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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08화 (108/272)

제108화. 답도 없이 새까맣네 (4)

아이작의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고요히,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사납게.

의전을 진행하는 사제들은 짐짓 놀란 듯이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저 조그마한 몸의 어디에서 저런 투지가……?

특히 처형을 맡은 흑의 처형관은 내심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평소 청은 인내로 검신을 만들어내고, 증오로 칼날을 벼르는 이들. 그만큼 투지는 중요하지만, 저 모습을 봐라.

‘하루 이틀로 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하지만 저 아이는 대체 뭐냔 말이다.

흑의 추기경께서는 성자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후보들 전원이 쓰레기라고,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하셨지만.

다른 성자 후보인 키나, 나이저와는 차이가 명백하지 않은가. 덕분에 나이저는 몹시 혼란스럽게 아이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뭐지?

타락한 놈이라면 마족을 보고 오히려 좋아해야 하는데?

실제로 금의 펜타곤 때는 마법사의 땅에 가게 된단 말에 오히려 좋아했다는 증언이 있지 않았나.

하물며 9계위나 되는 최상급 마족 정도면, 숭배의 대상.

‘연기인가?’

아닌데? 연기치곤 정말 증오하는 듯한 눈빛인데?

키나도 침을 삼키며 아이작을 보았다. 그 역시 청의 교리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다.

‘증오.’

동시에 그는 헉, 뭔가 깨달은 듯했다.

설마 아이작이 교황의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건, 해골왕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던 건가?

아니나 다를까, 그 증거로 마족을 보는 아이작의 얼굴이 더욱 험악해졌다.

‘아 증오스럽다. 성직자들이 증오스러워!’

성직자들의 고문 도구를 보면 옛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아이작이었다. 물론 옛날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표정 관리가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후, 참자. 그래. 오히려 좋다. 좋은 거다.’

이런 겁먹은 분위기면 부하를 탈출시키는 것도 어렵진 않을 것이다.

‘부하에게 걸려 있는 구속구는 총 다섯 개.’

부하의 힘을 극한까지 봉인하고 있는 특별한 수갑. 그리고 신체의 자유를 빼앗고 있는 교황청의 구속구가 네 개였다.

수갑 쪽은 미리 전달해준 물건으로 부하가 이미 무력화해놨을 것이다. 이미 껍데기 된 지 오래겠지.

즉, 아이작이 이제부터 풀면 되는 건 나머지 구속구들. 목에 두 개, 다리에 두 개뿐이었다.

그리고 그 구속구를 푸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봐야 전대 추기경들의 봉인 성법이지.’

감옥에서 미리 확인했지만, 대충 어떤 성법을 썼을지 감이 왔다. 애초에 언데드형에 최상급 마족을 제어할 수 있는 성법은 몇 개 안 되거든.

실제로 청의 가주 놈이 깜지를 쓰라며 던진 9계위 성법서 덕분에 자세히 확인하기도 했고.

그리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지만, 자신도 당해봐서 안다. 통하진 않았는데, 정신적으로 꽤 아파서… 아, 생각할수록 빡치니까 생각하지 말자.

아무튼, 구속구는 따로 손대지 않아도 의전이 시작되면 자동으로 풀리게 되어 있었다.

왜냐고?

‘해체 마법을 의전 사제들한테 걸어놨거든.’

그러니까 처형을 맡은 견습들의 몸에 해체 마법이 담긴 마도구를 설치했다는 의미다.

견습들이면 인사하는 척 마법 도구를 설치해도 인지하지 못할 것이었다. 설령 부착한 물건이 발견되어도 글쎄. 누군가가 십사육마를 구하기 위해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하겠지.

그럼 도중에 사제들에게 들킬 위험은 없냐고?

‘캬, 역시 그놈을 살려두길 잘했어.’

마족 애쉬 말이다.

녀석은 서품식 때 가짜 해골왕의 환영 도구를 반입했던 마족이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다?

어지간해서는 마법 도구를 반입해도 들키지 않는다는 의미다.

‘놈의 은신 마법은 쓸 만하지.’

뭐, 정말 꼼꼼히 체크하면 걸리겠지만, 글쎄?

아이작이 괜히 나이저와 키나를 시종으로 부리는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나한테 이목이 쏠릴수록 부착한 물건 쪽에는 신경을 안 쓰게 되지.’

그리고 무려 공작가의 후계자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는데, 사제 놈들이 그딴 걸 체크할 정신머리가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의전사제의 지시에 따라 선택받은 견습들이 순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명이 점점 십사육마에게 가까워지자, 목마를 탄 아이작도 나이저의 머리를 이랴이랴, 때렸다.

“야. 모 하냐? 너도 빨리 움직여.”

나이저는 핏대를 세웠다.

이 빌어먹을 꼬맹이가?

“…이쯤 되면 이제 내려와도 되지 않냐?”

“어허? 말 놈이 어디서 말대꾸를 하지?”

“…이씨ㅂ.”

“싫으면 몸종 하지 말고?”

인내를 발휘하는 나이저의 눈썹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시바. 참자! 증거를 잡을 때까지만 참자……!

마침내 십사육마를 중심에 두고 오각형의 대형이 만들어졌다. 나이저는 이제 내려도 되냐고 했지만-

“아악!”

그대로 머리채를 잡혔다.

‘이 개놈이!’

억울해진 나이저는 흑의 처형관에게 ‘이거 이래도 되냐. 어서 아이작을 혼내라’며, 몸짓 발짓으로 항의했지만, 흑의 처형관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몸짓이다.

그 모습에 나이저는 기가 찼다.

누가 추기경도 또라이 아니랄까 봐, 그 부하까지 또라이네?

잠시 후. 견습들이 손을 모으자, 바닥에서 다섯 개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쿵, 쿵, 쿵!

그러자 처형관은 십사육마의 구속구를 기둥에 연결했다.

이 다섯 개의 기둥이야말로 십사육마를 처형하게 될 무기였다. 기둥에서 성력이 나오면, 구속구에 연결된 쇠사슬을 통해 마족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다. 전기가 흘러나와 지져버린다고 보면 되었다.

그리고 아이작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견습들의 옷에 붙여둔 마도구가 하나씩 발동하는 것이.

‘좋아, 준비는 끝났다.’

이제 부하 놈만 준비가 되면 끝난다.

부하가 수갑을 풀면 마도구를 발동해서 단숨에 탈출이다!

그래! 그러니까 자! 부하야!

어서 수갑을 풀어라!

수갑은 무력화시켰을 테니, 이제 네 힘만으로도 뜯어낼 수 있을 테지!

자, 어서……!

그러나 정작 부하 놈은 탈출할 생각은 안 하고 흑흑, 감격하고 있었다.

[주인님, 힘을 키우는 데 성공하셨군요.]

아이작의 머릿속으로만 울려 퍼지는 부하의 목소리. 부하는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주르륵 눈물이라도 흘리는 듯했다.

부하는 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작의 모습에 감명받은 것이 분명했다.

[신앙의 후계자들을 꿇리시고, 그렇게 위엄 넘치시는 모습이라니… 저는 이제 미련이 없습니다.]

아이작은 당황한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잠깐만. 자식아.

그거 아냐! 수갑 풀어!!

[주인님. 저 간사한 놈들을 부하로 삼으셨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얀마, 유언할 때 아니라고!!!

너 빨리 탈출해야 한다고! 안 그럼 죽는다고!

기회는 한 번이라고!

[저를 구해주실 생각을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못 갚을 대은을 입었습니다. 이제 저는 괜찮으니, 부디 만수무강하시옵소서. 이대로 처형당해 죽겠나이다.]

처형당하기 전에 내 손으로 죽여줄까! 어?

동시에 아이작은 영문을 모를 표정을 지었다.

‘쟤가 왜 저러지??’

[그러게요. 이유도 없이 저러진 않을 텐데요.]

위스퍼도 의아해했다.

구속구도 풀 수 있겠다, 저것만 풀리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다. 탈출만 하면 신성제국의 결계 따위…….

뭐, 교황과 추기경이 있으면 탈출에 난항을 겪게 될 수도 있지만, 이미 그들의 스케줄을 확인하고 행동한 아이작이었다.

‘그놈들이 오기 전까지 탈출해야 하는데.’

하지만 부하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이 없다.

‘왜지? 도구가 잘못댔나?’

아님 수갑의 봉인을 풀지 못하는 건가? 아이작은 여러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차피 구속구가 풀리면 처형대는 아마 아수라장이 될 것이었다. 그 틈에 자신이 부하를 빼돌리면 된다.

아이작의 시선이 구속구를 향했다.

좋다, 마도구가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구속구 해체 마법이 발동을………….

뭐야. 왜 발동 안 해?!

아이작이 재빨리 부하의 구속구를 면밀히 살폈다.

[주인님?]

동시에 아이작의 눈이 험악해졌다.

‘젠장! 그사이 구속구가 하나 더 늘어있잖아?’

[예?!]

틀림없었다.

부하의 어깨에 쇠못 같은 게 하나 박혀 있었다.

‘감옥에서 나올 때 추가된 모양이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구속을 강화한 것이리라.

그쯤 되자, 아이작은 뭔가 깨달은 듯 부하를 보았다. 설마 그래서 저 녀석이 탈출을 포기한 건가?

그 생각이 맞는 듯, 부하가 말했다.

[주인님.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

[애초에 위험합니다. 기껏 새로운 삶을 얻으셨는데, 이 이상 연루되면 주인님이 위험해지십니다. 교황과 추기경들은 만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시고 놈들의 신뢰를 얻으십시오.]

응 닥쳐. 고작 애들 장난 수준인 구속구 하나 때문에 널 잃으라고?

어쩌면 부하는 처음부터 탈출할 생각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힘이 봉인되어 있든 아니든, 기꺼이 이곳에서 죽어 아이작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는 것이 본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런 만큼 주인이 자신을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큰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이작은 녀석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샤브나크는 숱한 부하들 중에서도 가장 충성스러웠던 부하 중 하나였다. 하물며 150년간이나 자신을 기다려준 녀석이 아닌가.

‘뭐, 상급 구속구는 아니니, 금방 깬다.’

문제가 있다면……

[가까이 가야 한다는 거군요.]

그래, 그게 문제다.

손에만 닿으면 바로 풀 수 있는데, 견습들에게 허락된 범위는 2m 밖이다.

최소한 1m만 되어도 괜찮은데.

‘이 거리에서는 들킨다.’

상급 사제들은 물론, 키나와 나이저까지 있었다.

어쩌지? 조금 위험해도 다른 방법으로 시선을 끌어야 하나?

곧 흑의 보조 처형관이 가까이 다가가 투구에 연결된 쇠사슬을 잡아 들었다. 고개를 숙인 부하의 목을 치켜든 것이다.

그런데 그때였다.

뭔가 전달을 받은 듯, 의전사제가 아이작을 불렀다.

“아이작 에슈아는 보조 처형관과 역할을 바꾸도록.”

“!”

“펜타곤 수석에게 기회를 주라는 베리트 추기경의 명이시다.”

그 말에 처형대 아래를 지키는 금과 적의 팀은 잘됐다는 듯 실소를 흘렸고, 청의 팀과 슈리는 이를 갈았다.

‘견습에게 십사육마 바로 옆엘 가라고 하다니!’

‘뭔 일이 생길 게 분명하잖아!’

‘아이작을 다치게 할 셈이구나?!’

특히 슈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이작은 해골왕의 육신을 먹었어. 해골왕의 부하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왜 그딴 짓을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것도 없었다.

‘금의 펜타곤 때 죽이지 못한 걸 여기서 죽일 셈이야!’

그래! 금이 청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 없지!

‘죽지 않아도 최소 중상이야!’

물론 실제로는 신을 뽑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부상으로 실려 나가면 신을 뽑는 행사에는 참여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를 갈고 있는 이들과 달리, 아이작은 푸헤헿헿 웃었다.

‘금의 추기경, 이 예쁜 놈의 자식 같으니!’

알아서 곁에 보내주다니!

시벌, 좋아서 입꼬리가 내려가질 않네.

아이작은 흐흐흐, 광대가 승천하는 걸 겨우 참으며 부하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 괴상망측한 표정에 견습들은 걱정하듯 보았다.

‘…무서워서 미쳤나 봐.’

‘세상에……’

아이작은 보조 처형관에게 쇠사슬을 인계받았다. 대놓고 부하를 만질 수 있게 되었으니, 이깟 구속구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이깟 물건, 깨버리는 것 따위 어렵지 않… 시발?

아이작은 어깨에 박혀 있는 못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래, 물건 자체는 별거 아닌데… 하급품이 맞긴 한데…….

‘시발! 이거 신계의 성법이잖아!’

어떤 한가한 새끼가 여기에 이걸 박아넣었어!

‘빌어먹을.’

다른 구속구는 해체되었다. 그쪽이야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마치 물을 가득 담은 유리 수조 같은 것이었다. 9계위 마족인 만큼 지금이야 아슬아슬하게 담아두고 있지만, 거기에 아주 작은 흠집이나 균열 하나만 내주면, 부하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펑! 하고 깨지는 원리인 것이다.

현재의 힘으로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부하의 힘을 이용해 구속구를 풀 수 있는 방식. 무엇보다 구속구는 외부에서는 쉽게 흠집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거는 다르다.

[신계의 술식이면, 이거 흠집 내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그래, 신계의 술법에 손을 대려면 성스러운 피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아주 성스러운 최고급 신수의 피나… 아니면 천사의 피가…….

바로 그때였다.

“신의 사자께서 강림하시겠다고 합니다.”

사제들의 말에 아이작의 귀가 쫑긋 섰다.

“뭐? 아직 처형 전인데?”

“예. 해골왕의 부하인 만큼, 직접 처형을 맡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아이작이 눈을 끔뻑끔뻑거렸다.

신의 사자?

어 그러니까…….

“석상의 소환진이 빛납니다!”

그러니까……….

번쩍!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구나.

소환진이 새겨진 제단 위에서 천사가…….

-더러운 해골왕의 부하라니, 예를 갖춰 친히 처리해 줘야겠지.

………천사가.

“오오, 형벌의 신의 사자께서 오시다니.”

천사아아아????

눈이 돌아간 아이작의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갔다.

안광마저 띠는 아이작의 눈빛에, 슈리는 움찔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야. 잠깐만. 너, 뭐 하는 거야.”

뭔데 저 새끼 손에 성력이 가득 차기 시작한 거지? 뭔데 성력에서 살의가 느껴지냐고!

슈리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뭐지? 분명 언젠가 이 상황과 똑같은 상황을 겪어본 것 같은데.

10년 전, 성녀 보물고에서… 아니, 10년까지 안 가도 최근에도 비슷한 일이 있던 것 같다.

그래, 그러니까 성력으로 석상의 얼굴을 박살 냈던……

그리고 그 순간, 파괴력을 머금은 성력이 아이작의 손을 떠나고, 슈리가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 맞아. 저렇게 날아갔지.

그래. 날아가…….

“…….”

시발, 뭐? 날아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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