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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98화 (98/272)

제98화. 누워서 떡 먹기지 (2)

“쑥부니임.”

아이작의 애교에, 릴라이의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작……!!’

무려 큰형이 남기고 간 아이였다.

7남이자 막내인 릴라이에게 있어 장남은 자신을 업어서 키워준 형. 장남이나 형수님이나 부모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 둘을 10년 전에 잃었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왜 하필 그날따라 형님이랑 형수님을 마중 가지 않았을까.

마족 땅 옆을 지나가는 것도 알았고, 해골왕이 성녀를 계속해서 찾고 있다는 것도 알았는데.

그깟 뒤풀이 잔치가 뭐라고.

그깟 생일에 함께하지 못한 것에 삐쳐서.

그래서 형님 부부가 행방불명되었단 말을 들었을 때 억장이 무너졌고, 그 둘에게 아이가 있으며 하물며 그 아이가 살아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빛과 희망을 보았다.

실제로 꼬물거리는 젖먹이 아이작을 보았을 땐 이 아이라면 기꺼이 목숨도 바칠 수 있겠다 싶었다.

하물며 릴라이는 해골왕의 저주를 받아 몸은 건강하나, 아이는 가질 수 없는 몸. 아이작을 제 자식처럼 키웠다.

아니, 더 큰 사랑으로 키웠다!

그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쑥부니임. 할아버지가 절 미워하셔서 벌을 주시는 것 같아요. 아이작은 이제 영영 집에 갈 수 없어요?”

라고 말하는데, 눈이 안 돌아가겠나!!!

어?!

아버지이이이!

어떻게 애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게 할 수가 있는데!! 그러고도 할아버지야 어?!

아이작이 아무리 영특하다고 해도 아직 10살짜리 어린앤데!! 지금 자기하고 싸우자는 건가! 어?!

당장에라도 아버지의 멱ㅅ… 아니, 아니! 따지러 가고 싶지만 참는다.

“아이작, 아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주님이시니 가족들에게 더 엄격하신 것뿐이야. 할아버지가 우리 아이작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시는데? 응?”

안절부절못하는 릴라이 반응에 아이작은 흐흐흐 속으로 웃었다.

여어억시, 우리 예쁜 릴라이!

나한테 껌뻑 죽지! 역시 조카 바보가 짱이야!!! 꼰지름이 짱이라고!

하지만 이 때끼. 대답을 보아하니 이성이 아직 남아있구만. 정신을 못 차렸어.

‘할 수 없지.’

[주인님?]

아이작은 얼굴을 스윽 가렸다.

인간이 되었어도 눈물은 안 나와서, 눈물약을 슬쩍 넣었다.

그리고.

“쑥부님. 어떡하죠? 할아버지가 저더러 나가래요……!”

“뭐? 나가??”

릴라이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하다 하다 이젠 애한테 나가라고 했어??

그 반응에 아이작은 스윽 웃었다.

물론 ‘숙소에서 나가서 집에 같이 가자’고 한 거지만, 뭐. 거짓말은 안 했다?

아이작은 한술 더 떴다.

“할아버지가 저한테 자격이 없댔어요.”

릴라이는 기겁을 해서 아이작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자격이 없다니, 정말 할아버지가 네게 그렇게 말하셨느냐!?”

“눼.”

뭐, 실은 가주 놈이 갖고 싶은 게 뭐냐고 하길래 술을 달라고 했더니, 아직 그럴 자격(나이)이 없다고 한 거지만. 그렇게 들은 게 거짓은 아니니까?

아이작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숙부님, 저는 청에 있을 자격이 없어요?”

어깨도 일부러 우는 척 사알짝 들썩거려주고,

“…저는 청의 펜타곤도 통과 못 하는데. 그럼 이제 숙부님처럼 멋진 상급 사제님은 못 되는 거예요?”

릴라이가 성기사인 건 알지만, 일부러 사제라고 했다. 약간 덜떨어져 보여야 애 같지.

아니나 다를까, 릴라이의 얼굴이 하늘이 무너지는… 아니, 나라 잃은 얼굴이 되었다.

새하얗게 질려서 입만 뻐금거리는 표정에서 얼마나 멘탈이 나갔는지 보인다.

그럼 이제 치명타를 날려줘야지.

“아이작은 청의 펜타곤을 통과하고 어엿한 사제가 되어서 숙부님하고 같이 마족, 아니 해골왕을 잡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저 해골왕 대가리 못 뿌수는 거에요?”

뜨어어어얽.

릴라이가 결국 쓰러졌다.

그리고 아버지를 원망하는 듯한 릴라이가 아이작을 붙잡았다.

“걱정 마라. 이 숙부가 다 해결해주마!”

“찐쨔요?”

진짜고 자시고 해결해야지, 시벌 놈아.

“그래! 그깟 펜타곤, 우리 아이작이 눈 감고도 통과하게 해줄게! 그깟짓 게 뭐가 어렵겠느냐!”

“와 진쨔 안 어려워요? 진쨔?”

[주인님, 표정이랑 목소리에 영혼 좀…….]

꺼져. 이것도 영광으로 알라 해.

그러나 릴라이는 아이작을 꼭 끌어 안아주며 오열했다.

“그래, 그러니 걱정 마라! 이 숙부가 꼭 통과하게 해줄게! 그러니 같이 해골왕을 잡으러 가자꾸나!”

안겨있는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변했다.

흐흐흐흐흐. 역시 적폐 찬스 최고.

* * *

“예, 면회 요청 말이시죠. 신청되었습니다.”

교황청 감옥.

아이작은 십사육마가 갇힌 감옥에 찾아왔다. 교도관들이 전부 적의 사제들이라 아이작을 못마땅하게 보았지만, 지들이 뭐 어쩔 거야.

“…각하께서 주신 패 확인했습니다. 14일 뒤에 바로 면회 가능하십니다.”

캬, 그래! 그렇지! 이게 권력의 힘이지!

거지 같은 사제들이 곰팡이 씹은 표정 짓는 게, 아주 볼만하구나!

하지만 기간은 마음에 안 드는군.

“꼭 14일 뒤야? 더 빨리는 안 대?”

처형식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너무 촉박하잖아.

“모가지를 따고 날 보여줄 셈이야? 뛰지고 씹냐?”

그러자 적의 사제들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지간히도 적가의 삼남인 나이저를 그 지경으로 만든 것에 한이 맺힌 것 같다.

“허, 원래는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만나게 해드리는 것만으로도 운 좋은 줄 알…….”

아이작은 적의 추기경의 패를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감히 이거 앞에서도 그딴 말을 지껄일 거냐는 얼굴로.

“5일.”

우두머리를 상징하는 패 앞에서 적의 사제들은 크윽, 고개를 숙였다.

“그… 해골왕의 부하인 만큼 보안 작업을 해야 합니다. 놓치면 진짜 대형 사고라서요. 10일은 주셔야…….”

“3일.”

“최소 일주일은 주셔야!!”

“오늘.”

“내, 내일! 그 이상은 안 됩니다!”

“합격.”

“크윽……!’

적의 사제들은 뭐 저딴 꼬맹이가 있냐며 고개를 숙였다. 추기경께서도 왜 하필 저걸 청가의 망나니 꼬맹이에게 주신 건지!

‘아냐. 참자.’

분해하는 적의 사제들은 어째서인지 조금만 참으면 된다는 얼굴들이지만, 아이작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때끼들이 원래 하루면 될 일 가지고 늦장 부리기는.’

뭐, 당장 봐도 되지만, 사실 내일 보는 쪽이 아이작에겐 더 좋은 일이었다.

왜냐고?

‘오늘 청의 펜타곤에서 킹을 받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있거든.’

그거면 더 안전하게 부하를 볼 수 있다.

어쨌거나 면회를 하면 이단심문관을 대동하고 볼 텐데, 정체가 들킬 짓은 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뭐, 청의 펜타곤이야 릴라이가 조카를 위해 개 쉽게 바꿔준다고 했고!’

푸웁!

어쨌거나 ≪공양제≫, 즉 여러 나라에서 방문하게 될 처형식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물론 아이작은 킹을 3개나 땄고, 개별 평가 점수도 최상위였다. 그런 만큼 자신은 처형식에 무조건 참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처형을 직접 맡게 된다든가, 팀원 전원이 처형식에 참여하려면, 남은 펜타곤에서도 힘내야 한다.

‘처형식에는 신의 사자 놈들도 내려올 테니까, 내가 쉽게 움직이려면 아군은 많을수록 좋아.’

어쨌든 면회 신청을 해놨으니 이 건은 됐다.

“그럼 릴라이가 청의 펜타곤을 어떠케 바꿔놓았는지 보러 갈까. 푸헿!”

분명 개 쉽게 해놓았겠지?

* * *

“그렇습니까, 아이작 공작께서는 오지 못하신다고요.”

황녀의 반응에 릴라이는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황태자를 만나기 위해 황실에 방문한 건 좋은데, 아무래도 아이작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청의 가주께서 엄격한 과제를 내리셔서요. 하지만 설마 황녀님께서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실 줄은 몰랐습니다.”

“네, 어릴 때부터 오라버니께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었으니까요.”

뭐? 황태자한테? 어릴 때부터?

출처가 의외라 황태자를 바라보았지만, 정작 황태자는 굉장히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얼굴도장이라도 찍으려 했는데, 쉽지가 않군.”

그는 바로 얼마 전 만났던 마도제국의 막내 황자 히베리우스를 떠올렸다.

설마 적국의 황자가 헬라 황실까지 기어들어 올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그 간덩어리가 부은 꼬맹이는 자신을 보자마자 이리 말하지 않았던가.

-성자가 꼭 신성제국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아이작 형님을 마도제국으로 모셔도 되지요?

감히 황실의 귀한 패인 성자를 빼앗겠단 소리를 하다니. 역시 목을 잘라 보내야 했나.

흑발 사이로 표범 같은 금안이 불쾌한 듯 번득이자, 릴라이가 웃었다.

“뭘 그리 걱정하십니까. 제 조카는 마법사가 아닌 사제인걸요. 이 신성제국을 떠날 일도 없습니다.”

“아니, 그대의 조카는 마…….”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아무튼 조심하게. 교황가와 적가가 경의 조카를 노리고 있으니.”

“!”

“특히 처형식이 열릴 ≪공양제≫를 노리고 있겠지. 처형식이 워낙 유명해져서 그렇지, 사실 공양제는 사제들이 자신을 간택한 신을 소환하는 날이잖는가?”

≪공양제≫에서는 상위 입상자들이 각자의 신을 소환해 대표로 계약을 하게 된다. 아이작도 상위 입상자니, 당연히 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하하하. 아이작은 괜찮습니다. 공양제에서도 별일 없을 겁니다.”

하지만 황태자는 진짜 괜찮냐는 듯, 심각하게 보았다.

“…정말 괜찮은가? 조카가 ‘악신’을 뽑을 텐데도?”

“푸학헑!! 콜록!”

황태자가 주는 차를 마시던 릴라이는 사레에 걸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쿨럭! 역시 그놈의 인성… 아니, 신앙심을 들켰나!!

심지어 이 황태자 놈, 완전히 확신하고 있는데? 아이작이 악신을 뽑아서 타락한 암흑사제가 될 거라 확신하고 있다고!

아니, 솔직히 자신들도 거의 확신하고 있긴 하다만…….

‘젠장, 어쩌지? 이단심문에 넘기시려나? 아니면 처형?’

그도 그럴 게, 암흑사제는 신성제국에서 사형!

릴라이는 동공 지진을 일으키다 못해 들고 있는 찻잔을 바들바들 떨었지만, 정작 황태자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백 프로 악신을 뽑을 테니, 적가는 그날을 벼르고 있을 거고. 교황가도 마찬가지겠지.”

아니, 이 새끼야. 악신을 안 뽑을 수도 있잖아! 백 프로라니, 너무하네, 진짜!

황태자만 아니었어도 콱!

‘물론 고엘 형님은 어째서인지 걱정 말라고 하셨지만… 정말 괜찮은 거 맞나??’

황태자는 좀 섭섭해했다.

“청의 가주의 행동을 보면 그대의 조카는 펜타곤에서 떨어지겠지. 그럼 에슈아 공작령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 상관없으려나.”

어허, 에슈아 공작령은 무슨!

“아뇨! 괜찮습니다! 아버지의 속셈은 안 통합니다. 저는 아이작을 청의 가주, 아니 교황으로 키울 거니까요!”

청의 펜타곤 과제도 릴라이의 권한으로 굉장히 쉽게 바꿔버렸다.

무려 조카가 부탁했는데, 까짓거 고쳐줘야지!

실제로 청의 펜타곤 시험장.

사제들은 역대급으로 쉬운 시험에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자, 청의 시험 최종 과제는, 마수를 잡는 것입니다.”

“이것만 잡으면 청의 펜타곤은 통과할 수 있어요.”

슈리와 청의 사제들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오오! 이거면 누워서 떡 먹기지!”

“아이작! 할 수 있다! 이거라면 너도 통과할 수 있어!”

“역시 릴라이 님! 이걸 누가 통과 못 해! 말하길 잘했다, 야!”

모두가 환호했지만, 정작 꾀를 부린 아이작은 좌절하고 있는 중이었다.

찌발…. 릴라이 이 때끼.

쉽게 바꿔준다고 하더니.

-걱정 마라! 이 숙부가 눈 감고도 통과할 수 있게 해주마. 갓난아이도 통과할 급으로 내줄게!

아니, 눈 감고도 통과할 정도로 쉽지. 쉬운 건 맞는데. 꼬맹이들이 연습용으로 다루는 슬라임급 마수는 맞는데.

그래…. 나도 그냥 손만 휘두르면 한 방에 끝나긴 하는데…….

적폐 찬스를 쓴 아이작은 힐끗 눈앞에 있는 수많은 마수를 보았다.

응, 그러니까……

…스켈레톤이다.

“달각달각달각달각.(와아, 우리의 왕이시다, 왕이시다!)”

“딸각달각달그닥달각.(와아! 우리를 보러 와주셨어! 와주셨어!)”

말도 못 하고, 졸라리 약한 최하급 뼈다귀…. 성직자들이 개 병신 취급하는 최하급 마물.

응…. 스켈레톤.

[동족상잔이군요.]

찌발!!!! 망할 릴라이!!!!

이 망할 놈의 에슈아부터 멸문시켜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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