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답도 없이 새까맣네 (2)
‘공양제’.
그러니까 신들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대규모 의식이다.
보통은 그 해에 난 제일 좋은 곡식과 제일 질 좋은 고기, 가죽 등을 바쳤다.
그러면 빌어먹을 신의 졸개… 아니, 신의 사자들이 직접 나타나 공물을 직접 회수해간다. 물론 신의 사자라 해도 신들이 아닌 신수였지만.
그런데 이번엔 신수가 아니라, 진짜 신의 졸개가 온다네?
왜냐고?
평소의 진상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물건이 나왔으니까!
바로 십사육마.
그래, 십사육마가 어떤 공물인가!
무려 신들이 아낀다는 인계를 지배한 해골왕의 부하! 위대한 마왕의 손가락이 아닌가!
사상 최강의 마왕인 만큼, 신들은 해골왕과 연관되기만 하면 점수를 몹시 후하게 주었다. 뭐, 한마디로 권력자들이 행하는 ‘해골왕 지우기’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공물이 몹시 맘에 드는 듯, 이번엔 신의 사자 중에서도 급이 있는 놈들이 오기로 했다.
분명 해골왕 부하의 목을 직접 가져가려는 거겠지. 해골왕이 아끼던 부하를 처리하면, 벌레에 갇혀있을 해골왕이 분해하며 괴로워할 것을 알 테니까.
‘뭐, 정작 그 내가 벌레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게 문제지만.’
그래, 아이작은 이 공양제에서 상품도 얻고 놈들에게 엿을 먹일 생각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몸종은 나야!”
“아니, 나다.”
…시발. 뭐냐고, 이거.
키나와 나이저가 싸우는 광경을 보며,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도대체 이 때끼들이 자신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아, 마렵다. 딸랑이가 몹시 마려워.
아이작의 손이 스멀스멀 허리춤에 있는 딸랑이로 향했다.
어떡하지? 길 막아서 짜증 나게 구는데, 일단 한 대씩 갈기고 시작할까? 어? 갈기고 시작해?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슈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절-대 신앙심… 아니, 인성이 드러나게 하면 안 된다.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린 슈리의 몸이 떨렸다.
에슈아 직계들이 움직일 정도에, 무려 가주의 명이 떨어질 정도면 어느 정도의 신앙심일지 감도 안 잡힌다.
‘분명 가문이 파멸할 수준인 거야……!’
슈리가 다급하게 팀원들을 부를 만했다.
“넣게 해! 저 딸랑이 넣게 하라고!”
“……?”
새삼 왜 그러냐는 눈빛에 슈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팀원들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이런 곳에서 쟤 인성을 드러내게 할 셈이야?”
“다들 개차반인 거 아는데요.”
“…….”
“뭘 새삼.”
시발…….
슈리는 고개를 숙였다.
성질 같아서는 시발, 개차반 수준이 아니라고. 악신이 될 수준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리고 단순한 인성 문제가 아니라, 신앙심이 드러날 수준의 인성이란 게 문제지만.
-알았느냐. 주변은 당연하고, 아이작도 본인의 신앙심 수준에 대해 절대 몰라야 한다.
아오! 그래.
내가 참자, 참아야지!
그리고 키나와 나이저가 여러모로 좀 불편한 슈리였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그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다.
슈리가 아이작의 딸랑이를 잡아 누르며 엄하게 속삭였다.
“아이작. 이거 내려놔라. 더 이상의 행패는 네 형으로서 용납 못 한다.”
“그럼 네가 대신 마즐래?”
“………용납…할 수도 있죠.”
‘젠장. 이 새끼한테 말이 통할 리 없지.’
슈리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래서 너 쟤들 왜 저러는지 몰라? 갑자기 웬 얼어 뒤질 몸종?”
“너도 들었잖아. 처형관으로 선발된 최종 5인에게는 몸종이 붙는다고.”
처형식은 흑의 처형관의 집도하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교황청과 황실에서 뽑힌 최상위 견습 5명이 처형을 진행했다.
물론 마지막에 목을 내려치는 건 흑의 처형관이지만, 다른 모든 과정은 선발자들이 한다. 그래서 의전 몸종이 붙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슈리는 의외였던 것이다.
‘나야 할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몸종이 되려는 거라지만.’
…저 둘은 도대체 왜 아이작한테?
그 시선을 느낀 듯, 나이저가 헛웃음을 흘렸다.
“봐! 다들 이상하게 보잖아. 왜 차기 교황님이라고 불리시는 고-귀한 분이 여기서 이러고 있냐고, 등신아!”
어지간히도 키나가 싫은 모양이다.
하지만 불쾌한 건 키나도 마찬가지인지, 키나가 가벼운 조소를 지었다.
“너야말로 적가의 후계자가 왜? 적가는 후계한테 이런 일을 시키나 보지?”
키나는 금의 소공작이지만 교황으로 이미 내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문의 일은 본인이 직접 동생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그에 비해서 적은 어떤가.
“적은 성자 자리를 포기하고 청의 가신이 되기로 결정했나 보군?”
“뭐래! 나는 증거…! 아니, 에슈아랑 친해지고 싶어서 그렇지! 그치이? 아이작?”
나이저가 어색하게 어깨동무를 했지만, 곧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딜 손대냐는 듯, 아이작이 나이저의 손가락을 꺾어버린 것이다.
역겨우니까 친한 척 말라는 아이작의 눈 욕에, 나이저가 친근하게 속삭였다.
“야. 오해 마라, 지난번 일로 아버지가 친하게 지내랬어. 그… 피눈물을 쏟게 한 사람은 흔하지 않거든.”
지랄하네.
아이작은 코웃음을 쳤다.
그 추기경이 잘도 그딴 말을 했겠다.
“보나 마나 손실을 끼친 것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을 생각일 텐데.”
슈리도 동의했다.
“적가가 이리 나오니 수상한데.”
“하. 그렇게 말하면 할 수 없지.”
“그래. 썩 내 눈앞에서 꺼ㅈ…….”
그때, 나이저가 아이작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그건 다름 아닌 반짝이는 루비!
영롱한 자본의 빛에 아이작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위스퍼는 방방 날뛰었다.
[키야! 끼야아아! 역시 부잣집 공작가! 일반 보석들하곤 차원이 다르네요! 청에서도 이런 순도는 별로 못 봤는데!]
이 정도로 순도가 높은 건 굉장히 비쌀 뿐만 아니라 마법에도 도움이 된다. 순도가 높은 보석에는 특수한 정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루비 아닙니까? 화속성 마법에 직빵인데!]
하물며 마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특정 조건으로 해금해야 하는 아이작한테는 꼭 필요한 재료들.
[안 그래도 섀도우 리치 말고는 마족들을 숨길 방법이 없지 않으셨습니까!]
아직 돌려보내지 못한 어린 스켈레톤도 아이작의 옷장에 숨어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순도 높은 보석은 6계위 이상 소환 마법의 해금 조건… 아니, 그보다 저거 얼마야, 시발!
주르륵.
그 모습에 나이저가 씨익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보석을 더 꺼냈다. 이번엔 다이아몬드, 그것도 다발!
아이작의 입에서 침이 고이다 못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듯했다.
주르르르륵.
그 맛 간 눈빛에 기겁한 슈리가 보석 주머니를 빼앗아갔다. 그리고 아이작의 어깨를 다급히 부여잡았다.
“야! 정신 차려! 사제가 저깟 돈 따위에 넘어가?!”
“적가 놈아, 너 내 몸종 할래?”
아악!!!
슈리는 기겁해서 아이작의 입을 틀어막고 끌고 갔다.
“이 미친놈아, 사제는 물욕에 혹하면 안 된다는 규칙 몰라?”
“뭐래, 규칙은 어기라고 있는 거얅!”
아오! 시발!
안 그래도 거지 같은 신앙심, 더 타락하게 생겼네! 할아버지가 조심하라고 한 게 이런 거였구나!
슈리는 골치가 아파진 듯 나이저를 쏘아보았다.
‘저 개자식… 그사이 아이작의 취향을 다 조사해가지고 왔어!’
아이작은 특히 보석 중에서도 반짝반짝거리는 걸 좋아했다. 루비는 아이작이 좋아하는 보석 중 하나.
아니나 다를까, 나이저는 작정한 듯 아이작을 살살 꼬셨다.
“아이작. 우리 집에 루비 이거보다 더 많다? 구경시켜 줄까?”
“…헤헤헤헤. 니네 집 놀러 갈래.”
안 돼에엙!
슈리는 홀린 듯이 나이저한테 가려는 아이작을 꽉 붙잡았다.
그쯤 되자, 슈리는 나이저를 경계하며 노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몸종이 되겠다는 건지 몰랐는데, 저 새끼 하는 꼴을 봐라.
‘설마 증거를 직접 찾으러 온 건가?’
아까부터 사제로서는 금지된 짓만 골라서 유혹하고 있고.
‘그래…! 확실해!’
안 그래도 감옥에서 아이작의 신앙 검사를 주도한 건 나이저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놈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아이작에게 호감을 가질 리 없다.
‘분명 증거를 잡으러 온 게 틀림없어!’
“아이작, 잘 생각해봐. 너만 오면 적가의 광산도 구경시켜줄 수 있어.”
“꽝산……?”
“그래, 거기 가면 달 덩어리만 한 루비가 있다?”
“오늘 가면 대?”
아이즈아아악!
하지만 그 모습이 꼴사나웠는지, 키나가 비웃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성자 후보란 게!”
그 말에 슈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그렇지!
너도 교황을 노리는 자로서 꼴사납지? 탐욕을 멀리해야 자들이 보석으로 꼬시는 건 치사하지! 그렇ㅈ…….
“그깟 루비 가지고 재력 자랑을 하는 거냐? 우리는 저택이 전부 황금이야. 그럼에도 황금이 남아돌아서 개집도, 종이도 모두 금으로 쓰지. 에슈아, 네가 좋다면 기둥 하나 떼주마.”
시발! 이! 도움 안 되는! 새끼들아!!!
슈리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할아버지의 명령을 상기했다.
진정하자. 지금부터 아이작을 성스러운 사제로 만들어야 하는 거야. 안 그럼 에슈아가 위험해지는 거야.
“기둥은 무슨, 아이작이 성녀님을 닮아 얼마나 지고지순한 줄 알아? 그딴…….”
“기둥 뚜 개는 안 돼?”
아오! 그냥 그 기둥으로 니 머리를 깨면 안 되겠냐?!
“열 개라도 떼줄게.”
시발, 그냥 니네 집을 부수지 그러냐!
슈리는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이런 부자 새끼들이 아이작 몸종 타령이냐고요…….’
물론 나이저는 척 봐도 꼬셔서 함정으로 끌고 가려는 느낌이었다. 목적이 대충 예상이 간다. 다만 키나는… 이유를 모르겠네.
‘금의 펜타곤 때 깨지고 아이작한테 관심이 떠난 줄 알았는데.’
금의 펜타곤은 사실상 아이작과 키나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금이 팀이 가져온 물건은 키나가 가져온 물건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들 교황의 손자가 진 게 아니냐고 술렁거렸었지.
실제로 청의 팀과 다른 견습들도 속닥거렸다.
“홀로 야만족에 쳐들어가서 유물을 가져왔잖아. 이미 국가급의 공이었는데. 결국 힘들게 가져왔을 텐데 청이 인정 받고. 금의 수장으로서 나 같아도 분하겠어.”
“보복이라도 하려는 건가?”
하지만 정작 그 말을 듣는 키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 국가급의 공?
그딴 건 공도 뭣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야만족의 소탕 따위, 키나한테는 심심풀이 수준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은 아이작이 한 일을 우연으로 치부했지만, 키나에겐 달랐다.
‘마도제국 황자까지 전부 계산된 거다.’
그리고 헬라의 황실을 꾀어낸 것으로도 모자라 무려 그 마도제국 황자를 휘어잡다니. 도대체 무슨 강한 힘을 보여준 거지?
그래서 아이작을 졸졸 따라다니며 슈리에게 알려준 기술을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너는 낌쓔리랑 다르게 같이 있을 시간이 없으니, 못 가르쳐줘.
-아…그래? 시간?
-그래! 수련을 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얘는 나한테 최소 10시간을 착 붙어 있다고.
-아이작…. 오해할 소리 마라.
슈리는 수련이 아니라 전부 날 부려 먹는 시간이 아니냐.
그리고 니 새끼가 사고만 안 쳐도 안 붙어있는다고 했지만, 키나에겐 다르게 들린 모양이었다.
-아…그래. 10시간…? 슈리한테는 10시간씩이나 가르쳐준단 거지?
그럼 자신도 그만큼 따라다닐 수 있으면 가능하단 거겠지?
“자! 몸종이면 24시간 붙어있을 수 있지! 자, 어서 날 택해! 저딴 적가의 망나니보단 내가 낫다!”
“…니 부모도 니가 이러는 거 알고 계시냐?”
금의 추기경과 교황이 어떤 얼굴을 할지 상상도 안 간다.
그러나 키나는 들리지도 않는지 슈리를 노려보았다. 하필이면 교황의 힘을 가진 아이작이 슈리를 가르쳐주다니.
-키나는 아버님과 교황 성하와 별로 안 닮았네요.
-오히려 교황 성하를 닮은 건 슈리 아닌가요. 슈리 쪽이 훨씬 후계자로서 정통성 있어 보이는데.
-맞아요, 슈리가 에슈아에서 태어난 것만 아니었어도, 저쪽이 후계자라고 착각하겠어요.
-쉿.
키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아이작을 보았다.
“어쨌든 몸종 자리는 내 거야.”
“뭔 소리야! 얘가 우리 집에 온단 소리 못 들었어?”
슈리는 골치가 아팠다.
‘어느 쪽이든 안 좋아. 하나는 이단심문관의 집안이고, 하나는… 교황가!’
어느 쪽이든 아이작을 처형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닌가!
결국 아이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결국 셋 중 누가 할 건데?”
“내가!”
“내가!”
“내가!”
“그럼 셋 다 해.”
그러자 눈을 부릅뜬 세 명은 동시에 외쳤다.
“키나 베리트는 빼!”
“슈리는 빼!”
“시발, 둘 다 빼!!”
빠각!!!
딸랑이가 세 명을 쓰러뜨렸다.
“혼자 간다. 시발.”
아이작이 피 묻은 딸랑이를 털며 돌아섰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양제 1부를 시작합니다! 신의 사자께서 강림하실 테니, 모두 안으로 들어오세요!”
견습들은 창백하게 질린 채 아이작과 쓰러진 세 명을 보았다.
…정말 이거 진행해도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