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1화. 해골왕의 추종자 (2)
-<역신 재래>.
-냉혹한 뼈의 군주.
대충 해골왕을 소환하는 소환술법이다. 뭐, 악마소환 술법이 있으니 마왕 소환진도 당연하게 존재하겠지.
아무튼, 인간들은 악마를 소환해 계약을 하는 데 이를 사용하며, 마족들은 자신보다 상위의 존재의 힘을 빌려오는 데 쓴다.
그리고 그들의 최상격인 마왕?
최고의 상징인 만큼, 당연히 개나 소나 다 부르고 싶어했다. 해골왕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어 소환하려는 자들이 넘쳐난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온갖 마왕 소환 마법들이 존재했다.
아니, 마법만 있으면 다행이게…….
성법에서도 있었다.
해골왕이 스켈레톤이다보니, 스켈레톤 소환진에서 조금 변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야말로 말도 못 할 정도로 불러댔다.
하지만 그깟것으로 감히 해골왕을 불러낼 수 있겠는가. 발치에도 오지 못했다. 성녀도 열심히 불러내긴 했지만, 열심히 씹었지.
그리고 대부분의 술법은 어차피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다. 가짜가 많으니까.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일부러 퍼트려 놓은 것이다.
그나마 자신을 부를 만한 술법은 딱 하나 정도로, 옛날에 자신이 일부러 만들어놓은 소환 마법인데…….
“…에슈아 공자?”
“…전하?”
시바, 이건 뭔 상황이냐. 아이작도, 황태자도 서로 당황한 듯한 얼굴이었다.
아이작은 자신이 소환된 마법진을 슬쩍 쓰다듬어보았다.
‘보고 또 봐도, 역시 그 소환진이 맞는군.’
그러니까 자신이 옛날에 만들어놓은 오리지널 소환 마법이다. 스켈레톤들이 성직자들에게 쳐맞는게 안쓰러워서, 정말 위급할 때 부르라고 만들어준 것이었다.
‘머리가 나빠서 제대로 기억하는 놈들이 없던 게 문제였다만.’
물론 그걸 쓰면 대륙 반대편에 있어도 소환될 만큼 효력은 좋지만, 남발하지 못하도록 발동 조건이 따로 있었다.
아무튼, 하급 스켈레톤들의 언어로 만들어진 거라 어지간한 열의가 아니면 해독도 힘들고, 인간은 더욱이 성공을 못 하는 게 정상인데.
어디 그뿐인가.
[왜 주인님의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까지 같이 소환되신 거죠?]
그러게 말이다. 설마 성자의 몸과 내 영혼이 이렇게 딱 붙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니, 그 점은 오히려 좋은 건가?’
덕분에 좋은 걸 알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전하, 이런 곳에서 무슨…….”
“…….”
“순찰 중이십니까……?”
순찰이라고는 했지만, 순찰은 개뿔이.
아이작 스스로도 기가 찬 듯 황태자를 보았다.
소환진에 서 있는 위치며, 어딜 봐도 저건 소환자의 행색이 아닌가.
저 새끼가 바로 황궁에 있다는 해골왕 첩자라는 것쯤은, 교황청 하룻강아지가 봐도 알 수 있겠다!
실제로 황태자 본인도 굉장히 당황스러운지, 드물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무려 신성제국의 황태자가 신성제국에서 마족을 소환하려다가 걸린 일이었다. 본인의 미래가 위험해질 일인데, 멘붕이 안 오고 배기나.
아이작은 관절이 아픈 노인 마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고오 전하. 하던 일 마저 하시죠. 소인은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잠깐.”
…역시 그냥 갈 수 있을 리 없지?
‘역시 목격자의 목을 자를 기세지?!’
“왜 네가 여기서 나오지?”
그쪽이 더 중요한 거냐! 자식아!
아이작은 기가 찬 듯 황태자를 보았다.
‘너 지금 해골왕 소환 마법 쓰다가 걸린 거야! 중요한 건 네 목이라고!’
그러나 위스퍼는 황태자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는 듯 말했다.
[…저라도 마왕 소환진에서 에슈아의 막내 사제가 나오면 기절할 것 같은데요?]
젠장! 나도 모르겠거든?
아이작은 황당하다는 듯 황태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 마법을 만든 장본인이기에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마족에게 맞춘 거라 인간에겐 버거운 마법이다.’
인간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스켈레톤의 언어를 구사해야 쓸 수 있으며, 설령 틀리지 않고 구사했더라도 인간이라면 힘에 부쳐서 결국 성공시킬 수 없는 술법.
‘이 자식, 설마 인간의 것이 아닌 피가 섞여 있는 건가?’
뭐, 설마 인간 몸으로 환생한 시점에서도 그 술법이 먹힐까 싶어서 방심한 것도 있지만, 사실 이건 그 이전의 문제였다.
이 마법은 스켈레톤들에게 가르쳐준 마법인 만큼 마족의 술법… 그러니까 본인보다 상위 존재를 부르는 술법…….
[분명 존경심과 충성심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마법이었죠?]
그래! 해골왕을 싫어하는 인간진영 놈이 성공 시킬 수 있을 리 없잖아!
[왜 그러십니까. 인간 중에서도 해골왕 추종자가 있다지 않습니까. 광신도면 존경심과 충성심은 가질 수 있죠]
시벌! 그래. 일반적인 추종자면 그럴 수도 있지! 문제는 이 새끼가 신성제국 황태자란 거잖냐, 시발 놈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황태자는 여전히 미심쩍은 눈으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왜 네가 여기서 소환되지?”
“…착각이십니다. 소환이 아니라, 나무 위에서 떨어진 겁니다.”
“여긴 나무가 없는데.”
“그럼 땅에서 솟았나 보죠.”
“…말이 되는 소리라고 보나?”
“황태자가 해골왕의 추종자라는 건 말이 되시고요……?”
“…….”
“…….”
둘은 동시에 침묵했다.
바로 그럴 때, 아이작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작! 어딨냐! 이 새끼가 갑자기 어디로 갔어!”
멀리서 들려오는 슈리의 목소리에, 결국 황태자는 곤란한 듯 이마를 짚었다.
“그… 일단 자리를 옮겨서 말하지.”
* * *
황태자궁.
자리를 옮겨 독대하게 된 둘이었지만, 황태자는 아이작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쯤 되자 위스퍼가 속닥거렸다.
[역시 황태자가 정체를 의심하는 것 같죠? 아무리 그래도 그 소환진에서 나오셨으니까요.]
그리고 그때, 낯익은 사념이 들려왔다.
[주군. 처리할까요?]
샤브나크였다.
아무래도 아이작이 갑자기 사라지자, 바로 은밀히 쫓아와 황태자궁에 숨어든 듯했다. 기척으로 볼 때, 저기 창문 밖에 달라붙어 살의를 뿜어내고 있군.
그런데 인석아, 여기 3층인데.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인간 황태자 정도야 흔적도 안 남기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직스러우나, 안 돼. 이 나라를 먹기 위해선 황태자는 필수라고.’
어차피 황태자 샤블리스가 사라져봤자, 황후의 아들이 황태자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황후의 아들? 교황하고 손잡을 거라서 아이작에겐 오히려 안 좋다.
게다가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오랜만에 발동했군. 생존 기원…….’
마치 여기 좀 보라는 듯, 황태자의 얼굴에서 아주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생존 기원은 생존에 도움이 될 만큼 이득을 가져다주는 자와, 반대로 생존을 위협할 만큼 위협적인 자를 가늠해준다.
‘이 반응은 어딜 봐도 전자지.’
지금까지 저 반응이 나온 건 릴라이, 청의 가주, 그리고 황제뿐이다.
황제 때와 비교하면 이목구비가 안 보일 만큼 번쩍이고 있으니…….
‘혹시 그때 황제에게서 느꼈던 기원의 힘은 황태자를 가리킨 거였나?’
뭐, 해골왕 소환이라니 좀 흥미가 돌긴 했지만, 이건 중요한 비즈니스 문제였다. 이득을 보려면 먼저 기선을 제압해야지.
“차라리 제가 못 본 척해드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뭐, 힘과 권력을 가진 황태자 입장에선 끌려다니기보단, 목격자를 없애버리려 하겠지만…….
‘이놈은 날 함부로 죽일 수 없다.’
자신은 에슈아였고, 에슈아? 그놈들은 한번 걸린 상대는 지옥 끝까지 쫓아가는 변태… 아니, 집념꾼들이었다.
숙부의 성격상 이 잡듯이 수색할 것이었고, 할아버지…는 과연 손주를 위해서 움직여 줄진 모르겠지만, 에슈아 직계가 황실에서 의문사한다? 가만있을 양반이 아니었다. 범인을 찾겠다고 나서면 황태자만 골치 아파질 테지.
그리고 총명함으로 정평이 나있는 황태자인 만큼, 본인의 상황과 의도도 이미 읽었을 터.
황태자로서는 약점이 잡힌 만큼 불쾌하고 초조해할 만도 할 텐데, 정작 그는 아까부터 다른 곳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왜 거기서 나왔지?”
이 미친 새끼야! 네 관심은 온통 거기냐!
‘아니, 뭐. 이해는 한다.’
얼마나 충격적이면 본인이 덜미를 잡혔다는 사실보다, 이 사실에 꽂혀 있겠는가.
‘아니. 그것도 아닌가.’
아이작은 슬쩍 황태자의 방 내부를 훑어보았다.
자주 쓰는 방은 아닌 것 같긴 한데, 곳곳에 해골왕과 관련된 물품이 있다. 해골왕의 마도구며, 그를 분석해놓은 마도서. 그를 소환하려는 소환서. 해골왕 인형까지.
하물며 해골왕 처형 에디션 물품에선 단두대를 빼고 해골왕만 쏙 빼서 보관되어 있다.
‘…이거 골수 추종자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뭔가 신성제국 황태자가 좋아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사실 짐작도 안 간다.
결국 아이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전하. 교황청 사제한테 걸리신 겁니다. 상황을 모르시겠습니까?”
“왜 거기서 나왔지?”
아씨, 이 새끼 말이 안 통하네, 이거.
하지만 황태자의 눈을 보면 딱히 약점을 잡으려는 것이라기보단, 진짜로 궁금해하는… 아니, 오히려 기대하는 얼굴이다.
응, 그러니까, 수많은 세월 동안 해골왕을 소환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는데, 겨우 소환물다운 소환물이 나온 걸 본 듯한 얼굴이다.
“설마, 그대가 해골왕…….”
“그럴 리가 있습니까앍?!”
발작하듯 외친 아이작이 말했다.
“저는 해골왕의 육신을 먹었잖습니까? 그래서… 소환되었던 걸 겁니다. 소환진에 반응해서요. 그 증거로 지금도 해골왕의 뼈를 먹은 배가 뜨거워 미치겠습니다.”
그 말에 황태자의 표정이 대놓고 시무룩해졌다.
“그런가.”
아니 왜 실망하는 건데!
“전하…. 실례지만 해골왕에게 관심이 있으십니까?”
“이 방은 동생의 방이다.”
“예?”
“황녀가 해골왕에게 빠져 있어, 그 대상을 소환해 관심을 가져도 되는 자인지 조사해보려고 한 것뿐.”
…진짜로?
[그럴 리가요. 아무리 봐도 남자 방인데요.]
하지만 아이작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말했다.
“그럼 오히려 제안드릴 게 있는데요. 저도 전하에 대한 건 묵인해드릴 테니, 제가 소환된 건 숨겨주셨으면 합니다. 전하도 저도 피차 교황청에게 나쁘게 보여서 좋을 건 없지 않습니까?”
“뭐, 그렇긴 하지. 그대도 나도 마력을 쓰는걸 좋게 볼 인간들도 아니고.”
“예…. 맞… 예? 마력이라니요?”
아이작은 뭔소리를 들었나 했지만, 황태자는 왜 그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대, 마법사가 아닌가.”
“…예??”
그러자 황태자는 더욱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이었다.
“10년 전, 그대가 마력을 써서 주교를 처리하지 않았나.”
그 말에 아이작은 아차 싶었다.
‘황족의 눈!’
10년 전 주교를 처리한 일이라면, 분명 유모에게 납치되었다가 릴라이가 찾으러 온 일을 말하는 것이다. 주교가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딸랑이로 처리했던 그 일.
동시에 아이작은 놀라운 듯이 황태자를 보았다.
‘이 새끼, 그 눈을 강하게 타고났구나.’
황족은 신성드래곤의 핏줄이 이어져 있기에 마족을 분간하는 눈을 가지고 있다.
말이 마족을 분간하는 눈이지, 실제로는 마안의 일종으로, 마법으로도 구현할 수 없는 귀한 눈!
[분명 주인님이 예전에 찾으셨던 힘이죠?]
그래, 만일 그 눈을 가졌다면 완성하지 못했던 마법도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마력을 쓰는 걸 들킬 정도로 안일하게 쓰진 않았는데.
아이작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마력이나 마력핵이라도 느끼신다는 말씀입니까?”
“아니. 사실 그대한테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철벽이라. 어쩌면 성자이기 때문일까.”
“그럼 왜 마력을 쓴다고?”
“네가 해골왕이라고 하면 알려주지.”
“관심 없으니 그냥 집에 가렵니다.”
아이작이 미련 없이 일어나자, 황태자가 알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의 피를 진하게 받은 탓에, 짐승이나 말 못 하는 이들의 말도 어느정도 해석이 가능하다.”
…뭐? 말 못 하는 이?
“아기 옹알이 소리도 그중 하나지.”
아이작은 잠시 얼굴이 굳었다.
…옹알이. 옹알이?!
동시에 그는 젖먹이 시절을 떠올렸다.
설마 저 새끼, 젖먹이 때 지껄인 말을 실시간으로 다 알아먹었단 소리냐?!
아니나 다를까, 황태자가 말했다.
“잘은 몰라도 그때 그대가 주교를 몹시 싫어하는 건 알았다. 그점이 오히려 황실로서는 좋았지.”
“!”
“그게 아니었어도 사실 그대는 나나 부황께는 구원의 느낌이었으니.”
“구원이요?”
“그대의 머리 색과 내 머리 색이 가진 의미는 알겠지.”
모를 리가.
무려 정반대의 의미다.
아이작의 머리 색이 신의 축복을 받은 자를 뜻한다면, 황태자의 머리 색은 저주받은 자를 뜻한다.
“교황청 모두가 부정하다며 깎아내렸지. 모친을 모독한 것으로도 모자라, 결국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그 주교도 그 일과 연관이 있고.”
아이작은 수긍했다. 그러고 보면 황비는 황태자가 어린 시절에 죽었다고 했지. 그게 교황과 얽혀 있었나?
‘모친을 죽인 상대면, 진짜 교황쪽은 싹 쓸어버리려 하겠네.’
교황가와 왜 그리 사이가 안 좋은 지는 아주 잘 알겠다. 덧붙여 그 당시 황제가 왜 그리 자신을 마음에 들어했는지도.
‘그땐 황금 딸랑이를 왜 그렇게 많이 주나 했지.’
“아무튼, 그 머리 색을 가진 자가 주교를 처리해주었다. 신의 축복을 받은 자가 주교를, 아니 더 나아가 교황을 부정해준 셈이지.”
아니… 그건 그냥 그 새끼가 맘에 안 들어서 때린 건데.
“그 점은 지금도 고맙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그런데?
“…그대, 진짜 해골왕이 아닌가?”
이 새끼…. 집요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