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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39화 (139/272)

제139화. 청의 사람들 (3)

아이작 한마디에 안채에서 숨소리가 사라졌다. 옆에 있던 슈리는 아예 얼어붙고 말았다.

…내가 저 새끼 저럴 줄 알았… 아니, 솔직히 몰랐다! 저렇게 뒤도 없는 놈처럼 지껄일 줄 누가 알았겠어!

실제로 다른 에슈아들은 제정신이냐는 듯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혼란, 공포, 경악. 마치 절대 손댈 수 없는 사람을 끌어내린 듯한 놀라움과 감탄.

물론 정작 그 장본인은 그 시선들이 좋을 리 없지만.

아니나 다를까, 슈리를 보는 노엘의 표정이 싸하게 굳었다.

“슈리 에슈아. 너 도대체 저거 교육 안 시키고 뭐 했어? 너 뭐 하는 놈이야?”

살벌한 음성에 슈리는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게 노엘은 슈리의 큰아버지다. 감히 반박…할 수 있을 리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저 사람이 에슈아에서 어떤 존재인가.

‘에슈아에서 성녀를 가르치는 존재.’

릴라이의 말만 들으면 망나니로 보이지만, 괜히 가주로 추대받는 것이 아니었다.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완벽한 외모에 힘, 사교술, 화술, 전투, 두뇌, 성법까지. 능력은 사실상 9계위로, 릴라이처럼 추기경의 비전만 전수받으면 완벽한 추기경이었다.

슈리도 어린 시절, 아이작에게 굴려지기 전까진 노엘에게 교육을 받았다. 한마디로 노엘은 집안 아이들의 군기를 잡는 대상이란 말이다.

슈리를 포함해 모두가 무섭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저 막내놈 이제 죽었군.’

‘슈리도 끝이네.’

아니나 다를까, 슈리의 공포를 눈치챈 릴라이가 끼어들었다.

“아이작의 교육은 제가 했습니다. 그러니…….”

그러나 노엘은 코웃음을 쳤다.

“네가 교육을 해? 버러지 같은 해골왕을 찾겠다고 돌아다니는 니 새끼가 무슨…….”

“어쭈, 새끼?”

“!”

아이작의 비웃음에, 노엘이 제 귀를 의심하듯 조카를 보았다.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아이작은 진짜로 노엘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슈리랑 내 숙부는 왜 건드려, 새끼야.”

“!”

“지가 주둥이 간수 못 해서 조카한테 쪽을 당했으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아이작, 제발!

슈리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다른 에슈아들 앞에서 혀짧은 소리를 안 낸 건 기특하다만, 글쎄. 이쯤되면 차라리 혀 짧은 소리가 나을지도. 시발…….

그러나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실 아이작이 겁도 없이 이렇게 나가는 데에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

왜냐고?

-‘생존’ 기원.

‘와 설마 이걸 여기서 볼 줄은 몰랐네.’

생존 기원이 황태자에 이어서 또 발동을 한 것이다.

물론 늘 보던 기원 반응은 아니었다. 만약 황태자 때처럼 번쩍번쩍거렸으면 진작에 ‘쭉부니임!’ 하고 친한 척을 했겠지.

하지만 이건…….

아이작이 스윽, 서늘한 눈빛으로 노엘을 노려보았다.

번쩍거리는 것과는 정반대의 반응. 아이작의 시야에 보이는 노엘의 모습은 검붉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척 보기에도 단순한 연기라기엔 불길하고, 연기에서 진득이는 뭔가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불쾌하다.

아이작은 그 연기의 정체를 너무 잘 알았다.

-≪생존을 방해하는 자≫.

마치 부모의 역할처럼 절대적 아군이라 할 수 있는 ≪생존에 필요한 자≫의 번쩍거림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반응.

즉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다.

‘생존을 방해한다는 말은 즉, 적이라는 거지. 그것도 목숨을 위협하는.’

물론 직접적인 해코지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아이작의 생존과 연관된 사람이나 물건, 관계를 없애려는 것도 해당한다.

‘릴라이 같은 녀석들은 평소처럼 ≪생존에 필요한 자≫의 번쩍거림이 떴지만, 저놈은 반대란 거지.’

뭐, 어쨌거나 저놈은 가까이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거지. 가주 자리를 노리는 적대 관계니 저게 뜨는 것도 당연했지만, 솔직히 의외였다.

‘인간들 중에서는 어지간하면 안 뜨는데…….’

심지어 에슈아에서만 두 놈이나 뜬다고?

아이작은 노엘과, 자신을 지긋이 보고 있는 갈색 머리 사촌을 보았다.

아이작은 ≪생존을 방해하는 자≫에 대해 좋은 기억이 없었다. 놈들은 늘 아이작의 소중한 걸 앗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교황 역시 그 ≪생존을 방해하는 자≫였다.

‘이번에는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

서품식에서 만났던 교황은 격렬하게 검붉은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지.

뭐, 적인 걸 알고 있으니 직접 처리하면 편하겠지만 글쎄. 사실 이 위험을 알리는 반응은 인과율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생존을 방해하는 자≫를 명분도 없이 그냥 살해한다면, 저 검붉은 안개는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한테로 옮겨간다. 다른 형태의 위험으로 또다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리하려면 응당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거지. 그래서 숙부에게 욕을 날렸던 아이작은 씨익 웃었다.

조카의 웃음에 노엘은 슬슬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굴러 들어온 돌이 주제도 모르고.’

사실 그로서는 이 상황이 매우 거슬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노엘 에슈아가 누구인가. 이 집안에서 제일 잘난 자였고, 못난 형제들 사이에서 가문을 지탱해온 것도 전부 자신이었거늘.

아이작이 후계로 거론된다고? 이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이 아닌가?

노엘의 입꼬리가 비틀렸다.

“네가 성녀들이나 다른 아이들처럼 교육을 안 받아서 주제를 모르는구나.”

노엘이 손을 가볍게 털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유리 조각 같은 빛의 입자와 함께, 노엘의 손에 검은 장갑이 생겨난 것이다.

그 모습에 다들 움찔했다.

그리고 그게 성녀를 교육시킬 때 사용하는 전투용 장비라는 걸 눈치챈 릴라이와 벤야민이 황급히 말리려 했으나-

쾅!

“큭!”

강력한 성력이 몰아쳤다.

그 모습에 당황한 슈리가 급히 외쳤다.

“일단 사과드려! 네가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뭐? 사과?”

“노엘 백부님은 에슈아의 교육관인데… 큭!”

마침내 살벌한 성력이 아이작을 덮쳤다.

그 위력은 타고난 신체를 가진 어린 성녀나 단련된 성기사들조차도 강제로 무릎 꿇릴 만한 압력이었지만-

텅!

“!”

아이작이 날아오는 성력을 쳐냈다.

그의 눈이 마치 어디서 그깟 걸 들이미냐는 듯, 서늘해졌다.

“참 기분 나쁜 걸 들이대시네.”

그는 한눈에 그게 어떤 장비인지, 어떻게 쓰여왔는지 눈치챈 것이리라.

“네가 에슈아 사람들을 교육한다고? 좋은 취미는 아니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작이 강력한 성력을 끌어냈다.

콰직!

안채가 뒤흔들릴 만한 힘에 모두 흠칫 놀랐다. 하지만 눈을 부릅뜬 아이작이 살기는 여전히 노엘을 향했다.

“되먹지도 않은 놈이, 누가 누굴 교육한다고.”

마침내 빛나는 바람이 순식간에 노엘의 몸을 휘감고-

뚜둑!

“!”

순식간에 노엘의 두 팔을 꺾어버렸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이작은 양팔이 부러진 노엘을 먼 곳으로 날려버렸다.

쾅!

“숙부님!”

“아이작!”

숙부한테 도대체 무슨 짓을!

다른 에슈아들은 저게 도대체 뭐냐는 시선으로 아이작을 보고 있었다.

대응을 아예 안 하긴 했지만, 솔직히 노엘이 저렇게 날아가는 건 처음 보았다. 아니, 저렇게 날아갈 위인이 아닌데!

모든 에슈아의 아이들이 노엘의 손을 거치며 그 무자비한 교육 과정을 경험했던 만큼, 충격도 컸다.

실제로 아이작을 보는 몇몇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 성녀라 불리는 이들이 그랬다.

반면 날아간 노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형법의 신인가?’

원래도 강하지만 적의 신인 만큼, 대인전에 몹시 강력한 신이다. 하지만 다루기 쉬운 신은 절대 아닌데, 그걸 이 정도로 다룬다고?

반면 아이작은 웃었다.

“입만 산 숙부님이 몸져누우셨으니, 조카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아이작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돌아서자, 노엘이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까.’

최고신의 힘을 가졌다길래, 어떻게 저 힘을 이용해볼까 싶었건만. 역시 앞길에 방해만 될 꼬마다. 그 생각에 미친 노엘의 눈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그 기척을 눈치챈 릴라이가 바로 검을 뽑아 들었다.

‘어딜.’

그러나 그 순간. 노엘이 뭐라고 중얼거리자 릴라이가 어째서인지 괴로운 듯 심장을 움켜쥐었다.

‘컥!’

마치 릴라이의 약점을 노린 듯했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릴라이는 노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노엘은 아랑곳없이 이번엔 아이작을 보며 뭐라 중얼거렸다. 동시에 아이작은 바로 몸의 변화를 느꼈다.

‘!’

아이작의 몸에 걸려 있는 해골왕의 저주가 꿈틀거린 것이다.

아이작의 입술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허, 저놈이 사술을 쓰는군.’

뭐, 가짜 해골왕의 저주라고 해봐야 자신한테는 아무런 감각도 없지만.

‘저주를 자극해서 고통을 주려 한 건가?’

아마 본인은 해골왕의 저주를 받지 않았겠다, 신나서 형제들을 괴롭혔을 것 같은데.

아이작은 어떻게 할까 살짝 고민하다가, 무슨 연유인지 큭 웃었다.

‘좀 놀아줘 볼까?’

아이작이 섬뜩하게 눈을 번득이자, 노엘의 입에서 왈칵 피가 흘러내렸다.

“컥!”

그건 다름 아닌 ‘저주 되돌리기’.

아이작은 슈리의 반응과 노엘이 사용하는 장비를 보고, 대충 저놈이 어떤 짓을 해왔는지 눈치챈 것이다.

‘어디 너도 고통이란 걸 느껴봐라.’

그 저주 마법의 힘을 몸소 느낀 노엘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저놈이? 설마 지금 마법을 쓴 건가?

에슈아의 실력자인 만큼, 노엘은 그 위화감을 단번에 느낀 것이다. 아니, 사실은 아이작이 굳이 숨기지 않았다는 쪽이 맞겠지만.

곧 노엘의 눈빛이 달라졌다.

‘확인해 보면 될 일.’

곧 노엘이 계약한 신의 힘을 불러오려는 그 순간, 릴라이는 아차 싶었다.

‘안 돼, 아이작한테 해코지를 하려는……!’

그러나 그때였다.

쾅!

“!”

검을 든 누군가가 아이작을 구해주듯 노엘을 가차없이 짓밟았다. 은발에 멜리사를 닮은 남자였다.

그를 본 릴라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셋째 형님!”

그 외침에 아이작은 에엑,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뭐? 저게 셋째라고?

저거 완전 멜리사 남자 버전인데?

닮아도 너무 닮았다. 척 봐도 누구 핏줄인지 알 지경이다.

그래서 내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멜리사를 괜히 닮은 게 아닌 듯 내뿜는 성력의 위력은 차원이 달랐다.

에슈아의 남자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아니, 그냥 성녀급이다.

[아, 그러고 보니 셋째는 에슈아 7남 중 불세출의 천재라고 했죠?]

그래! 그렇지! 그 릴라이조차 셋째 형님 앞에선 스스로 범인이라고 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하지 않았나.

하물며 셋째면 자신의 작은 아버지였다. 친하게 지내면 무조건 좋다.

그나저나, 자신을 구해준 걸 보면 그래도 조카를 생각해 주는 건가? 이거면 오히려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도?

‘좋아. 일단 감사하다고 하고 친해지자. 그리고 등골을 뽑아먹는 거야!’

그렇게 에슈아의 원수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가는 그 순간.

“…해골왕.”

엑?

“네놈 새끼…. 해골왕이냐.”

엑??

“해골왕의 냄새가 난다.”

엑??!!

“처리.”

살벌한 목소리와 함께, 셋째가 성검을 번쩍 휘둘렀다.

제 목을 노리는 듯한 검에 아이작은 비명을 질렀다.

‘에슈아 이 미친 또라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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