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9화. 타락했어요 (4)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샤브나크의 몸에서 매우 강력한 오라가 치솟아올랐다. 그 힘이 보통이 아니라, 모두가 움찔하는 그 순간.
샤브나크의 일격이 가주에게 향했다.
“아버지!”
가주는 손바닥을 뻗어 재빨리 샤브나크의 일격을 막아냈다.
쩌엉!
마침내 9계위 마족과 9계위 성직자의 막강한 힘이 맞부딪쳤다. 풍압과 함께, 맹렬한 힘이 저택을 날려버렸다.
우직, 콰지직!
쾅!
자리에 서 있기도 힘든 힘이 저택의 기둥과 벽 그리고 창문을 박살 냈다.
“큭!”
뿌연 먼지와 돌들의 잔해가 모두의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그들이 눈을 떴을 때, 가주의 얼굴에 실선이 생기며, 핏방울이 살짝 흘렀다.
그 광경에 모두가 입을 벌렸다.
“이, 이게 무슨……!”
샤브나크는 대미지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더 강해진 듯한 모습이었다. 청의 가주조차 고개를 갸웃 돌릴 법하다.
“…음? 왜 멀쩡하지?”
“왜긴 왜입니까! 인간이니까 멀쩡하죠!”
아들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신 거냐는 듯, 기겁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세상에, 인간에게 구마성법을 쓰시다니!”
“다른 가문이었으면 생사결을 펼치자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일반 성법도 아니고, 구마성법을 쓰시다니… 노망이 드셨습니까?”
구마성법은 신성제국에서 굉장히 민감한 성법이었다. 철전지원수인 마족이라고 의심, 아니 확정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신성제국 사람들은 굉장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즉, 실수로라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다.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릴라이가 탄식했지만, 차남 벤야민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듯 저택 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엔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재정 담당인 벤야민이 핏대를 세울 만도 했다.
“아버지 때문에 박살 난 저택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수리비가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아…….”
그들은 샤브나크가 마족으로 오인당해 빡쳤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저택을 날려버렸다고.
그랬기에 릴라이는 내심 놀란 듯, 샤브나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실력은 확실히 알았군요.”
“아무튼, 저택 수리비는 아버지의 품위 유지비에서 제할 겁니다!”
“아…….”
그런데 그럴 때였다.
돈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작이 벤야민에게 슬그머니 다가와서 흑흑 훌쩍였다.
“쭉뿌님. 할아버지가 제 사람한테 마족이라고 했어요.”
“!”
그 말에 에슈아가 일가가 흠칫 놀랐다.
엄한 사람을 마족으로 몰아넣는 건, 약자를 지키는 청의 도리에서 크게 어긋난 일! 사람을 지키라고 주신 강대한 힘을 이리도 아무렇게나 쓰다니.
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 없지만, 아이작은 흑흑, 울지도 않으면서 우는 척을 했다.
“할아버지 때문에 아이작, 너무 슬퍼서 마음의 상처를 입어버렸어요.”
그 말에 가주는 움찔했고, 릴라이는 매우 미안한 듯이 토닥여주었다.
“속상했겠구나. 할아버지께서도 고의는 아니셨을…….”
“아이작, 마음이 너무 아파요.”
“그래그래, 할아버지께서도 의심해서 미안하실 터…….”
그러자 아이작은 그게 아니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작, 느무느무 마음이 아파서! 마음의 상처를! 치료할! 구체적인! 뭔가가! 있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걸 가지고 이렇게 나온다고?
가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좀 억울한 듯 생채기가 난 얼굴을 가리켰다.
“할아비도 다쳐서 아프다.”
“아이작, 느무느무 마음이 아파서 타락할 것 같아요.”
뭐라고?
아이작의 말에, 에슈아 일가가 전부 흠칫 놀랐다. 최고신을 가진 아이작이 타락하면 청으로서 곤란하다!
결국 안경을 치켜올린 벤야민이 재빨리 나섰다.
“정신적 치료비를 떼주마. 아버지의 품위 유지비에서!”
“샤브도 다쳤쪄요.”
“당연히 샤브도 챙겨줘야지! 아버지의 품위 유지비에서!”
그러자, 계속 삥 뜯기는 꼴이 된 가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 벤야민을 보았다.
“아니. 나도 다쳤다.”
“아버지는 조용히 하십시오!”
…이 패륜아 새끼들이?
* * *
벤야민은 서류를 넘기며 한숨을 푹 쉬었다.
“샤브 로이어. 조사해본 바, 일단 고향이나 친지, 친구를 포함해 특별한 건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어 보입니다만, 정말 그 사람에게 1품 작위를 내리셔도 되겠습니까?”
“그래, 상관없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청의 가주는 샤브에게 약속한 1품 자리를 주기로 했다.
에슈아에 오래 머물러야 받을 수 있는 자리인 만큼 반발이 예상되었지만, 아이작의 직속 호위니까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작이 쌓아온 공적들을 생각하면 좀 싼 편이다.
‘게다가 최고신을 품게 된 에슈아의 위상은 전과 또 다르다.’
그러나 벤야민은 의심의 눈초리로 안경을 치켜세웠다. 작위를 내리는 것과 별개로, 철저한 성격의 그는 샤브나크의 뒷조사를 해보았다.
어딜 봐도 신분을 만들어주려고 아이작이 데려왔거나, 꿍꿍이가 있어서 스스로 저택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데…….
“정체도 모르는 자를 에슈아에 들이셔도 됩니까? 괜히 그자에게 구마성법을 쓰신 건 아니실 것 아닙니까.”
그 말에 가주는 기가 찬 듯 아들을 보았다.
“…그걸 아는 놈이 날 구박하면서, 품위 유지비를 깎아?”
“크흠. 뭐, 그건. 아버지가 잘못하긴 하셨으니까요.”
비록 가주의 자리를 양보했지만, 벤야민 역시 누구보다 청을 사랑하는 가문의 수호자였다.
그리고 청을 해하려는 자가 있으면 그게 누구라도 용서하지 않을 자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샤브나크의 서류를 보는 벤야민의 눈이 서늘해졌다.
“이거, 정말 마족입니까?”
“모른다. 마력은 전혀 못 느꼈으니.”
“그러면 마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
“아니.”
딱 잘라 말한 가주의 푸른 눈빛이, 늑대와 같이 서늘해졌다.
“감이 말해준다. 그건 인간이지만, 인간은 아니다. 뭐, 그 정도면 설령 신이 와서 조사해도 인간으로 나오겠지만.”
“!”
역대 추기경들 중에서도 손에 꼽는 아버지의 감은 백 프로다. 아니, 감이라고 말하고 계시지만, 사실 확정하고 계신 것이다.
물론 이쯤 되면 사실 청의 가주의 고집이라 할 수 있지만, 벤야민은 아버지의 감을 믿었다.
“그러면 역시 쫓아내는 게 맞지 않습니까?”
가뜩이나 십사육마가 달아난 시점이었다. 십사육마는 적가의 실수로 풀려났다고 최종결론이 지어졌지만, 마족도 이 기회를 노려 제국에 들어오려 할지도 모른다. 성자를 없앤다면서 말이다.
“만약 최고신을 가진 아이작을 노리고 들어온 것이라면……”
“아니, 냅둬라. 차라리 가까이에 놓고서 지켜보는 게 낫다. 꿍꿍이도 뭔지 알게 되겠지.”
벤야민은 땀을 삐질 흘렸다.
‘그 종자가 몹시 마음에 드셨군.’
“그리고-”
“!”
“그걸 아이작이 데려왔다는 게 중요한 거다.”
“예? 아이작이요?”
그 정도로 아이작을 예뻐하시는 건가 싶었지만, 아이작을 떠올리는 청의 가주의 눈빛은 오히려 냉정했다.
“마족을 다룬다는 게, 청에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니. 그런 의미에선 차라리 마족이면 아이작의 힘이 증명되겠어.”
“……?”
그게 무슨……?
“에슈아는 지금으로도 충분하긴 하지만, 지금은 잊힌 것들이 있지.”
“!”
설마 비전하고 연관이 있다는 말씀이신가?
실제로 가주의 눈빛은 어딘가 굉장히 기대하는 눈빛이다.
“벤야민. 아마 이번 신년 직계 모임 때는 후계자에 대해 말하게 될 것 같구나.”
“……!”
아버지의 말에 벤야민은 숨을 죽였다.
‘드디어 결심하셨구나!’
십 수년간 세간이 그렇게 주목했으나, 바뀌지 않았던 에슈아의 후계자 자리였다. 수많은 이들이 탐내며 노리고 있는 청의 신앙의 주인 자리.
아무리 다른 신앙이 기세가 높다고 한들, 청을 잇는 힘과 역사,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그 거대한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니, 어떤 의미로는 대륙의 황제들조차 따라올 수 없는 영향력.
하물며 역대 청의 추기경 중 최강이라는 아버지를 잇는 자라니.
“아마 엄청난 화제가 될 것입니다.”
“글쎄.”
가주는 생각이 깊어 보였다.
확실히 교황가와 대등한 청의 신앙은 ‘수호좌’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모르겠다. 에슈아가 과연 후계를 논하는 게 과연 맞는지.”
원래라면 장남이 사라진 시점에서 벤야민이 후계가 되어야 맞지만, 그리하지도 못하는 저주받은 가문이다.
오죽하면 신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그럼에도 가주는 아이작이 나타난 이후로 빛이 보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그 아이라면 에슈아의 저주를 피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버지.”
“뭐, 해골왕은 우리들의 원수.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그 아이가 빛으로 보인다니, 아이러니하지만 말이다.”
벤야민은 뿌듯한 듯 창문 밖의 구름을 보았다.
‘그 아이가 청을 지키러 온 것인가.’
아니, 실은 원수 놈이 낼름 가로채려고 온 것이지만 말이다.
* * *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위스퍼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빼액 비명을 질렀다. 그래서 뭔 일인가 했더니-
[왜 구마성법이 샤브나크에겐 통하지 않은 거죠!]
아무래도 성력엔 쥐약인 놈이라 질투를 했던 모양이었다.
‘왜긴. 인간한테 구마성법이 통할 것 같냐.’
[아니이! 아무리 그래도 영혼은 마족 아닙니까! 주인님 정도라면 몰라도, 정신적으로 괴로울 텐데요!]
‘샤브나크가 인간을 잡아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지.’
[예?]
아마 샤브나크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인간을 먹은 적이 있었다면, 구마성법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는 건, 끝까지 해골왕을 섬겼단 의미겠지.
[한층 강해진 듯한 그 모습은요?]
‘성법은 원래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힘이야.’
구마성법도 마족만 아니면 인간에게 이로운 성력이니, 가호로 작용을 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뭐, 정작 샤브나크는 의문을 가질 법한데도 ‘역시 주군은 대단하시다.’라는 말로 단순하게 넘어갔지만 말이다.
게다가 강해진 이유는 그뿐이 아니었다.
‘샤브나크도 너처럼 나랑 계약한 부하잖아.’
[!]
샤브나크는 해골왕. 즉 해골왕의 영혼과 계약이 되어 있다.
뭐, 몸이 새롭게 바뀌면서 재계약의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아직 연결이 되어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아이작은 형법의 신과 계약을 했고, 샤브나크가 자신과 연결된 이상 형법의 신의 가호가 샤브나크에게도 미친다는 소리.
‘그래, 이번 일 덕분에 신들의 성력이 부하들에게도 버프가 된다는 건 아-주 잘 알았다. 이건 이용해먹을 수 있어.’
에슈아는 승승장구하게 하면서, 복수도 할 수 있는 방법을 말이다.
뭐, 덕분에 형법의 신은 기겁을 했지만 말이다.
아이작이 성장할수록 신들이 제 무덤을 팠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몰랐다.
‘내 퇴치법을 찾겠다고 혼자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군.’
그런 의미에선 신들을 견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세력. 신성 드래곤을 품은 황실과 가까워지는 게 좋겠지.
‘안그래도 베리트가 자꾸 터주신을 토해내라고 위협하고 있기도 하고.’
교황가와 황실을 어떻게 싸움을 붙여야 이쪽에 도움이 될까.
그런 의미로 황실을 포섭할 방법을 생각해온 아이작은 싱글벙글 웃었지만, 정작 주변은 초토화되는 중이었다.
‘뭐 저런…….’
‘방금 뭘 들은 거지?’
그리고 슈리 역시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몸을 떨고 있었다.
고개? 그딴 건 들 수도 없다.
왜냐고?
‘이 미친 새끼야, 감히 황제 폐하 앞에서 무슨 목이 떨어질 소리야!’
그래, 그들은 황실에 도착한 상태였다.
그리고 견습 시절의 마지막 임무를 행하고자 몇몇 견습들이 모였으나, 모두 아이작의 말 때문에 얼어붙은 지 오래.
황실 기사단들은 아예 충격을 받은 듯한 눈빛이다.
왜냐고?
“답이 없으시네요. 해골왕의 첩자를 찾아주면, 얼마를 주실 거냐고 여쭈었는데요.”
이 미친놈아아!
황족들 앞에서 이게 뭔 개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