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가지 마세요 (1)
천사.
마왕의 입장에선 거슬리는 파수견들이었다.
냄새도 잘 맡고, 물어오라는 사냥감도 몹시 잘 물어오는 우수한 사냥개들.
‘뭐, 나한테는 고자질이나 하는 멍멍이들이었지만.’
음, 그러니까 한마디로 영혼의 정체를 들킬 수 있는 놈들이란 뜻이다.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지.
어디 그뿐인가?
천사들이 괜히 훈련이 잘 된 군견들이 아니었다.
아이작이 부하를 구해내면, 천사가 반드시 부하를 처리하려 들 것이었다. 아니, 천사뿐이 아니지. 성직자들 전원이 천사를 도와 부하를 잡아들이려 하겠지.
하지만 그건 곤란했다.
기껏 구해놨는데, 탈출을 못 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모두가 천사를 돕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운 좋게 탈출시킨다 해도, 그 뒤도 문제였다. 바보가 아닌 이상, 탈출 시킨 범인을 색출하려 할 테니까.
‘천사를 내버려 두면 그놈이 반드시 범인을 찾으려 하겠지.’
천사들의 코는 예민해서 골치아프단 말야.
아무튼 여러모로 방해란 의미다.
그럼 그 방해꾼은 보내버리는 게 낫겠지? 아주 골로 보내버리는 게 좋겠지?
뭐, 선동은 어렵지 않았다.
-마족들이 저 천사만 공격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면 일단 분위기를 띄울 수 있으니까.
인간과 천사는 마족들의 맛있는 기호식인 만큼, 공격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은 잘 알았다.
‘이 상황에서 그들을 공격할 확률은 적지.’
그도 그럴 게, 눈앞에 묶여있는 십사육마라는 최상급 먹이가 있는걸. 인간과 천사를 잡아먹어도 힘이 늘긴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걸.
그리고 무엇보다 천사한테는 위스퍼를 몰래 붙여놨는걸!
‘해골왕의 기운을 내뿜고 있는데, 어디 무서워서 다가갈 수나 있겠냐? 푸웁!’
나라도 낑낑 쫄아서 못 다가가겠다!
강아지들이 호랑이 냄새를 맡으면 기겁하고 피하는 것과 같다.
뭐, 위스퍼를 붙여놓으면 천사가 눈치챌 수도 있지 않냐고?
십사육마가 있는데 잘도 눈치채겠다.
마족들을 겁먹게 하려면 티끌만 한 냄새면 충분했다. 그 정도면 살의가 등등한 9계위 마족의 기운이면 묻어갈 수 있었고 말이다.
게다가 샤브나크는 자신이 가르칠 정도로 가까웠던 만큼, 해골왕의 힘이 많이 묻어 있었다. 기운을 분간하려면 제아무리 뛰어난 사냥개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 마리가 있었다면 또 몰라도, 한 마리니까.’
아무튼 천사가 공격을 받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서 분위기를 좀 띄어놓고!
그다음?
캬, 그깟 피 흘리는 것쯤 뭐가 어렵다고!
성녀의 기술을 쓰면 원래 탈구가 좀 생겼다. 그걸 좀 세게 하면 내상의 단계까지 만들 수 있었고 말이다.
아, 피는 생각보다 안 나와서 일부러 역류시켜서 와장창 쏟아냈다. 그래야 더 극적이니까.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피로 떡칠하고 있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에게 쏠리겠지?
그 틈에 위스퍼를 시켜 구속구를 푼다. 그리고 풀려난 부하 놈한테 천사 놈의 처리를 맡기려는 것뿐이었는데…….
‘자식. 벽창호 같던 녀석이 갇혀있는 동안 꽤 센스가 좋아졌다?’
설마 천사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그 순간, 상대를 지목한 샤브나크가 천사의 얼굴을 공격했다.
푸악!
-크악!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과는 별개로, 주인을 공격해서 열 받아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고맙고 자시고, 마음 같아서는 어디서 감히 주인을 건드냐 욕을 하며 썰어버리고 싶지 않을까.
‘뭐, 최종적으로는 입막음을 해야 하니, 공격하는 게 맞긴 하지만…….’
푸악! 푸학!
-크아악! 이 마족 놈……!
…인석아. 형체는 남겨야 한다.
어지간히도 빡이 친 듯, 샤브나크는 천사의 몸을 잡아 뜯듯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부하의 사나운 일격에 핏방울이 허공에서 흩날렸다. 뜯긴 날개는 바닥에 고깃덩어리처럼 떨어졌다.
쿵!
분노에 휩싸여 있긴 하지만, 아무 일격이나 날리는 건 아니었다. 천사의 급소만 노리는 이성적인 면모는 십사육마답다.
[날 구해준 건 고맙지만, 네 마력핵을 먹고 내 힘을 회복해야겠다.]
심지어 사기까지 치고 있어.
‘원래는 저런 녀석 아니었는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죠.]
뭐, 인마?
아니나 다를까, 공격을 당하는 천사는 기가 찬 듯했다.
-이, 빌어먹을 마족이! 무슨 소리냐, 마력핵이라니!
아아 억울하겠지.
구해준 적도 없는데, 동포라 불리고 심지어 마력핵까지 내놓으라며 쳐맞고 있으니.
하지만 분명 부하도 알고 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여지를 남겨두면 주인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내놔라, 네놈의 마력핵!]
-이 자식이 아까부터 무슨 개소… 으아악!
한쪽 팔이 날아간 천사는, 이를 갈면서 샤브나크를 노려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듀라한처럼 목이 있는 자리에는 검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얼굴이 존재했고, 완고한 언데드의 몸은 갓 부활한 것 마냥 팔팔하다. 하늘로 치솟는 마력은 숨이 막힐 정도로 짙었다.
그래서 소름이 돋았다.
저것이 정녕 수십 년간 봉인되어 있던 마족이 맞는 건가?
‘강하다.’
저것이, 하나하나가 마왕급이라고 하는 십사육마.
아니, 저딴 걸 수족으로 부리던 해골왕은 정녕 괴물인 건가?
‘아냐, 지금은 그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처리를…….’
이 정도면 그래도 제압할 수 있었다. 제압해서 이 건방진 놈을 신의 공물로 바치겠노라.
그런데 그때였다.
우득.
‘……!?’
장갑을 낀 마족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천사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여기서 더 힘이 들어갈 여력이 있다고?!
‘젠장!’
곧 샤브나크가 사라졌다.
아니, 움직이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소리와 함께 배에 타격이 들어왔을 뿐.
빠각!
늑골이 박살 난 것 같았다.
강했다, 정말 미치도록 강했다. 그제야 천사는 윗기수들이 왜 발작하면서도 내심 그들을 두려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것이 그 해골왕의 수하……!
하지만 그 감탄과 별개로 천사는 치가 떨렸다.
‘왜 아무도 날 돕지 않는 것이냐!’
약간의 틈만 있으면 몸을 추스리고 반격할 수 있는데!
성직자란 놈들이 혼란스러워하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 아닌가!
‘아니, 그럴 만도 한가.’
상황상 마족이라고 의심을 사고 있는 듯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래. 이런 상황이 된 건 전부 저 백금발 꼬맹이 때문이었다. 저 꼬맹이가 이상한 선동만 하지 않았어도!
‘저놈을 죽여버리겠다.’
성자 후보에게는 손을 대면 안 되는 규율? 그딴 것, 알게 뭔가!
‘애초에 저딴 게 성자일 리 없잖아!’
보지 않아도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하지만 꼬마를 죽이는 것보다 급한 게 있었다.
‘아군을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저놈이 어떻게 풀려났는지 조사할 수 있어!’
증거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서!
곧 천사가 목소리를 높여 아군을 부르려는 그때,
-커헉?!
샤브나크가 재빨리 천사의 목을 노렸다.
푸학!
소리 따위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일까. 횡으로 몸을 찢는 척, 목까지 교묘하게 찢어버렸다.
‘이 자식이……!’
천사가 날개를 파들거리며 쓰러졌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으나, 바닥에 착지한 샤브나크가 뭔가를 움켜쥔 척을 하며 물러났다.
[네놈의 마력핵도 얻었으니, 나는 물러난다. 그럼 뒤를 부탁한다. 동포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역시, 마족이 동포라고 했어!”
아니, 씨. 뭐가 어째?!
저놈이 끝까지!
천사가 눈에 핏발을 세웠지만, 샤브나크는 바로 튀었다. 교황과 추기경들이 오기 전에 빠져나가는 게 좋았다.
그 광경에 천사가 가까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저놈을 잡… 커헉!
그러나 천사는 다시 앞으로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서 날아온 강력한 공격 때문이었다.
쾅! 쾅쾅!
천사조차 피를 흘리게 하는 원거리 일격은 계속되었다. 그 공격의 범인을 눈치챈 천사가 고개를 돌렸다.
‘이 공격은…!’
멀지 않은 곳에 파란 영대를 흩날리고 있는 검은 사제가 보였다.
다름 아닌, 청의 가주 일라이였다. 그는 마족을 쫓기는커녕 도리어 청의 가주에게 쳐맞은 천사는 핏대를 세웠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짓… 커헉!’
그 순간 천사의 눈앞에 고통의 불꽃이 튀겼다.
-커헉!
번쩍이는 검날이 천사의 다리를 찍어내렸다. 하늘에서 뛰어내린 성검사가 천사에게 검을 내리꽂은 것이다.
그 검이 청색이라는 걸 눈치챈 천사가 눈을 부릅떴다.
‘이놈들이 정녕 돌았나!’
그러나 검을 찔러 넣은 릴라이는 살의를 품은 채 칼을 뽑아냈다.
“감히 누구 조카를 건드려?!”
피투성이가 된 아이작을 보고 눈이 돌아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천사를 붙잡은 아들의 모습에 청의 가주가 한 소리 했다.
“릴라이. 목은 안 된다.”
“팔은 잘라도 되겠군요?”
시벌, 이 미친 놈들! 지금 제정신인 건가?
결국 그 광경에 보다 못한 적의 성직자들이 창을 세웠다.
아무리 그래도 이 신의 사자는 적의 신에 소속된 사자였다. 청이 칼을 세운 시점에서 이미 신앙 전쟁감이었다.
“신의 사자를 공격하다니, 청이 정녕 미쳐 돌았는가!”
그러나 릴라이는 험악하게 푸른 눈을 번득였다.
“먼저 신의 종에게 살법을 쓴게 누구라고 생각하지?”
“…살법을 썼다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증거? 저 피가 그 증거 아닌가!”
피? 지금 피가 증거라고 했어?
적의 사제들은 청의 멱살을 잡을기세였다.
“보나마나 네놈의 조카가 연극을 한 것이겠지! 적의 펜타곤에서 한 짓을 떠올려라! 악마 새끼가 아닌가!”
부정은 못 하겠군.
아이작은 눈을 또륵 굴렸고, 청의 가주는 내심 침묵했지만, 릴라이는 어디서 개소리를 하냐는 듯 검을 세웠다.
“저런 착한 아이에게 악마 새끼라니!”
“이 또라이야, 제정신 안 차려?”
적의 사제들은 이미 아이작의 신앙심을 의심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 일에 아이작이 연루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장 데리고 가서……!”
그런데 그럴 때였다. 노기 섞인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지금 아군끼리 싸우고 있을 때인가!”
“전원 탈주한 십사육마를 추적해라!”
백과 금의 추기경의 외침에, 모든 성직자들이 움직였다.
* * *
“비상! 비상! 십사육마가 탈주했다!”
“교황청에 있는 모든 상급 성직자들은 전력을 동원해 십사육마를 회수해온다!”
십사육마의 탈주에 수도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추기경과 모든 상급 성직자들이 추적을 위해 수도를 빠져나갔다.
하지만 릴라이는 아이작이 걱정이 되는지, 떠나지 못했다.
“아이작, 괜찮으냐!”
피가 줄줄 흐르는 조카의 모습에 눈이 안 돌아갈 리가 없다.
그러나 나이저와 적의 사제들은 그런 아이작을 몹시 수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특히 나이저가 그랬다.
‘이상한데. 저 피들. 아무리 봐도 신의 사자가 아니라 자해의 흔적 같은데.’
물론 이건 적의 기술을 잘 알고 있는 자신들이기에 기묘하게 여길 수 있는 것이지만.
귀빈들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금의 추기경은 아이작의 처참한 모습을 보며 내심 안도했다.
‘십사육마를 놓치긴 했지만, 더 중요한 신 뽑기는 못하겠군.’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다. 물론 정작 장본인은 속으로 낄낄 웃고 있었지만.
‘피는 역류시킨 것뿐이라 어차피 큰 부상도 아니라서.’
그러니 신을 뽑는 데엔 지장없다. 하지만 의심을 안 사려면 멜리사의 로자리오로 빨리 치료해버려야지.
릴라이는 그런 아이작을 안절부절못한 얼굴로 살폈다.
“걱정 마라. 십사육마도 곧 잡아올 것이다. 그럼 네 무관함도 증명할 수 있겠지.”
응, 못 잡아와.
성직자들이 암만 잡으려 해봐야 잡힐 놈도 아니었다.
하물며 이제 구속구도 없이 자유가 된 놈을 무슨 수로 잡는데?
그런데 그때였다.
“릴라이, 아이작을 돌보고 있어라. 나도 십사육마를 붙잡으러 가봐야 할 것 같다.”
“!”
청의 가주가 움직이자 적의 사제들의 눈빛이 바로 바뀌었다.
좋다. 청의 가주만 사라지면 아이작을 붙잡아서 조사해볼 수 있다. 하지만 아이작은 다른 의미로 뜨억, 얼굴이 굳었다.
시발!
안 돼! 할아버지는 좀 위험한데!
‘추기경 두 명까지는 어찌어찌 간신히 따돌린다 쳐도, 할부지까지는 힘들어.’
교황과 거의 버금가는 청의 가주의 힘은 보통이 아니다. 아무리 부하라도 붙잡힐 것이다.
그 생각에 미친 아이작이 혼신의 연기를 했다.
숨이 넘어가는 척, 할아버지를 붙잡았다.
“할부지…. 아이작, 너무 아파요. 가지 마세요.”
그 모습에 아이작이 달가울 리 없는 적의 사제들은 쯧, 혀를 찼다.
무려 십사육마가 탈주한 사건이었다. 청의 가주가 이만한 일에 안 움직일 것 같은가?
‘그딴 어리광으로 안 되지.’
‘자, 어서 가라. 그럼 바로 조사를…….’
“그래. 안 가마.”
시발, 안 가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