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해골왕의 추종자 (1)
신성제국 헬라.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헬라는 길고 긴 역사만큼이나 이름이 드높다.
비옥한 대지의 지배자이자, 신성드래곤의 핏줄. 숱한 전쟁으로 여러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헬라 황실은, 신성드래곤의 가호를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신의 가호를 받는 교황까지.
초대 교황은 초대 황제의 친동생으로서, 황실과 함께 해오며 황실을 보좌하고 지지해왔다.
뭐, 한마디로 교황의 지지와 신성드래곤의 힘을 쓰는 헬라 황족은 모든 걸 다 가진 자들이란 의미다.
괜히 대륙의 3대 패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고, 헬라 황족의 손에 잘려 나간 목들만 몇 개인지 알 수가 없다.
괜히 황실에 들어가려면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런데.
“황궁에 해골왕의 첩자가 있는 것 같다. 그걸 찾아내라.”
“뭐, 좋습니다. 그래서 찾아드리면 얼마를 주실 건데요?”
시버얼! 이 미친놈!
고작 견습 주제에 황실의 말에 대뜸 보수부터 요구해? 이게 교황청으로 온 의뢰라고 해서 진짜 의뢰인 줄 아나!
‘이건 엄연히 의뢰가 아니라, 황실의 ‘명령’이거늘!’
결국 아이작의 폭탄과 같은 말에 황궁에 불려온 사제들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표로 온 교황청 사제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뭐 이런 미친놈이!’
아무리 그 5대 가문이라도 그렇지! 교황가조차도 일단 황실 앞에서는 발톱을 감추는 척이라도 한다!
그런데 이놈은 발톱을 감추기는커녕 배 까고 누워서 과일 좀 깎아오라고 할 기세네!
결국 보다 못한 슈리가 금기를 깨고, 아이작에게 아주 작게 속삭였다.
“이 미친놈아. 너 상황 분간 못해……?!”
원래 황족 앞에서 사적인 잡담은 금물이지만, 이 정도면 황실 시종도 봐줄 것이다. 아니, 황실 시종의 떨리는 눈빛을 보니 아주 잘한다는 눈치다. 제발 말려달라는 눈빛이다.
하지만 아주 작게 말한 게 무색하게, 아이작은 대수롭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아 왜. 하는 말을 보니 딱 봐도 보이잖아. 위험 부담은 큰데, 부려먹기만 하고. 임무하다가 뒤지든 말든 알아서 하란 거잖아? 황실이면 보수는 제대로 챙겨줘야지! 순 양아치들도 아니고.”
야! 좀!
견습들은 정신이 아득해졌고, 함께 온 교황청 사제는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어쩐지 교황청에서 이놈을 황실로 보낼 때 그렇게 걱정하는 얼굴이더라니!’
꼭 황궁으로 데려가야겠냐는 그 표정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자결 약을 꼭 쥐여주더라니.
‘전부 이놈 때문이었냐!’
황실의 손에 죽기 전에, 먼저 죽으라고?!
실제로 예의를 밥 말아 먹은 아이작의 발언에 기사단도, 황실 시종들도 얼어붙었다.
하지만 아이작은 왜 그러냐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왜, 내 말 틀려? 해골왕의 첩자가 황궁에 있는 것 같은데, 누군지도 몰라, 심지어 6계위 기사에 심지어 7계위 기사까지 쓰러트렸대. 그럼 난이도가 최소 상급이란 건데. 목숨 수당은 줘야 하는 거 아냐? 말을 들어보면 양아치들처럼 그런 것도 준비 안 한 거 같은데.”
“……!”
야! 제바알!
아 이제 끝났어. 다 틀렸어!
견습이 끝나기 전에 황실에서 목이 댕강댕강 잘려서 에슈아 땅에 묻히겠구나.
슈리는 절망했지만, 바로 그때 황후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가 그 유명한 에슈아의 막내 사제인가.”
아이작은 황후를 힐끔 보았다. 강인한 인상의 황후는 황태자의 옆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황태자의 친모는 아니지.’
실제로도 안 닮았다.
[와, 그럼 황후의 아들 대신 황비의 아들이 황태자가 되었단 의미입니까?]
그러니까 황실도 꽤 복잡하다는 의미다.
[복잡한 게 문제입니까, 캬, 제가 황후였으면 황태자를 죽이고 싶겠네요. 아, 그럼 황후한테 붙어서 황태자를 처리할까요? 주인님한테 관심 있어 보이는데요.]
‘황후는 교황파야.’
[캬악! 황후를 처리 안 하고 뭐 합니까?!]
하지만 황후는 아이작을 몹시 귀여워하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내가 교황청에 의뢰해놓고도 실수가 있었구려. 확실히 위험 부담에 비해서 만족할 만한 게 없겠군. 적절한 보상을 주겠소. 이러면 만족하실까? 에슈아의 막내 사제님?”
아이작은 그제야 방긋 웃었다.
그래, 진작에 이래야지. 때끼들이.
그리고 언제 툴툴거렸냐는 듯 장사치처럼 고개를 숙였다.
“의뢰 감사히 받겠습니다. 황후 마마.”
그 반응에 황후는 또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 웃음에 목이 날아가는 줄 알았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죽는 줄 알았다.’
‘황후께서 좋게 봐주셨으니, 죽진 않겠어…….’
슈리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정작 아이작은 느긋했다.
간이 배 밖으로 나와서? 사실 그 이유가 가장 크긴 했지만, 아이작은 어차피 목이 안 날아갈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하를 통해 좋은 걸 전해 들었거든.’
샤브나크가 알려준 황후의 정보는 다른 게 아니었다.
-주군께서 최고신과 계약했다는 말에 황후가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듯합니다.
그래, 최고신.
황후는 어떻게든 자신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것이다.
물론 교황청을 견제하는 황제와 황태자와는 다른 목적이었다.
‘날 이용해서 황태자를 끌어내리고 싶은 거지.’
황후의 세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왜냐고?
왜긴 왜야, 강력한 외척도 외척이지만, 그 잘난 교황 때문이지.
‘저 흑발은 여전하군.’
성인식을 앞둔 황태자는 젖먹이 시절에 봤던 모습과 거의 비슷했다. 무표정한 얼굴도, 신성제국에서는 불경시할 흑발도.
아무튼 저 좋은 걸 가만히 냅둘 교황도 아니니, 황후와 손잡고 황태자를 끌어내릴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란 이야기다.
지금의 황태자가 황제가 되면, 교황파를 쓸어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황태자가 신성드래곤에게 점지받고, 소드마스터 급만 아니었다면 잡음이 끊이지 않았겠지.’
아닌가? 지금도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걸 보면 평온한 것도 아닌가.
그러나 정작 황태자는 황후가 성직자들을 부른 게 못마땅한 듯했다.
“애초에 이런 일로 견습들을 부르는 게 이상했습니다. 아니, 성직자들을 동원할 것도 아닙니다.”
아니, 정확히는 이런 일로 아이작을 불러낸게 못 마땅한 듯 했다. 이런 식으로 불편한 이들과 함께 만나기는 싫었다는 걸까.
그러나 황후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해골왕의 첩자가 황실 사람을 노리는 것 맞소. 어쩌면 그대의 목숨을 노리는 일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오. 안 그렇소?”
황후의 말에 다른 이들이 긍정했다.
“맞습니다. 황궁에 해골왕의 첩자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예! 황궁 근처에서 해골왕의 저주가 담긴 마도구며, 소환하려는 물품이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해골왕을 소환해 황실 사람을 죽이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해골왕 역시 신성 진영의 핵심인 헬라 황실을 없애고 싶어 할 테니까요.”
그 말에 아이작은 눈썹을 치켜떴다.
찌바 놈들아. 내가 왜.
꿀 빨아야 하는데, 왜!
하지만 이들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신성드래곤의 결계를 파괴하려면 황실을 무너트리는 게 좋긴 하니까요.]
그래, 신성제국의 결계는 신성드래곤이 맡고 있지.
“해골왕도 신성드래곤의 결계는 뚫지 못했죠.”
아니거든! 귀찮아서 안 깨고 냅둔 거거든!
드래곤들한테 지명수배 걸려서 얽히면 골치 아프니까 냅둔 거거든!
그때, 황실 시종이 아이작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의심이 가는 황궁 하인들의 명단입니다. 이걸 토대로 범인을 찾아줬으면 하십니다.”
황후가 기대하듯 미소를 지었다.
“최고신과 계약하신 천재가 아니시오. 대가는 충분히 치를 테니, 황가를 해하려는 범인을 꼭 잡아주었으면 좋겠구려.”
“예!”
사제들은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들은 밖에 나오자마자 아이작을 쥐잡듯이 붙잡았다.
“너 진짜! 진짜 목이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한 번만 더 그렇게 몰상식하게 굴면……!”
그러나 아이작은 지금 뭔 개소리냐는 듯, 슈리와 사제들을 심각하게 붙잡았다.
“야, 지금 그딴 게 중요해? 무려 황후야! 거래 상대가 황후면 돈을 얼마나 뜯어낼 수 있는 줄 알아?!”
“이……!!”
미친 새끼가 진짜!
“푸헿! 황후가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건 잘 알겠어. 이걸 이용 안 하면 등신 때끼지!”
…이게 정녕 성직자의 눈인가?
“이렇게 되면 황후와 친해져서 등쳐먹겠어.”
…최고신은 도대체 왜 이런 새끼를?
‘시련인가?’
천사의 탈을 쓴 악마를 구별하라고 최고신께서 나선 것인가?
그렇게 모두의 멘탈이 나가 있을 그때였다.
“황후 마마를 너무 믿지 마라.”
“!”
아이작을 혼내느라 황실 정원에 뭉쳐 있던 아이작 일행에게 황태자가 나타난 것이다.
“화, 황태자 전하.”
청의 사제들이 화들짝 놀라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작은 꼿꼿이 서 있다가, 슈리 때문에 마지못해 고개는 숙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경스럽지만, 황태자는 크게 개의치 않은 듯 사제들에게 말했다.
“황후 마마는 에슈아의 이름을 이용하려는 것뿐.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의미다.”
“……!”
그때 황후가 멀리서 아이작에게 다가오려는 기색이자, 황태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도 황실의 입장에선 황실을 저주하는 해골왕의 첩자는 잡혔으면 좋겠군. 교황청의 사제들이라면 가능하겠지.”
“예! 걱정 마십시오! 그 사악한 해골왕의 재림을 두고 볼 순 없습니다! 꼭 저희가 잡아내겠습니다!”
견습들이 떨면서 고개를 숙였지만, 아이작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새끼 이미 재림했다고.
여기 있다고 시바.
* * *
“우와, 황태자 전하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야!”
어두운 밤의 황궁.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견습들은 두근거리는 얼굴로 첩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아이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옆을 보았지만.
“그래서. 넌 왜 여기에 있는데? 이미 팀 짰다며?”
아이작의 말에, 슈리가 샤브나크를 가리키며 바락 소리를 쳤다.
“왜긴! 너랑 저 사람만 단둘이 있게 할 것 같냐!”
아이작은 말을 말자는 듯 걸음을 옮겼다.
“아무튼 해골왕을 소환하려는 해골왕의 추종자가 있는 건 확실해.”
슈리의 말에 아이작도 긍정했다.
그도 그럴 게, 아이작도 황궁 내에서 발견했던 것이다. 해골왕과 관련된 물품이 가득한 창고였다.
그리고 마족의 힘이 담긴 저주 물품부터 소환도구까지.
“아주 골수 추종자 같던데.”
“뭐, 그 더럽고 개 같은 해골왕의 힘을 이용하는 놈들이야. 하려는 짓도 뻔…커억!!”
슈리는 다리 사이로 떨어진 딸랑이 공격에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갑자기 왜!! 내가 뭐 잘못했어?!”
“…아니. 바닥에 바퀴벌레가.”
“…황실에?”
슈리는 당황했지만, 곧 아이작이 가려는 방향에 그를 붙잡았다.
“근데 너 아까부터 어디로 가는 거야? 해골왕 추종자가 나타날 장소는 거기가 아니잖아.”
괜히 교황청의 사제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견습들은 황궁에서 발견된 물건들을 통해 추종자의 목적이 뭔지 눈치챘다. 교황청 사제들에게 마족과 관련된 지식은 기초 중의 기초였기 때문이다.
“해골왕 추종자는 해골왕을 소환하려는 거야. 그리고 오늘은 그 소환에 딱 맞는 날. 설치된 소환진도 그렇고, 남긴 흔적들만 보면 황궁 2창고야. 거기서 잠복해서…….”
“아니, 거기 아냐.”
“뭐? 다른 선배들은 다 그쪽으로 가서 잠복했잖아.”
그 말에, 황궁의 정원에 숨어든 아이작이 픽 비웃었다.
“그건 속임수고.”
“!”
“진짜 소환 장소는 따로 있어.”
설치된 마도구들을 본 아이작은 바로 눈치챘다. 만약 정말로 그놈이 해골왕을 소환한다면, 상급 마족 소환진을 쓸 것이었다.
“그건 반대 방향이야. 성직자들의 눈을 피하게 하려는 속임수라고. 해골왕? 설치된 물건들을 보면 한 방이야.”
그러자 슈리가 수상쩍게 보았다.
‘뭐지, 이놈은 뭔데 해골왕에 대해 저렇게 잘 알지?’
그 얼굴에 아이작이 웃었다.
“해골왕에 대해 내가 얼마나 조사했는데. 가문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해골왕은 조진다!”
…정말로? 현상금 때문이 아니라?
그리고 그때였다.
어두운 정원으로 누군가가 걸어왔다.
“어, 진짜 누군가가 온다!”
후드를 뒤집어쓴 그림자가 어디론가 향하며 사라졌다.
그래서 범인이 누군가 싶었지만-
“뭐 사실 범인은 빤해.”
“뭐? 누군데?”
“황후야, 황후.”
“뭐?! 하지만 해골왕의 추종자를 찾아달라고 부른 건 황후님인데?”
“자기는 해골왕 첩자와 무관하다고 선을 긋고 싶은 거야. 뭐, 성직자들을 따돌릴 정도로 어지간히도 자신 있다는 건데. 추종자는 반드시 찾아낸다! 그럼 황태자나 황제의 점수를 따겠지!”
그러자 황궁에 설치된 소환식을 해독했던 위스퍼가 말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정말 그 소환 술법이라면, 주인님의 영혼이 소환될 수 있는데요.]
‘아,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인간 중에서는 그거 제대로 쓰는 놈이 없어.’
“아무튼 쫓아가자.”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슝!
어?
갑자기 아이작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이작?!”
슈리가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이작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진 아이작이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어떤 소환진의 위.
어…?
어어어어어어?
틀림없었다.
아이작이 소환된 곳은 다름 아닌, 해골왕의 소환진 위.
‘젠장, X 됐다.’
하지만 소환한 사람은 더 의외였다.
“…에슈아 공자?”
“…황태자 전하?”
…해골왕의 첩자란 거, 이 새끼가 범인이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