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상황 파악을 하시죠? (1)
[아니, 친구라니요! 진짜 친구 맞습니까?!]
‘응, 맞아.’
[아니, 친구라면서 X 되게 한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응. 말 돼.’
위스퍼는 황당하다는 반응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사람들은 감탄을 보냈다. 아이작에게 깃든 빛은 여타 신들과는 비교도 안 될만큼 신성했기 때문이다.
“정말 최고신을 소환했어!”
“저 헤일로(halo)는 최고신의 문양이 아닌가!”
소환한 신을 알아보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단 발현되는 후광도 후광이지만, 몸을 감싸는 특유의 광배(光背)의 문양이 그랬다.
광배는 겹치는 무늬가 없었다. 한마디로 최고신에게 간택받았다는 게 소문이나 거짓이 아니란 의미다. 구경 온 사제들이 놀랄 만도 했다.
견식 있는 장로급 주교들과 선배 사제들의 얼굴 표정이 첨예하게 비교되었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저 아이는 대체 뭐지?”
‘…젠장, 진짜 뽑았어!’
“아직 전부 소환된 게 아니지만, 역사에 기록이 되겠군!”
‘…시벌, 저거 진짜 선배들도 두들겨 패겠네!’
청의 사제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입니다. 이걸로 적의 심문에서 벗어나겠어요.”
“아니. 그걸론 안 돼. 아직 소환이 다 안 됐어! 헤일로가 완성되지 않았잖아! 아직 투명해!”
“나이저가 더 빨라!”
아니나 다를까, 붉은색 헤일로를 완성한 나이저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형법의 신은 소환식장의 천장에서 빛의 모습을 드러냈다.
장발에 깐깐해 보이는 젊은 남신이었는데, 약간의 탈선과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법관 같았다.
형법의 신은 아이작을 스윽 보았다.
-저것인가. 해골왕의 뼈를 먹었다는 놈이.
귀에 전해지는 목소리에 나이저는 눈을 부릅떴다.
“예! 신앙심도 이단 수준이 떴습니다. 부디 검사를!”
-검사할 필요도 없다. 저건 신앙심이 없다.
그 말에 나이저는 주먹을 꽉 쥐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위안이라도 얻은 듯한 얼굴이었다.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어디 그뿐인가. 형법의 신은 몹시 화가 난 듯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아이작이 풍기는 기운 때문이다.
-하필 버러지 같은 해골왕의 사악한 기운을 풀풀 풍기고 있군. 아니, 애초에 그 힘을 쓰고 있어.
나이저는 움찔했다.
‘해골왕의 힘을 쓰고 있다고?’
그러나 곧 형법의 신이 소환식장에 있는 모든 사제들에게 고했다.
-너희에게 실망이구나. 저런 놈을 신들의 안방에 풀어놓다니.
“……!”
에슈아 일가의 얼굴이 굳었다.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형벌의 신을 부를 것도 없다. 너는 즉각 처형이다.
형법의 신의 손가락이 올라갔다.
그 모습에 에슈아 일가가 벌떡 일어났다.
‘안 돼! 아이작의 신앙심을 눈치채셨다!’
‘적의 신은 형법의 신임과 동시에 즉벌의 신, 이 자리에서 처형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었다.
‘청의 신의 힘을 이용해 막아보는 수밖에!’
물론 신에게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이저를 쓰러트리면, 신과의 연결도 끊기겠지!
‘기절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릴라이가 성력을 실은 검을 뽑아 들려고 했지만, 적의 성기사들과 주교가 가로막았다.
“신성한 소환식 중에 무슨 짓이시오!”
“소환자가 아닌 자들은 교황 성하의 명으로 의식장에 접근할 수 없다는 걸 모르시오?”
이 새끼들이?
적의 주교가 미소를 지었다.
“뭐,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 만일 저 아이가 처형을 당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
“뭐, 이걸로 청 전체를 조사해봐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마침내, 형법의 신의 손짓과 함께 붉은 구가 생겨났다. 마족 하나는 그냥 단숨에 소멸시킬 성력에, 마력 덩어리인 위스퍼가 경기를 일으켰다.
[으아악! 주인님, 주인님! 뭐 하십니까, 빨리 최고신 소환하십시오!]
‘괜찮아.’
[그래, 괜찮… 뭐라고요?! 제가 죽어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요?]
마침내 붉은 구에서 맹렬한 처형의 빛이 떨어졌다.
[꺄으악!]
위스퍼는 살려달라는 듯 비명을 지르자, 아이작이 눈을 번득였다.
쾅!
처형의 빛이 한순간에 흩어졌다.
아이작이 마력의 힘으로 쳐낸 것이다.
성력이 파훼된 걸 느낀 형법의 신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걸 쳐내?’
물론 본 위력은 아니다.
애초에 신들은 인계에 간섭할 수가 없었다. 힘을 쓰더라도 이런 식으로 소환된 상황에선 소환자의 생명력을 끌어다 쓰게 되는 만큼 힘 조절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조절한다 한들, 인간 애송이쯤이야 확실하게 불태울 수준은 되는데.
‘아주 미세한 수준이지만, 신의 힘을 담았거늘.’
그걸 쳐냈다고?
위스퍼는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주인님. 이런 곳에서 힘을 그렇게 쓰셔도 됩니까!]
‘싫음 뒤지든가. 너 죽고 나면 다른 악마를 소환해야겠네.’
[아니, 제 말은, 더 팍팍 쓰시라는 거였죠!]
‘알았으면 닥치고 힘이나 보태.’
곧 아이작이 눈을 번득였다.
어쨌거나 신이 소환된 이상, 끝은 봐야겠지.
그리고 어차피 견습이 끝날 땐 반드시 신과 계약해야 했다. 계약 없이는 하급 사제 위로 올라갈 수 없으니 말이다.
하물며 신과 연결된 교황을 견제하려면,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 했다.
‘그게 지금이 되었을 뿐!’
동시에 해골왕의 마력인 위스퍼가 맹렬하게 반응했다.
쿠오오오!
쾅!
강력한 마기가 사방으로 퍼지자, 사제들은 숨 막혀 하면서도 당황스러워했다.
“설마 해골왕의 힘이 폭주한 것인가!”
“틀림없습니다! 위대하신 신의 힘과 마주해서 상극인 해골왕의 힘이 반발하는 겁니다!”
신들의 힘은 기본적으로 마를 배척한다. 그러니 당연히 아이작이 먹은 해골왕의 뼈가 살기 위해서 힘을 뿜어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그걸 그렇게 좋게만 생각해 주겠는가.
“청이 해골왕의 힘을 다루고 있는 것이오!”
적의 사제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외쳤다.
“이단이다!”
그 모습에 에슈아 사람들이 눈을 부릅떴다.
‘이 상황을 노렸구나!’
신의 힘과 맞닿으면 아이작이 먹은 해골왕의 뼈가 폭주할 것을 말이다.
저 광경을 보면 아이작이 마기를 다루는 걸로밖에 안 보이겠지. 아이작은 좋든 싫든 끌려가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이에 이를 간 릴라이가 나서려고 하자, 고엘이 황급히 막았다.
“가만있어라, 너까지 이단자로 휘말린다!”
“상관없습니다!”
“릴라이!”
“전 저 아이의 대부입니다! 제 조카아이가 죽는 걸 지켜보란 말씀이십니까!”
그러나 해골왕의 강력한 마력이 그의 앞을 막았다. 마치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는 듯이.
“큭!”
적의 사제들은 또 그걸 보며 좋아했다. 최소한 이 순간만큼은 아이작이 그 누구보다 예뻐 보였다.
‘저걸로 빼도 박도 못 하게 됐다.’
‘역시 악마의 아이!’
‘해골왕의 마력이 나왔으니 신께서도 처형을 생각하셔야 할 터.’
좋다! 저대로 신께서 아이작을 공격하시면 바로 끌고 간다.
그래! 공격하시면 바로……!
‘공격만 하시면……!’
‘자! 공격을…….’
‘공격…….’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의 사제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왜 공격을 안 하시지?’
그들은 당황한 듯 형법의 신을 보았다.
형법의 신의 공격에 맞춰 아이작과 청을 끌고 갈 생각이었는데, 정작 형법의 신은 드물게 당황한 기색이다.
아니, 당황하다 못해 동공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적의 사제들이 일제히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형법의 신이시여?”
소환식이고 나발이고. 청의 신의 힘을 쓰려던 청의 가주조차 미간을 좁혔다.
‘…왜 멈췄지?’
‘나이저의 소환이 잘못됐나?’
하지만 형법의 신의 동공이 티 나지 않게 떨리고 있었다. 마치 뭔가를 눈치챈 얼굴.
아이작은 그 모습에 눈이 초승달이 되었다.
캬, 그렇지! 저 얼굴이야! 저 얼굴을 기다리고 있었어!
뭐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닛! 이 힘이 왜?’, 대충 그렇게 말하는 마음의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구나! 눈알 굴리는 소리까지 들리네, 푸헿!
아이작은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곳에 성직자들만 없었어도 푸핳푸하핳푸헤헤헤 배를 잡고 웃었을 것이다.
‘아, 짜릿해. 짜릿해서 참을 수가 없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형법의 신의 얼굴에서 핏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단순히 뼈 하나 덕분에 쓸 수 있는 힘이라고?’
아니, 그는 안다.
‘이 힘은 해골왕……!’
그 순간 형법의 신이 손을 까닥거렸다. 그러자 의식장에 처형의 빛이 아닌 결계의 빛이 떨어졌다.
쾅!
결계는 다른 모든 이들을 배척하고, 오직 아이작을 혼자만을 감쌌다.
사제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다. 원래는 아이작을 공격하면, 바로 자신들이 데려가려고 했는데.
“신이시여! 어째서!”
이러면 데려갈 수가 없지 않은가!
‘못 도망가게 붙잡으시는 건가?’
하지만 아이작을 결계에 가둔 형법의 신은 곧바로 같은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바로 힘을 발동했다.
그러자 아이작의 발밑에서 빛이 치솟아 올랐다.
쿠궁!
그건 다름 아닌 ‘영혼 탐색’의 힘이었다.
쿠궁!
한 번.
쿠궁!
두 번.
쿠구궁!
세 번……!
…쿠구구궁!
…서른 번.
수십 번이나 빛이 치솟아 오르고 사라지길 반복하자, 아이작이 목을 잡고 고개를 까닥거렸다.
“멘탈 털려서 그렇게 수십 번이나 확인해봤자 바뀌는 건 없을 텐데.”
-…….
형법의 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니, 티 안 나게 얼어붙었다는 쪽이 맞다.
실제로 형법의 신은 제대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저 영혼은 해골왕이 아닌가.’
마력핵에 붙은 영혼의 각인까지 확인하지 않아도 확실했다. 저 영혼의 형태를, 신들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있겠는가!
수백 년 동안 신들의 속을 뒤집어 놓으며 본인들을 위협해온 장본인.
‘해골왕!’
아니, 그래서 이상했다.
벌레 안에 봉인되어 있어야 할 놈이,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봉인이 그사이에 풀린 건가?’
뭐지?
그것도 아니면 저놈이 감옥에서 분신을 보내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건가?
표정 변화 없는 그 얼굴에서 속마음을 전부 캐낸 듯,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응. 니들 봉인 실패했구요.”
결계 안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아이작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왜, 내가 여기 있으니까 이상해?”
-아아 그래. 분신체구나. 분신체야. 부하를 이용해서 분신체를 보냈어.
현실을 부정하는 형법의 신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살법을 발동했다.
-됐으니까, 인간 아이의 몸 그대로 죽어라. 몸은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아무래도 그는 아이작이 이 몸의 주인인 걸 모르는 듯했다.
“어차피 너, 지금 나 못 죽여.”
그는 품속에서 최고신이 보낸 체력 포션을 꺼내 내밀어 보였다. 그 포션에 어린 기운에, 형법의 신이 움찔거리며 살짝 물러났다.
경외스러운 물건을 보는 듯한 그 얼굴에, 아이작은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네가 상급신이긴 하지만, 좀 밑에 있는 놈이잖아. 고작 상급신 나부랭이가 으데 최고신한테 개기려고? 최고신한테 죽고 싶냐?”
-……!
물론 이건 도박에 가까운 협박이다.
‘최고신이라고 해도, 아직 계약한 것도 아니고. 아직 최고신의 목적도 모른다. 그리고 힘을 완전히 다룰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즉, 솔직히 말하면 최고신으로 다른 신들을 협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은 최고신과 계약한 척 으스대는 것뿐.
뭐, 최고신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거긴 하지만.
그러나 형법의 신은 그런 게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지간히도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니, 해골왕이 왜 여기에 있으며. 최고신은 왜 저놈을……?
‘이게 도대체 뭔 상황이야?’
하지만 아이작은 바로 최고신의 포션을 도로 넣으며 푸헿 웃었다.
“왜 그런 표정이야, 오랜만에 친구를 봤으면 반겨줘야지!’
친구는 개뿔이?
그런 표정에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형법의 신.’
뭐, 신들 중에서 그나마 가깝게 지낸 놈들이 있었는데, 저놈은 그중 하나였다. 고지식하고 꼰대긴 하지만, 그래도 정보 공유 정도는 하는 사이였다.
‘하필 적가의 애송이가 저놈을 뽑을 줄은 미처 몰랐지만.’
그러나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고 있는 형법의 신의 생각은 달랐다. 이 일은 고작 자신의 선에서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었다.
윗선에 보고를 해야 했다. 당장 신계에 있는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해골왕을 다시 잡아들여야 했다.
하필 신성제국 안에 그 해골왕이 있다니…….
이건 재앙이다.
-…윗선에 보고를 해야.
“푸헿. 할 수 있어? 니가?”
-뭐?
“이상하지 않아? 내가 왜 여기 있을까? 봉인에 실패했단 거겠지? 그런데 그 실패한 봉인. 그걸 누가 했을까?”
불길하다.
저 히죽거리는 꼬락서니를 보니, 소름이 돋는다.
아니나 다를까.
형법의 신의 석상을 깨 먹은 것도, 나이저가 뽑은 신이 그라는 걸 알자마자 좋아한 것도, 다 계획한 것이었다는 듯 아이작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알아? 이 실패한 봉인, 니 아들내미가 한 거야!”
…시발.
형법의 신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지만, 짐작 가는 구석은 있었다.
실제로 아이작은 푸웁 웃었다.
계약 사기를 알게 되고, 봉인 벌레를 들고 와서 으름장을 피워대던 신들이 있지 않았나.
-이 세상이 어떻게 지금껏 유지되었는지 아느냐? 다 이것 덕분이다. 과거 숱한 대재앙들이 이것들에 봉인되었지.
-신들의 손과 발로 써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겨야 하거늘, 감히 분수도 모르고 보수 따위를 바라다니.
그래. 그 말을 한 게 형법의 신, 저놈의 아들이었다. 사실은 이름 때문에 봉인에 실패한 거지만. 뭐, 이것까지 말해줄 의리는 없고.
“뭐어, 나는 이 일을 신계에 보고해도 상관없는데. 근데 니들 연좌제 아냐? 이 이야기가 위에 들어가면 아주 재미있는 그림 나오겠어.”
-…….
“우리 형법이, 주신 대열에 올라가야 하는데. 사고를 치면 승진은커녕 아웃 아냐? 다른 윗대가리… 주신들이 알면 소멸당하겠네?”
-…원하는 게 뭐냐.
형법의 신은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상황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었다.
그래, 일단 해골왕을 가둔 벌레부터 확인하자. 그리고 다시 정리해보자.
하지만 악독한 전직 마왕이 그것까지 계산하지 못했을 리 없다.
“캬, 말 잘 통하네. 간단해. 나랑 계약해.”
-그래 알았…….
…….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