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33화 (133/272)

제133화. 해골왕의 추종자 (4)

쿠구구!

달이 없는 어두운 장막 아래, 거대한 괴물이 솟아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의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하얀 몸체. 갑주를 걸치고 있지만 마도사의 품격을 드러내는 로브. 그리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의 모습은, 그 존재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제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공허하게 뚫린 눈구멍은 아득한 심연을 들여다보듯 두려움을 유발했고, 눈구멍에서 치솟아 오르는 불꽃의 안광은 흡사 혼불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저게 보통의 스켈레톤인가?

저 크기며, 위압감하며.

무엇을 보더라도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하는 최강이자 최악의 마왕!

“해골왕!”

“해골왕이 소환됐다!”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두운 하늘 위로 솟구쳤다.

황궁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사제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들의 손에 살의가 담긴 성법이 솟구칠 만했다.

“저놈이 기어이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구나!”

“감히 마족 놈이 신성제국에!”

하지만 오직 한 명만큼은, 빡친 듯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시벌 놈들아! 아니라고!

저건 해골왕이 아니라, 자이언트 스켈레톤… 그러니까, 스켈레톤 중에서도 돌연변이인 놈이다.

하급 마족까진 아니고, 상급 정도 되는 놈인데…….

“해골왕! 죽여버리겠다!”

“주제도 모르고 신성제국에!”

아니라고오오오! 이 개같은 성직자들아!

아이작의 눈에서 살의가 치솟았다.

정확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이 기운과 파동은 틀림없는 마왕 소환진! 스켈레톤 소환 성법을 변형한 해골왕 소환 마법이었다.

그런데 수많은 마왕 소환진 중에서도 굳이 성법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 하는 이걸 썼다?

그 말인즉슨, 범인은 성직자들이란 의미였다.

‘이 망할 놈의 성직자들!’

애기 스켈레톤 소환으로도 모자라서 이젠 남의 집 귀한 스켈레톤까지 소환하냐!

위스퍼는 가족 상봉이라도 하듯이 웃었다.

[저 녀석, 오랜만에 보네요. 돌격대장이었던 것치고는 착하고 순했던 놈인데.]

새끼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적들이 내 부하를 소환했잖아!

[보통 소환된 소환수는 소환자의 말을 듣죠?]

아니나 다를까, 땅을 짚으며 발동된 술법을 분석하던 선배 사제들이 움찔했다.

노련한 그들조차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큰일입니다! 이 술법! 소환수에게 공격을 지시하는 술법입니다!”

“뭐라고? 공격 대상이 누군데?”

“황제 폐하입니다!”

“뭐라고!”

사제들은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마력을 가진 존재가 황제를 노린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실제로 어둠 속에서 성공해서 기쁘다는 듯 차가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성공했어! 소환된 이상 소환자의 말을 듣겠지.”

“자, 어서 황제를 죽여라, 마법을……!”

하지만 정작 스켈레톤은 쿠구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곤 마법을 쓰기는커녕 어디론가로 향했다. 소환자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야, 저거 어디로 가는 거야!”

“왜 우리 말을 안 들어?”

스켈레톤은 소환자들의 명령 따위 들리지도 않는 다는 듯, 어디론가로 바삐 향했다.

[주인님!]

“!”

[주인님이십니까!]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아이작 쪽으로 달려왔다.

쿵쿵!

그 모습에 숨어 있던 소환자들은 당황한 기색이었다.

“왜 저게 저쪽으로 가는 거야!”

“그쪽은 황궁 밖이잖아! 반대 방향이라고!”

사제들도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이었다. 왜 황제를 공격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가는 거지?

아니, 다른 쪽으로 가는 건 그렇다 쳐도, 가는 방향이……?

[주인님! 드디어 불러주셨군요!]

자이언트 스켈레톤 쿵쿵 달려간 곳엔 아이작이 있었다. 그 광경에 위스퍼가 깔깔 웃어댔다.

[주인님의 스켈레톤들은 소환자의 말을 안 듣기로 유명하니까요.]

…그래, 그렇지.

어디 그뿐인가?

아마 인간들이 마족을 소환해서 공격을 명령한다고 한들, 아이작의 존재가 있는 이상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언제나 최상위 명령권을 갖는 건 마왕이니까.

그래, 그렇긴 한데…….

[150년 만에 불러주시다니!]

아니라고, 씹새야!

[이 종자는 감격해서 눈이 멀 것 같습니다!]

이미 눈 멀었잖아! 새끼야!

그보다 이쪽으로 오지 마!

거대한 해골이 거의 오열하듯 다가오자, 아이작과 함께 있던 슈리가 기겁을 했다.

“악! 저거 이쪽으로 오잖아!”

설마 설마 했는데, 저거 진짜로 황태자 궁에서부터 이쪽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오기만 하면 다행이지! 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건데!

“저거 우리 공격하려는 거 맞지!”

슈리가 비명을 질렀다.

마침내 자이언트 스켈레톤이 아이작을 끌어안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 순간, 사제들이 몸을 날려 아이작과 슈리를 지켜냈다. 해골의 움직임에 경악해서 달려온 선배 사제들이었다.

“괜찮으냐!”

“예, 저희는 괜찮은데, 저놈이 갑자기 이쪽을 노려서!”

그 말에 선배 사제들은 아차 싶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세 명은 성자 후보가 아니냐!”

“예?”

“설마 저놈의 목적이 성자 후보들……?”

아니! 아니라고!

곧 그들의 떨리는 눈이 키나와 슈리가 아닌, 아이작을 향했다.

‘설마 노리는 게 아이작?’

“그래! 최고신을 가진 성자 후보니까!”

“역시 서품식 때도 그렇고, 네가 성자라는 건가!”

아이작은 뒷목을 잡았다.

아니라고! 성자는 맞는데, 아니, 씨!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신성제국에 저놈을 소환해?”

선배 사제들은 감탄했다.

“오…! 역시 청의 수호자! 해골왕을 처리할 위대한 자!”

“그래! 그 대머리를 처리할 건 너밖에 없다!”

일단 이 새끼들부터 좀 족쳐 둘까?

아이작은 자신을 피하는 모습에 시무룩해진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보며, 손을 까닥거렸다.

‘일단 지난번처럼 퇴마하는 척 돌려보내야겠군.’

그러나 그때였다.

움찔.

스켈레톤을 처리하려던 성직자들 모두가 당황한 듯 제 손을 보았다.

“성력이 써지지 않아!”

슈리가 아차 싶은 듯 이를 갈았다.

“청의 신께서 말한 게 이걸지도 몰라!”

“뭐?”

“여긴 위험하다고 하신 거 말이야. 해골왕 추종자들 때문에 성직자들의 발이 묶일 거라고 예언해주신 거야! 여기에 갇힐 거라고!”

아니, 청의 신이 말한 건 그게 아닐 것 같긴 한데…….

[주인님.]

‘그래. 마법이 둘러쳐져 있구나.’

아이작은 하늘을 힐끗 보았다.

이건 성력을 무력화시키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아이작에겐 별것 아닌 수준이었으니.

오히려 신경 쓰이는 게 있다면, 신성제국 인간이 쓰는 것치고는 꽤 정교한 게…….

그런데 그때였다.

쿠궁!

멈춰있던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러더니 아이작을 재회해 감격하던 태도는 어디로 가고, 돌연 아이작을 공격했다.

위스퍼가 놀란 듯이 외쳤다.

[상위 조종 마법의 힘입니다! 누군가가 저놈을 직접 조종하고 있어요!]

아이작의 눈이 서늘해졌다.

물론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상급 마족이라면 위압으로 스켈레톤을 조종하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랬기에 진마들이 조종당하지 않는 해골왕을 몹시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것이고 말이다.

어쨌거나 저놈이 조종당했다는 건, 마족의 개입이 있었다는 증거.

아무래도 황제를 죽이려는 해골왕의 추종자란 놈들이 선을 넘은 것 같은데. 하다 하다 소환으로도 모자라서, 조종까지 해?

[조종을 풀려면 마법을 쓰셔야 하는데, 쓸까요?]

성법은 쓸 수 없다. 뭐, 성직자들 앞이라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아주 잠깐 마법을 쓰는 건 괜찮겠지.

“내가 진짜 이 새끼들 기필코 멸망시키고 만다.”

그런데 그 순간, 조종당하던 스켈레톤의 머리 위로 빛줄기가 떨어졌다.

번쩍!

동시에 스켈레톤을 조종하고 있던 힘도 말끔히 사라졌다.

그건 다름 아닌 신성드래곤의 힘! 순간 어떤 강력한 힘이 스켈레톤을 어디론가로 텔레포트해서 날려버렸다.

그와 함께 그들 앞에 내려앉은 건, 검을 든 남자.

“전하!”

그들을 구해낸 것은 황태자였다. 그는 아이작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해골왕의 목적은 역시 이 나라의 멸망이었나.”

아니라고!

아니, 맞긴 하는데, 아무튼 아니라고!

하지만 황태자 덕분에 힘을 안 쓰게 된 건 고마운 일이니, 감사는 표했다. 오히려 다른 곳으로 날려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러나 키나는 곧바로 황태자에게 따지듯 쏘아붙였다.

“그렇게 하시면 깔끔하게 처리가 안 됩니다! 왜 마력핵을 직접 깨지 않으셨습니까?”

왜긴.

황태자는 대답 대신 스윽 아이작을 보았다.

“…처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 보았다.

“…그걸 왜 제게 물으십니까?”

그러자 황태자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그 스켈레톤, 네 부하가 아니냐는 눈빛으로.

“그거 해골왕(네) 부하…….”

“아니라니까요!”

황태자와 싸우는 그 모습에 키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이작과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 둘은 또 언제 이렇게 친해졌어?

동시에 아이작이 슈리에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추종자들을 쫓을 테니까 낌슈리 너는 그 스켈레톤 찾아서 감시하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키나가 혀를 찼다.

“그냥 내가 찾아서 처리하는 게 낫지 않아?”

“때끼야, 건들면 뒤져! 그건 내 거야. 건들면 너 평생 같이 공부하는 건 없다.”

“뭐?!”

키나는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선배 사제들은 내심 감탄했다.

‘자기가 직접 처리하겠다는 건가.’

‘역시 청…. 마족에 진심이다…….’

어쨌든 마족이 정말로 소환된 이상, 이건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

아이작이 범인을 쫓기 위해 돌아설 때, 슈리가 가로막았다.

“아이작, 깊게 쫓지 마.”

“뭐?”

슈리는 황태자를 보며 속닥거렸다.

“이거 황실 내부 싸움이야. 잘못하면 너도 휘말려.”

아이작은 어쩐 일이냐는 듯 슈리를 보았다. 사실 그가 이번 건을 마음에 들어 한 건, 그 정치적 냄새를 맡았기 때문이지만…….

“정치 감각도 없는 청이 그건 어찌 알았고?”

그때, 키나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내가 말해준 거다.”

“!”

키나가 아이작에게 마치 자신의 필요성을 깨달으라는 듯, 말했다.

“예측건대, 이 소동은 황태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워서 반역으로 끌고 가려는 거야. 증거도 없는데 괜히 나섰다간 너까지 휘말려. 공을 쌓을 좋은 기회긴 하지만, 이번 건은…….”

그러나 아이작은 코웃음을 치며 돌아섰다.

“증거를 왜 못 잡아. 직접 잡으면 그만인데.”

“뭐?”

“감히 스켈레톤을 조종하려 해서 황태자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해? 그건 내가 용납 못 하지.”

그 말에 황태자는 굉장히 감동한 시선으로 아이작을 바라보았고, 황태자와 원수 관계인 키나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이 자식, 설마 황태자 편에 서겠단 건가?!

하지만 아이작은 다른 이유로 눈을 번득였다.

이 새끼들. 감히 내 부하를 소환하고 조종하려 해? 그 값은 톡톡히 치러주마.

[…주인님이 그럼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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