에!’
[하지만, 이거 못 하면 청의 펜타곤을 통과하지 못하잖습니까? 가주가 최하점을 준다면서요.]
그 말에 아이작이 꾀를 부리듯 푸웁 웃었다.
‘다 방법이 있지.’
벌떡 일어난 아이작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갔다. 그가 달려간 곳은 황궁에 들어가려는 릴라이가 있는 곳이었다.
“숙부니이임!!”
릴라이는 평소와 달리 자신에게 달려와 안기는 조카를 보며 크게 놀랐다.
“아이작! 왜 그러느냐! 어떤 놈이 울렸어!”
좋아, 좋다. 격렬한 반응 좋고.
아이작은 속으로 큭큭큭 웃었다.
뭐, 울지는 못하니 우는 척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청의 펜타곤은 그래 봐야 에슈아 직계들이 주관하는 것.’
그럼 적당히 적당히 적폐 찬스를 쓰면 된다.
딴 놈은 몰라도 릴라이는 자신의 딱… 팔불출이었다. 그딴 거지 같은 과제를 하고 있을 것 같냐?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은 시무룩한 척을 했다.
“숙부님. 아무래도 집에서 나가야 하나 봐요.”
놀란 릴라이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아이작을 붙잡았다.
“…뭐?! 무슨 소리냐, 자세히 말해봐라. 네가 집을 왜 나가! 설마 고엘 형님이 또 뭐라고 한 거냐?”
좋다! 표정 죽여주시고! 걸려들었어!
“할아버지께서 절 싫어하시는 것 같아요.”
“…뭐?! 무슨 소리야, 할아버지, 아니 가주님이 우리 아이작을 왜 싫어하겠어!”
“사실은…….”
이야기를 들은 릴라이는 분노했다.
“아니, 애가 실수할 수도 있지!”
좋았어!
“저 이대로 집에 돌아가야 할까요. 숙부님처럼 상급사제는 못 되는 거에요?”
아이작의 눈빛이 아이처럼 초롱초롱 거렸다.
“숙부니임.”
[우엑]
뒤질래?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닥쳐. 백보 전진을 위한 반보 후퇴야.
[누가 그런 역겨운 애교에 넘어간다고요…….]
그러나 조카의 부탁에, 조카바보 숙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