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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25화 (125/272)

제125화. 상황 파악을 하시죠? (5)

아, 나름 꿈꾸고 있었지.

아이작과 얽힌 빌어먹을 견습 생활도 끝났겠다, 세상에 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펜타곤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겠다, 임무 수를 채워가며 공적을 세워 이름을 알리고. 상급 사제 시험을 통과해 나라의 중심에 서고. 가문의 자랑인 <범고래>들을 이끄는 청의 불(靑火)이 되고…….

최종적으로는 주교든, 추기경이든, 교황이든, 신성제국을 이끈다는 탄탄대로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빠각!

“푸헿, 누군지는 몰라도, 거 타조알처럼 생긴 놈일세. 아무튼 발판 고맙다!”

시발…. 망했네. 다 망했어!

저 자식 때문에 평온한 출세길은 다 망했어!

모두의 경악 속에서 얼굴이 짓밟힌 총괄장이 뒤로 넘어갔다.

쿵!

“선배님!”

2품 사제들이 기겁해서 총괄장에게 달려갔고, 견습들은 입을 떡 벌리며 아이작을 보았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고의가 아니었다’라든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 무마를 시도해야 정상이건만…….

콰직!

“커헉!”

“아, 또 밟았네. 미안. 그러게 누가 그런 데 쓰러져 있으랬냐.”

“……?!”

저 새끼는 그걸 또 굳이 한 번 더 밟으며 제 갈 길을 갔다.

2품 사제들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질 만도 했다. 물론 그 창백함은 두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노하면 나타나는 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저들은 인생 경험이 풍부한 선배들이었다. 어린 견습의 이깟 망나니짓이야 애교로써…….

“저 새끼, 뭐야!”

“견습이 지금, 누구의 얼굴을 깔판으로… 아니, 얼굴을 뭉개고 가?”

…넘어갈 리가 없죠? 그렇죠?

슈리의 동공이 풀릴 때쯤, 2품 사제들은 굳은 얼음이 깨지듯 일제히 분노를 토해냈다.

“저 자식, 미친 거 아냐?!”

“저거 뭐야!”

슈리와 청의 팀은 죽겠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특히 한 핏줄인 슈리는 더더욱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자아악!’

사고를 칠 건 알았는데, 어떻게 선배와 첫 대면에서부터 사고를 치고 가냐! 어?

아니, 아니지.

아직 정식 대면식도 아니니까 인사를 하기도 전에 사고를 친 거지. 그렇지.

속도 한번 빨라서 감격스럽구나, 시발.

아무튼, 이들은 앞으로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될 사람들이었다. 견습들이야 그나마 반 친구라는 느낌이라 망나니짓을 해도 괜찮았지만, 저 사람들은 사회생활 대상인 선배들이거늘……!

“세상에! 어찌 이런 짓을 하고 저리 갈 수가 있습니까?”

“망아지라는 이야기는 들었다만, 상상을 초월하는군……”

“공을 세우고, 주변에서 성자 후보라고 띄어주니까 개념이 없어진 겁니다!”

아니…. 개념이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었는데.

슈리와 청의 팀이 땀을 삐질삐질 흘리자, 누군가가 그들을 말렸다.

“너무 그러지 말아라.”

“선배님!”

아이작에게 얼굴을 짓밟힌 그 총괄장이었다. 그는 신발 자국이 난 얼굴을 매만지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직 열 살짜리 어린애가 아니냐. 어리니 철이 없을 수도 있지.”

…아니, 선배님. 저 새끼는 나이 먹어도 똑같을 것 같습니다만.

슈리의 동공은 더욱 풀렸고, 2품 사제들은 걱정하듯 총괄장을 챙겼다.

“이 일을 주교님들께 알릴까요?”

“예, 저런 놈이 바깥에 나가게 되다니! 제국과 교황청의 이름에 먹칠을 할 것입니다!”

“됐다. 그분들의 속까지 썩일 것 없다. 우리가 철저하게 교육하고 관리하면 된다.”

그 말에 슈리와 청의 팀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젠장, X 됐다.’

보통 사제라면 누구나 후배 교육을 하지만, 특히 총괄장은 대표 사제로서, 3품들의 인사 평가에도 입김을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이작이 저 모양이다? 그럼 자신들에게도 감시의 시선이 안 올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총괄장이 견습들을 보며 눈을 번득였다.

“이번 졸업 기수들이 유독 평가가 좋지.”

“……!”

“성자 후보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해골왕의 재림이 예언된 해다. 그 예언이 내려진 해에 배출된 아이들은 특별하다는 평이다만…….”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제일 어린 아이가 저 정도라면, 다른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겠어.”

“하긴. 원래 아이들은 주변을 보며 자라는 법이니까요.”

“금방 물들죠.”

아니이! 억울해!

물들기는커녕 저 새끼는 거꾸로 온 세상에 똥물을 튀길 놈이라고!

‘애초부터 인성 교육이 될 놈도 아니거늘!’

하지만 청의 팀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죄, 죄송합니다! 저희가 교육을 맡았지만, 저희가 부족한 것이 많아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더 노력해서 가르치겠습니다!”

“그러니 저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 처세에 2품 사제들은 감탄을 했다.

“아무래도 문제아는 그놈 하나뿐인 모양인데.”

시발!

니들도 싫지만, 이대로 졸업하자마자 굴려지는 건 더 싫다고!

총괄장은 쯧, 나무라듯 청의 팀을 보았다.

“이번 기수들은 어지간히도 마음이 여린 모양이구나. 아무리 공적이 있고, 에슈아 사람이라지만 저리되도록 두 손 놓고 가만히 구경만 하다니.”

아뇨, 오해가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딸랑이 앞에서 굴복했을 뿐입니다!

그때, 다른 신앙의 견습들은 잘됐다는 듯 나섰다. 아이작을 깎아내리는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바보였다.

“선배님들이라면 그놈을 휘어잡을 수 있을 겁니다!”

선배들을 이용해 아이작을 끌어내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이작 에슈아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놈인지 말씀 드리겠… 컥!”

아이작을 욕하던 견습들이 돌연 뒤통수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쾅!

“뭐냐, 무슨 일이냐.”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목 뒤에서 폭발이!”

“폭발? 아무것도 없는데?”

“아닙니다! 진짜 뭔가가 터졌는데……!”

총괄장은 장난치지 말라며 미간을 좁혔다.

“어차피 남은 기간 너희는 황실로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황후님의 의뢰를 받게 될 것이다.”

“황후님이요?”

“그래, 해골왕과 관련된 의뢰인데, 견습들의 최종 졸업 점수는 그것과 합산된다. 그리고…….”

쾅!!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견습들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사고인가?”

그러나 폭발이 일어난 곳에서 사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의 사제님들이 쓰러져 있어!”

“뭐야, 테러야?”

“아니, 포션 보관소에 있던 포션이 잘못 터진 것 같은데……!”

그 술렁거림에 총괄장이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했다.

“어쨌거나 아이작 에슈아, 물을 흐리고 있는 그 아이에겐 벌을 줘야겠지.”

“벌이라 하시면……!”

“황실의 의뢰는 2인 1조다. 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절대 팀을 꾸려주지 마라.”

“예? 하지만 방금 2인 1조라고……·.”

“그 아이는 자신을 우대해주는 사람들과, 실패 경험이 없다는 점 때문에 버릇이 잘못 든 것이다. 주변의 도움 없이 최하점을 받아 봐야 정신머리가 들 테지.”

“……!”

“그러니 절대 도와주지 마라. 앞으로 지시 사항도 그 아이에겐 전달하지 말고. 누구든 그 아이를 도와준다면, 똑같이 벌을 주겠다.”

슈리는 움찔했다.

뭐야, 이거. 설마 왕따를 조장하라는 건가?

성직자가 그래도 되는 거야?

“괜찮다. 원래 교육은 극약 처방이 효과적인 법. 그런 버릇 없는 놈은 졸업 전에 확실하게 고쳐놓겠…….”

쾅!!!

“총괄장!”

“선배님!”

아이작을 교육시키겠다던 총괄장의 얼굴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아이작을 욕하던 견습들, 그리고 아이작을 쫓던 금의 사제들에게 터졌던 것과 똑같은 폭발이었다.

그쯤 되자, 사람들은 술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누구 짓이야!”

* * *

“테러다!”

“누군가가 교황청 주력 사제들을 노리고 있다!”

갑작스러운 테러 사건에 교황청이 소란스러웠다. 교황청에 있는 모든 사제들은 범인을 잡겠다며 이리저리 수색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귀를 파고 있는 건 아이작 하나뿐.

“얌마. 저거 네 짓이지?”

그 말에 맞춰 교황청 뒤뜰의 그늘에서 낯익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는 바로 아이작이 처형장에서 구해낸 십사육마, 샤브나크였다.

아이작은 쯧 웃었다.

“네가 테러를 일으킨 거지? 성법 오발로 위장했지만, 딱 보면 알아.”

그러자 샤브나크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면서, 몸을 파르르 떨었다.

[죄송합니다. 빌어먹을 성직자 놈들이 감히 주군을 음해하고, 공격하려 하여 참을 수 없었습니다.]

“뭐, 그럴 거라 생각은 했다만.”

샤브나크의 충심은 아이작도 인정했으니 말이다.

[주군의 새로운 동료들이 쓸 만한가 싶어 몰래 살펴보았습니다만, 어찌하여 하나같이…….]

으드득.

샤브나크가 성에 안 찬다는 듯 또 테러를 일으키려 하자, 아이작은 땀을 삐질 흘렸다.

“아서라. 너 그러다가 진짜 들킨다.”

[그건 괜찮습니다. 어차피 이걸로 마지막이니까요.]

“뭐?”

샤브나크는 대답 대신 자신의 옷을 들쳐 제 몸을 보여주었다.

샤브나크의 몸을 본 아이작은 흠칫 놀랐다. 그도 그럴 게, 샤브나크의 몸이 절반쯤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신성력에 당했는지, 몸체가 녹아내리고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작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추기경들에게 당했군.”

척 보면 알았다.

멀쩡하게 서 있긴 하지만, 저 상처는 치명상이었다. 거의 백 프로 죽는다.

역시 추기경이 둘이나 붙은 건 위험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추기경이나, 샤브나크는 똑같은 9계위인 만큼, 서로 더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다. 일대일로 부딪치면 둘 중 하나는 무조건 죽었고, 기본적으로 일 대 다수로 붙어야 확실한 승산이 있었다.

게다가 샤브나크는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힘을 완전히 회복한 상태도 아니니, 추기경이 둘이나 붙은 건 더 버거웠을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모든 마족들이 똑같지만, 특히 언데드에게 신성제국의 힘은 최악이긴 하지.’

거기에 언데드에게 최악의 상성인 신성력, 그것도 추기경의 공격으로 생긴 상처라면.

오히려 자신을 욕하는 이들에게 테러…를 시도한 것은 둘째 치고, 지금 이렇게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할 정도다.

[부족한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그래서 이걸 전해 드리고자 마지막으로 알현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샤브나크는 품속에서 초록색의 보석을 꺼냈다. 아이작은 그 물건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챘다.

‘메모리석.’

[제가 수십 년간 신성제국의 노예로 지내면서 얻은 제국의 기밀을 담아놓았습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지내실 주군께 필시 도움이 되실 겁니다.]

샤브나크는 슬슬 몸을 유지하기 버거운 듯 물러섰다. 주인에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긴 싫은 것이리라. 흡사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샤브나크가 왜 저러는지 잘 알았다.

[회복을 하고 싶으나 신성제국 안에서는 불가능하고, 제국에는 결계가 쳐져 있어서 나갈 수도 없습니다. 이 부상으로 주군께 폐를 끼칠 바에야 이곳에서 죽겠습니다.]

마족인 샤브나크는 이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추적도 계속될 것이다.

메모리석도 건네줬으니, 이제 샤브나크는 성직자들을 불러 모으겠지. 자살하겠다는 것이다.

[은혜로운 주군께서 주신 보잘것없는 목숨입니다. 그걸 끝까지 살려주신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부디 주군의 앞길에 도움이 되었으면… 그저 바랄 뿐입니다.]

샤브나크는 바로 마법을 쓸 준비를 했다.

[여기서 성직자들을 부르시면, 곧바로 주군의 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음, 잠깐. 기다려봐.”

[예?]

“뭐, 상황은 알겠어. 네가 제국에서 나가려고 하면 신성드래곤의 결계 때문에 단번에 들키겠지. 하지만 네가 이 제국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예? 마족인 이상 언젠가는 들킵니다. 하물며 추기경이라면 금방…….]

“아니.”

아이작은 바로 오른쪽 손등을 짚으며 성력을 쏟아부었다.

계약한 형법의 신을 불러낸 것이다.

“형법이, 빨리 와봐라.”

하지만 부른다고 순순히 올 리도 없다.

아이작의 부름에도 문장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지만-

“봉인 실패한 거, 니 자식 짓이라고 불기 전에 빨리 튀어 와라??”

그와 동시에 아이작의 문장이 빛을 냈다. 곧 아이작의 귀에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냐.

“얘 속성 변환시켜 봐. 너라면 가능하지?”

-…뭐?

형법의 신은 기가 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상대는 어차피 언데드. 언데드는 신성력에 지독하게 약한 존재였다.

여차하면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래, 그랬는데…….

“언데드를 인간으로 바꿔보라고 띱때야.”

…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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