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딸랑이가 낫겠는데 (1)
조세프 에슈아.
차남 벤야민 에슈아의 아들로, 재미있는 건 아이작처럼 에슈아를 몹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성녀 가문.’
남들은 조세프에게 ‘성녀가 쌍둥이 동생이라니 좋겠다.’며 부러움이 끊이질 않았지만 글쎄.
‘좋을 리가 있냐! 시발!’
무엇을 해도 쌍둥이 성녀에게 묻혔다.
뭐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지만, 에슈아?
‘질색이다!’
기껏 에슈아 핏줄로 태어나서 외모 되고, 이름 있고, 덕망 높고, 적당히 돈 있고! 그 덕분에 여자가 끊이질 않으면 뭐하냐고!
-조세프! 또 여자 문제냐! 청의 이름이 울겠다!
-아, 유부녀 안 건드렸으면 됐죠! 연애도 못 합니까!
-사치는 안 된다고 했지!
-그깟 보석 사서 선물로 뿌린 게 사치냐고요!
이 망할 놈의 청의 가풍!
수도자마냥 사는게 사람이 할 짓이냐!
아버지도 아버지였다!
가주가 될 것도 아니면서, 가문에 충성하며 행방불명된 장남의 역할을 본인이 다하고 앉았고!
아무튼 아버지도 짜증나고 청의 가풍도 싫지만, ‘가주 자리’만큼은 이야기가 다르지!
‘추기경! 최고 권력의 자리!’
하물며 청의 자리?
다른 신앙이며, 교황가도 본인들이 먹고 싶어하는 자리였다!
그리고 평생 연이 없을 줄 알았던 가주의 기회가 이렇게 돌아와?
‘이게 웬 떡이냐!’
조세프가 슈리에게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다.
왜냐고?
슈리만 있으면 가주가 될 수 있는 과제를 쉽게 클리어할 수 있으니까!
“야, 슈리 에슈아. 네가 계약한 빛의 신 좀 소환해봐. 청의 대장신이잖아.”
사촌의 말에 슈리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슈리는 이놈이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너무 잘 알았다.
-청의 신에게 인정을 받아라.
그건 일단 소환부터 하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리고 신이 부른다고 그냥 오겠는가?
청의 교리를 지켜가며… 그래, 한마디로 속세적인 걸 멀리하고 몸도 마음도 정갈해야 부름에 응답을 해준다.
“할아버지가 말한 건 신앙 활동을 하란 거잖아. 청의 교리를 지키면서 신께 기도를 드리라고.”
한마디로 기본부터 하라는 의미다.
하지만.
“누가 그걸 몰라?”
“……!”
“청의 신께서 좀 고지식하시냐? 교리를 지키는 것도 까다롭고. 한 번 청의 신을 조우하려면, 한 달을 여물만 먹으면서 수도자 생활을 해야 하는데.”
슈리는 조세프가 무슨 말을 할지 바로 눈치챘다.
아니나 다를까,
“슈리. 네가 이 형을 위해 잠깐만 청의 신을 불러주면 되는 거잖아.”
그래, 그러니까 본인이 수행을 하기 싫다는 의미다.
“닥치고 일단 불러. 뒤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차피 신께서도 싫으면 거절하시겠지.”
“그냥 본인이 신을 불러내지?”
“야. 슈리 많이 컸다? 부르라면 부를 것이지, 이게 형한테 개기네?”
“…….!”
“내가 말했지. 갈색 머리로 에슈아인 척하지 말라고.”
조세프는 사근사근하게 웃으면서도 위압적으로 슈리와 어깨동무를 했다.
“눈 깔아. 교황가에도 인정 못 받는 놈이. 여기서 받아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에슈아한테 민폐 끼치지 말라고. 형이 말하면 들어야 할 것 아냐. 펜타곤에서 좀 활약했다고 대가리가 큰거야?”
슈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딴 걸 아버지한테 말해봤자 속상해 하기만 하실 뿐이고, 저항해봤자 괜히 분란만 일어날 뿐.
그래서 매번 속으로만 삭혔던 그였다.
-슈리, 가주가 되면 해결된다. 그때까지만 참아라.
뭐 외부인에 능력 없는 아버지와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는 게 한두 번은 아니다만…….
“야. 내 말 안 들리는… 푸헉!”
그 순간 조세프가 눈앞에서 옆으로 넘어갔다.
채찍이었다.
조세프는 마치 거대한 강철에 맞은 것마냥 날아갔다.
“커헉!”
동시에 가죽 채찍을 흔드는 소년이 눈을 번득였다.
“이 띠발 놈이. 지금 누굴 건드냐?”
“아이작……!”
아이작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노하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것을 건드냐는 듯한 강렬한 분노.
처음 보는 아이작의 모습에 슈리는 내심 감동한 듯 보았다.
그래, 역시 포악하고 사납기 짝이 없지만, 자신을 생각해주는…….
“야. 빛의 신은 내가 먼저 찜했어!!”
…생각해주는…….
“니 새끼는 뭔데 새치기야! 낌슈리는 나한테 빛의 신을 불러줘야 해! 가주가 되는 건 나야!”
시발… 그럼 그렇지.
실망한 슈리는 얼굴을 짚으며 말했다.
“…아이작… 너도 그거 꼼수다. 그러면 안 된다…….”
“감히 내가 먼저 눈독 들인 걸 탐내?!”
…새끼가 듣지도 않는군.
“심지어 에슈아의 교리도 안 지키고, 가주가 되고 싶어서 청의 사람이 간사하게 꼼수나 부리려 해?”
“아니, 너도 꼼수 부리려 했잖아! 니놈이 그런 말 하면 안 되지!”
“감히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다니!”
…이 미친 새끼.
하지만 정작 얻어맞은 조세프는 정신이 어질 어질한 듯 머리를 부여잡았다.
머리에서 뜨거운 뭔가가 흘러내렸… 아니 이거 피?
지금 피가 흘렀다고?!
성녀의 피를 받아, 어지간한 공격엔 상처도 안나는 이 통뼈 몸이?!
‘내 특수 체질을 무시했다고? 저게?’
슈리가 남들이 볼 수 없는 걸 볼 수 있듯, 에슈아 직계들은 남아들도 각자 다른 특수한 힘이 있었다.
물론 성녀에 비하면 미미하지만, 일반인들이 보기엔 강력한 힘이었다. 괜히 그들이 데릴사위로 각광 받는 게 아니며, 해골왕 토벌을 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조세프는 당황스러운 듯 아이작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시발. 저놈은 뭔데 나한테 피를 보게 해?’
아니, 지금 피가 중요한게 아니야!
채찍?? 에, 에슈아가 저런 걸 쓴다고?
긍지 높은 에슈아는 검을 쓰며 대련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 저런 상스러운 무기를 쓸리가…….
철썩!
“하, 그래. 처음부터 말로 하려는 게 문제였어. 자고로 선조들께서 그러셨지. 몸의 대화가 소통의 최고봉이라고.”
아니, 그 대화가 그런 의미가 아닐 텐데?!
“우리 뜨거운 대화를 나눠볼까? 조세프? 김조셉?”
미쳤다. 저거 눈깔이 미쳤어!
조세프는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이작. 너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거냐? 내가 니 형…….”
“시발 형인데 뭐 어쩌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채찍이 날아갔다.
철썩! 철썩!
조세프의 눈앞에 불꽃이 튀겼다.
“커헉!”
“에슈아는 내 거야, 이 새끼야!”
조세프는 비명을 질렀다.
채찍의 성분은 엄연히 황금딸랑이기 때문에 금속이다.
그 말은 그러니까…….
‘젠장, 무슨 위력이!’
더럽게 아프다는 의미다.
결국 참다 못 한 조세프가 본인의 검을 뽑았다. 성녀와 함께 자라온 만큼, 그 역시 검술은 수준급이었다.
“대련이면 내가 질 것 같… 푸억! 푸억!”
철썩! 철썩!
수준급이지만, 아이작은 틈도 주지 않고 때려댔다.
‘이 새끼, 성법을 걸어놨어!’
조세프는 자기가 서 있는 바닥이 진흙으로 변한 걸 깨달았다.
심지어 채찍에는 여러 버프 성법들이 걸려 있어서…….
“죽어라! 에슈아!!”
죽으라니, 너도 에슈아인데?!
결국 조세프가 슈리에게 다급하게 외쳤다.
“슈리! 이 새끼 좀 말려봐!”
그러자 슈리가 저꼴을 또 본다는 듯 피곤해했다.
“아이작!! 너 그딴 흉물 쓰지 말랬지! 후계 이야기도 나오고 있는데 제발 보는 눈 좀 생각해라!”
그말에 아이작은 헉, 아차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가주가 되려면 품위도 생각해야지.”
이미지가 중요한데 너무 망나니처럼 굴었구나.
아이작은 바로 채찍의 모양을 변형시켰다.
그러자 밧줄 형태였던 황금 채찍에서, 막대기처럼 생긴 채찍으로 변했다. 파리 같은 벌레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모양이라고 해야 할까.
막대기 부분은 탄성이 잘 휘었고, 막대기의 끝부분엔 납작한 금속판이 달려 있다.
말채찍? 그래, 승마할 때 보던 물건이다.
“김조셉, 너도 내 말로 삼아주마! 이랴!”
슈리는 현타가 온 듯 하늘을 보았다.
…아니. 차라리 딸랑이로 때려라.
* * *
“와, 모습이 어마어마하네. 진짜 못생겼다.”
“넌 할 말이 그것밖에 없냐! 레아!”
피투성이에 퉁퉁 부은 조세프는 쌍둥이 남매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러나 레아는 방긋 웃었다.
그녀는 바로 펜타곤 때 멜리사와 함께 아이작을 찾아왔었던 성녀였다.
“자업자득이지. 그리고 아이작이 오히려 봐준 것 같은데? 피부가 벗겨진 것 정도는 금방 낫잖아.”
대놓고 아이작의 편을 드는 그녀의 모습에 조세프는 기가 찼다.
누가 성녀들 아니랄까 봐 또라이… 아니, 애초에 얘는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네가 언제부터 남한테 관심을 가졌다고 쟤 편을 들어!”
그러나 레아는 무시하고 아이작에게 고맙다고 했다.
“노엘 숙부한테 한 방 먹여줘서 고마워. 성녀들은 노엘 숙부를 별로 안 좋아하거든.”
“레아! 지금 네 오빠가 쟤 때문에 다쳤다니까?”
“아이작, 뭐 필요한 거 없니? 누나가 다 구해줄게.”
그러나 정작 아이작은 귀를 후비며 조세프를 가리켰다.
“아무튼 내가 이새끼를 이겼으니, 나한테 청의 신을 소환해 줘라 김슈리.”
“내 의견은 중요치도 않지!”
“뭐야, 당연히 불러주는 거 아니었어?”
이놈이??
“이런 꼼수를 용납할 거 같냐!”
슈리의 말에 아이작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야. 김슈리.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빛의 신을 소환하라는 줄 알아?”
“어. 그럴 거 같은데.”
이 새끼가??
“자꾸 네 꿈에 나온다며. 빛의 신이 여긴 어둡다면서, 갇혀 있다면서. 빛의 신은 청을 관리하는 최고신 아냐?”
“아…….”
슈리는 탄식했다.
사실은 집에 다가올수록 슈리는 기이한 꿈을 꿨었다.
도와줘… 도와줘. 거긴 위험하다 종자야. 빨리 도망쳐야 한다…. 대충 그런 말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이작한테만 했었는데.
[빛의 신은 주인님이랑 친하죠?]
뭐 신들 중엔 유일하게 친한 여신이지.
신들이 해골왕을 해코지하려 하면 다 막아줬던 신이었고, 신들 중에선 아이작이 유일하게 좋게 생각하는 신이긴 했다.
“좀 이상하긴 해. 150년 동안, 빛의 신은 청에 계시를 안 보냈거든. 할아버지도 다른 신과 계약한 상태고. 그런데 날 택하시다니…….”
그 말에 위스퍼가 큭큭 웃었다.
[사실 저 슈리 놈이랑 빛의 신씩이나 되는 여신이 계약을 한 것도 이례적이긴 하죠.]
위스퍼의 말에 아이작이 씨익 웃었다.
‘아마 겨우겨우 슈리를 택한 걸 거다.’
[무슨 말이십니까?]
‘나 대신 벌레에 갇힌 거. 아마 청의 신일거라고.’
[예?!]
아이작은 슈리에게 말했다.
“자, 됐으니까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청의 신을 굴복시켜서 가주가 되어 에슈아를 먹고, 에슈아의 힘을 되찾아 교황가를 짓눌러야지.
그말에 위스퍼는 놀란 듯했다.
[설마 꺼내주시게요?]
‘좀 미안하긴 하니까, 일단 상황 좀 보고? 감옥에서만?’
[거래에 응할까요?]
싫으면 에슈아를 멸망시킨다고 하지 뭐. 푸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