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36화 (136/272)

제136화. 해골왕의 추종자 (7)

“아이작 공자가 큰 공을 세웠군요.”

무려 황제를 노리던 세력이 붙잡혔다. 단순한 해골왕 추종자 찾기에서 반역의 씨앗을 붙잡은 일이었다.

주목을 안 살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 한마디로 공을 세울수록 높은 등급으로 승격할 수 있는 견습 사제들로서는 경사인 것이다.

경사적인 일인데…….

“그놈의 피 묻은 딸랑이는 제발 좀 치우면 안 되겠냐?”

슈리는 번득이는 눈으로 아이작에게 속삭였다.

황실에 아이작과 함께 불려온 건 좋은데, 이놈의 자식이 질리지도 않고 피 묻은 딸랑이를 황제 앞에 꺼내 들어?

황실 시종의 눈이 또 덜덜 떨리는 거 안 보이냐?

아이작이 황실에 들어올 때마다 시종이며, 기사들이며 좌불안석인 거. 이놈만 모르지?

“그보다 어떻게 들고 온 거야? 황궁에 들어올 땐 무장 금지인데……!”

“어떻게 하긴. 팬티 속에…….”

슈리는 바로 아이작의 입을 막았다.

“됐으니까 묘사하지 마라…….”

어떻게 날이 갈수록 행동이 괴이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왜 들고 온 거야?

그 혐오 어린 눈빛을 읽은 아이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긴? 폐하께서 어떻게 잡았는지 꼭 설명해달라고 해서…….”

“말로 하면 되잖아, 말로……!!”

“됐으니까 낌슈리 넌 닥쳐. 스켈레톤 관리 하나 못 해서 감히 그 스켈레톤이 나한테 달려오게 만들어?”

“우이씨.”

“내가 그거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고생하셔서 부하를 신성 연못에 처박으셨군요.]

‘넌 닥쳐.’

슈리는 할 말이 몹시 많았지만, 가까스로 참으면서 아이작을 나무랐다.

“여긴 내 말이 맞으니까 들어. 피 묻은 물건을 황궁 안에 들고 오다니, 폐하가 불경하게 여기실…….”

“선물을 잘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 짐도 몹시 기쁘고 고맙군.”

아니, 폐하아!

이딴 놈한테 고마워하지 마십시오! 이 새끼 버릇만 나빠집니다!

슈리는 뒷목을 잡고 싶었다.

‘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지만.’

무려 성자 후보가 10년 전에 선물해준 물건을 소중히 간직해준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데, 그걸로 황제를 죽이려는 범인까지 잡아줘?

얼마나 예뻐 보일까?

‘하물며 황실이랑 교황청의 사이는 더 안 좋아진 판에.’

황실도 이미 10년 전부터 교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군사력을 더 늘리기 시작했다. 교황으로서는 달가울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교황이 황실을 그냥 두고 보고 있는 건, 성직자들에게 신성드래곤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편한 동거 관계 사이에서, 황실의 힘을 손에 쥘 수 있는 자의 존재?

말로 다 할 수 없지.

거기에 만약 아이작이 정치적 노림수까지 고려해서 들고 온 거면, 정말 대단한 놈인 건데…….

“봤냐? 황제가 고맙다잖냐.”

…그럴 리 없지. 시발.

더 골때리는 건, 아이작을 예뻐하는 황제의 반응이다.

“그것도 벌써 10년 전의 물건이니, 좀 그렇군. 분란의 씨앗을 잡아준 공자에게 새로운 선물을 줘야 할까.”

아이작의 눈이 무섭게 번득였다.

“그럼 이번엔 다이아 딸랑이로……!”

“딸랑이는 제발 그만!!”

속삭이는 슈리가 제발 참으라는 듯 아이작의 팔을 잡아 눌렀다.

그때,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황후가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최고신과의 계약자인가. 대단하구나. 내가 부탁했지만 설마 정말 첩자를 잡아줄 줄은 몰랐는데.”

아이작은 힐끗 황후를 보았다. 자신을 향해 웃는 입술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혀는 포장이 잘 되어 있지만, 글쎄.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게 보이는군.’

뭐, 그럴 만도 하지. 이번 건으로 황태자한테 반역죄를 뒤집어씌워 처리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까.

사실 이번 건에서도 황후가 아이작에게 바란 건, ‘괘씸하게 신성제국에서 마에 손을 댄 황태자를 잡아내는 것.’이었을 테다.

하지만 어린 사제가 잡으라는 황태자는 안 잡고, 흑천사라는 진짜 배후를 가져왔으니. 열이 안 받을까.

하물며 아이작은 사실 말만 안했을 뿐, 일부러 황실 내부에 내통자가 있다는 증거들을 슬쩍 흘렸다. 머리 좋은 황제의 충신들이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즉, 황후로서는 아이작을 귀여운 강아지처럼 부리려다가 실패한 셈이었으니, 심기가 매우 불편하겠지만…….

“분명 공자는 보상을 요구했었지. 그럼 폐하를 지켜준 은으로 이 내가 직접 보답을 드려도 되겠소?”

얼씨구, 자기 기분보다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군.

위스퍼도 바로 황후의 속내를 눈치챘다.

[저 황후, 이걸 빌미로 주인님을 곁에 둘 생각이군요?]

황제의 목소리가 묘하게 바뀌었다.

“황후가 그렇게까지 할 건 없는데.”

괜히 이 대제국의 주인이 아니다. 목소리 하나로 확 바뀐 긴장감에 가신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황후는 꼭 맡겨달라며 웃었다.

“아닙니다, 폐하. 애초에 제가 의뢰를 맡긴 일인걸요. 제가 꼭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아직 어린 사제가 기특하기도 하고요.”

아이작을 바라보는 황후의 눈빛에 황태자가 가장 크게 움찔했다.

원래 황실이나 대귀족쯤 되면, 선물이 그냥 선물이 아니었다. 아이작이 황후에게 뭔가를 받게 되면, 필연적으로 황후와 얽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즉 황후와 가까워지면, 황태자와 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

그 때문에 황태자의 입이 달싹거릴 그때.

“황공하오나, 황후 마마. 황태자 전하께 이미 보상을 받기로 했기에 이 이상은 신을 섬기는 몸으로서 너무 분에 넘치게 될 것 같습니다. 부디 마음만 받게 해주십시오.”

아이작이 미소를 지었다. 대충 너한테 선물 받기 싫으니까, 꺼지라는 말이었다.

그 말의 의미를 눈치챈 가신들이 식겁했다.

그러나 슈리는 다른 의미로 기가 찬 듯했다.

‘…황태자한테는 언제 보상을 받기로 했는데?’

그런 말은 들은 적도 없었는데?

물론 황후 입장에서 아이작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할 테니, 아이작이 거기까지 염두에 두고 말한 것인지는 몰랐겠지만, 미묘하게 웃었다.

“최고신을 가진 사제는 황태자가 맘에 들었나 보구려.”

분명 후회하게 될 텐데.

물론 그 말이 삼켜졌다는 걸 아이작이 모를 리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고, 아이작은 황궁에서 빠져나왔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서 슈리가 물었다.

“황후를 적으로 돌려도 되겠냐?”

“그럼 나더러 교황하고 손잡으란 거냐?”

“…….”

이 새끼는 왜 이렇게 교황 성하를 싫어하는 거지?

물론 에슈아로서도 황후보단 황태자쪽이 차라리 낫긴 하지만 말이다.

“뭐, 네 말 덕분에 황태자 전하도 감격에 젖은 얼굴이었다만.”

“그래, 그러니까 괜찮…….”

“괜찮긴 뭐가 괜찮아!”

“!!”

아이작이 황궁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몰려오는 사제들이 있었다. 그 사제들을 본 아이작은 끈질기다는 눈빛으로 눈을 부릅떴다.

“아오! 금의 사제들은 뭐 이리 집착이 심해! 이러면 니들 인기 없어!”

“뭐라는 거냐! 훔쳐 간 금의 터주신을 내놔!”

아무래도 금의 추기경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아이작이 들고 튄 터주신을 회수하러 온 모양이었다.

평소엔 아이작이 성법을 써서 금의 사제들을 유린했지만, 황궁에서는 황족 외 성법 금지!

“자, 여기선 성법도 못 쓰겠지!”

“터주신 내놔! 도둑놈아! 그게 어떤 신이신 줄은 아는 거냐?”

그러자 아이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필 성법도 못 쓰는 곳에서 진을 치고 있다니! 작정을 했나!

“시벌, 이 비겁한 때끼들! 니들이 그러고도 성직자냐?”

아니, 비겁한게 어느 쪽인데?

“그리고 터주신 나한테 없거든? 다른 사람 줬거든?”

“거짓말치지 마! 추적 성법이 널 가리키고 있어! 네 몸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내놔!”

그 말에 슈리의 표정이 볼만했다.

아니, 몸이라니?

…이 새끼 설마, 딸랑이처럼 팬티에 넣어놨냐? 신을??

‘터주신은 도대체 뭔 죄인데?!’

곧 금의 사제들이 아이작을 포위했다.

“내놔! 오늘만큼은 가져가야겠다.”

그 말에 아이작이 머리를 굴렸다.

“못 가져가! 이건 황실에 주기로 했어! 띱때들아!”

“!”

금의 사제들은 움찔했다.

그도 그럴 게, 아무리 잘난 금의 사제들이라도 황실의 물건에는 손을 댈 수 없다. 그걸 알기에 아이작도 일부러 포기시키려고 황실을 거론한 것이지만…….

“웃기지 마. 황실이 교황가의 신을 받을 리 없잖아!”

“구라도 정도껏……!”

그런데 그때였다.

“그래, 그 물건은 황제궁 정원에 두기로 했다.”

“!”

“황태자 전하!”

황태자의 등장에 금의 사제들은 당황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황태자는 썩 꺼지라는 듯이 그들을 노려보았다.

“감히 황실에 들어온 물건을 가져가려 하다니, 금은 도리를 모르는군.”

아이작도 이게 웬 떡이냐는 듯 끼어들었다.

“그래, 터주신은 황태자궁 정원에 두기로 했어! 그쵸, 전하?”

“그래, 황태자궁 정원에 두기로 한 것 같다.”

금의 사제들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켰다.

아니, 언제는 황제궁에 두기로 했다며?!

“방금 바뀌었다.”

뭐, 인마?

“아이작 공자의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말은, 이제부터 내 물건을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판단하지.”

“……?!”

젠장, 황태자가 아이작의 편을 들어주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슈리도 기가 찬다는 듯 황태자에게 질문했다.

“…금가의 신을 황태자궁에 두신다고요?”

에슈아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황실은 더 끔찍하게 금을 배척하는데?

하지만 정작 황태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아이작을 보았다.

“뭐, 아이작 공자라면 안 쓰는 정원 하나 내줘도 상관없겠지. 자유롭게 쓰게 해주마.”

슈리는 입을 떡 벌렸다.

황태자궁 정원이라면 아무나 쉽게 접근도 못 하고 보안도 철저해서, 황실 최고의 금고 같은 곳이 아닌가. 그런 곳을 아이작에게 그냥 주겠다고?

아이작도 이게 웬 떡이냐는 듯이 금의 사제들을 쳐다보았다.

“알았으면 꺼져, 때끼들아.”

결국 금가 애들이 이를 갈며 물러났다.

슈리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작은 터주신을 금가한테 안 뺏기려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황실 일에 유독 눈독을 들이더니만…….

‘설마 터주신을 안 뺏기려고… 황태자한테 붙어먹은 거였어?’

그리고 나는… 그깟 재물신 때문에 키나한테 괴롭힘당하고 있는 거고?

지금도 키나가 신년에 에슈아가에 방문하겠다고 지랄을 하고 있는 참이 아닌가!

슈리는 황태자한테 감사를 표하는 아이작을 바라보았다.

“캬, 인심 좋고. 전하. 그 정원, 맘대로 써도 되는 거지?”

슈리는 동공이 떨렸다.

이 미친 새끼야, 존댓말부터 써!

“뭐, 그리하거라. 그 정원엔 너만 들어갈 수 있게 해주지.”

황태자 이 새끼야, 너도 좀 이상함을 느껴!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잘됐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황태자 궁 정원이면 들키지 않고 마법 약재도 심어둘 수 있겠다. 마법 수련할 수 있어!’

마도제국 정도는 아니지만, 신성드래곤 때문에 마법을 쓰는 황실이었다. 마법 재료가 있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황태자의 꼴을 봐라. 마법 좀 쓴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지도 않다.

‘여차하면 해골왕 마력이 폭주했다고 우기면 그만이잖아?’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아이작은 황태자의 머리가 푹 젖어 있음을 눈치챘다.

“그런데 나으리? 왜 이렇게 젖어 있으십니까?”

제발 호칭 좀!

슈리는 괴로운 듯 이마를 짚었지만, 황태자는 대수롭지 않게 시녀가 가져오는 수건을 받았다.

“연못에 잠수하느라.”

“잠수…? 연못에는 왜?”

그러나 황태자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 말했다.

“곧 신년이군. 둘 다 집으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조심해라.”

“예?”

“견습 졸업식 때, 교황이 서품식 때 내리지 않았던 칭호를 내리겠다고 했다.”

“!”

동시에 그가 경고했다.

“교황을 조심해라. 펜타곤에서 1위 자리를 차지한 널 가만둘 리 없거니와…….”

황태자의 무표정한 금색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다른 신앙에서 뭔가 찾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은데…. 그 단서가 형법의 신인 듯하다. 그걸 가진 널 노릴 수도 있다.”

“!”

황태자가 그 말만 하고 사라지자, 슈리는 더 이상 아이작이랑 함께 못 붙어 있겠다며 홱 돌아섰다.

“아오, 됐으니까 난 이제 짐 싸러 간다.”

“짐?”

“신년이니까 에슈아 본가에 돌아가야지! 넌 어차피 수도에 처박혀 있을 거지? 겨울부터 봄까지 네 꼴 안 봐서 다행…….”

“무슨 소리야? 왜 안 봐?”

“너 수도에 남는다며!”

“나도 에슈아로 돌아갈 건데?”

“뭐?! 왜!”

슈리의 절망섞인 얼굴에 아이작은 큭큭 웃었다. 안 그래도 슈리가 한 말이 신경쓰이는 그였다.

‘청의 신이 갇혀 있다는 말을 했다고 했던가.’

뭐, 설마 자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지만…. 에슈아 본가에 가게 되면 청의 주신에 대해서 바로 파악하게 될 것이었다.

‘마침 신년에 성령이랑 만나기로 했으니, 형법의 신이랑 삼자 회담을 해볼까.’

아이작의 말에 슈리는 죽겠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래. 본가에 갈거면 딱히 이 편지는 안 전해줘도 되겠구나.”

“뭐? 뭔데?”

“집에서 편지가 왔어. 하나는 나, 하나는 너.”

슈리는 아이작에게 편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멜리사 가모님이 너 좀 보자신다.”

…시발. 도망 못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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