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가지 마세요 (2)
아이작은 볼을 긁적였다.
“음. 쩌기.”
아이작의 시선이 눈앞의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음. 쩌어기.”
아이작의 앞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푸른색의 옷을 입은 사람. 그리고 적색의 옷을 입은 사람.
“썩 안 꺼져? 왜 남의 병실에서 행패야!”
“허, 남의 병시일? 전세 냈냐! 교황청 병실이 언제부터 니들 거였는데?”
“애초에 악마 새끼를 성스러운 교황청 병실에 들여? 청도 아주 몰락했어!”
음, 그러니까 청의 사람과 적의 사람이 멱살 잡고 싸우고 있단 의미다.
“너, 다시 말해봐! 지금 아이작한테 뭐라고 한 거냐!”
“뭐라고 하긴! 악마 새끼가 청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왜!”
“이 미친놈이!”
“악!”
쾅!
아아, 또 멱살 잡고 구르네. 또 굴러.
어른들의 싸움에 아이작은 한숨을 푹 쉬었다.
자신이 병실로 옮겨진 지 꼬박 하루가 지났다. 그사이 처형식은 중단되었고, 지금은 십사육마의 추적과 사건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2부는 이틀 뒤에 진행한다고 했나.’
귀빈들을 모셨으니 공양제를 중단할 수도 없단 것이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만큼 더 성공적으로 선보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뭐, 교황이 그전까지 도망친 십사육마를 잡아오라고 했지만, 과연 쉽게 잡힐까.
물론 무려 추기경이 두 명에, 상급 성직자들이 거의 총동원된 상황이었다. 도망치는 게 쉽진 않겠지만, 그 정도도 못 피하면 해골왕의 손가락으로서 실격이지.
아무튼 부하 쪽은 큰 걱정이 없는데, 적의 사제들이 쳐들어와서는 약 한 시간째 저러고 있다는 거지.
“지금 다친 애한테 무슨 망발이냐!”
“다치긴 뭘 다쳐! 연기하는 거잖아! 적(赤)이 낸 상처가 아닌데!”
“허, 책임지기 싫다고 저 착한 아이를 악마 취급해? 감히 성직자가 거짓말을 해!”
“쩌기이.”
아이작이 손을 뻗자, 옆에 있던 유모 아실리가 미소를 지었다.
“도련님, 신경이 쓰이시는 건 알겠지만, 전혀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적은 청을 건드렸어요.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배고프다고.
하지만 그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슈리도 아이작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그래, 청이 잘못될까 봐 걱정되는 모양인데. 먼저 공격한 건 저놈들이다. 염려하지 마라.”
아니, 청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니까?
일단 밥부터 먹으면 안 되겠냐?
‘체력 회복하느라 배고픈데.’
멜리사의 로자리오를 이용해 빠르게 몸을 회복시키고 있지만, 회복 성법이라는 게 만능은 아니란 말이지.
[환자 본인의 체력을 이용해서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거죠?]
그래.
회복 성법은 자가 회복 속도를 극단적으로 올려주는 것이었다. 즉, 환자의 체력이 필요하단 거지.
반대로 말하면 그만한 체력도 없는 환자는 살릴 수 없단 의미가 된다.
‘죽어가는 자까지 살릴 정도의 회복 성법은 백의 추기경이나 교황 정도만 가능하니.’
체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적에 가까운 치료는, 오직 그 둘만 가능했다.
[성자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글쎄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구나.
아무튼 백의 추기경은 십사육마를 잡으러 갔고, 아이작도 평범하게 치료를 받았으니 피곤하고 배고파 죽겠단 의미다.
그런데 슈리 이놈도 자신이 피 좀 흘렸다고 눈깔이 돌아가가지고.
붕대는 무슨 미이라 마냥 칭칭 감아두질 않나.
‘화장실까지 따라오는 건 좀 오바 아니냐.’
피를 두 번 흘렸다간, 아주 기겁하며 방 안에만 가두겠어.
“아실리도 뽑은 검 다시 넣어두고.”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놈들이 장소 분간도 못 하고 도련님께 망발을 해서…….”
싸늘한 눈빛으로 발검하려던 아실리는 화들짝 놀라 검을 검집에 넣었다.
사실 뿔이 난 건 이들 뿐이 아니었다. 무려 직계가 적에게 공격받았다는 말에 청의 사람들이 보이콧을 하고 나선 것이다.
-에슈아 사람들이 거래를 끊어버렸습니다!
-청의 기사들이 임무지에 나오지 않았어요!
-에슈아의 가신 가문들도 업무를 중지했어요!
그야말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하물며 청이 주로 맡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인가.
돈도 안 되고 더러워서 남들은 하기 싫어하지만, 반드시 일손이 필요한 장소. 즉 신성제국의 보이지 않는 곳을 책임지던 그들이었다.
그렇게 하찮은 일부터 중요한 일까지. 그들이 일제히 일을 멈추자, 제국이 한순간에 멈췄다. 심지어 황실의 일까지 연계되어 업무가 중지됐다.
덕분에 황실의 가신들도 놀라서 튀어나왔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근검‧성실한 청답게 업무가 중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하다못해 사소한 시간 약속조차 어긴 적 없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업무를 완전히 중단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이라는 의미였다.
게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보통 가주가 나서서 해결하기 마련이지만-
-계속해.
청의 가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 마비 상황 자체를 가주가 지시한 것일 수도 있었다.
결국 생명과 직결된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업무가 멈췄다.
-가문에서 제일 작은 손가락이 다쳤다. 진정한 사과가 있기 전까지 철회는 없다.
그래서 귀족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이라도 청의 가주가 아이 하나 때문에 이렇게 움직인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들이 이렇게 나온다는 건 정말 선을 넘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뭐, 만인의 앞에서 직계가 공격당했을뿐더러 다른 신앙 사람들도 보고만 있었다고 하니…….’
다른 신앙의 뒤처리까지 해주던 청으로서는 배은망덕한 기분이지 않았을까.
물론 이쯤 되면 제국민들 사이에서 불평을 터트려주길 바랐지만, 글쎄.
-청은 지금껏 쉬지 않는 게 이상했어. 조금만 참지, 뭐.
-휴가를 간 거라고 생각하세.
-그러게 왜 애를 피투성이로 만들어서. 쯧쯧.
의외로 옹호하는 쪽이 더 많았다. 청에게 은혜를 입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리라.
동시에 그래서 큰일 나겠구나 싶었다. 청이 한 번도 나쁜 쪽으로 마음을 먹은 적이 없어서 그렇지, 그들의 집착과 옹고집은 무서울 정도였다.
한다면 정말 한다는 인간들인데다가, 돈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
‘잘못하면 정말 장기전이 된다.’
제국이 마비돼!
‘그런 청을 유일하게 말릴 수 있는 건 아이작뿐!’
이 모든 건, 아이작이 적가에게 공격당하고 의심을 받아서 생긴 일이었다.
덕분에 기겁한 귀족들은 적가에게 생사람 잡지 말라며 항의를 했지만.
‘생사람이라고?’
생사람은 개뿔이!
‘틀림없이 아이작 에슈아가 자작극을 펼친 거다!’
적도 미치겠는 상황이지만,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용의자가 명백한 상황에서 그만두라니, 미쳤어?’
하물며 적의 진영의 천사가 타락 천사라니!
이미지 손실을 막고, 적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이작을 몰아넣어야 한다. 설령 죄가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청의 가주가 떠날 생각을 안 하니, 아이작을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그럼 과실을 증명해서 합법적으로 데려가는 수밖에!’
적의 사제들은 릴라이를 설득했다.
“릴라이, 정신 차려! 지금 감정적으로 이러기야? 청의 보이콧도 중단시키라고!”
그러나 릴라이는 비웃었다.
“정신 차려야 할 건 니들이지.”
“뭐라고?”
“십사육마가 풀려났다. 처형 직전에 신의 사자가 십사육마에게 구속구를 추가한다고 하더니, 전부 이를 위해서였나?”
“뭐?”
“의심하려면 그 신의 사자를 의심해야지. 청으로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는 쪽을 붙잡은 것뿐이다.”
거짓말!
그냥 조카 때문에 눈이 돌아갔을 뿐이잖아! 개인적인 원한을 가득 실어 찌른 거잖아!
그러나 릴라이는 뻔뻔했다.
“하물며 십사육마가 신의 사자에게 동포라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 말을 진짜 믿는 미친놈이 어디에 있어!
“십사육마의 거짓말이라고는 생각 안 하나?”
“거짓말로 구속구가 풀린다고?”
“…그!”
말문이 턱 막힌 적의 사제들은 뒷목을 잡았다.
그래, 전부 그놈의 구속구가 문제다!
‘도대체 누가 그걸 풀어준 거지?’
아무튼 청이 적당히 조카를 넘겨주면 좋겠건만, 릴라이는 뻔뻔해도 너무나 뻔뻔했다.
“청이 잡아준 십사육마를 이딴 식으로 놓치다니! 오히려 기가 찬 건 이쪽이군!”
“……!”
아오! 미치겠네!
하지만 적의 사제들은 꾹 참았다.
안 그래도 문제의 구속구를 풀어준 범인을 찾기 위해 처형장을 조사하고 있었다.
‘흑의 처형관과 힘을 합쳐 조사하고 있으니, 조사 결과는 금방 나올 거다.’
‘거기서 범인의 흔적만 나오면…….’
그럴 때였다.
쾅!
교황청의 병실 안으로 적의 사제들이 황급히 들이닥쳤다.
그 모습에 안에 있던 적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다급히 달려온 걸 보니, 결과가 좋게 나온 모양이다.
“그래, 결과는…….”
“큰일입니다! 남아있던 구속구…증거가 사라졌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증거가 사라져야지… 뭐?”
뭐라고?
“하나밖에 안 남은 증거품이 왜 사라져!”
“그게, 구속구를 회수해서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폭발하면서 사라지는 바람에…….”
“뭐라고?!”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아이작은 푸헿 웃었다.
‘역시 철저한 내 부하.’
샤브나크가 구속구에 시한 폭발 마법을 걸고 간 게 틀림없었다. 증거품을 조사해도 범인을 찾아낼 수 없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만 알아낸 게 아닌 모양이었다.
“실은 폭발하기 직전, 증거품에서…….”
속닥이는 사제의 말에, 적의 사제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그분의 힘이 왜 거기서 나와!”
당황한 그들은 아이작과 보고하러 온 사제를 번갈아 보면서 혼란에 빠졌다.
그 모습에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분의 힘?’
증거품이라면 구속구일 테고. 거기서 누구의 힘이 발견되었길래 저놈들이 저리 놀라는 거지?
뭐,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작을 끌고 갈 명목이 사라진 적의 사제들은 이를 갈았다.
릴라이는 미소를 지었다.
“할 일이 더 늘어나 힘드시겠어. 바쁘실 텐데 빨리 나가보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러자 적의 사제들은 이를 악물며 청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지금껏 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청은 진짜 잘못 건드린 거다.”
“니들이 과거의 일을 반복하는구나.”
“에슈아는 적의 신앙한테 선전포고를 한 거야. 세페트를 완전히 적으로 돌렸어.”
적의 사제들은 훽 돌아서서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 모습에 아이작이 릴라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낀 건지, 릴라이가 쓰게 웃었다.
“걱정하는 것이냐? 그럴 필요 없단다.”
아니. 걱정해서 본 거 아닌데.
배고프다고 찌발 놈아. 밥 언제 줄 거냐고.
‘신 뽑기’ 하기 전에 파워를 풀 충전해야 한다고, 개놈아.
그러나 릴라이는 그런 아이작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린 네 편이란다.”
“!”
“설령 네가 악마에게 혼을 팔았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널 비난하든 상관없다. 이 숙부가 목숨을 다해 널 지켜주마.”
아.
아이작은 순간 릴라이의 얼굴에서 누군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이젠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조차 까마득하지만, 이것만큼은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한마디.
-너는 내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주마.
그랬기에 아이작은 작은 한숨이 나왔다.
설마하니 성직자들한테서 이 말을 들을 줄은 몰랐는데.
‘뭐, 이런 녀석들까지 굳이 쳐낼 건 없겠…….’
“그러니 이 숙부랑 꼭 해골왕의 대가리를 깨러 가자!”
응. 역시 니들은 멸문이야.
* * *
‘역시 수상해.’
나이저는 씩씩거리면서 교황청 안을 걸어갔다.
십사육마는 아직 못 잡았다.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십사육마 놈이 워낙 잘 숨었다고 한다.
그래서 적의 추기경은 마족잡이 전문인 청의 추기경한테 빨리 오라고 지원 요청을 했지만, 청의 가주는 파업했다며 귀만 파고 있었다.
그랬기에 나이저는 지금 직접 아이작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보고에 의하면 십사육마가 구속구를 완전히 풀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십사육마가 스스로 그 수갑을 풀어냈을 리는 없다.
‘분명 공범이 있는 거야.’
의심이 가는 곳이라면 마지막에 십사육마를 만난 아이작 정도.
‘그놈은 왜 굳이 십사육마를 보여달라고 했을까?’
설마 그 수갑을 풀어내기 위해서였나?
하지만 증거가 없다.
하물며 청의 가주가 버티고 있는 이상, 이제 아이작을 끌고 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적의 신께 직접 고한다.’
이왕이면 신께서 아이작을 직접 확인하시는게 좋겠지. 장소는 때마침 신 뽑기 장소가 적당할 것 같았다.
게다가 안 그래도 청의 가주 때문에 빡쳐 있는 아버지가 이리 명령하시지 않았던가.
-아이작이 다쳐서 신 뽑기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뭐, 한 달을 누워있을 부상이라고 하니 어쩔 수는 없다만. 금이 좋아 죽더구나. 그러니 적의 비전 약을 가져가 무조건 낫게 해라.
-예? 적의 비전 약이요? 그딴 놈한테는 너무 사치 아닙니까? 그거라면 하루 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날 테지만, 상처 치료보다는 축복 효과가 더 큽니다. 만약 그것 때문에 좋은 신을 뽑게 되면…….
-상관없다. 어차피 제대로 된 신은 못 뽑는다.
그 말을 떠올리며, 나이저는 아이작 앞에서 방긋 웃었다.
“아, 아이작? 몸은 괜찮아?”
-공양제는 청이 몰락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마, 많이 아프냐? 내가 네 모, 몸종이잖아? 걱정이 되니까 잘 듣는 약을 가져왔는데.”
아이작은 어설프게 웃는 나이저를 보며 썩은 표정을 지었다.
뭔데. 이 때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