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26화 (126/272)

제126화. 타락했어요 (1)

십사육마. 놈들이 어떤 놈들이었던가.

해골왕도 빡치는 놈이었지만, 그를 지키는 십사육마들은 하나같이 진짜 눈엣가시들이었다.

특히 샤브나크!

그는 해골왕의 최측근 집사이자 침묵의 암살자로, 그의 손에 사라진 신의 종만 몇 명인지 알 수가 없다.

주인에게 불필요한 손님을 차단하는 집사답게, 해골왕에게 접근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튼 여러 십사육마 중에서 샤브나크는 문지기를 지나 해골왕을 만나기 위해 제일 첫 번째로 뚫어야 하는 관문.

그나마 언데드라서 공략이 가능했던 마족이었다.

그런데 그런 놈을, 뭐……?

‘인간으로 만들라고?’

제정신인가?

형법의 신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작은 진심이었다.

“만들어. 너라면 가능하잖아.”

형법의 신. 벌을 내리기 위해, 규칙을 관장하는 자. 본래라면 상대의 죄를 파악하고, 형량으로 무릎을 꿇려 참회를 유도하는 신이다.

보통 형법의 신이 규칙을 만들고, 심판의 신이 판결을 내리며, 형벌의 신이 벌을 내렸다.

‘형법의 신은 자연의 규칙도 바꿀 수 있지.’

벌을 내리기 위함이라는 목적만 존재한다면 말이다.

반드시 벌을 받게 하기 위해 금강불괴의 몸을 연한 몸으로 바꿔버린다거나, 형벌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다리를 못 쓰게 하는 것도 가능했다.

즉, 속성을 변환시킬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언데드를 사람으로 만든다……?

‘확실히 벌을 내리기 위해 언데드를 사람으로 만드는 건… 가능한 일이다.’

언데드는 고통을 못 느끼니까.

‘고통’이라는 벌을 받게 하기 위해서, 고통에 가장 취약한 인간으로 만든다…라는 식으로, 속성 변환이 가능했다.

물론 만물의 신이 아닌 만큼 조건이나 제한은 있지만, 어쨌든 가능하다.

해골왕이야 워낙 신의 범위를 넘어선 존재라, 자신의 힘만으론 인간으로 만들 수 없었지만, 저 마족은 가능했다.

문제는 저 마족이 하필 해골왕의 부하란 거지!

‘그나마 언데드라서 잡아 눌렀던 거지.’

아이작만으로도 골 때리는데, 뭐?

스스로 적의 약점을 없애주라고?

‘저걸 인간으로 만들어주면 완전히 포위망을 뚫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십사육마의 탈출에 대해서는 형법의 신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신들은 십사육마의 탈출 소식에 심혈을 기울여 잡으라고 지시한 참이었다.

하지만 저놈이 인간이 되면 십사육마의 행방과 추적은 영원히 오리무중이 되겠지. 심지어 인간이 되면 성법으로 저 죽음의 상처도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아이작은 그걸 노리는지 낄낄 웃고 있었다.

그런 만큼, 형법의 신이 할 말은 하나였다.

-싫다. 난 절대 안 해.

해골왕과 계약한 것만으로도 돌겠는데, 지금 미쳤나? 신성한 신성제국 안에 해골왕과 그 잔당이 있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을 것 같아?

-죽어도 안 한다.

“응. 그래봐. 나는 니 자식 건에 대해 말하면 그만이니까.”

-그래! 어디 해봐라! 너도 그 몸을 얻고 잡혀가긴 싫을 테니, 입만 산 협박이라는 걸 잘 안다! 누가 속을 것 같으냐!

그러나 아이작 히죽 입꼬리를 올리는 것이었다. 그러곤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하자, 형법의 신이 급히 물었다.

-뭐냐. 너 지금 어디 가는 거냐!

“교황 놈한테.”

-뭐?!

“교황 앞에서 해골왕의 진짜 힘을 쓰면 알아서 나 잡아가겠지.”

-아니!

이 새끼, 미쳤나?

진짜로 교황을 만나러 간다고?

협박인가? 진심인가?

농담이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사안이 너무 심각했다.

교황이라면 신계의 주력신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것도 그냥 주력신뿐이 아니었다. 현재 신계의 실질적인 수장을 맡고 있는 신.

-지배신의 존재를 모르느냐!

“어, 아-주 잘 알지. 그 새끼랑 내가 계약서를 썼었지.”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린다.

즉, 해골왕에게 사기 계약서를 들이민 게 교황가의 신이라는 의미다.

“나를 제일 싫어하는 놈들이니, 교황 앞에서 내 힘을 뿜어내면 좋아서 10초 만에 뛰어올 거다.”

-너, 그러다가 진짜 죽어!

“응, 아끼는 부하 하나 못 구해줄 바에야 그냥 같이 뒤지는 게 나음.”

아이작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심지어 해골왕의 봉인을 풀려고 하자, 형법의 신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알았다! 알았으니!

“진작 그리 나올 것이지.”

형법의 신은 할 수 없다는 아이작의 손에 힘을 보내주었다.

그 강력하고 눈부신 힘에 아이작은 한쪽 눈을 감고-

[으악! 퉤퉤! 더러운 신의 힘이!]

위스퍼가 경멸하며 울부짖는 그때.

아이작이 샤브나크의 어깨에 손을 얹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벌- 인간화>.

-이제부터 인간으로서 고통을 느끼게 될 것이니.

샤브나크의 발 밑에서 성스러운 성법진이 치솟아오르자, 그의 몸에 변화가 생겼다.

-인간으로 있을 수 있는 조건은 …이다.

부하의 썩다 못해 미이라 같던 피부가 점점 변했다. 힘을 키우기 위해 기형적으로 커졌던 상체가 정상의 크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마치 듀라한처럼, 얼굴 대신 환각 같은 기체로 되어 있던 얼굴도 수백 년 만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개골과 피부, 반듯한 눈, 코, 입. 그리고 머리카락!

그야말로 인간의 형상에 가까워지는 모습에 아이작은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

이거면 추기경의 추적도 피할 수 있어!

그래! 든든하고 유능한 개인 집사가 생기겠구나!

‘크. 좋은 녀석이었지.’

침묵의 암살자로서, 수백 년 간 묵묵히 자신의 곁을 보좌하던…….

보좌하던…….

…으잉?

아이작은 인간의 모습이 된 샤브나크를 보며 제 눈을 의심했다.

샤브나크가 인간이… 된 건 좋다. 그리고 거의 거적때기에 가까운 옷이라, 사실상 옷의 기능을 상실해 피부가 다 드러난 것도 좋다.

이거면 추기경의 추적도 완전히 따돌리고, 신들도 엿 먹일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전부 다 계획이었다.

언제부터였냐고?

사실 10년 전부터였다.

10년 전, 성녀의 보물고에서 샤브나크를 만났을 때부터 치밀하게 구상해온 계획인 것이다.

모든 게 다 아이작의 예상대로, 계획대로였다.

그래. 모든 게 다 예상대로인데…….

아이작은 수백 년 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듯 물었다.

“샤브나크.”

“예.”

“너, 여자였었냐?”

“예.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수백 년 만에 부하의 성별을 알게 된 아이작은 이마를 짚었다.

…이건 예상 못 했네.

* * *

목이 없는 듀라한 샤브나크는, 그러니까 우직한 벽창호 같은 놈이었다. 가벼운 음담패설조차 진지하게 받아치던 녀석이었는데.

‘아니…. 체격도, 목소리도 남자였잖아!’

뭐, 언데드니까 텔레파시에 가까워서 목소리 구분은 의미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침묵의 암살자로서, 힘을 키우면서 몸이 단련되는 것도 당연했고.

아니, 뭐. 애초에 언데드에게 성별이 뭔 의미가 있었겠나.

아이작이 이마를 짚었던 건, 그저 수백 년 동안 자신이 편견에 찌들어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앞으로는 더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보자.’

그래! 열린 마음으로 재물신을 훔쳐 오는 거야!

그때, 아이작 앞에 신성제국 집사복으로 갈아입은 샤브나크가 나타났다.

“…불편한 건 없고?”

“감각이 느껴지는 게 이상합니다.”

“뭐, 익숙해지면 오히려 좋을걸. 아무튼 정체는 들키면 안 된다. 특히 할아버지나 해골왕 대가리를 깨려고 작정한 에슈아한테는…….”

“예. 특히 청의 추기경은 교황급이었죠.”

그래, 최대한 형법의 신을 갈굴 생각이지만, 그래도 가문 사람들은 조심하는 게 좋지.

하필 해골왕에 미친 에슈아 사람들과 충신 샤브나크가 부딪치면 뭔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그래, 조심하는 게 좋은데…….

“아이자아악!!”

“!”

멀지 않은 곳에서 슈리가 비명을 지르며 다가왔다.

“너 지금까지 어디에 가 있었어!”

“터주신을 지키려고 열심히 튀고 있었지.”

“아오! 지금 테러 사건 때문에 난리도 아니라고!”

“테러?”

“그래! 금의 사제들부터, 니 새끼가 밟고 간 총괄장까지 공격을 받았어! 지금 범인이 누군지 찾고 있다고!”

아…. 그 범인, 여기 있는데.

아이작은 샤브나크를 슬쩍 보았지만, 샤브나크는 시치미를 뚝 뗐다. 생각 같아서는 폭탄이 아니라, 그냥 갈아버리고 싶다는 고요한 분노가 느껴진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너, 단단히 찍혔어!”

“찍혀? 누구한테?”

“누구긴 누구야!  2품 선배들이지! 너한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말래. 이번 황실 임무에서 팀 짜는 데에도 껴주지 말고, 임무 공지도 해주지 말라더라.”

“넌 왜 말해주는데?”

“…난 네 가족이잖아.”

“그래? 그럼 팀도 나랑 짰겠네?”

“내가 왜?”

…뭐, 인마?

“널 챙기는 건 맞지만, 너랑 얽히긴 싫다.”

이 씨바 놈이?

“다음 달 신년에 에슈아 직계가 전부 모인다고.”

“허, 직계? 그래 봐야 에슈아지.”

“뭔 소리야. 넌 아직 한 번도 본적 없겠지만, 얼마나 능력자들이 많은 줄 알아? 가모님이랑 이번 대 성녀님들도 다 오실 거다.”

케엑.

성녀들은 피하고 싶은데.

“후계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르는데, 황실 임무에서 조금이라도 공을 쌓아야지. 이제부터 우린 적이란 뜻이야. 그러니까 알아서 해라. 너 때문에 구르긴 싫다.”

“그래? 그럼 지금 굴러보든가?”

아이작이 딸랑이를 스윽 꺼내자, 슈리는 얼어붙으며 딸꾹질을 했다.

“난 이미 팀을 짰다고!

“아. 뭐, 됐다. 황실 임무는 혼자하면 돼. 안 그래도 황실 쪽에 관심도 있었고.”

“혼자서는 무리일걸?”

“뭐?”

“이번 황실 임무가 뭔지 아냐? 바로 해골왕의 첩자를 찾는 거야.”

“…해골왕의 첩자아?”

이건 또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황궁에 해골왕의 첩자가 있는 것 같대. 해골왕의 추종자로, 누군가가 해골왕 소환 의식을 하고 있었다나 봐.”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여기있는데. 누굴 불러, 부르기는.

“그래 봐야 뭐, 별거 아니겠지.”

“아냐. 범인 같은 사람을 찾았는데, 6계위는 전멸에, 7계위 황실 기사까지도 당했대.”

“좀 심각한데? 그런 걸 견습들한테 잡으라 했다고?”

“뭐, 발견하면 바로 각하를 부르면 되는데. 아무튼 그만큼 난이도가 높은 의뢰니까. 2인 1조는 필수야. 뭐, 네가 정 원해서 애원을 하면 이 형이 해줄 수도 있는데.”

“됐어. 너 아니어도 팀 할 사람 있어.”

“?”

누가 너랑 해줄 것 같냐는 시선을 보낼 때, 아이작은 샤브나크를 가리켰다.

슈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깜짝이야! 뭐야, 언제 있었… 아니. 누구냐, 이 미인은?!”

열아홉 정도의 외견에 무표정한 얼굴이지만, 슈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솔직히 어지간한 외모에는 익숙해져 있는 에슈아 일가라지만, 그런 그조차도 순간 놀랄 정도였다.

“누군데, 이런 사람이 니 새끼랑 있어!”

“아. 마족한테 습격받고 있는 걸 구해줬어.”

“…마족한테?”

“사실 십사육마를 쫓고 있었는데, 휘말린 사람들이 있더라고. 걔한테 당한 게 아닐까?”

[약 한번 잘 파시네요.]

응, 닥쳐.

“구해줬더니 은혜를 갚겠다면서 따라왔어.”

그러나 슈리는 더욱 의심스럽게 아이작을 보았다.

…구호 활동이라니.

이 새끼가 그런 걸 했을 리 없잖아?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정체도 모를 여자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에슈아를 유괴하려는 놈들은 많다.’

아이작이 에슈아라는 걸 알고 접근한 거라면…? 그 의심의 눈빛에 샤브나크가 서늘한 눈으로 슈리를 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주인님의 종이 되고자 왔습니다.”

“…주인님? …종?”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종을 논하는 걸 보면 성기사…인가?

슈리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어디 출신이냐. 소속을 밝혀라.”

그 말에 샤브나크는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주군께서 입조심을 하라고 하셨는데.

“실례. 종이 아니라, 저는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노, 노예?”

“예. 낮이나 밤이나, 주인님의 노예로서 시중을 들고자…….”

그 말에 당황한 슈리는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어째서인지 얼굴은 새빨갛게 변한 채였다.

“아이자악!! 너 이 어린놈의 자식이 벌써부터 발랑 까져가지고! 성직자가 뭐 하는 거냐!”

그러고는 샤브나크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듯 외쳤다.

“꿈도 꾸지마! 아이작도 직계니까 정혼자가 생길 몸이야! 문제 생기면 안 돼! 필요없으니까, 가!”

“아, 괜찮습니다. 감히 주인님의 정혼자를 넘볼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주인님의 영혼을 어뤄 만져드리고자 하는 것뿐.”

여, 영혼???

“주인님의 은혜를 잊을 수 없어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습니다. 부디 곁에 있게 해주십시오.”

뭘 생각한 건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슈리가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갔다.

“할아버지이이이! 아이작이 또 나쁜 거 배워왔어요!”

저 때끼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