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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19화 (119/272)

제119화. 아, 최고라고요! (3)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아이작이 최고신을 뽑았다.

그 사실에 성직자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아니, 비단 그들뿐이 아니었다. 귀빈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난리도 아니었다.

-들으셨습니까? 아이작 에슈아가 최고신을 뽑았다고 합니다.

-최고신이라니…! 지금껏 없던 일이 아니오?

-역사가 뒤바뀔 일이군. 신성제국의 차기 지도자는 청에서 나오는 건가!

-그럼 그분이 교황이 되시는 건가요?

타국인들은 아이작에게 연줄을 둬야 하는게 아니냐며 술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적과 금으로서는 뒷목을 잡을 수밖에.

‘신 뽑기가 어떤 행사인가!’

견습이 신과 계약해 한 사람 분의 성직자로서 나아가게 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즉, 뽑는 신에 따라 앞길도, 정세도 바뀐다는 의미다.

그리고 다른 신앙들도 크게 놀라는 눈치였지만, 무엇보다 적과 금은 놀라다 못해 멘붕 상태에 빠졌다.

특히 금이 그랬다.

“이 미친……!”

“하필 왜 청이……!”

가만히 있다가 난데없이 뒷통수를 맞은 격이 아닌가.

원래 그들은 키나가 뽑은 신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금의 명예를 드높일 생각이었다. 키나가 뽑은 신 정도면 타국의 귀빈들과도 유리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고 말이다. 모두가 금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었다.

하지만 최고신 앞에서는 그것도 빛이 바랜다.

‘뭐, 원래도 가끔 다른 사제가 금의 신을 뽑는 경우는 있었지만.’

물론 그 경우엔 따로 거래해 신을 양도받았다.

하지만 최고신?

‘빌어먹을, 그만한 걸 잘도 양도하겠다!’

하필 눈엣가시 청한테 그게 들어가다니!

“각하께서는 아무런 조치를 안 하셨던 거냐?!”

“그게…….”

보고하는 이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듣자 하니, 금의 추기경도 끝까지 손을 안 쓴 건 아닌 모양이었다.

“재물신이 아이작 공자한테 향하려 하길래 그 신을 붙여주려고 하셨다는데…….”

“그런데도 최고신이 떴다고……?”

“예. 더 강한 힘이 재물신을 밀어냈다고 합니다.”

금의 사제들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설마 그 정도로 최고신이 그놈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는 건가?’

이건 도대체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어떻게 떴느냐가 아니다.

“아무튼 계약만큼은 못 하게 해야 한다.”

“맞습니다. 청이 한순간에 치고 올라가 금의 머리에 앉으려 할 겁니다.”

“그래도 신 뽑기 다음에 ‘신 소환’의 단계가 있으니 다행이죠.”

‘신 소환’은 뽑은 신을 소환해 계약하는 마지막 단계였다. 신을 소환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환할 때의 체력, 능력. 모든 것이 중요했다. 학교에 지망한다고 할 때, 지원 자격이 생기는 것과 실제로 합격하는 건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견습들은 소환 성공률을 올리기 위해서 해당 신과 관련된 물품을 소지했다.

그 말이 무슨 의미냐?

‘최고신 뽑으려면 최고신과 관련된 물품을 쥐어야 한단 거지.’

그랬기에 그들은 말했다.

“최고신과 연관된 물품에 ‘안식 성법’을 걸어놔라.”

“!”

안식 성법.

말이 안식이지, 실제로는 긴장을 풀고 쓰러지도록 저주를 걸라는 의미다.

“최고신을 소환하려 할 때 쓰러지도록.”

사제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그,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겁니까?”

“더러운 청이 최고신을 뽑는 일이야말로 더 위험한 일이다. 알겠느냐? 이건 대의를 위한 것이다.”

“예!”

“보나 마나 최고신을 뽑겠다고 지랄하겠지.”

“예, 맞습니다. 아무리 재물신이 좋아도 최고신보다는 못하니까요.”

“최고신이 왜 최고신이겠습니까. 모든 신들을 아우르는 존재가 아니십니까. 최고신만 있으면 차기 교황 자리도 노릴 수 있을 테죠.”

“그리고 최고신을 뽑겠다는 욕심이 제 목을 죄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그 무렵, 정작 장본인은…….

“재물신 뽑을 거얅!!”

재물신을 뽑겠다고 지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슈리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나참, 재물신이라니.’

“최고신을 뽑아놓고 그걸 싫다고 하는 놈은 처음이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슈리의 구슬을 노렸다.

“이야 낌슈리. 네가 뽑은 신, 참 좋아보인다? 그거 내놔.”

심지어 남의 신을 강탈하려는 놈이라니, 더더욱 처음 보네!

“왜. 낌슈리, 너 청의 주신 뽑았짜나. 빛의 신이라며? 완전 좋네. 빛의 신이면 반짝이는 것도 잘 찾겠지? 그렇지? 황금도 잘 찾아내겠지?”

“이 미친놈아! 빛의 신은 그런 분이 아니거든!”

“캬, 우리 낌슈리 떼돈 벌겠네. 청의 주신이면 차기 청의 가주 확정이네. 그러니까 나랑 바꾸자.”

아오! 이 미친 새끼!

아이작이 슈리의 구슬을 빼앗아가려 하자, 슈리는 필사적으로 구슬을 지키며 외쳤다.

“최고신을 뽑아놓고 왜 나한테 그래! 다들 부러워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어디 그뿐인가?

“최고신한테 벌써 선물이 왔잖아!”

슈리는 쓰레기장에 있는 포션병을 가리키며 핏대를 세웠다.

흔한 일은 아닌데, 신들은 가끔 친애하는 사제들에게 선물을 내렸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사제가 신을 위한 공을 쌓으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신이 보낸 종이가 교황청이나 각 신앙의 신전에 내려왔다.

그걸 받은 관리관이 해당 사제에게 물품으로 바꿔주는 방식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작의 경우에는 완전히 달랐다.

‘세상에, 공을 쌓은 것도 없는데 신이 물품을 내려주다니! 이게 말이나 되냐고!’

그것도 아이작에게 직접 떨어진 것이다! 최고신의 문장이 새겨진 포션이! 그래서 모두가 기겁을 했지.

하지만 정작 선물을 받은 아이작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저깟 체력 포션 필요 없거든?”

뭐어?! 필요 없어?

“최고신의 축복인데, 왜!”

“축복이 뭐. 밥 먹여줘?”

“먹여주지! 저것만 있어도 최고신을 소환하는데 지장이 없는 거 몰라? 보통은 급이 높은 신을 소환하다가 피 토하고 쓰러진다고! 최고신 안 뽑을 거냐!”

“허.”

허. 뭐, 그래. 최고신 좋지. 원한이 있으면 간택도 안 했을 테니, 나쁘진 않겠지.

하지만 의도도, 목적도 모르겠고. 어떤 신인지 감도 안 잡힌다.

‘저런 걸 준다고 내가 계약할 것 같아? 내가 얼마나 신중한 사람인데.’

[그냥 최고신의 보물을 훔치려다가 튀어서 그렇잖아요.]

안 닥쳐?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것뿐이면서… 꾸엑!]

아이작이 위스퍼의 목을 조를 때, 슈리가 한숨을 쉬었다.

“뭐, 네 의견은 존중하는데. 싫어도 상급신은 뽑아두는 게 좋을 거야.”

“뭐?”

“적이 벼르고 있다고. 적의 신을 소환해서 널 잡아가려고.”

슈리는 현재 상황을 알긴 아느냐며 이마를 짚었다.

“적의 신들은 전통적으로 적의 후계자들만 뽑을 수 있는데, 진짜 미치도록 세. 전투력도, 공격력도 최상급이야.”

“청이나 금의 신보다도?”

“특기가 다른 거지만, 아무튼 적의 후계만 뽑을 수 있는 신인 만큼 미치도록 세. 같은 상급신이 아니면 절대 당해내지 못한다.”

한마디로 나이저가 적의 신을 소환한 그 순간, 아이작은 신에게 공격을 받아 죽을 수도 있단 말이다.

‘아니, 거의 백 프로 죽는다.’

적의 신들은 대다수가 벌을 관장하는 상급신들이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몰라도 신이 소환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즉벌.’

아이작의 신앙심을 본 순간 바로 번개로 지져서 죽여버리겠지. 만약 상급신 수준의 방어가 없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는다.

적의 신들은 그만한 신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선 솔직히 최고신한테 간택받은 것도 기적이야!”

“기적? 내가 뭐 어때서?”

“뭐가 어때서어? 야! 니 적합성을 다시 보고 말하지 그래?!”

슈리는 바닥에 깔린 종이들을 탁탁 내리쳤다.

아이작과 슈리의 주변에는 스크롤 용지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 종이들은 특별한 테스트 용지로, 신들과의 적합도를 알아보는 용도였다.

“네놈이 최고신이 싫다고 해서 귀한 테스트 용지까지 구해다 줬는데! 결과가 죄다 이 모양 이 꼴이잖아!”

빛의 신, 형벌의 신, 풍요의 신, 사랑의 신 등등. 온갖 신들과의 적합도를 테스트해봤다.

그리고 그 결과?

말해서 뭐 하겠는가.

“내가 살다 살다 적합도가 전부 0%가 뜨는 건 처음 봤다! 어떻게 천 명의 신 중에서 단 한 명도 0% 이상이 없을 수가 있냐!”

“아, 왜! 다른 신들로 더 해보면 뜰 수도 있지!”

“니 새끼 신앙심으로 더 해보는게 의미가 있을 것 같냐!”

물론 딱 한명은 달랐지만.

-[최고신]

-적합도 : ∞(무한)

그러니 미칠 수밖에.

‘진짜 이 정도로 극과 극인 놈은 처음 봤다!’

“아무튼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최고신을 소환해라! 상급신이 아니면 나이저가 소환한 신한테 저항 못 해!”

“낌쓔리 너도 상급신이자나. 네 거 내놓으면 되겠네.”

“우이씨!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아무튼 다들 아이작이 최고신을 뽑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신과의 계약은 성직자로서 필수였다. 좋은 신하고 계약만 한다면 더없이 좋지만, 과연 마왕과 상성이 좋을 신이 있을까?

미래를 위해서라도 상급신 하나는 포섭해두는 게 좋은데.

‘아. 어디 상급신이면서 내 말 잘 들을 놈 없나.’

[일단 저라면 절대 주인님은 안 고르죠.]

위스퍼는 한 대 얻어맞았다.

* * *

일주일 뒤.

소환식은 그 어느 때보다도 떠들썩했다.

“최고신이라며? 최고신을 진짜 보게 되는 거야?”

“야, 장난해? 뽑는 거랑 소환은 다른 거야. 그만한 걸 어떻게 소환해?”

“하긴, 상급신을 뽑아도 정작 소환을 못해서 그냥 다른 신이랑 계약한 경우가 더 많았지.”

“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아이작 에슈아 신앙심 소문 못 들었어?”

“적의 주신을 소환한대! 아이작 에슈아를 거기서 처형할 건가 봐.”

여러가지 볼거리로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소환식을 준비하는 적의 팀은 괜찮냐는 듯 나이저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저는 큭 비웃었다.

“저놈이 무슨 꼼수를 썼는지 몰라도, 이젠 안 통해.”

“!”

안 그래도 나이저는 적의 신전에서 적의 신들께 아이작의 심판을 요청해둔 상태였다. 아이작의 이야기를 들은 신들은 분노했다.

-형법의 신의 석상을 깨트렸을 뿐 아니라, 신의 사자까지 이단으로 몰고 가다니.

-우리를 소환하라. 그 악마의 아이의 영혼을 직접 확인하고 조사하여 처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그 글귀를 확인한 나이저는 승리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쟤는 소환식에서 처형당할 거야.”

그 선전포고에 청의 팀과 슈리가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

아이작의 앞에 금의 추기경이 나타났다.

“넌 최고신을 소환하기엔 너무 어려. 적의 신을 감당할 수 없을 테지.”

베리트 추기경의 말에 아이작은 눈썹을 치켜떴다. 이놈은 시비를 걸러 온 건가?

하지만 베리트 추기경은 뜻밖의 말을 했다.

“최고신을 소환하게 도와주마.”

“……?!”

뭐? 최고신을 소환하는 일에 협조한다고?

슈리와 에슈아 일가는 뭔 생각이냐는 듯 그를 바라보았지만, 금의 추기경은 눈을 번득였다.

“대신, 소환한 뒤에 금에게 양도해라. 그럼 재물신으로 바꿔주마.”

“!”

금의 목적을 눈치챈 청의 가주와 릴라이는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들이 그럼 그렇지.

곧 릴라이가 나섰다.

“그런 조건을 제시하셔도…….”

“가지고 싶어 했지? 재물신 중에서도 최고로 좋은 놈으로 주마.”

그 말에 에슈아 일가와 청의 팀은 헛웃음을 흘렸다.

‘새끼들이 적당히 해야지. 최고신하고 재물신하고 바꾸는 게 가능할 것 같은가?’

아니나 다를까, 릴라이가 베리트 추기경을 보며 자신 있게 웃었다.

“각하께서는 최고신께서 지금 얼마나 아이작한테 잘해주고 계신지 모르시나 보군요. 양도 자체가 불가능할 겁니다.”

“글쎄, 그거야 본인 의사에 달렸지.”

“아이작이 넘겨줄 것 같…….”

“드리죠, 뭐.”

…뭐?

“까짓거, 양도해 드릴게요. 대신 재물신 주셔야 해요.”

야, 이놈아!!

슈리는 기겁하듯 아이작을 보았다.

하지만 릴라이와 청의 가주는 짐작했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뭐, 됐다.”

사실 그들로서는 아이작이 누구와 계약하든 상관없었다. 솔직히 아이작이 신하고 계약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악신을 안 뽑은 게 어디냐.

‘신의 모습이기만 해도 감지덕지다.’

중요한 건 나이저보다 먼저 신을 소환하는 일이었다. 어쨌든 상급신을 소환하기만 하면, 적의 신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어차피 나이저의 소환 순서는 아이작보다 뒤였다.

‘충분히 방어할 수 있…….’

그런데 그때였다.

“가주님. 큰일입니다. 소환식의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청의 기사의 보고에 모두가 놀랐다.

“순서가 바뀌다니!”

“나이저 공자가 아이작 도련님보다 앞입니다.”

쌍욕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드물게 당황한 고엘이 외쳤다.

“누가 바꿨는데!”

“흑…의 추기경께서요. 아무래도 적의 추기경이 뇌물을 먹였나 봅니다.”

청의 가주의 입술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그 씹새가. 지금 성직자가 뇌물을 받아 처먹어?”

“진짜 거지같이 구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들들이 한마음이 되어 욕을 하자, 청의 가주가 목을 까닥거렸다.

“릴라이.”

“예! 항의를 하고 오겠…….”

“우리도 뇌물 처먹여.”

“……?!”

아버지이?

청이 그래도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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