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누워서 떡 먹기지 (4)
“떠러워졌어……”
아이작은 침대에 엎드려 침울해하고 있었다.
아니, 침울해하다 못해 세상 멸망을 앞두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다.
<턴 언데드>로 스켈레톤들을 처리한 이후, 아이작은 내내 그랬다.
‘뭐, 처음부터 스켈레톤들한테 성법은 쓸 생각이긴 했는데.’
그래도! 내가 설마하니!
<턴 언데드>를 쓰게 될 줄이야!
다른 성법은 다 써도, 치가 떨리는 ‘대 언데드’ 술법만큼은 안 쓰겠다고 맹세했었는데!
그랬는데에!!!
“흑…. 더러워져쪄…….”
아이작이 엎드려서 흑흑 어깨를 들썩이자, 청의 팀원들은 미간을 좁혔다.
아니, 저놈은 청의 펜타곤에서 그렇게 칭찬을 받았으면서 왜 저러는 거야?
아이작은 대범위 성법인 <턴 언데드>를 썼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청의 사제들은 놀라운 성과라며, 뿌듯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신앙들도 내심 견제하는 눈치였던 것이다.
-대단하십니다! 도련님! 이만한 힘을 숨기고 계셨다니요!
-교황의 손자도 이 정도로 다루진 못할 겁니다!
-뿌에엙개새키으앙!(꺼져! 니들은 다 고기 방패행이야, 찌발!!)
-에슈아의 블루 소드 문장에 어울리는 분으로 자라시겠군요!
-쁘으우에엙!!!(닥쳐! 에슈아는 멸문이야!)
뭐, 정작 장본인은 이 상황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깟 <턴 언데드>를 쓴 게 뭐 대단하다고.’
[뭐, 동족들을 숨긴 거니 사기긴 하지만. 위력이 센 건 사실이었죠.]
닥쳐. 쓸 일도 없는 게 위력이 세서 뭐 하냐고!
[‘대 언데드’ 성법이 강하다면, 같은 항마 계열인 ‘대 악마’ 성법도 강하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캬, 동족상잔에 이어서 민족상잔!]
너부터 소멸시켜주랴? 악마족 새끼야?
[…흑. ‘대 악마’ 성법을 잘 다룰수록 성자 취급도 좋아지지 않겠냐는 말씀이었죠…. 흑흑.]
악마 위스퍼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실제로 아이작을 보는 슈리가 불편한 듯 미간을 모으고 있었다.
‘성자와 교황이 될 땐, 무엇보다 퇴마 능력을 중요하게 보는데.’
왜냐고?
다른 나라들이 왜 신성제국의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는가?
왜긴 왜야, 기득권은 지들 재산 잃을까 걱정…아니,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다.
그리고 신성제국은 인간진영에 쳐들어오는 마를 없애는 강력한 능력을 가졌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러 능력 중에서도 퇴마 능력은 중요도가 높았다.
그 퇴마 능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우수한 건 청과 금. 괜히 금이 청을 견제하는 게 아니다.
거, 금의 신앙 눈치만 봐야 할 놈들이! 안 그래도 독점하고 싶어 뒤지겠는데! 자꾸 청에게 향하는 놈들이 생기니… 얼마나 눈에 거슬리다 못해 찢고 싶을까!
어쨌거나, 청의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그런 배경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성자 후보인 슈리는 이를 악물 수밖에 없다.
‘그 많은 걸 한번에 없애다니, 나도 질 수 없지.’
뭐, 사실 99%는 사기긴 하지만, 아이작이 가장 중요한 퇴마 부분에서 두각을 보인 건 맞다.
“네 활약 덕분에 팀원들도 자극을 받아서 전원 킹을 받았어. 그래서 처형식엔 전원 참가하게 됐으니……”
“흑…. 더러워져쪄. 이제 틀려쎠. 인생 끝이야…….”
“아, 만점을 받았는데 왜 그 지랄이냐고!”
결국 참다못한 슈리가 아이작에게 물건 하나를 집어 던졌다.
퍽!
그쯤 되자 아이작은 뭐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낌슈리, 이게 뛰질려고, 뭘 던지… 엉?”
그때 아이작의 앞에 수많은 상자들이 쌓여갔다.
척척척!
당황한 아이작은 눈을 끔뻑거렸다.
“청의 펜타곤 보상품이야! 누가 가질까 의논했는데, 역시 네가 전부 가져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오.
아이작이 가장 바랐던 보상품.
청의 펜타곤의 보상품은 각자에게 하나씩 지급되었다. 하지만 청의 팀 전원은 아이작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들은 부끄러운 듯 코를 슥 문질렀다.
“형들이 되어가지고 앞선 펜타곤에서 네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보답할 길이 없었잖아.”
“우린 솔직히 한 게 없잖아…. 그래서 주는 거야.”
“맞아. 형들은 한 게 없긴 하지.”
“뭐, 인마?!!”
그러나 아이작은 푸웁 웃었다.
“뭐, 이걸로는 내 은덕에 한참 부족하지만 아쉬운 대로 받아주지.”
“…….”
찌밤. 이 새끼한테 고맙단 말을 들으려고 한 게 잘못이지.
“뭐, 그래도 형들 손가락만 빨게 하는 건 불쌍하니까. 대신 이거 줄게.”
뭐, 이놈들이 저리 말해도 생각보다 도움이 되고 있었으니까.
아이작은 가방을 뒤지더니, 뭔가를 툭 던져줬다.
이 새끼는 또 뭔 쓰레기를 대신 버리게 하려나 싶었지만, 곧 받은 물건을 확인한 청의 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거 ≪금환약≫이잖아?! 이, 이걸 준다고?”
“뭐? 그 귀한 걸?!”
돈 주고 살 수 없다는 귀한 영단. 금의 직계들이나 먹을 수 있다는, 그 ‘금환약’이었다!
동시에 청의 팀은 아차 싶었다.
“서, 설마 몰렉 놈들이 먹었던 독 성분의 ‘뉴 금환약’인 건… 푸헉!”
그 말을 한 녀석은 아이작에게 베개로 얻어맞고 말았다.
“진짜 금환약이거든?”
그 말에 청의 팀은 감동한 얼굴로 아이작을 보았다.
자식, 가신들에게 도움을 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렇게 귀한 걸 그냥 주다니!
“줄 때 먹기나 해. 형들이라서 주는 거니까.”
그러자 그들은 허겁지겁 금환약을 입에 넣었다.
“고맙다! 아이작!”
“그래! 네가 우릴 이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
“뭐, 먹다 남은 거라 기저귀에 넣어둔 거지만.”
멈칫.
약을 삼키던 그들이 굳었다.
…뭐, 인마? 어디?
“왜? 기저귀가 통풍이 잘대서 의외로 보관하기 좋아.”
그들은 먹던 약을 뱉으려고 했다.
“우으읍!!!(야!!)”
“우으으읍!(그놈의 기저귀! 아, 진짜앍!)”
“걱정 마. 빤 거야. 일단은.”
“아오아씨아읅!!(어쨌든 사용 후잖아!)”
그리고 ‘일단은’이라니, 뭔데!
“뭐긴, 내가 빨래를 그러케 잘하진 않아.”
청의 팀은 욕을 삼키며 화장실로 뛰쳐들어갔다.
그러나 아이작은 청의 펜타곤 보상품을 열어보며 흐흐 웃을 뿐이었다.
‘금환약이라 해봐야 어차피 나한텐 이제 효력 없는 물건이거든.’
아이작이 효험을 보려면 더욱 상위의 영약을 먹어야 했다.
그러니 차라리 쪼렙들을 키우는 데 쓰는 게 낫지.
그리고 상위 영약?
금의 펜타곤의 보상품이 바로 그 영약이다.
물론 교황청에서는 지금 기를 쓰고 보상을 안 내놓고 있는 모양인데, 지들이 뭐 어쩔 건데.
‘좋아, 이거면 완벽해.’
아이작은 웃으며 감옥으로 향했다.
* * *
“뭐? 아이작이 그런 말을 했다고?”
청의 가주와 릴라이는 뜻밖의 이야기에 놀랐다.
청의 기사는 펜타곤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전달했다. 입을 틀어막은 릴라이는 무척이나 감동했다.
해골을 무서워하는 건 상당히 의외긴 하지만, 스켈레톤을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다니.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얼마나 속이 깊은 아이냐…!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해서 미안하구나.”
그러나 가주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그 새끼가 그렇게 착할 리 없는데?
똥 씹은 표정의 가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릴라이는 몹시 기뻐했다.
청의 펜타곤의 난이도를 낮춰버렸다며 아버지에게 잔소리를 듣긴 했지만, 의외로 별말씀이 없다는 건 긍정적 신호가 아닌가?
“아버지, 이거면 아이작에게 후계자의 자격도……!!”
“아니. 안 된다.”
“예?!”
“청의 펜타곤은 통과시켜준다 해도, 후계자는 안 된다. 짐 싸서 집으로 오라 해.”
“아버지!”
아니, 왜 또 꼬장이야!
그러나 가주는 꽤 심각한 표정이었다.
물론 아이작은 현재 있는 자손들 중에서 가장 재능이 넘쳤다.
하지만 넷째의 건만 봐도 인성 문제는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 이상으로 신앙심 문제는 매우 컸다.
특히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그 아이라면 더욱 말이다.
-부디 ‘과거’처럼 청에서 타락자가 나오면 안 될 텐데요. 분명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지워졌죠?
적의 추기경은 그렇게 도발하며 웃었지.
아이작을 끌고 가고 싶어서 아주 단단히 벼르고 있는 것이리라.
‘공양제 때도 악신을 뽑을 게 분명하거늘.’
저쪽도 이미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걸 빌미로 아이작을 처형하고, 이름을 지우고, 청도 싸잡아서 힘을 꺾으려 하겠지.
이미 신나서 하하히히 이단심문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신급은 기대도 안 한다. 중급신만 나와줘도 소원이 없건만……’
하지만 그 인성에 하급신도 안 붙겠지…….
조사를 시킨 고엘도 어째 불길한 소리를 지껄였고 말이다.
-아이작이 어떤 신에게 간택받았는지 들으시면 기절하는 걸로 안 끝나실 겁니다.
-…악신 수준이 아니란 거냐??
-비교도 안 됩니다.
-…우라질.
악신하고도 비교가 안 되면, 얼마나 썩어빠진 새끼가 나온다는 건데??
대재앙인가?
해골왕 애비야?
해골왕 고조할아비??
그런 건가???
아무튼, 아이작을 끌고 가서 교화시키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작 도련님은 현재 교황청 감옥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그 말에 가주의 눈초리가 드물게도 험악하게 올라갔다.
“거긴 왜? 적의 구역이라 들어가지도 못할 텐데?”
“그게, 패가 있어서 특별히 들어갈 수 있는 듯합니다.”
“패? 아이작이 뭘 받기라도 했느냐?”
“예. 뭔 거래를 했는지, 적의 추기경이 추기경의 패를 내준 듯합니다. 보고 싶어 하시는 마족이 있으신 것 같아서…….”
“이런 씹…….”
순간 가주가 험한 욕을 읊조렸다.
“…그 실눈 새끼가 애를 유괴하려고 그깟 싸구려 사탕을 뿌려?”
“아버지?”
“누구는 사탕 못 뿌리는 줄 알아?!”
“아버지?!!”
가주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릴라이는 왜 그러시냐 묻지도 못하고, 아버지 일라이를 쫓아갔다.
* * *
교황청 감옥 근처.
“쪼아. 이거면 문제없겠서.”
부하를 만나러 온 아이작은 청의 보상품을 보면서 흐흐흐 웃었다.
청의 보상품은, 그러니까…….
[끈이군요.]
‘그래, 마기를 제거해주는 물건이지. 상등품이다.’
물건의 품질도 좋지만, 아이작이 이걸 원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원래는 마기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귀한 물건이지만, 이걸 다르게 쓴다면?
‘마력을 감출 수 있는 위장 소품이 된다.’
처형식 때와 부하를 구하는 데 아주 유용하게 쓰일 것이었다.
뭐… 더러운 성직자들의 기술을 쓰긴 했지만, 역시 청의 펜타곤을 치르고 오길 잘했다.
그래.
잘하긴 했는데, 해결할 게 하나 더 있구나.
아이작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바닥에서 그림자가 치솟아 오르며 해골들이 튀어나왔다.
미동도 없던 해골들은 아이작을 보자 태도가 바로 바뀌었다.
“달각달그닥달닥각!(와아! 주인님, 주인님이시다!)”
“달각달각!(주인님, 너무 좋아, 좋아)”
“딸그달가달각!(우리가 또 놓쳐버린 줄 알았어! 또 못 보는 줄 알았어!)”
“풉… 어풉……!”
아이작은 낑낑거리는 스켈레톤 무리에 또 깔렸다.
하… 그래. 일단 이것부터 해결해야지.
그는 섀도우 리치에게 말했다.
“네가 이놈들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와라.”
섀도우 리치는 고개를 숙였지만, 스켈레톤들은 가기 싫은지 아이작을 붙잡았다. 본능적으로 헤어짐을 느낀 모양이었다.
“달각달각!(주인님, 우리가 뭐 잘못했어? 잘못했어?)”
“달각들각달각!(옆에 있으면 안 돼요?)”
“달각달가그닥!(주인님이 시킨 것도 더 잘할게요. 가지 마세요.)”
스켈레톤들은 낑낑 아이작의 다리에 매달렸다.
아이작은 그 눈망울에 크윽 마음에 약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니들 여기에 있으면 퇴마당해, 이놈들아!”
결국 섀도우 리치의 그림자에 스켈레톤들을 몽땅 욱여넣은 아이작이 후, 땀을 닦았다.
“자, 섀도우 리치도 보냈으니 이제 괜찮… 아.”
아이작은 나무에 붙어 있는 한 마리의 스켈레톤을 보며,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러니까… 팔뚝만 한 크기의 완전 작고 어린 스켈레톤이다.
“언제 거기 숨어 있었냐!”
하도 약하니 기운도 못 느꼈다.
그러자 아이작의 외침에 놀란 어린 해골이 코알라처럼 나무를 꽉 움켜쥐었다.
“달각달각달각!(이번에 놓치면 주인님 두 번 다시 못 봐, 못 봐.)”
아이작은 골치 아프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섀도우 리치를 이미 보내버렸으니, 다음 턴에나 보낼 수 있겠지.
그는 청의 펜타곤의 상품을 꺼냈다.
“뭐, 그래도 마침 잘 됐다. 이거 효력 테스트나 해보ㅈ… 어억!”
“아이작 에슈아 님! 면회 시간 다 됐습니다!”
이씨, 이 새끼들은 뭘 이렇게 빨리 데리러 와!
아이작을 향해 멀리서 다가오는 건, 적의 사제들!
아이작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걸리면 소멸이다!!!’
찌밤! 내가 어떻게 살려낸 해골들인데!
저깟 놈들한테 뒤지게 할 것 같냐!
아이작은 황급히 어린 스켈레톤을 자신의 망토 안에 숨겼다. 그리고 청의 상품 중 하나를 까서 해골의 목에 둘둘 감싸주었다.
“에슈아 님?”
아이작은 해골을 허리 뒤에 붙여 놓았다.
‘내 몸 꽉 붙들어 매고, 나오지 마라.’
어린 스켈레톤은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 감옥으로 향하던 아이작은, 분명히 느꼈다.
‘이 마력은?’
마침 적의 사제가 말했다.
“저놈이 해골왕의 부하로 알려진 십사육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