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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6화 (116/272)

제116화. 정녕 이래도 되는 겁니까 (4)

사실 아이작을 몰래 보고 있던 그림자가 있었다.

‘빌어먹을 아이작 에슈아……!’

바로 몰렉 백작이었다.

그는 청만 보면 이가 갈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앞장서서 청을 무시하고 다니더니. 저게 무슨 꼴이래요.

-깎아내린 청의 팀이 금의 펜타곤에서 킹을 땄으니, 두고두고 웃음거리 된 거죠.

빌어먹을!

금의 펜타곤 이후, 몰렉 가문은 한순간에 웃음거리가 되었다.

사교계에서도 무시당했고, 자신들을 따르던 귀족들이나 가주들도 은근슬쩍 손절하는 분위기였다.

하물며 청의 가주한테도 죄송하다고 다시 받아달라고 사과하러 갔더니, 무슨 취급을 받았는 줄 알아?!

-집안이 망해도 3대는 간다던데, 몰렉 가문은 3년도 못 가겠군.

미친 새끼가 남의 집안에 저주를 내렸다! 그러면 이쪽도 똑같이 저주를 내려주마!

그리고 원래라면, 흑의 펜타곤에서 아이작에게 저주를 내릴 심산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이곳저곳에서 공작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신 뽑기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흑의 펜타곤의 막강한 보상 때문인지, 아니면 가문의 명예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각 가문에서 라이벌들에게 암살자들을 붙이고 있었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물며 성직자 시험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지만, 다른 가문이 먼저 칼날을 드는데 멍청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청한테 손을 댈 수 있을까, 복수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람을 빌려줄 테니, 신 뽑기 전에 아이작 에슈아를 처리해라.

-누, 누구시오.

-너한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걸? 금은 아이작 에슈아가 신을 안 뽑길 바란다. 네가 아이작 에슈아를 처리하면 금에게 점수를 딸 수 있겠지.

그래. 이걸로 복수하자.

상대가 누구인지 감이 잡히는 몰렉 백작은 이죽거렸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아이작의 앞에 나타난 몰렉이었다.

“꼴 좋구나, 아이작 에슈아.”

그러나 정작 몰렉을 본 아이작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뭐야. 뭔데. 네놈이 여기서 나와?

청을 배신하고 금에 붙었다가, 망신만 당하고 사라진 거 아니었나?

아니, 뭐. 딱히 사라지지 않아도 신경도 안 쓰일 놈이지만. 그래도 낌슈리를 괴롭혔던 놈들이니 고통을 받길 바랐지.

하지만 몰렉 백작은 고슴도치가 된 아이작을 보며, 못 볼 걸 본 듯 눈썹을 치켜떴다.

“뭐냐, 이 꼴은.”

…뭘 어떻게 하면 선인장 꼴이 될 수 있지?

그보다 이거, 살아있는 건 맞는 건가?

좀 과하지 않느냐는 시선이었지만, 암살자들은 되레 당황한 눈치였다. 솔직히 자신들도 이렇게까지 꼽을 생각은 없었는데.

-아이고오, 간지럽다! 이것밖에 안 되냐! 명예로운 청의 사람은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아니! 죽어! 진짜 죽는다고!

-됐다. 이 정도면 충분…….

-야. 띠질래? 더 꼽으라고 띱때들아! 청이 이정도로 만족할 것 같아? 어?! 죽기 시르면 뭉텅이로 꽂아!

이 미친 놈이 아예 통으로 꽂으라고 협박을 하네?

멱살을 잡고 협박을 해!

결국 독침 말고, 독을 바른 칼을 뽑아들자 아이작은 언제 협박했냐는 듯 바로 픽 드러누웠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이제야 독약 빨이 듣는거 같구나아.

-…….

정말 듣는 건가 싶었지만, 파랗게 변한 입술을 보니 효과가 있긴 한 듯했다.

“성녀의 자식이라 그런지, 저 정도 꼽고 나서야 효과가 있었습니다.”

“괜히 청의 새끼가 아니라는 건가.”

역시 직계의 핏줄은 무섭다.

“죽일까요?”

“흔적 안 남게 해. 십사육마가 처리한 것처럼 하라고.”

그 말에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독을 흡수하고 있던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으음, 어쩌지. 한참 맛있게 마력을 쪽쪽 빨고 있던 참인데.

‘지금 상황에서 멀쩡하게 일어나도 의심받을 텐데.’

백 프로 이단으로 의심받는다.

[괜찮습니다. 그거 아니어도 이미 인성으로 의심받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마력에 멀쩡한 사제가 있을 리 없잖아?’

[이미 사이비여서 괜찮다니까요? 언제부터 사제노릇을 하셨다고… 컥헉!]

아이작은 닥치라는 듯 위스퍼의 목을 졸랐다.

그런데 그럴 때였다.

“잠깐, 이 자식, 움직이잖아!”

“뭐? 아직도 움직인다고? 이런 미친 놈……!”

암살자들은 질겁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역시 청의 직계 핏줄은 다른 건가. 거기 핏줄은 전부 괴물이잖아.”

“칫, 할 수 없지. 도망쳐도 곤란해.”

아이작은 바로 그거라는 듯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니까 포기하고 어서 독침이나 더 꽂…….

“다리를 자르는 수밖에.”

…시벌 놈들이? 뭐가 어째?!

새끼들아, 독을 꽂으라고! 죄 없는 다리는 냅두고!

“몸통을 잡아라. 십사육마의 짓으로 보이려면 몸을 난도질해놔야 해.”

아니! 내 부하 그런 취미 없어! 멍청이들아!

내 부하처럼 하려면 목을 잘라야한다고!

“목도 잘라놓겠습니다.”

아니, 누가 진짜로 자르래!

‘찌발, 독 먹을 시간도 안 주네, 개놈들이.’

결국 목숨의 위험을 느낀 아이작이 할 수 없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푸학!

“크악!”

“!”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복면을 쓴 남녀 2인조였다.

그리고 남자 쪽이 서늘한 눈을 번뜩이며 검을 휘둘렀다.

콰직!

상당한 실력. 아니, 그 말로는 부족하다.

궤적을 그리는 검술은 마치 바람의 칼날과 같았다. 하물며 성기사의 검법이라고 하기엔 지키기보단 살법에 가까운 검법.

순식간에 아이작을 노리던 암살자들이 정리 되었다. 그 모습에 몰렉은 당황한 듯 뒷걸음을 쳤다.

“뭐, 뭐야!”

암살자들이 쓰러진 것도 당황스럽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남자의 칼날이었다. 칼날에 맺혀 있는 기운은 성력이 아닌, 기력.

몰렉의 얼굴이 일그러질 만했다.

‘소드마스터?’

신의 힘을 받아쓰는 성기사와 달리, 스스로의 오라를 발산하는 검사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검기를 발산하는 활기의 단계의 이들을 최고로 쳐준다.

동시에 몰렉이 도망치려고 하자, 검사가 검날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실처럼 일렁이기 시작하는 검기.

파직!

보랏빛의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강력한 번개가 몰렉의 앞에 내리 찍혔다.

쾅!

“아악!”

아이작은 눈을 끔뻑거렸다.

‘마법?’

[주인님과 비교하면 한참 애송이지만, 꽤 실력이 좋군요.]

누구지?

그리고 아이작과 같은 생각인지, 주저앉은 몰렉이 외쳤다.

“젠장, 흑께서는 이런 말 없었는데! 도대체 무슨……!”

그 말에 남자는 무슨 연유인지 헛웃음을 흘렸다.

“흑? 그래, 그리된 거군. 왜 답지 않게 그런 과제를 내나 했더니. 이것도 흑의 추기경이 사주한 것이었어.”

곧 남자가 검을 들고 몰렉에게 다가가자, 몰렉이 눈을 부릅떴다.

“네놈! 내가 누구인 줄은 아느냐? 귀족에게 손을 대면 단근형(斷筋刑)에 처해지는 걸 모르느냐?!”

그 말에 멈춰선 흑발의 남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귀족?”

그건 분명 조소였다. 그러한 남자의 황금 눈과 마주친 몰렉은 몸을 떨었다.

아이작도 그제야 남자의 정체를 눈치챘다. 복면을 쓰고 있어서 확신하지 못했는데, 저 새끼, 저거. 설마?

‘황태자였냐!’

그럼 함께 있는 저 흑발의 여자는 누구지? 사용인으로 보이진 않는데, 황실에 저런 머리 색의 사람이 또 있었나?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흑발의 남자가 몰렉을 베어냈다.

콰직!

“으악!”

피가 거칠게 튀겼다.

손목이 베인 몰렉이 비명을 지르면서 문 쪽으로 도망을 쳤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몰렉은 문으로 들어온 누군가와 부딪쳤다.

퍽!

“젠장, 어떤 놈이 길을……!”

곧 부딪친 게 누군지 눈치챈 몰렉의 얼굴이 밝아졌다.

“키나 공자!”

그는 살았다고 생각했다. 아직 몰렉 가문은 베리트 가문과 이어져 있었다.

“저 좀 살려주십시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드릴 테니……”

그러나 그 순간이었다.

쾅!

“으악!”

몰렉의 옆에 있던 벽이 강력한 성력에 터져나갔다. 그 광경에 몰렉 백작은 얼어붙었다.

“도대체 무슨……!”

몰렉 백작은 뭐라고 항의하려 했지만, 서늘한 목소리가 목에 닿았다.

“한 발자국 더 움직이면 죽을 거요, 백작.”

“키, 키나 공자?!”

금빛의 성력을 뿜고 있는 키나는 살벌한 눈으로 몰렉 백작을 노려보고 있었다.

몰렉 백작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자신한테 죽을 거라고 했어? 이 어린놈이?

“이게 무슨 협박입니까! 이 사실을 아버님께 말씀드리면……!”

“됐으니-”

키나는 당황하는 몰렉 백작의 귀에 읊조렸다.

“저 아이를 건들면 나한테 뒤진다.”

“……!”

키나는 십사육마의 기운을 쫓아서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작의 모습을 보아하니, 대충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됐다.

뭐, 보나마나 ‘신 뽑기’ 전에 벌어지는 공작이겠지.

이번 해에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공작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높은 확률로 흑이겠지만.’

흑(黑)은 마를 없애기 위해, 마의 시체까지 이용하는 신앙. 하물며 흑의 수장은 그 악명 높은 북부공작이었다.

그들은 지독할 정도로 폐쇄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혈인들인 만큼, 펜타곤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진 않다만.

‘거기에 아이작이 얽혀버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키나에게 있어 아이작은 유일하게 자신과 견줄 수 있는 사제였다. 하물며 교황의 기술까지 알고 있는 녀석을, 골로 보낸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러나 키나의 반응에 몰렉은 예상 밖이라는 듯, 도리어 당황했다.

이 꼬마가 정녕 미쳤나? 설마하니 교황의 손자가 청의 손자를 감쌀 줄은 몰랐는데!

“미쳤습니까? 나한테 어찌! 아니, 그전에 정신 차리십시오! 아이작 에슈아가 어떤 신을 뽑을지 알고는 있는 겁니까?! 교황 성하께서 불리해지신다고요! 처리해야 합니다!”

그 말에 아이작의 귀가 쫑긋 섰다.

잠깐만.

이걸 여기서 이렇게 듣는다고?

빌어먹을 고엘이 끝까지 말을 않고 튀어서 어떻게 불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나저나 교황한테 불리해진다니, 이건 또 무슨 깜찍한 소리야?

“금의 신이라고요! 이게 말이나 됩니까?”

심지어 금의 신이란다!

아이작이 히죽거리면서 슬금슬금 애벌레처럼 기어갔다.

키나는 2인조에게 다가갔다.

“암행 중이신 것 같으니 따로 예는 차리지 않겠습니다만, 시종들이 주인 때문에 속 좀 썩고 있겠습니다.”

황태자가 황궁에서 뭘 기어나오냐는 의미다.

“하물며 황녀님까지 끌고 나오시고요.”

교황청과 황실은 사이가 극악으로 나쁘다. 서로가 서로를 없애려고 할 만큼.

차기 수장들로 내세워지는 그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지금도 서로가 아이작을 데려가려는 입장이니, 사이가 더 안 좋을 수밖에.

그러나 황태자는 무시했다.

“지금은 다친 공자를 데려가는 게 먼저다. 황실로 데려간다.”

“황실은 무슨. 교황청으로 데려갑니다.”

그러자 황녀가 끼어들었다.

“황실도, 교황청도 안 될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을 것도 없었다.

“뭐야, 얘 또 어디 갔어?!”

그리고 슬금슬금 사라졌던 아이작은 도망치는 몰렉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금의 신이라니. 어떤 신인데? 더 자세하게 말해줘봐.”

“이놈이 진짜 미쳤나!”

몰렉은 이제 아이작의 처리고 자시고,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이작이 놓아주질 않았다.

독침을 잔뜩 꽂고 자신에게 웃으면서 들러붙는 게 솔직히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백작님, 그래서 누구냐고. 어? 금의 주신이면 재물의 신인가? 어? 그런 거야?”

“주신이라고 한 적 없거든! 그보다 저리 가라! 내 가신들이 네놈을 가만둘 것 같으냐!”

“뭐, 할 수 있음 해보든가.”

“뭐?”

갑자기 멈춘 아이작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백작님 이러지 마세요! 아이작이 잘못했어요! 끌고 가지 마세요!”

몰렉 백작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얘가 갑자기 왜 이래?

“이게 미쳤나……!”

그런데 그때였다.

몰렉 백작은 멀지 않은 곳에서 살의를 느꼈다.

릴라이와 청의 가주가, 괴물과 같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세상에, 납치라니!’

아이작 납치 될 뻔했다는 사실에, 일라이와 릴라이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애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요! 얼마나 괴로우면 애가 실신을 합니까!”

아니, 내 보기엔 실신이 아니라 좋아서 승천한 것으로 보인다만.

고엘은 흐흐흐흐 웃고 있는 아이작을 떠올리며 땀을 삐질 흘렸다. 독침을 고슴도치처럼 꽂고 흐흐흐 웃는 모습은 괴이한 걸 떠나서 무서울 지경이었지.

그리고 몰렉을 끌고 오던 릴라이와 아버지는 이 세상의 얼굴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릴라이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설마 흑의 추기경까지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아이작이 악신을 뽑을지언정 납치 조장이라니요. 아무리 신앙심이 글러먹어도 그렇지.”

결국 그쯤 되자, 청의 가주는 혀를 찼다.

“아이작은 내일 있을 신 뽑기에 못나가게 해라.”

“예?!”

기겁한 건 다름 아닌 고엘이었다.

“그딴 것 때문에 이 사달이 나야겠느냐. 못 나가게 해.”

그러자 참다 못한 고엘이 악에 받쳐 외쳤다.

“최고신입니다.”

“뭐?”

“아씨, 최고신이라고요! 신앙심이고 자시고, 상관 없으니까 나가게 하시라고요! 진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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