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34화 (134/272)

제134화. 해골왕의 추종자 (5)

해골왕을 추종하는 자들.

뭐, 그런 놈들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원래 최강의 존재는 어떤 형태로든 관심의 대상이 되기 마련이니까. 미움이든, 흠모이든 말이다.

그런데 그게 흑마법의 자리에서 최강자인 해골왕이라면?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온갖 놈들이 종자라며 달려들었다. 마물, 이종족, 인간. 굳이 종족을 나눌 필요도 없이 모조리 말이다.

그러니 그런 놈들이 신성제국에 숨어 있다고 해서 새삼 놀랄 것도 없지. 딱히 신경 쓸 대상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거는 이야기가 다르지.

“감히 (내가 있는) 신성제국에서 해골왕을 소환하려 해? 제정신이야? 감히 (나보다 먼저) 이 나라에 해를 끼치려 하고, (내 미래의 돈줄이 될) 황태자 전하를 건들다니. 용서 못 한다!”

아이작의 외침에 슈리의 얼굴 썩어들어갔다.

…시벌. 이놈은 또 왜 이러는데.

그보다 뭔가 말 사이에 빠진 말들이 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아니, 사실 이놈만 이러면 또 모른다.

“야. 뭐야? 쟤 언제 황태자랑 저리 친해졌어? 언제부터냐고. 아니면 매일 붙어 다니더니, 설마 네놈이 사주한 거냐?”

키나가 멱살을 붙잡아오자, 하늘을 보는 슈리는 눈물이 찔끔 나왔다.

시발…. 집에 가고 싶다.

오늘따라 하늘에 달빛 한 점 없네. 하늘이 새까만 게 내 미래를 보는 것 같네.

‘아이작이 언제부터 황태자와 친해졌는지 내가 알게 뭐냐.’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해골바가지하고도 100년지기였다고 지껄이는 미친놈인데.

물론 아이작이 황태자와 친해 보이는 게 키나에겐 초조한 일인 듯했다.

‘뭐, 그럴 만도 하다만.’

5대 신앙 중 에슈아가 황실을 지지한다는 건 정세적으로 엄청난 권력 구도 변화였다.

‘전통적으로 모든 신앙을 품어야 하는 교황의 입장상, 차기 교황으로 내정된 자로서 신경 쓸 수밖에 없지.’

특히 에슈아 정도면 더욱 상징성이 높다.

게다가 황태자는 교황청을 싫어한다. 귀족파이자 교황파인 키나에겐, 황태자는 절대 양립할 수 없는 대상.

쉽게 말해 내 따까리가 되어야 할 놈이 적장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느낌일 테니, 열 받는다는 것이다.

하물며 황실 못지 않은 권력에, 5대 가문을 다 쥐어야 하는 교황가로서는 자존심에 상처일 수도 있지.

‘설마 나보다 황태자가 더 낫다는 건가?!’

그래, 대충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네.

뭐, 원래도 키나는 아이작만큼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며, 유일하게 인정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아무튼, 키나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작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황태자 나리. 첩자 잡아다 줄 테니까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죠.”

“너라면(해골왕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그 말에 키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리고 애꿎은 슈리의 멱살을 잡았다.

“야! 고결한 에슈아가 왜 비리 청탁을 하고 있어! 슈리, 너 쟤한테 뭘 가르친 거냐!”

슈리는 눈이 촉촉해졌다.

시발…. 억울하다. 왜 아이작 때문에 자신이 멱살을 잡히고 있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키나의 눈빛은 진지했다.

“돈인가? 역시 돈 때문에 황실을 택한 건가?”

아니, 그냥 교황이 싫은 걸걸. 쟤 교황만 보면 이상하게 모가지를 따겠다고 하는 미친 놈이라.

“이쪽도 돈으로 매수해야 하나?”

…이봐, 교황가. 니들 그래도 되는 거냐?

“아냐…. 차라리 낙하산으로 한자리 내주는 게 나을지도.”

“아냐…. 차라리 비리 청탁이 나을지도.”

…이 나라, 정말 괜찮은 거 맞냐?

곧 키나가 슈리를 붙잡았다.

“아이작 에슈아가 뭘 좋아하는지 리스트 적어놔 봐. 아니다. 당분간 나도 청에서 수련해도 되는지 물어봐.”

아오!

결국 참다 못한 슈리가 한 소리 하려는 듯,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아이작을 보았다.

“야! 아이작! 그만하고 이리… 어?”

아이작을 끌고 가려던 슈리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아이작이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뭐야, 이 새끼. 어디 갔어?!”

* * *

“젠장, 이게 어찌 된 거야!”

어두운 밤하늘 아래. 황궁에서 도망치는 세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어떻게 불러낸 스켈레톤인데!”

“빌어먹을 황태자 놈, 그걸 다른 곳으로 날려버려?”

신성드래곤의 힘이 강력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만한 덩치까지 한순간에 날려버릴 줄은 몰랐는데.

“계획이 다 틀어졌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들은 소환했던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문제 삼았다.

“그 스켈레톤, 분명 우리 명령을 듣지 않았다.”

“!”

그들이 사용한 소환진은 완벽했다. 해골왕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한 상급 마족이면 충분히 황제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소환진에서 불러낸 이상, 소환자의 말을 반드시 들어야 하건만.

“말을 안 들었다는 건, 소환진의 명령을 박살 냈다는 건데.”

“설마 그 소환진보다 더 강한 존재가 거기에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뭐? 말이 돼? 그 소환진은 위대한 해골왕의 심복이 직접 만들어준 소환진이다. 그분은 7계위야!”

신성제국에 7계위 이상 마법사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사라진 스켈레톤을 찾아! 찾아서…….”

“찾아서 어떻게 할 건데?”

“뭘 물어! 계획 다 까먹었어? 황태자를 교체하고 에슈아도 나락으로……!”

“아앙? 그건 또 무슨 말일까?”

“……?!”

낯선 목소리에 후드의 사내는 헉, 숨을 삼켰다. 어둠 속에서 들려온 건 틀림없는 아이 특유의 가벼운 목소리지만, 동시에 깊이가 느껴지는 살벌한 목소리.

이에 주변을 살핀 그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따라오던 두 동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뭐야, 이놈들? 갑자기 어디로 사라졌어?!”

“어디로 사라지긴.”

목소리와 함께 후드의 남자가 커헉,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내 부하가 친히 잡아가셨지.”

“……!”

사내는 극심한 고통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에 둔탁한 통증과 함께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제 피를 본 사내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잡아갔다고?’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는데!

귀신이 잡아간 건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단심문관의 무기인가?’

무려 몸에 걸린 7계위의 보호 마법이 뚫렸다. 보호 마법을 뚫고 피를 낸 것이다.

그걸 뚫을 만한 건 대인전에 특화된 적의 신앙의 이단심문 무기 정도. 그래, 그 무기면 보호 마법을 뚫을 만도 하지.

하지만 ‘무기’라면 이미 대처법을 준비해놨다. 괜히 신성제국에서 해골왕의 첩자 노릇을 한 것이 아니다.

사내는 히죽 웃으면서 마법을 발동했다.

‘자, 역으로 심판해주마. 그 기고만장한 무기를 박살을 내주…….’

그러나 사내는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무기를 보며 제 눈을 의심했다.

뭐지?

무기가… 아냐?

‘…딸랑이?!’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건, 분명 황금빛의 딸랑이였다. 그리고 그걸 손에 쥔 소년이, 어둠 속에서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며 히죽 웃었다.

“자, 이제 너 혼자 남았어. 새끼야.”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년을 보았다. 키나 정도의 체구인 걸 보면 분명 아직 어린 소년인데, 얼굴에 투구를 쓰고 있어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투구엔 동료들의 것으로 보이는 피가 묻어 있어 기괴하기 짝이 없다.

“너, 뭐야! 누구야!”

그러자 소년이 딸랑이를 휘휘 흔들며 웃었다.

“나? 그냥 지나가던 행인.”

행인은 무슨!

“숨기려거든 옷부터 감추시지? 어딜 봐도 견습 사제복인데!”

“아. 그럼 지나가던 강도로 하지.”

사내는 기가 찬 듯 아이작을 보았다.

“왜 갑자기 사제에서 강도가 되는 건데?!”

“이제부터 나쁜 짓을 할 거니까, 사제라고 하면 혼나거든.”

“뭐가 어째?”

사내가 도망가려 하자, 그를 콱 밟은 아이작이 딸랑이를 높이 들었다.

“아저씨, 도망칠 생각 하지 마. 지금부터 내가 강도질을 해야 하거든? 할아버지 몰래 처리해야 하거든? 안 그럼 후계 자리 물 건너가거든? 청의 교리 중에 사람을 습격하면 안 되는 게 있어서 몰래 처리해야 한다구.”

시발, 정체를 숨길 생각도 없네, 이 새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샤브나크에게 둘을 처리시키고 대장을 따라온 아이작은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처리하기 전에 몇 가지 물어볼게.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꽤 아플 거야.”

사내는 기가 찬 듯 입꼬리를 올렸다.

“보아하니 에슈아의 견습 같은데.”

“아씨. 나 지나가던 강도라니까. 아, 정체를 알아버렸으니 뒤처리까지 해야겠네. 그러니까 기껏 투구까지 써줬는데, 왜 정체를 눈치채가지고.”

그쪽이 먼저 정체를 분 건 생각 안 하지?! 사내는 어이가 없었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듯 웃었다.

에슈아의 핏덩이인데다가, 성직자라면 마법에 약하다. 어디 그뿐인가?

“에슈아라니, 네놈을 처리하면 위대한 해골왕께서도 기뻐하실 거다!”

아이작은 실소를 흘렸다.

“뭐? 누가 기뻐한다고?”

그 순간. 화륵 불씨와 함께 거대한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콰르르륵!

“아악, 뭐야, 불?!”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불길이 사내의 허리까지 한순간에 치고 올라왔다.

“불, 불!”

사내가 허우적거렸지만, 아이작은 가소롭다는 듯 사내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사내가 몸에 지니고 있던 마도구를 통해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가 증거를 없애기 위해 방화를 준비하고 있었단 걸.

아마 황궁 사람들을 죽이려 한 것이겠지.

“불을 쓰려면 똑바로 써야지. 불은 이렇게 쓰는 거야.”

아이작이 딸랑이를 위로 들자, 허리까지 올라왔던 불이 사내의 머리까지 솟아올랐다.

“아아아악! 뭐야, 무슨 일이!”

동시에 아이작이 웃으며 말했다.

“말해줘 봐야 넌 이해도 못 해. 자, 불이 꺼지길 바라면, 말해. 네놈들의 배후는 누구지?”

“이 미친놈!”

“자, 불꽃이 더 타오르네?”

피 묻은 딸랑이를 흔드는 마왕이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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