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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02화 (102/272)

제102화. 내 부하를 건드려? (2)

혈주.

그러니까 이 녀석은 아이작의 충신이었다. 혈주라는 건, 왕의 보물을 지키는 14인의 주인들에게 각각 붙는 별칭이었고 말이다.

혈주(피로 된 거미)이자 피의 주인이란 의미로, 진짜 이름은 샤브나크.

해골왕의 최측근 호위 중 하나이자,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던 수행집사.

한마디로 자신이 죽으라면 죽을 정도로 충심이 엄청난 녀석이라는 것이다.

뭐, 얌전한 녀석이라 설마 신성제국까지 홀로 쳐들어가는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본인의 목숨보다 주군을 위하는 놈인 건 알았다만…….

[갸악! 저놈, 완전 이성을 놓았는데요?!]

이놈이 먼저 흥분해서 ‘너 죽고 나 살자’를 시전할 줄은 몰랐네.

쿵! 쿵!

부하는 아이작을 데려온 사제들을 보며 흥분하고 있었다. 흥분하다 못해 사제들을 죽일 기세다.

뭐, 그대로 사제 놈들을 손봐줘도 상관은 없다만, 그 전에 부하가 죽을 것 같았다.

왜냐고?

마력에 반응하는 건지, 부하의 목, 손, 몸통 곳곳에 채워진 구속구가 반응을 보였다.

구속구 자체로도 마족은 절대 깰 수 없는 특별한 물질인데, 거기에 촘촘히 새겨진 교황의 성법까지.

공격성을 드러내면 바로 수갑에서 교황의 힘이 뿜어져 나와 부하를 폭발시켜 죽이는 원리인 것이다.

본인도 그걸 알고 있는 듯하지만, 주인이 잡혀왔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놈아 진정해라. 나, 잡혀 온 거 아니니까.

[맞습니다. 잡혀온 게 아니고 끌려온 모습이죠.]

위스퍼의 말에 부하의 마기가 부악 치솟아올…뭐, 인마?!

교황의 수갑도 점점 빠르게 반응했다. 아니, 반응하다 못해 벌써 부하의 몸이 신성력에 녹고 있었… 뭐? 녹아?!

[와, 저놈 죽겠네요.]

야! 뒤질래? 왜 얌전한 애를 자극해!

[아, 죄송합니다. 끌려온 게 아니라 협박해서 온 거였는데.]

쿠앙! 쾅! 쿠오오오!!!

야!! 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빼먹으면 어떡하냐! 말의 주체는 똑바로 말해야지!

‘쟤 오해하잖아! 내가 협박당했다고 오해했잖아!’

[아아,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오해 마라. 그게 아니라 주인님이 혀 깨물고 죽겠다고 하셨는데, 다행히 고개를 숙이게 하는 걸로 끝났다!]

터엉!!

쿠오, 쿠오오오!

감옥에 생채기가 나고, 부하는 이성을 잃고 탈옥하기 직전이었다.

감히 주인님의 고개를 숙이게 하다니! 감히 주인님의 입에서 그딴 말이 나오게 하다니!

대충 그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 같다.

감옥이 부서질 듯 크게 뒤흔들리고, 9계위 마족도 사정없이 찍어누르는 교황의 힘이 발동했다.

아이작과 사제들은 서로 다른 의미로 새하얗게 질렸다.

“잠깐, 저 마족 놈 처형하기도 전에 죽겠어!”

아이작도 위스퍼를 노려보았다.

이 미친놈아! 너 때문에 구하기도 전에 애가 녹잖아!! 마족한테 신성이 얼마나 치명적인 독인 줄 알아?! 녹는 거 안 보이냐고!

[아… 이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 읍읍!]

아이작은 위스퍼의 힘을 강제로 봉인했다.

너 이 새끼. 하고 싶은 말은 더럽게 많지만 그래도 잘하긴 잘했다. 부하가 난동을 부리자, 아이작에게 쏠려 있던 경계가 다른 곳으로 향한 것이다.

“일단 주교님을 모셔와!”

“탈출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당황한 사제들의 말에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이건 기회였다.

저 수갑을 풀어낼 도구를, 부하에게 넘겨줄 기회.

‘지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건 아니었다.

세 명이었던 사제들이 두 명으로 줄고, 신경 쓸 대상이 분산된 것뿐. 감시의 눈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놈들이 바보도 아니고, 아무리 돌발 상황이더라도 감옥에 탈옥 도구를 욱여넣는 걸 못 볼 리 없다.

‘어쩌지. 역시 원래 작전대로 시선을 끌 마법을 써?’

설마 이렇게까지 자신을 의심을 하고 있을 줄은 몰라서, 마법을 썼다간 의심을 더 크게 살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건 위급 상황이었다.

위험해도 잠깐은 괜찮…….

그런데 그때였다.

꾹꾹.

“!”

아이작의 등에 숨어 있던 어린 해골이가 아이작의 옷을 잡아 당겼다.

“딸각달각달각.(주인님, 내가 전해줄게. 내가 전해줄게.)”

오오! 예쁜 놈!

하물며 허리로 빼꼼 내려온 해골의 모습이 달라져있었다.

청의 펜타곤의 보상품인 끈을 둘둘 둘러준 덕일까. 팔뚝만 하던 해골이 무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해있던 것이다.

마기를 없애주는 끈인 만큼, 마수들에겐 힘을 봉인하는 효과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힘이 봉인당한 탓에 해골의 몸 크기가 줄어들었단 의미였다.

아무튼 저만 한 미니 사이즈에, 마력이라고는 없다시피한 최하급 마수다?

‘쇠창살 사이로 들어갈 수 있다.’

감시받는 자신보다, 놈들이 존재조차 인지 못 하는 해골이가 움직이는 게 성공 확률이 높겠지.

아이작은 잘됐다는 듯 도구를 꼬마 해골에게 쥐여주었다. 작은 천에 감싼 돌이었다. 유일하게 부하의 수갑을 깰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저 쪼끄만한 거 구하느라 금이 준 황금은 다 썼지.’

평생을 펑펑 먹고 살 수 있을 만한 돈이 한번에 증발해서 가슴은 쓰렸지만, 뭐. 원래 돈은 써야 할 땐 써야 하는 법이다.

오히려 지들 재산이 해골왕의 부하를 구하는 데 쓰인 걸 알면 교황가에서 속이 뒤집힐걸.

곧 아이작에게 받은 물건을 머리에 인 해골이 도도도도 감옥으로 뛰어갔다. 발각되면 죽을 걸 알 텐데도 참으로 용감했다.

뭐, 무섭긴 한지 티는 안 내도 물건을 인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지만.

어쨌든, 우리 해골이가 순순히 발각되게 할 순 없지.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은 적의 사제들을 보며 씨익 웃었다.

“적가도 참 대단하다.”

“……?”

아이작의 말에 적의 사제들은 미쳤냐는 듯이 그를 보았다.

…지금 적한테 대단하다고 했어? 아이작 에슈아가? 청이?

뭔 속셈이지?

놀리는 건가? 도발인 건가?

하지만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왜 그래? 진짜,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거야.”

[…드디어 성직자들에게 굴복하셨습니까?]

응, 아니야. 닥쳐.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감시꾼들의 시선을 끌어야지. 걸리면 불쌍한 최하급 마수가 죽는다고.

그러니 잘 봐라, 이놈들을 어떻게 구워삶는지.

아이작은 당황하는 그들한테 보는 사람이 반할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렇잖아. 십사육마? 난 보자마자 지릴 뻔했어.”

적의 사제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이 새끼. 그런 것치곤 마기 앞에서 실실 웃지 않았나?

“실성한 웃음이 나오더라고.”

…이놈, 이미 실성한 새끼 아니었어??

“그런 의미에서 적가는 대단해. 너희 같은 놈들을 교도관으로 데리고 있는 게 말이야. 저걸 보고도 멀쩡했잖아?”

“그게 무슨 의미…….”

“너희들 정도면 우리 청에선 기사단장이야.”

“뭐. 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아이작은 아이마냥 한숨을 푸욱 쉬었다.

“형아들, 실은 이거 비밀인데, 내가 여기 온 건 가주님의 명령 때문이야.”

“!”

아이작의 말에 사제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청의 가주의 명령이요?”

그 빠릿한 반응에 아이작은 스윽 웃었다.

그래. 역시 도발로 사람의 이목을 끌었으면 집중을 시켜야지.

사람을 집중 시키는 데 제일 좋은 건, 바로 관심있는 대상의 비밀을 풀 때다. 특히 싫어하는 상대의 비밀을 들을 때만큼 집중력이 치솟는 때도 없지.

“집안의 과제였거든. 사실 우리 청,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시험에 들어갔어.”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후계 선발을 할 생각도 없다.

“십사육마에게 상처를 내고 오는 게 나한테 떨어진 과제였고.”

거짓말을 한 게 들통나면 징계감에 청의 교리를 어겼다며 진짜 후계 자리가 멀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알게 뭐냐.

적의 사제들은 충격인 듯 서로를 보았다.

청이 벌써 후계자 선발에 들어갔다고?

잠깐, 이건 보통 이야기가 아닌데?

이거는 모든 신앙한테 민감한 내용이며, 특히 추기경들한테는 국가의 원수가 바뀌는 것만큼이나 중대 사항인데?!

나라 전체가 떠들썩해질 것이다.

집중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보다 십사육마를 만나고 오는 게 과제라고?’

‘일리…는 있다. 해골왕을 잡는 가문이니까.’

‘그래도, 10살짜리한테 9계위 마족을 만지고 오라니, 자살행위가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형들은 청에 올 생각 없어?”

적의 사제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처, 청이라고?

아까 말한 기사단장 어쩌고가 빈말이 아니었어?!

‘설마 스카웃 제의?’

“원한다면 진짜 기사단장으로 청으로 데려가줄 수도 있어. 지금 주급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을걸?”

그쯤 되자, 위스퍼는 걱정이 된 모양이다.

[…도대체 뒷감당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감옥 쪽을 확인한 아이작의 눈이 접혔다.

‘오! 그렇지!’

자신이 이 병신 놈들을 구워삶고 있는 동안, 애기 해골이가 임무를 완수했다!

부하의 바짓단에 물건을 슥 숨기고 온 해골이 허겁지겁 쇠창살 사이로 나오고 있었다.

적의 사제들을 구워 삶은 아이작은 바로 그거라며 속으로 박수쳤다.

그래! 옳지! 잘한다!

그대로 나와! 나와서 내 품으로…….

캉!!!!

순간, 쇠에 해골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애기 스켈레톤이 급하게 나오다가 그만 쇠창살에 머리를 쿵 박은 것이다.

큰 소리에 적의 사제들은 황급히 감옥을 보았다.

“뭐야, 무슨 소리야!”

“감옥 안을 살펴봐!”

아이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내 품으로 오기 전에 X 됐네!!

심지어 이 자식, 부딪친 머리가 반대로 돌아가서 나오질 못하네!

물론 나름대로 낑낑 머리를 돌리려고 하면서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이놈아, 거기 반대야! 그쪽으로 가면 안 돼! 감옥이라고!

그리고 사제들이 가까워지자 해골은 더욱 최선을 다해 길을 찾았다. 하지만 또 부딪친다.

“감옥에서 이런 소리가 날 리가 없는데.”

“이 부근에서…….”

안 돼! 진짜 소멸이다!

아이작이 드물게 당황한 그때였다.

쾅!!!

“으악!!”

감옥 안에 있던 부하가 강력한 마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본인이 머리를 쇠창살에 박았다.

깡! 깡! 깡!

아무래도 상황을 눈치챈 부하가 일부러 시선을 끌고, 죄까지 뒤집어 써줄 모양인 듯했다.

당황한 사제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놈이 감히!”

사제들은 바로 고문의 술법을 사용했다.

콰직!

번쩍이는 붉은 번개와 함께 적의 자랑인 고문 성법이 부하에게 작렬했다.

부하는 괴로운 듯이 몸을 비틀며 쓰러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머리가 제대로 돌아온 해골이 우왕 울면서 쪼르르 아이작에게 돌아왔다.

서둘러 품에 숨겨준 아이작은 벽을 짚었다.

하… 십 년 감수했네.

해골은 폐 끼쳐서 죄송하다는 듯 낑낑거렸다.

“달각달각달각.(죄송해요, 죄송해요…….)”

아니다. 넌 잘했어.

부하 놈은 맷집이 좋아서 저 정도는 즐긴단다.

‘아무튼 성공했다.’

도구도 전해줬으니, 부하는 스스로 구속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구속구만 풀리면 그때부터는 뭐, 날라다니는 거지.

아이작은 부하를 보면서 인사했다.

‘금방 꺼내주마. 처형식 때 보자.’

작전이 끝난 그는 마기에 중독된 척, 바로 병약한 연기를 하며 비틀거렸다.

“공자님!”

“으… 역시 나한테 십사육마는 무리였나 봐.”

“아……!”

비밀을 공유해준 덕인지, 좋게 말해준 덕인지, 제딴엔 호의가 생긴 걸까. 적의 사제들이 급히 아이작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게 왜 십사육마를 보러 온다고 해서는!”

“…해골왕을 잡겠다는 자가 십사육마도 못 잡으면 되겠어?”

그 힘들어하는 모습에 적의 사제들은 놀란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냥 허세 부리는 꼬맹이인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그런 사명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건가?

“저희가 집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

거, 등신들이 어지간히도 스카웃되고 싶은 모양이다. 뒷일은 책임 못 지지만 뭐, 그래. 이렇게 감옥에서 나가기만 하면 되었다.

나가면 되는 건데…….

“잠깐. 나가기 전에 한 가지 검사를 하고 가셔야겠는데.”

“!!”

교황청 감옥의 입구 건물.

유일하게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적의 이단심문관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당당하게 아이작을 가로 막았다.

“공자. 저를 기억하시겠지만…….”

“아뉘. 모르겠는데.”

“!”

아이작의 무시에 사제들 사이에서 낯익은 웃음 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푸핫! 봐, 넌 기억 못 할 거라 했잖아.”

웃으며 나온 건 다름 아닌 적가의 3남, 나이저 세페트였다.

“넌 고작해야 식당에서 한 번 마주쳤을 뿐인 견습이니까. 하지만 이 몸은…….”

“넌 또 누구시더라?”

빠직.

아이작의 관심도 없는 표정에 나이저는 핏대를 세웠다. 그러나 꾹 참은 그는, 곧 됐다는 듯 웃었다.

“나가기 전에, 네놈이 가진 패를 검사해보겠다.”

“패에?”

“그래. 적의 가주께서 괜히 추기경의 패를 내어 주신 것 같아? 그 패는 신앙심을 체크하는 패이기도 하다고. 이 바보야.”

“!”

나이저는 이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웃었다.

“네가 받은 그 패는 신앙심에 따라 색이 변하지. 신앙심이 낮을수록 검은색이 나오는데, 자. 패에 있는 장미가 무슨 색인지 확인해볼까?”

나이저가 손을 내밀었다.

아이작은 얼굴 근육을 씰룩이며 방긋 웃었다.

하하. 그 실눈 새끼.

나가면 눈부터 찔러버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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