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32화 (132/272)

제132화. 해골왕의 추종자 (3)

아이작 에슈아.

황태자 샤블리스가 아이작을 처음 본 것은 6살 때로, 황제가 ‘성자’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그래? 에슈아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고?

-예, 가문 몰래 낳은 아이 같지만요. 하지만 태어난 날짜나, 부모가 시골 수도원에서 몰래 성자 판별을 했다는 걸 봐선… 확실한 성자 후보인 듯합니다. 다른 가문이 이를 알면 제거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놈들이라면 이미 움직였을 것이다.

당시 황제는 차세대 교황이 될 거라는 예언이 내려온 성자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자 후보를 판별해주는 예언 사제들의 동향에 하나하나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아니, 모든 가문이 그들의 발자취에 눈을 번득이고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예언 사제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멸문에 암투, 간계까지. 그야말로 제국 전체가 미쳐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황태자는 크게 관심도 없었다.

왜냐고?

‘성자? 어차피 성직자들의 앞잡이가 될 놈인데 무슨.’

성직자들이 어떤 놈들인가. 어머니를 앗아가고, 황실을 모독하고, 뒤에서 호박씨를 까는 놈들이 아닌가.

-황태자께서는 벌써 6살이나 되셨는데, 키도 체격도 아직 너무 작으시네요.

-역시 죽은 황비처럼 저주를 받은 게 틀림없습니다.

-진짜 황실의 핏줄이긴 할까? 부정한 자식이라 그게 머리 색으로 나온 건 아니고?

-쉿!

성직자들? 신의 이름을 앞세워 본인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불쾌한 족속들이다.

뭐, 성직자들은 신께 용서받으려면 행실을 똑바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신? 그게 어쨌는데? 종자를 억울하게 죽게 하는 게 신들이 하는 짓인가?

하지만 이런 불경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자신이 저주받았다는 증거일지도 몰랐다.

그래, 이 흑발처럼.

그래, 그리 생각했는데.

-누가 위대하신 신들인데! 그 새끼들 힘겨루기로는 질 거 같으니까 결계에 숨어만 있는 놈들이거든!

신의 축복을 가장 깊게 받았을 아기가 이상한 말을 했다.

아니, 이상한 말만 하면 다행이지. 딸랑이로 신의 종자를 개같이 두드려패며… 아니, 후려갈기며 말했다.

-이 씹새끼가 감히 내 돈줄을 처막으려고 해? 뒤지고 싶냐! 아니, 그냥 뒤져라!

-뒤지라고! 니 새끼가 날 마족으로 몰고가면 황제랑 못 친해지잖아! 그러면 내가 황실 보물 창고를 털 수가 없잖아, 씹새야!

-황제 놈은 반드시 내 따까리로 만들어놔야 하거늘!

-누가 성법 쓰는 척하면서 암살하려는 걸 모를 줄 알아! 너로는 500년은 이르다! 새끼야!

-네까짓 게 증거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냐?

…저 아기, 악마라도 씌인 건가?

아님 미친 건가?

원래도 아기 옹알이를 알아들을 수 있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주교와의 대화나 행동을 미루어볼 때, 저 아기는 마력을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속임수를 써서 주교에게 죄까지 뒤집어씌우기까지.

그 때문에 원래라면 당장 악마가 들렸다며 신고를 해야 정상이지만…….

‘신께서 정녕 모르실까?’

신의 축복이 든 몸에 악마가 들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그렇다고 하면, 그건 신이 잘못된 것이다.

그리 생각하니 샤블리스는 뭔가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백금발은 신의 대행자라 불리는 색. 그 신의 대행자가 교황청을 부정해줬다.

저 아이가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치 너는 잘못된 게 없노라며, 잘못된 건 저놈들이라며 신이 대신 말해준 느낌.

그래서 좋았다.

뭐, 딱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해골왕과 관련된 것.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해골왕을 좋아하는 건 선을 넘긴 했지.

‘잘못하면 황태자 자리가 위험할 수도 있긴 하지.’

관심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하자면 몹시 길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겐 굉장히 중요한 존재였으며, 꼭 필요한 존재.

그래서 더욱 집요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해골왕이 아닌가?”

그 말에 아이작은 눈썹을 꿈틀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 이 새끼, 끈질기네.

“전하는 제가 해골왕이길 바라십니까?”

“해골왕인가?!”

“…아닌데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태자의 반짝이는 눈이 실망하듯 시들어졌다. 하물며 왜 자신을 놀리냐는 듯, 원망마저 살짝 어린 눈빛이다.

그러나 아이작은 가증스러웠다.

‘뭐, 이놈이 해골왕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알겠지만.’

말해서 좋을 건 없다. 일단 이놈을 완전히 믿을 수도 없고, 이야기가 어떻게 새어나갈지 모르니까.

‘내 짬밥이 몇 년인 줄 아냐? 네놈이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안 넘어간다, 이거야.’

“아쉽지만, 저는…….”

“네가 해골왕이면 나라를 선물할 수도 있는데.”

“…해골왕일 수도 있죠. 예. 있고 말고요.”

“지금 해골왕이라고 한 거지?”

“…….”

“해골왕 맞지?”

…이 시바 새끼가?

누가 돈 많은 황실 아니랄까 봐, 치사하게 재물 공격을 하네?!

“농담 좀 해봤습니다! 도대체 해골왕을 얼마나 좋아하시길래 나라를 넘기신다고 하시나 싶어서요!”

“그래, 해골왕의 목적은 역시 이 나라였나.”

이 새끼, 말을 안 처듣네?!

에슈아하고는 다른 의미로 또라이네?

기가 차긴 했지만, 한편으론 또 궁금해졌다.

“도대체 신성제국 황태자가 왜 해골왕한테 관심을 가지십니까?”

“네가 해골왕이라고 하면 말해주지.”

아, 이러다가 말 안 끝나겠네. 아이작은 슬쩍 기대하는 눈초리의 황태자를 보았다.

‘저놈의 행동을 보니, 일단 목이 날아갈 염려는 없을 것 같고.’

원래부터 황태자는 청에 호의적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가족이 수상하게 생각할 테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오늘은 달이 없는 날이다. 그대를 소환하기에 좋은 날이니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아, 해골왕 아니라니까요!”

“나 말고 다른 이들이 그대를 소환한다면 필시 좋은 목적은 아닐 테지.”

“아, 그러면 조심해야겠네요.”

“…부정을 안 하는군. 역시 해골왕인가.”

…말을 말자, 시발.

* * *

[기분이 좋아보이시네요.]

황태자 궁에서 나오자마자 위스퍼가 한 소리 했다. 그리고 그 말에 아이작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기분이 안 좋겠냐? 황태자가 해골왕의 추종자일 줄은 몰랐는데. 뭐, 이해는 한다. 해골왕이 좀 멋지냐. 존경할 만하지 않냐.’

[…예. 적어도 얼굴 때문은 아니겠지만요. 컥!]

‘어쨌거나 황태자를 황위에만 올리면 일이 아주 쉬워지겠어.’

이유는 나중에 캐내 봐야겠지만, 교황청을 싫어하고 해골왕을 존경하는 황태자라니!

나라를 먹기에 얼마나 좋은 인재인가!

‘정체는 밝힐 수 없지만, 해골왕의 말인 척 이용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글쎄요. 그 황태자, 눈치가 상당히 빨라 보이던데요…….]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일단 베리트가가 재물신 빼앗아가려는 것부터 처리하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샤브나크는 좀 위험했다는 얼굴이었다.

“소환되신 건, 좀 위험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잘됐어.”

“예?”

오히려 이번 일로 성자의 몸과 영혼이 딱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아이작은 더 좋았다.

왜냐고?

‘이거면 영혼 분리 성법도 잘 안 통할 거거든.’

그나마 성직자들이 할 수 있는 짓이 그 정도일 텐데, 성자의 몸이 이 영혼을 너무너무 좋아해주니 어쩔 수가 없네.

[원래도 궁합이 좋긴 했지만, 주인님의 마력핵이 강해질수록 더 강하게 뿌리를 내리는 것 같습니다.]

이몸은 마력과 성력의 밸런스가 좋을수록 안정적이고, 강해진다.

그리고 상급신과 계약을 맺은 만큼 성력 수급이 늘어날 테니, 최근에 의도적으로 멈춘 마법 수련을 해도 된다는 의미다.

[몸이 안정화된 것엔 최고신의 가호 영향도 있지 않을까요? 재물신을 밀어내고 주인님과 계약을 하려 할 정도니까요.]

뭐, 그건 그렇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고신은 자신에게 호의적이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되는 건 곤란하니까, 마왕 소환식에 대해선 자체적인 보강을…….’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번쩍!

아이작의 발밑에 소환진이 떠올랐다.

마력이라서 아이작의 눈에만 보였지만, 그건 틀림없는 마왕 소환술!

[주인님?]

‘이놈들이……?’

아이작은 바로 소환진을 무마시켰다.

[또 황태자의 짓인가요?]

‘아니.’

아무래도 정말로 황궁에 있는 모양이었다. 겁도 없이 해골왕을 소환하려는 놈이 말이다.

‘뭐, 애초에 지금이 마왕 소환에 제일 좋은 시기이니, 어쩔 수 없긴 하지.’

해골왕의 추종자는 아무래도 황태자인듯 하지만, 달리 해골왕을 소환하려는 자들이 있는 건가?

그렇담 그놈들을 잡으면 황실 임무에서 좋은 점수를 받겠지.

그렇게 아이작이 역탐지 마법을 쓰려는 때였다.

“너 어디 갔었어!”

“!”

아이작이 화들짝 놀라서 뒤를 돌자, 슈리와 키나가 있었다.

“깜짝 놀랐잖아! 해골왕 추종자한테 끌려간 줄 알고!”

…뭐. 끌려간 건 맞지. 소환진으로.

아이작은 슈리와 함께 있는 키나를 보았다.

“그런데 왜 교황 손자 놈이랑 같이 있냐?”

“왜긴! 네가 사라져서 찾아달라고 했어!”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겨우 내가 사라진 걸로 교황가 손까지 빌렸다고?”

그러자 슈리가 미친 듯이 화를 냈다.

“겨우? 겨우우? 야! 너는 해골왕 육신을 먹은 놈이라 해골왕 소환의 촉매제로 최상 등급이라고. 만약 납치라도 당하면!”

…촉매가 아니라, 본인이 바로 마왕이라곤 말 못 하겠군.

“아무튼, 이번 해골왕의 소환 건이 위험하다는 건 확실해.”

“뭐? 왜?”

그러자 슈리가 의기양양하게 손등을 내밀었다.

손등에는 슈리가 계약한 빛의 신의 문장이 희미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이번에 계약한 청의 신께서 말씀하셨어! 여기는 위험하다고!”

…위험?

“해골왕 때문에 갇혀 있다고 하셨어!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해골왕의 추종자를 잡아서 빛의 신께 도움이 되어야 해!”

…갇혀 있다고?

무슨 소리지?

그런데 그때였다.

쿠구궁!

지진과 함께 그들이 움찔했다.

“이 기운은……!”

“마족 소환?”

곧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한 해골이 나타났다.

“뭐야, 정말 해골왕을 소환한 거야?”

…아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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