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8화 (118/272)

제118화. 아, 최고라고요! (2)

문장을 보는 아이작은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래. 보고 또 봐도 이 문장은…….

[최고신이군요.]

“으아악!”

아이작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신의 문장? 신 뽑기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공부했기 때문에, 아이작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 모를 수가 없지!

내가 그렇게! 재물신을 뽑으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재물신이 좋아할 것들을 야금야금 모아 재물신 취향으로 방도 꾸미고! 행동도 바꾸고! 제사도 지내고, 막 어? 재물신이 좋아할 걸 쌓아놓고 공부해놨는데! 어?!

‘청의 펜타곤 때도 일부러 재물신을 뽑으려고 재물에 미친 척을……!’

[그건 본심이잖아요.]

안 닥쳐!?

아무튼 주변의 눈치를 보며 직접 돈을 수급하는 것도 빡치고 귀찮던 참이었다. 재물신을 뽑으면 배짱이처럼 편하게 돈을 수급하겠지 싶어서 벼르고 있었는데!

“잠깐, 아이작. 너 뭐가 뜬 거야?”

“안 떴어어어!”

아이작은 슈리와 청의 팀이 다가오자 바로 구슬을 숨겼다. 그러고는 쪼그리고 앉아 다시 재물신을 불렀다.

‘지금이라도 안 늦었다.’

최고신? 그딴 놈 필요없다!

[뭐, 최고신은 저도 별로긴 하네요]

‘넌 그냥 신이면 다 싫은 거잖아.’

물론 아이작도 신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전부 싫었다.

그리고 최고신?

‘재수없어어어!’

물론 최고신은 무려 신들의 왕이라 불리는 놈이었다.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의미다. 신들조차도 그 존재를 경외시했다.

하지만 모습은 드러내는 법이 없어 상급신들조차도 얼굴을 모르는 존재였다. 신계의 일에도 개입을 전혀 안 하고, 그냥 잠만 처잘 뿐인 신.

아무튼 돈에 눈이 먼 아이작이 눈을 번뜩였다.

‘우리 예쁘고 귀여운 재물신 이리와!’

그 바람이 통했는지 구슬에 재물신 문양이 다시 돌아왔다.

그 모습에 아이작의 입꼬리가 헤벌쭉 올라갔다.

좋아! 그렇지! 그래!

상급신들에 비하면 한없이 약하지만, 알 게 뭐란 말인가! 자고로 돈이 최고지!

그래…! 재물신아! 우리 친구 하자…….

팟!

재물신의 문양이 또 바뀌었다.

그리고 마치 비키라는 듯 재물신을 밀어내고 모습을 드러낸 건…….

[또 최고신이네요.]

“…….”

빡친 아이작은 구슬을 박살 내려고 했다. 그 광경에 기겁한 슈리가 급하게 몸을 날려 아이작을 붙잡았다.

“아이작!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붙잡힌 아이작은 입에서 불을 뿜어낼 기세였다.

“신 뽑기 다 필요 없어. 찌발!”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신인데 그래!”

슈리가 아이작이 든 구슬을 확인하려 했지만, 아이작은 냅다 구슬을 치웠다. 그래서 청의 팀에게 대신 확인하라고 시켰지만-

“아악! 입에 넣지 마!”

“먹으면 안 돼!”

보여주기 싫은지, 아이작이 구슬을 입에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입에 넣다 못해 꿀꺽 삼키려고 하자, 슈리와 청의 팀이 기겁을 하며 빼내려 했다.

“갓난아기 때 버릇 또 나왔냐!”

“해골왕 뼈로 충분하잖아!”

하지만 그 광경에 웃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적의 사제들과 금의 사제들이었다.

금은 저놈이 좋은 신을 뽑을 리 없다는 웃음이었지만, 특히 적의 사제들은 확신의 웃음마저 지었다.

‘저렇게나 보여주기 싫어하는 걸 보면 악신이 틀림없다.’

“빼앗아와!”

“서둘러 내용물을 확인해라!”

적의 사제들이 다가오자, 슈리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이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이 잡힌 것이었다.

하다못해 아이작이라도 상태가 멀쩡하면 걱정이라도 안 하지!

‘천하의 아이작이 저런 반응이라니……!’

솔직히 믿기 힘들다.

당당하다 못해 틈만 나면 배 째라는 놈이, 저리 필사적으로 뭔가를 숨기려는 건 처음 봤다.

‘도대체 어떤 악신이 뽑혔길래!’

결국 슈리가 초콜릿을 흔들어가며 아이작의 입에서 구슬을 빼냈을 때, 적의 사제들이 가까워졌다.

“구슬을 보여주시죠. 공자.”

“켕기는 게 없으면 보여주는 게 좋을 겁니다.”

“말해두지만 거부권은 없습니다.”

적의 사제들이 위협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X 까라는 듯, 재빨리 구슬을 의식장 안 연못에 던져버렸다.

풍덩!

“아!”

깊은 연못에 빠지자 모두가 경악하며 연못으로 달려갔다.

청의 팀과 슈리도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얼마나 심각한 신이면 연못에 버릴 정도야?!

‘아니, 오히려 잘됐어. 이거면 계약은 못하더라도, 저놈들도 아이작이 뭘 뽑았는지 알 수 없게 되니…….’

“소용없다!”

“!”

그때, 붉은 물체가 연못에 뛰어들었다.

풍덩!

나이저였다. 그러자 당황한 적의 사제들도 급히 겉옷을 벗었다.

“도련님!”

“따라가!”

“반드시 찾아야 한다!”

물속에 들어간 나이저는 눈을 부릅떴다. 이깟 물속에서 물건을 찾는 일 따위, 신체가 발달한 적의 후계자한테는 일도 아니다.

-<분간의 눈>

나이저의 눈에서 빛이 나며, 그의 시야가 바뀌었다. 바닥에 빛의 선들이 생기면서 물속에서도 형태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는 곧 동그란 모양의 구슬을 찾아내곤 입꼬리를 히죽 올렸다.

‘찾았다!’

그걸 단숨에 끄집어낸 나이저는 입과 가슴이 근질거렸다.

아이작이 왜 죽어도 결과를 안 보여주려고 했겠는가!

‘역시 신은 잘못되지 않았어!’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지금 이 손에, 이 품에 있었다!

마침내 나이저의 얼굴이 수면 위로 솟구쳐 나왔다.

“확보했다!”

나이저가 구슬을 들고 수면 위로 걸어나오자 청의 팀의 얼굴은 창백해졌고, 다른 쪽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나이저는 구슬을 높이 들며 보란 듯이 외쳤다.

“자, 봐라! 아이작 에슈아가 뽑은 신을! 어때, 내 말이 맞지? 악신이지?”

“오오!”

“자, 어서 저놈을 끌고가라! 저 새끼가 악신을 뽑았…….”

그런데 주변의 반응이 이상했다.

환호하며 움직여야 하는 적의 사제들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아니, 움직이기는커녕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들이…….

“…다들 표정이 왜 그러냐?”

모든 사제들의 시선이 나이저가 들고 있는 구슬로 쏠려 있었다.

아이작의 이름이 적힌 구슬이 빛을 냈다.

그래. 그러니까 아이작이 뽑은 신의 문장이…….

“…잠깐.”

“저거… 최고신의 문장 아냐?”

뭐?

…뭐?!

당황한 나이저가 구슬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최고신의 문장을 확인한 나이저의 얼굴이 바짝 얼어붙었다.

얼핏 악신의 문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격이 다른 유일한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모든 신들의 신이라고 불리는…….

“최고신?!”

그 말에 청의 팀에게 들려 있는 아이작은 민물장어처럼 펄떡펄떡 날뛰며 발작했다.

“으으읍! 으읍! 아니야, 찌발!”

“맞는데?”

“으으읍! 아니거든! 째물신이거드은!”

슈리는 땀을 삐질 흘렸다.

…재물신은 개뿔이! 어떻게 봐도 재물신 문양하고 다르잖아!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작이 정말 최고신을 뽑은 거냐?”

신을 뽑는 의식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지금 청이 최고신을 뽑은 거야?”

실실 웃으며 찾아왔던 적의 사제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물며 금의 사제들은 난데 없이 얻어맞은 얼굴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최고신이면 청의 신도 아니고 금의 신이 아닌가!

나이저는 입을 뻐끔거렸다.

“아니… 씨. 뭐라고? 저 신앙심으로 뭘 뽑아?!”

하물며 역대 추기경들과 교황도 뽑지 못한 금의 신! 단체로 멘붕이 올 만했다.

‘최고신이라니, 역사에 단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었던……!’

슈리는 곧바로 금의 추기경을 살폈다.

베리트 추기경은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어딜 봐도 X 됐다는 표정이다.

‘아까부터 아이작을 보며 뭔가 주문을 읊고 있다 싶더니……!’

설마 이것을 막으려고 했던 건가?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미꾸라지처럼 펄떡이며 성질을 내는 중이었다.

“으와아악! 다시 해! 최고신 필요 없어!”

그쯤 되니, 슈리는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다.

악신이라도 뽑은 줄 알았더니. 지금 최고신을 뽑아놓고 재물신이 안 나왔다고 저러는 거였나?

‘아니, 뭐. 재물신도 좋긴 하지만…….’

급이 전혀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중급신하고 최고신하고 비교가 된다고 보는 건가?’

뭐… 본인은 누가 뭐래도 재물신이 최고인 듯하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저 새끼. 착용하고 있는 도구가 죄다 재물신의 물품이었네…….”

“저 돈에 환장한 놈…. 누가 저걸 청이라고 생각하겠냐.”

청의 팀은 한숨을 쉬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지금 중요한 건 아이작의 괴팍한 취향이 아니었다.

‘최고신이면 적가 놈들도 그냥은 못 잡아가!’

아니나 다를까.

작심하고 왔던 적의 사제들은 마치 닭 쫓던 개 지붕만 바라보듯 아이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나이저의 표정이 볼만했다.

‘젠장, 이럴 리가 없는데!’

그럴 때였다.

“아! 여기 재물신이 떴다!”

견습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이작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미친 듯이 재물신을 뽑은 견습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마치 먹이를 향해 이빨을 드러낸 치와와 같았다.

“내놔아!!”

“으아아악!”

미친놈 취급받는 건 당연했다.

* * *

황실 서고의 회의실.

“그래서 이 건은 에슈아에서… 각하?”

“풉.”

회의에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비집고 나왔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 귀족들이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올 겨울에는 에슈아가…….”

“푸흡.”

“…각하?”

“푸흐흡.”

결국 그쯤 되자, 귀족들이 포기한 듯 청의 가주 일라이를 보았다.

“각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십니다.”

일라이는 푸흡, 푸흐흡 웃었다.

황제와 귀족들이 회의장이었지만, 일라이의 입꼬리는 회의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전혀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다른 귀족들로서는 그야말로 두 눈을 의심할 만한 광경이었다. 세상에, 저 칼바람 같은 에슈아 공작이 웃다니!

‘…웃을 수도 있는 양반이었어?’

‘웃는 건 처음 보는군.’

하물며 웃는 이유는 더욱 기가 막히다.

“에슈아 공작께서 손자분 때문에 기분이 좋으신가 봅니다.”

그래! 저리 웃는 게 전부 손자 때문이라니!

저것이 정녕 자손들에게 가차 없던 그 청의 공작이 맞나?

황제도 웃었다.

“들었소, 공작. 손자가 최고신을 뽑았다고.”

“예.”

“제국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도 최고신이 나온 적은 없었는데, 대단하오.”

신하들도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제국에 길운이 깃들려는 징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슈아에서 이런 길조를 가져오다니.”

그러나 신하들의 말을 부정하듯, 누군가가 딱 잘라 말했다.

“그것도 소환을 해야 가능한 일이지.”

“!”

금의 추기경, 히레이 베리트 공작이었다.

“뽑는 건 누구나 가능하다. 소환을 해서 계약까지 할 수 있어야 진짜라고 할 수 있고.”

그 말에 일라이가 푸웁 웃었다.

“누구나 가능해서, 금에서는 한 번도 못 뽑았나 보지?”

빠직.

히레이는 대답 대신 일라이를 힐끗 노려보았다.

그 광경에 황제가 능청스레 웃었다.

“공양제가 있는 가을은 고위 귀족들이 수도에 모이는 계절이 아닌가. 모처럼 경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좋은 소식이 생기니 짐도 기분이 좋군.”

…청한테만 좋은 거겠지. 빌어먹을!

히레이는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좁혔다.

‘청이 최고신이라니.’

덕분에 지금 모든 사제들이 발칵 뒤집혔다.

-청은 몰락했다지 않았습니까?

-아니, 타락했다고…….

-최고신이라니! 키나 님이 뽑아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걸 아이작이 뽑았다고요?

-그럼 성자는 아이작이란 소리인가?

생각할수록 일그러지는 히레이의 표정에 황제는 큭 웃었다.

“금도 좋은 신이 걸렸다지 않았소.”

그 말에 히레이의 눈빛이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황제 놈. 지금 시비를 거는 건가?

물론 키나도 좋은 신이다. 문제의 ‘최고신’만 아니면, 키나를 넘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대에 없을 정도로 역대 최고였다.

하지만 그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고.

‘젠장. 재물신이나 뽑아가라고 그렇게 막판에 성법을 써줬거늘.’

결국 최고신이라니.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었다.

신을 뽑고 나면, 이제 그 신과 계약하는 과정이 남았다. 최고신을 뽑은 건 대단하지만, 계약은 쉬운 게 아니었다.

‘분명 체급이 안 될 거다.’

그리고 계약만큼은 막아야 한다.

히레이가 그렇게 눈을 번득이는 만큼, 일라이도 눈을 번득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약을 시켜야 한다.’

뭐, 굳이 자신이 관여하지 않아도 무려 최고신을 뽑았다. 말하지 않아도 어련히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간택받은 신과 잘 계약해내려고 하겠지.

그리고 그 무렵.

슈리는 미친 듯이 책을 보고 있는 아이작을 이상하다는 듯 보고 있었다.

“…아이작. 너 지금 뭐 공부하는 거냐?”

“간택 무효화와아아!!!!”

“…….”

…그래, 뭐. 열심히 해봐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