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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5화 (115/272)

제115화. 정녕 이래도 되는 겁니까 (3)

릴라이는 파란 눈을 끔뻑거렸다.

“그…….”

“으아아악!”

“아이작을… 찾으러 왔습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눈이 당황스럽다는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릴라이의 앞에는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적의 사제들이 하나, 둘…….

“으아아악!”

“제발! 좀! 십사육마 좀 찾아달라고!”

“저 새끼, 누가 데려왔어!”

“빌어먹을 청 놈들!”

…아니, 수십 명이 있었다.

‘뭐지?’

잠들어 있던 그 몇 시간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릴라이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교황청 병동에서 슈리와 함께 쓰러져있던 그였다. 나이저가 비전 약에 섞은 자백제 때문에 정신이 없던 그는, 고엘이 보낸 전령 때문에 깼다.

-릴라이! 빨리 니 새끼 놈 좀 데려가라!

푸른 새가 하도 콕콕콕콕 머리를 쪼아대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지.

‘나이저 녀석, 자백제를 독한 것으로도 썼군.’

상급 마력핵을 갈아넣은 상급 자백제인가?

8계위 성기사라서 해독은 순식간이었지만,  어찌나 독한지 숙취처럼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애초에 이런 걸 먹고도 멀쩡할 수 있는 건 신과 가장 가까운 교황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상급 마력핵을 먹은 아이작은 멀쩡하다 못해 푸헤헤헤 더 달라며 날뛰고 있지만, 어쨌든 릴라이는 헤롱헤롱거리는 슈리를 눕혀놓고 나왔다.

그래…. 자백제를 먹고 힘들어하고 있을 조카를 데려가려고, 그렇게 헐레벌떡 뛰어왔는데.

힘들어하기는 개뿔.

“으아아악! 살려줘!”

“제발 저 새끼 좀 집에 데려가!”

“청 이 새끼들, 조카 교육을 어찌하고 있는 거야!”

적의 사제들이 오히려 괴로워하고 있다. 아이작의 헛발질에 몇 시간이나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이러고 있는 와중에 십사육마가 얼마나 도망쳤을지!’

‘이대로 십사육마를 놓치면 진짜 우리가 전부 뒤집어쓴다고!’

적의 사제들은 가슴이 쪼들려갔다.

심지어 사태가 커졌는지 적의 추기경 리온 세페트까지 모습을 보러왔다.

“십사육마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더니, 아주 개판이구나.”

“각하!”

적의 사제들은 살았다는 듯 적의 추기경을 반겼다.

그는 여유롭게 티타임을 가지고 있는 청의 추기경에게 걸어갔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가증스러우면서도 웃길 수밖에 없다. 아니, 솔직히 흥미롭기까지 하다.

“아주 애를 쓰시는구만. 악신을 안 뽑게 하려고.”

아니나 다를까, 청의 추기경의 앞에 선 리온이 방긋 웃었다.

“청이 일부러 회피하는 거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뭐래.”

청의 추기경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재수 없으니 꺼지라는 의미다.

그 모습에 적의 추기경은 오히려 확신에 찬 듯, 뱀같은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청이 이럴수록 아이작 군의 혐의는 더욱 올라가는 건데요. 이러면 청 전체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보다 고고한 청을 비명 지르게 할 생각에 벌써부터 짜릿한 모양이다.

그 가학적인 미소에 청의 기사들은 몸을 떨었다.

수백 년 전, 적이 청을 무너트릴 만한 사건이 있지 않았던가. 그때 성공하지 못했던 일을 이번 대에서 재연하려는 것이 틀림 없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정녕 이래도 되냐는 듯 불안하게 청의 추기경을 보았지만-

“얼씨구, 혐의? 손자가 십사육마를 풀어줬다는 증거가 나오기라도 했나?”

응, 안 나왔지.

적의 사제들은 쯧, 혀를 찼다.

‘십사육마의 수갑에서는 교황 성하의 힘이 발견되었다.’

그렇다고 교황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의 추기경이 말했다.

“신 뽑기에서 예우는 갖춰드릴 테니 협조하시죠?”

이 새끼가? 뭐? 예우?

감히 누구 손자를 끌고 가려고 벼르고 있어?

하지만 적의 사제들은 하나같이 똑같은 눈으로 웃고 있었다.

‘이미 조사는 끝났다.’

‘베리트가 기를 쓰고 아이작의 신 뽑기를 막으려는 이유는 하나.’

‘악신 중에서도 금가의 천적 악신을 뽑게 되기 때문이지.’

즉, 적으로서는 청과 금을 동시에 보내버릴 수 있는 신이 내린 기회.

“한 시간 내로 십사육마를 찾아줄 것이라 생각하죠.”

“지랄하네. 부탁하는 입장이면 그 뻗대는 고개라도 숙여보든가.”

청의 가주가 개무시를 하며 휙 돌아서자, 릴라이가 따라왔다.

“쪼들리니까 저리 나오는 겁니다.”

“안다.”

“그럼 적을 몰아세우려고 십사육마를 일부러 안 찾아주시는 거로군요!”

응, 아냐. 아이작의 신앙심 때문에 이 지랄… 아니, 그러시는 거야.

혼자 모든 진실을 아는 고엘은 죽겠다는 듯 가슴을 퍽퍽 쳤지만, 그렇다고 입을 열 수도 없다.

‘그래. 차라리 세페트가 오해를 하고 있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어디 신 뽑기 날에 망신이나 당해보라지.

청의 상급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적가를 견제하려면 십사육마를 찾아주지 않는 게 낫습니다. 가주님!”

“예! 맞습… 어? 아! 그럼 설마 아이작 도련님도 일부러?”

청의 기사들은 몹시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그제야 모든 걸 깨달은 듯했다.

“아이작 도련님이 아까부터 허탕만 치시던 건 이유가 있으셨던 거군요!”

“세상에, 일부러 안 찾아주시는 거였어!”

“본인의 평판이 신경 쓰이실 법한데도 오직 청을 위해……!”

아니, 그건 아냐! 고엘의 눈썹이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맹세컨대 그런 숭고한 목적이 있는 놈이 아니라고!

기사들의 말에 가주는 내심 뿌듯해하면서도, 십사육마가 숨죽이고 숨어 있을 곳을 슬쩍 보았다.

뭐,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애초에 청의 가주는 마음에 안 들었다.

십사육마를 붙잡은 건 선대지만, 어쨌든 해골왕의 육신을 볼모로 십사육마를 굴복시킨 건 교황이 아닌가.

그리고 그걸 비겁하다고 보는 그였다. 차라리 잡아서 그 자리에서 처리하면 처리했지.

“그놈은 자기 주인의 육신을 찾으러 왔을 뿐이었다.”

“!”

선대도 대의를 위해서 교황의 명을 받아 성녀 보물고를 빌려주긴 했다지만, 선대나 일라이나, 썩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라이도 처형장에서 도망치는 십사육마를 굳이 붙잡지 않은 것이다.

물론 십사육마가 주인의 몸을 찾기 위해 신성제국에서 난동을 부리긴 했지. 해골왕의 명령 때문인지 인간을 먹거나 죽이진 않았지만, 기물파손은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죗값은 수십 년간 노예로 부려먹은 걸로도 충분히 넘친다고 봤다. 아니, 오히려 좀 과했지.

그러니 다시는 눈에 띄지 말아라. 이걸로 쌤쌤이라는 의미였다.

“물론 기회는 한 번뿐. 다음에 내 눈에 띄면 망설임 없이 잡겠지만.”

“…….”

그런 분이 지금 이러고 계십니까?

심지어 아이작 저놈, 십사육마를 찾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요?!

고엘의 그런 눈빛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주는 귀를 후볐다.

‘뭐, 십사육마를 찾는 훈련만으로도 성장에 도움이 될 테지.’

가주는 아이작이 어디까지 올라올 수 있을지 내심 기대를 품었다.

그래, 그 녀석이라면 빌어먹을 해골왕을 없앤다는 가문의 오랜 숙원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이작?”

“아버지?”

“아이작은 어디로 갔느냐?”

아이작이 납치된 듯 사라져 있었다.

* * *

“음. 그런 거군.”

정적 아이작은 시가지의 빈 집에 있었다.

샤브나크가 몰래 남긴 메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150년 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는 있었지만 직접 만나는 건 위험 부담이 너무 컸으니까.

[그래도 이 암호는 오랜만에 보네요.]

벽에는 마족 언어가 쓰여 있었다. 암호 체계를 모르면 그냥 음식 레시피에 불과하지만, 원래부터 직속 부하들하고는 암호로 대화를 나누던 그가 아니었던가.

물론 도주 상황인 만큼 담겨 있는 정보량은 적었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다.

[그래도 설마 진마들이 주인님의 자리를 꿰차고 앉았을 줄은 몰랐는데요.]

“뭐, 그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진마들은 순수 혈통에 가장 강한 마족들. 원래부터 비천한 스켈레톤을 따르는 걸 내심 수치스럽게 여기던 놈들이니까.

그리고 애쉬의 말에서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진마들을 필두로 인간진영을 노리고 있는 듯 했다.

-인간 살육, 먹이.

심지어 자신이 걸어둔 절대서약. 즉 ‘금제’를 깨긴 어려우니, 가짜 해골왕을 내세워 마음대로 마족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금제를 만든 해골왕의 명령이라면 잠시 명령이 바뀐 것일 뿐, 금제를 깬 게 아니게 되니까.

‘새로운 왕이 되고 싶으면 내 금제를 깨면 그만이지. 룰도 못 깨놓고 감히 날 사칭해?’

즉, 가짜 해골왕은 꼼수라는 이야기다.

뭐, 왕의 자리는 새로운 세대에게 줘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만, 선은 넘지 말아야지.

‘개짓거리를 하고 싶으면 니들 이름으로 하라고! 시발!’

니놈들 때문에 에슈아 놈들이 눈깔이 돌아갔잖아! 맨날 또라이처럼 해골왕 처형을 부르짖잖아!

[아니. 거기엔 주인님 업보도 어느 정도 있을 텐데요. 성녀를 내던졌으니까요.]

안 닥쳐?!

내가 이 몸이 되어가지고 자꾸 해골왕 처형 에디션을 선물 받아야겠어?! 어?

심지어 이 몸에 저주까지 걸고 말이야, 시벌 놈들이!

어쨌거나 다른 십사육마는 어떻게 된 건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는 만나서 더 구체적으로 들어야겠지만, 대충 파악했다.

‘신성제국에 있다 보면 언젠가 진마들과도 만나게 되겠지.’

오히려 지금 흥미로운 건 다른 쪽이다.

-구속구. 교황, 황태자.

아무래도 샤브나크는 적의 사제들의 정보를 엿들은 모양이었다.

저 말의 의미가 뭐냐면, 샤브나크의 구속구에 교황과 황태자의 힘이 남아 있었다는 의미인데.

‘교황은 그렇다 쳐도 황태자?’

황태자가 왜 여기서 나오지? 황태자가 십사육마에게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나?

좀 의아하긴 했지만, 이것도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까부터 달갑지 않은 놈들이 바라보고 있거든. 그랬기에 아이작은 볼을 긁적거렸다.

‘음. 뭐, 그래.’

도대체 어떤 신에게 간택받았길래 금이 입양이야기를 꺼내고, 고엘은 말을 얼버무려 버리고.

뭐, 궁금하긴 했지. 그래서 속시원하게 답을 알려줄 사람이 있으면 했어.

근데…….

“설마하니 암살자가 붙을 줄은 몰랐는데.”

아이작의 말에, 숨어 서 지켜보던 암살자들이 움찔 놀랐다.

‘우리를 눈치챘다고?’

‘저런 꼬마 놈이?’

‘사제들은 기를 읽는 능력이 둔할 텐데?’

그러나 아이작은 시큰둥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뭐, 놀랄 것도 없었다.

성기사들이 기척에 예민한 것처럼, 마법도 단계가 높으면 개미, 심지어는 영혼의 기척까지 느끼게 된다.

그리고 대충 예상컨대, 신 뽑기를 두고 라이벌을 제거하려는 암살자 놈들이겠지. 흑의 펜타곤의 보상이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금가이거나.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암살자가 붙을 정도라고……?’

격이 높은 신이라고 해봐야, 주신급 아냐?

아니, 물론 주신급이면 대단하긴 한데, 5대 가문의 직계면 예상 가능한 범주 아냐?

‘오히려 청의 주신에게 점지받은 슈리를 노려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암살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얌전히 있으면…….”

“목숨은 뺏지 않겠다 같은 개소리는 안 하겠지. 띱때들아.”

“……?!”

동시에 아이작의 눈이 번득였다.

쾅!!

아이작의 손짓에 위스퍼가 몸을 크게 부풀렸다.

그러자 건물 내부가 순식간에 박살 나며 암살자들이 곳곳에서 떨어졌다.

쿠구궁!

“크윽!”

암살자들은 바로 자세를 잡았지만, 아이작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몸을 떨었다.

‘이 무슨……!’

‘성법을 쓰는 기척도 못 느꼈는데!’

그뿐이 아니었다.

“아. 찌발. 심지어 마법 쓰는 놈들이네.”

심지어 아직 아무런 짓도 안 했는데 정체까지 들켰다!

그러나 아이작은 목을 우득거렸다.

‘척 보니 정식 마법사들은 아니고.’

뭐, 있기는 했다. 용병들 중에 마법 혼용해서 쓰는 마검사들이. 사제들이 드글거리는 신성제국에 암살자로 있을 법한 놈들이지.

그래, 있을 법한 놈들인데…….

“도망가지 못하게 해라!”

“사제들의 약점은 마법이다.”

“폐를 망가트려서 신 뽑기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어!”

암살자들이 불길을 일으키자, 아이작의 얼굴에 핏대가 섰다.

놈들이 마법으로 만든 불길이 아주 예쁘게… 예쁘게…….

[아주 예쁜 3계위 마법이군요.]

…시벌, 이렇게까지 얕보였나?

마왕 앞에서 고작 3계위 공격 마법이라니!

아, 혈압이야.

도대체 어떤 새끼가 보낸 거야.

적가는 아니고, 금가도 아닌 것 같은데.

백? 흑? 그것도 아니면 다른 귀족?

그리고 그때. 불은 현혹이었다는 듯, 아이작의 목 뒤에 침이 꽂혔다.

푹!

‘!’

“됐다.”

“척 보니 혼자 공을 세우려고 움직인 모양인데. 가족들을 떠나서 혼자서 움직인 네 스스로를 원망해라.”

아이작은 눈을 끔뻑거렸다.

어. 그러니까 목에 꽂힌 건 독침인 것 같다.

문제는 신성독인 게 문제지.

그것도 제법 질이 좋네.

어쩌지?

이거 쓰러진 척해줘야 하나?

“뭐야, 얘 왜 안 쓰러져? 효과 없는 거 아냐?”

“뭐? 신성독이 효과가 없다고? 사제인데?”

그때, 아차 싶었던 아이작이 만세를 하며 쓰러지려했다.

“아이고오 정신이! 하지만 이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아! 나는 명예로운 청의 사람이다아!”

“역시 청인가. 하나 더 꽂아!”

그 말에 귀가 쫑긋 선 아이작이 휘청휘청 애써 버티는 척을 했다.

“아이고오! 청이 고작 독침 2개 따위로 굴복할 것 같으냐아!”

“입이 살아있다! 있는 대로 다 꽂아!”

“이 근방에 청의 가주가 있다. 들키면 끝장이니 서둘러 움직여!”

한 스무 개쯤 박혔을까. 고슴도치가 된 아이작은 그제야 기절한 척 누워서 쪽쪽쪽쪽 독침의 마력을 빨았다.

“자, 이걸로…….”

쾅!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들어왔다.

아이작은 깜짝 놀랐다. 뜻밖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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