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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0화 (110/272)

제110화. 답도 없이 새까맣네 (6)

슈리는 제 눈을 의심했다.

아이작의 손에서 성력탄이 빛을 내며 휘몰아쳤다. 본래는 주먹만 했던 구체가 집 한 채만 한 크기로 변해서는… 시벌, 뭐?!

‘뭐야, 저 크기!’

성력탄은 가진 성력에 따라 크기와 질이 확연히 달라지는 법.

처음 보는 성력탄의 크기에 슈리도, 다른 사제들도 놀랐다. 어떻게 저만한 크기가 가능한가 싶을 그때, 슈리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가 저딴 성력탄을 예쁘다며 자랑하려고 만든 건 아닐 테고. 분명 내던지려고 만든 걸 텐데, 그러면… 잠깐! 뭐?

내던져? 뭘? 저걸?

저걸 던진다고?

아니, 잠깐!

척 봐도 처형장 하나를 휩쓸어버릴 정도의 크기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 저걸 여기서 던지면……!

뒷일을 상상한 슈리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아냐, 아냐, 아냐! 쟤도 사제인데? 이런 곳에서 그러진 않겠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하물며 귀빈들까지 있는 자리에서, 그딴 몰상식한 짓은 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 기대가 무색하게 아이작이 성력탄을 집어던졌… 시벌, 저 새끼가 진짜 던졌냐!

슈리는 화려하게 날아가는 성력탄에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물론 군중을 향해 던지진 않았다. 마치 패대기를 치듯 바닥에 내리꽂히는 성력탄!

쾅!!

마침내 성력탄과 맞닿은 지면이 갈라지면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으아악!”

“아악!”

괜히 성녀의 힘으로 증폭시킨 성력탄이 아니었다. 지면을 가른 성력탄은 태풍처럼 힘이 퍼지며, 처형장을 휩쓸었다.

“하하하! 전부 뒤져라, 띱때야!”

저게 사제인지 마족 새끼인지.

바람과 뒤섞인 뿌연 먼지가 처형장을 휘감았다.

콰과광!

“으악! 앞이 안 보여!”

“쓸려나간다! 붙잡아!”

처형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아이작은 푸헿 웃었다.

마음 같아서는 성력탄을 천사에게 직접 던지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지금 필요한 건 천사의 피였으니까.

부하를 구하는 일이라면 시야를 가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뭐, 다른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어디론가 향하는 아이작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반면, 흙먼지로 시야가 막힌 천사는 당황하고 있었다.

‘이 힘은 성녀의 힘인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성녀의 힘을 아무나 쓸 수 있을 린 없고…. 그 생각까지 미친 천사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험악해졌다.

아무래도 청한테는 교육을 단단히 시켜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힘의 관리를 어떻게 하면 저런 애가 신의 힘을 이토록 막 다룰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청에게 가서 한 소리를…….

‘아니지. 해골왕도 못 잡는 아둔한 놈들.’

천사의 눈에 살의가 깃들었다.

그는 위대한 주신의 군대에 속한 관리관으로서, 해골왕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물론 기수가 달라 직접 해골왕을 본 적은 없지만, 위 기수들은 해골왕 이야기만 나오면 발작을 했었다.

‘도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그토록 치를 떠시는 건지.’

그냥 치만 떨면 말도 안 하지.

직접 해골왕을 마주했던 그 세대를 눈으로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무서워하고 있다.’

해골왕을 죽도록 싫어하지만, 또 그만큼 그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래 기수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10계위의 마왕이니까, 어느 정도 강하긴 강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마왕 중에서도 신성 속성에 가장 치명적인 언데드 마왕이 아닌가.

약간의 요령과 적절한 전략만 있었다면, 제아무리 해골왕이라도 그저 신들을 골치 아프게 할 정도에 그쳤을 텐데.

아무튼, 그런 만큼 성녀들이 예쁘게 보일 리 없었다.

애초부터 청의 사람들이 잘했으면, 위대한 신들께서 해골왕을 직접 불러내 봉인하시는 수고를 겪지 않으셨을 텐데.

뭐, 해골왕은 엄중하게 감옥 안에 가둬놨으니 망정이지.

‘어쨌거나 그놈의 부하를 처리한다.’

남아있는 해골왕의 잔재를 직접 처리해주리라.

위 기수들은 해골왕의 부하들도 ‘그 해골왕의 힘이 묻은 만큼 만만치 않다’며 자면서도 발작을 했지만, 글쎄.

해골왕 따위, 별것 아니었다는 것을 내 증명해 보이겠다.

그래…. 증명을…….

어?

천사는 순간 몸을 떨었다. 서늘한 감촉이 그의 등 언저리에 와 닿은 것이다.

‘!’

허리가 쭈뼛 서는 기분에 천사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보이는 건 흙먼지뿐.

‘뭐지?’

틀림없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

어디서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마치 사방에서 자신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서늘한 감각이 정수리부터 척추를…….

스윽.

‘!!’

이번엔 등이 아닌 목이었다.

놀란 천사는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찝찝함보다는 처음 느껴보는 오싹함이… 뭐? 오싹?

천사는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지금 내가 오싹함을 느꼈다는 거냐?’

도대체 누구길래!

그때, 오감에 집중하는 천사의 눈에 비친 무언가가 있었다.

흙먼지 속에서 얼핏 보이는 백금색의 머리카락. 그게 뭘 의미하는지 깨달은 천사의 눈이 살벌해졌다.

‘설마, 그 꼬마인가?’

설마 지금 자신이 인간 종자한테 오싹함을 느꼈다고?

건방지기는!

천사가 아이작의 멱살을 낚아채기 위해 움직이려는 그때였다.

“움직이지 마.”

-……!

“움직이면 죽는다.”

목 뒤에 닿는 서늘한 목소리.

천사는 귀에 떨어지는 그 목소리에 얼어붙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목소리는 어린데…….

목소리에서 격이 느껴진다. 마치 세월을 초탈한 현자 같은. 또 어떻게 들으면 수만, 수천의 천사들을 장기 말로 삼는 제왕 같은.

“기껏해야 하찮은 천사놈이.”

오싹.

천사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살벌한 비웃음이 머리를 찍어 누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먹이 날아왔다. 명백하게 얼굴을 노리는 일격이었다.

빠각!

-크헉!

맹렬한 주먹이 천사의 얼굴에 꽂혔다.

타격 강화 성법이 걸린 만큼, 타격이 없지는 않다. 아니, 잠시 머리가 어질할 정도의 강한 타격이었다.

‘이것도 성녀의 힘인가?’

이어서 다음 주먹이 날아왔다.

그 힘에 천사는 움찔했다.

‘강하다……!’

신의 종자에게 직접 성법을 쓰는 건 금기긴 하지만, 막지 않으면 오히려 이쪽이 당한다!

게다가 아까 느낀 오싹함만 해도 평범한 놈은 아니다.

‘기껏해야 인간 종자 놈이!’

열 받은 천사가 방어를 위해 일격을 날렸다.

콰광!

그 요란스러운 번개 소리에 슈리도, 주변에 있던 사제들도 기겁을 했다.

“아이작!!”

특히 달려가는 슈리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주인이 공격당하자, 묶여있는 십사육마는 미친 듯이 발광을 했다.

그러나 일격을 날린 천사는 후, 애썼다는 듯 땀을 쓸어내렸다.

뭐, 형벌의 신의 힘은 번개이기 때문에 소리는 요란했지만 그래도 자중했다.

아무리 그래도 성자 후보에게 상처를 입히면 문책감이었다. 그 증거로 흙먼지가 걷히기 시작하자 천사는 쯧 혀를 찼다.

-놀라지 마라. 성녀의 힘만 제거했을 뿐…….

“꺄악!!”

…꺄악?

천사는 귀빈들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에 땀을 삐질 흘렸다.

뭐지? 왜 인간들이 비명을 지르지?

“세상에 이 무슨 끔찍한 짓을!”

…끔찍??

“아이작! 살아있냐!”

뭔데 달려오는 사제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냐.

그러나 곧 아이작을 바라보는 천사는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어…. 뭔가 이상한데.

분명 성녀의 힘만 상쇄시킨 건데, 왜 애가 피투성이냐?

어…어어?

그러나 슈리는 힘없이 쓰러진 아이작을 안아 들며 천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어떻게 신의 사자가 신의 종자에게 살법을!”

…뭐?! 살법?!

이게 뭔소리인가 싶었지만, 쓰러져 있는 아이작은 힘겹게 숨을 토했다.

“내가… 내가 멍청하게 고귀한 신의 사자를 마족으로 오해해서 그런 거야.”

“아이작!”

“자업자득이니까 화내지 마. 쿨럭! 쿨럭!”

아이작이 피까지 토하자, 슈리는 사고가 정지된 듯했다.

그 모습에 천사는 더더욱 영문 모를 얼굴이 되었다. 아니, 피를 토할 리가 없는데? 그보다 저거, 어디서 나온 피야?!

하지만 아이작에게 치유 성법을 걸어주는 키나의 눈빛이 바뀌었다.

“이상하네. 신의 사자들이 사제들에게 살법을 쓸 리 없는데.”

싸하다.

몰려든 사제들이 눈빛이 싸늘하다.

실제로 슈리는 열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게, 저쪽은 신의 사자라고 해도 형벌의 신쪽이라 적의 신앙쪽이었다. 한마디로 남의 신한테 두들겨 맞았으니 달가울 리 없단 의미다.

아니, 그걸 떠난 문제였다.

“강자가 약자한테 너무 하지 않습니까!”

-!

천사는 억울했다.

약자라니! 방금 내가 느낀 위압은 뭔데!

키나도 빡친 듯 한술 더 얹었다.

“적의 신앙은 저질이군.”

가만히 있다가 같이 처맞은 나이저는 기가 찼다.

“우리는 또 왜?!”

“우리 금의 신이라면 안 그럴 텐데.”

“뭐 인마?!”

“역시 몸종은 내가 나아.”

이 새끼, 제정신인가?

그러나 키나는 의심하듯 신의 사자를 노려보았다. 그도 그럴 게, 인간을 벌할 수 있는 건 신들 뿐.

“신의 사자가 신의 종자에게 살법을 쓰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살법이 허용된 건 마족 뿐이잖아.”

-아니. 난 살법을 쓴 적이 없다.

“그럼 왜 얘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 건데?”

-그건 오히려 이쪽이 궁금하거든?

“그보다 왜 예정에도 없는 신의 사자가 처형에 끼어든 거지?”

-뭣이?

키나의 말에서 바로 뭔가를 깨달은 천사의 얼굴이 굳었다.

이 자식, 설마.

“에슈아가 그랬잖아. 마족이 저 천사만 공격을 안 했다고.”

-……!

사실 그건 아이작이 꾸민 짓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를 알 리 없는 천사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그 꼬마를 내놔라. 그 꼬마를 조사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모든 키는 저 꼬마가 가지고 있겠지.

하물며 천사는 아까 전에 느꼈던 아이작의 기운이 신경 쓰였다. 자신이 오싹함을 느끼다니, 그건 마족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

-주인께 데려가 조사를 해볼 것이니…….

그런데 그때였다.

쓰러져 있는 아이작이 스윽 입꼬리를 올렸다.

그 웃음을 본 천사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철컹.

쇠사슬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흉악한 마력이 치솟아올랐다.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되는 힘이 처형장을 뒤흔들었다.

쿵!

숨막히는 마기가 지면과 기둥과 벽을 파괴했다. 처형장은 한순간에 굉음과 비명이 섞여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안 돼! 십사육마의 봉인이 풀렸다!”

“뭐?! 저게 왜 풀려!”

“신계의 구속구가 걸려있지 않았나?”

젠장, 뭐라고?!

십사육마가 풀려났다고?

‘젠장, 저 꼬마가 문제가 아니다.’

십사육마를 놓치면 끝장이다!

바로 처리해야 했다.

당황한 천사가 발검한 그때.

천사는 얼어붙었다.

등 뒤가 서늘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풀려난 십사육마가 등 뒤에서 눈을 번득이며… 시발, 뭐라고?!

그리고 소중한 주인을 건드려서 열 받은 것일까. 흉흉한 마기를 머금은 십사육마가 살벌한 한마디를…….

[고맙다. 네 계획 덕분에 탈출할 수 있었다.]

…잠깐. 뭐라고?!

하지만 반박하기도 전에, 십사육마의 손이 천사의 얼굴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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