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43화 (143/272)

제143화. 딸랑이가 낫겠는데 (2)

청의 신의 대장.

그러니까 빛의 신은 해골왕의 절친이었다.

[정말 주인님이랑 절친이셨다고요?]

그래.

스켈레톤 시절 때부터 알았던 녀석이긴 한데, 마왕이 된 이후에도 꽤 얼굴을 자주 봤다.

-해골왕! 또 우리집 정원을 불태웠냐! 오늘이야 말로 죽여버리겠다!

정이 많은 녀석이라 눈물도 많았고,

-해골왕이 또 돈을 빌려가서 안 갚았어…….

다른 신들은 모두 해골왕의 존재를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싫어했지만, 빛의 신은 그를 가엾게 여겼다.

-해골아…. 너 도대체 언제 사람이 될래?

무려 자신이 사람이 되는 걸 빌어주었던 녀석이었다.

[…아뇨, 의미가 전혀 다른 것 같습니다만??]

어쨌거나 많이 투닥대긴 했지만, 빛의 신은 해골왕의 목숨을 보호해주었고, 해골왕도 그만큼 돌려주긴 했다.

-빛의 신아, 빛의 신아. 내가 이번에 네 목숨 구해줬으니까, 네 재산의 절반만 내놔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이 민둥머리 해골아!

-뭐? 야, 전부 내놔.

아무튼 해골왕과, 형법의 신, 빛의 신.

셋이서 친했다.

신계에 있을 땐 거의 그 둘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 이를테면 돈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친구 맞냐니까요?!]

어쨌거나 빛의 신은 신들 중에서도 꽤 괜찮게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욕심 드글드글한 놈들과 달리 양심적이고, 말이 통했으니까.

사실 그래서 에슈아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도 있다.

빛의 신이 대장으로 있는 청이라면, 성직자 가문이라도 지낼 만하겠구나 했지.

[…그냥 신의 기운이 안 느껴진다고, 웬 떡이냐고 하셨으면서.]

야, 아무리 그래도 성직자 가문이야. 신의 가호가 없는데 좋을 리가 있겠냐?

[시x, 존x 좋네 하셨으면서…….]

아무튼 다른 가문과 달리 신의 기운이 잘 안느껴진 건 사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신들이 바보는 아니지만, 아무리 바보라 할지라도 해골왕이 자기 가문에 태어났는데. 청의 신이 그것도 모르겠는가?

[그것도 그렇군요.]

즉 청의 신에게 문제가 생겼을 거라는 걸 아이작은 진작 눈치챘던 것이다. 그래서 더 당당하게 청에 뿌리를 내릴 생각을 했던 것이고 말이다.

‘뭐 설마 벌레에 갇혀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만.’

슈리가 한 말이 아니었다면 자신도 그냥 다른 사고가 있었겠거니 생각했겠지.

워낙 신들도 파벌싸움이 심해서.

[그럼 슈리 에슈아와 계약한 건 어찌 된 걸까요?]

‘그건…150년쯤 지나서야, 겨우 대화를 걸 정도의 힘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아마 시기적인 문제일 수도 있었다.

다른 에슈아들은 나이상 전부 계약을 했을 것이고, 아직 신과 계약 안 한 에슈아는 당시 슈리 정도였던 것이리라.

‘그것도 아니면 내 측근이 낌슈리였기 때문일수도.’

[헉, 그럼 설마 주인님께 구조 요청을 했던 걸까요?]

아니이?

‘아무리 그래도 해골왕이 에슈아에 태어난 거다. 가문을 멸망시킬 놈이 자리를 틀고 앉았는데, 얼마나 똥줄이 타겠냐! 해골왕을 제발 막아달라고 애타게 낌슈리에게 신호를 보냈던 거지! 푸헿!’

하지만 으딜! 으림도 없지!

‘에슈아는 내거야.’

에슈아를 먹어치워서 빌어먹을 교리와 가풍도 바꾸고, 사치로 망하게 해주마!

그러니까 일단은 청의 신을 만나서 가주로 인정하라고 할 것이다!

캬! 이 얼마나 좋은 거래 조건인가!

이 몸이 특별히 가주가 되어 에슈아를 알아서 부흥시켜 준다는데, 그걸 싫어하겠어?

“자, 그러니까 빨리 청의 신을 소환해라! 낌슈리!”

“…….”

“나는 여기서 고기 뜯고 있을 테니까, 너는 빨리 기도나 하라고!”

…저 새끼를 죽여버릴까?

청의 신전의 폭포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있는 슈리의 얼굴에 핏대가 섰다.

현재 슈리가 들어와 있는 곳은 청의 수련의 방.

일종의 폐관 수련과 비슷한 것인데, 동굴과 같은 독방들이 즐비한 곳에서 정신수련을 한다.

음식도 거의 절식으로, 여물에 가까운 곡식만 먹으며 심기를 다스리고…….

“캬, 밥도 야외에서 먹으니까 꿀맛이다.”

…신에 대한 공경심을 되새기며, 성력의 훈련을…….

“아 근데 퍽퍽살은 싫으니까 낌슈리 줘야지.”

…훈련을.

“아, 이 케이크도 엄청 맛있네. 아, 낌슈리 너 또 집중 깨졌어. 그래서는 상급 사제 시험에 응시못한다.”

…뚝.

“에휴, 이래서야 청의 신을 불러내는 데 몇 달은 걸리겠네.”

“시발! 너 같으면 집중을 하겠냐! 새끼야!”

슈리는 빡친 듯 폭포를 박차고 나왔다.

아이작은 독방 제일 한가운데에서 냠냠 간식을 먹고 있었다.

“왜 너는 수련을 안 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데!”

“네가 청의 신을 불러내는 걸 기다리고 있으니까?”

“네가 불러내면 되잖아!”

“음, 청의 신들은 나 별로 안 좋아할걸? 내가 좀 청의 교리하고 거리가 멀잖아.”

“알긴 아는구나!”

자아 성찰이 아주 훌륭해서 눈물이 나오네!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물론 아이작이 이곳에 있는게 방해인 건 아니었다. 밉긴 하지만 보는 눈은 또 귀신이라서, 자신이 성법 훈련을 하고 있으면 잘못된 점을 확실하게 집어준다.

‘저놈 말을 들을 때마다 성법 기술이 올라가는 건 느껴지지만…….’

이거면 추기경이 되는데에 필수인 상급 사제 시험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었다.

보통 5대 가문쯤 되면 견습을 통과하자마자, 상급 사제. 즉 구마 사제 준비를 한다.

즉 6계위 이상의 단계를 준비하는 것이다.

구마 사제는 성직자들의 꽃이라고 불리는 만큼 의미가 남들랐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청의 신을 만나고 싶으면 나 좀 내버려두라고!”

“아니. 하지만 너 하는 거 보면 한 달이 아니라 십 년은 걸릴 것 같아서…….”

“으아악!”

슈리는 분노하듯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작의 말에 악의는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슈리 스스로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빛의 신과 계약하긴 했지만, 소환은 이제 또 별개의 이야기였고 자신에겐 아직 힘든 영역이었다.

그래도 가주가 되려고 최선을 다해 수련을 하고 있는 건데!

“걱정마라, 낌슈리. 너 재능 있어!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십 년이 보름으로 단축될 수 있다!”

“일단 입에 문 케이크부터 치워!”

하지만 그 말에 불만을 품는 이가 있었다.

“일부러 잡념이 될 대상을 직접 먹어가며 훈련을 시켜주는 건가…….”

키나였다.

그는 뜻 밖에도 입구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그리고 살의를 띈 눈으로 경쟁자 보듯 슈리를…

“나는 이미 10살 때 금의 신을 불러낼 수 있었다! 저딴 걸 가르쳐줄 바에야 날 가르쳐라, 에슈아!”

슈리로서는 얼굴을 짚을 수밖에 없었다.

시발, 아이작으로도 충분한데, 왜 키나까지!

입구에 서 있는 그는 슈리가 몹시 부러운 듯, 동시에 못 마땅한 듯한 얼굴이었다.

마치 본인이 더 뛰어난데 왜 슈리를 가르쳐주고 있냐는 표정.

“왜 아직도 신을 불러내지 못하는 거지?”

“원래 주교급은 되야 신을 불러낼 수 있잖아.”

“뭐? 네가 가르쳤는데 아직도 주교급이 아니라고?!”

“그러게, 내가 그래서 고생한다. 가족이 뭔지.”

“그러니까 저딴 놈 말고 날 가르쳐라!”

이 빌어먹을 새끼들……!!

“저놈을 가르친다고, 성직자는 금기시하는 음식까지 먹고!”

슈리는 기가 찼다.

아니. 저놈은 그냥 먹고 싶어서 먹는 건데?!

심지어 저 새끼는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금기를 저질러도 오히려 힘이 넘쳐 흐르던데?

‘하다못해 저 새끼는 기도도 안 하는데?!’

억울하다. 더럽게 억울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성법 수련은 착실하게 하는 것 같으니, 할아버지도 자신도 아무 말 안 하는 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키나는 한숨을 쉬었다.

“뭐, 이렇게 노력해봐야 어차피 가주 자리는 노엘 사제에게 넘어갈 텐데.”

아이작은 이것 보라는 듯 키나를 보았다.

“지금 교황가라고 시비 터는 거냐?”

“아니. 난 널 좋아해. 이 나와 동등한 건 너뿐이거든. 하지만 청의 가주 자리는 별개야.”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에슈아 본가에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할짓 드릅게 없어서?”

아이작의 말에 키나는 너무한다는 듯 깊게 한숨을 쉬었다.

“원래는 말하면 안 되는 거지만, 너니까 특별히 말해주지. 뭐 너랑 연관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는 널 보러 온 게 맞지만, 사실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청의 가주를 보러 온 거야.”

“뭐? 교황이 널 보냈다고?”

아이작의 눈빛이 변했다.

“그래, 말하자면 금의 사신인 거지.”

“할아버지랑 뭔 이야기를 했는데?”

“견습 졸업식 때. 교황께서 너한테 있는 최고신을 가져갈 거라 했다.”

“뭐?! 누구 마음대로?! …헉!”

욕을 하고도 스스로 당황하는 슈리였다.

그도 그럴 게 내심 아이작이 최고신과 계약한 걸 자랑스러워하고 있던 슈리였다.

그런데 뭘 가져가?

‘설마 황태자가 직접 나서서 베리트 공작으로는 건들기 힘들어졌으니까. 교황 성하께서 직접 나서신 건가?’

상황을 바로 파악한 아이작은 미간을 좁혔다.

뭐, 최고신이야 자기 멋대로 계약을 한 거니 크게 상관은 없다만. 이쪽에선 줄 마음도 없고, 상대가 교황이라니 더 기분이 더러운데.

“아무리 최고 권력자라 해도 지꺼야? 맡겨놨어? 꼬우면 지가 처음부터 뽑든가. 왜 남의 걸 가져가? 달라고 해서 아, 예하고 줄 것 같아?”

아이자악!

제발 말 좀!

기겁한 슈리는 재빨리 키나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러게. 확실히 꼬우면 할아버지가 뽑으셨어야지. 그냥 달라는 건 양아치스럽지.”

키나아! 네 할아버지다!

슈리는 동공지진을 일으켰지만, 키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당연히 그냥 달라고는 안하셨다. 청은 지금 ‘비전’을 못 쓰고 있잖아? 청이 다시 비전을 쓸 수 있게 도와줄 테니, 대신 최고신을 양도해달라고 거래를 요청하신 거다.”

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교황께서 최고신을 다루시는 게 제국 입장에서 더 이롭고, 청도 비전을 다시 쓸 수 있게 되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라는 거다.”

아니지.

교황은 그런 놈이 아니야.

아이작의 얼굴에 핏대가 섰다.

정말 제국을 생각했으면 이렇게 꿍쳐뒀다가 거래를 하는게 아니라, 진작에 청이 비전을 쓸 수 있게 도와줬겠지.

그리고 비전 이야기에 슈리도 말문이 막힌 듯했다.

확실히 청은 신의 맥이 끊겨서 그런지, 다른 가문과 달리 비전을 쓸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힘이 떨어졌다는 말이 돌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는… 승낙하셨어?”

가주로서 비전은 가문의 중요한 숙원과 같은 것이다.

고민할 만했다.

하지만.

“칼같이 거절하더군.”

“……!”

“아무리 가문을 위해서라도, 손자의 미래를 넘길 순 없다고.”

역시 청의 가주답다.

아이작은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교황이 그런 가주의 성격을 모를리도 없다.

아니나 다를까.

“최고신을 넘기고 싶지 않으면, ‘성지 탈환’으로 대체해도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 가지고 있는 비전의 힘 일부를 돌려줄 수 있다고.”

성지 탈환?

“마족에게 빼앗긴 제국의 옛 성지. 거기에 있는 성물만 가져오라고.”

그말에 슈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거긴 진마들의 둥지잖아! 난이도가 너무 높은데?”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아, 그런 거군?

‘교황 놈, 청의 가주를 죽일 생각인 거다.’

놈들의 제안다웠다.

가주는 아이작의 미래를 위해 최고신을 건네지 않겠지만, 가문의 비전은 중요하다.

비전은 신앙과 가문의 미래인 셈이었으니까.

가주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겠지.

무엇보다 비전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청은 다시 날아오를 테니까.

청의 가주의 성격이라면 최고신을 주는 대신, 성지 탈환에 나설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진마들의 땅?

‘청의 애송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청이 강해도, 비전도 없는 놈들이 어떻게 진마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가주도 그걸 알고 있을 터.’

그럼 높은 확률로 청을 위해 가주가 혼자라도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가문의 젊은이들을 죽게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아, 그럼 가주가 지금 죽으면, 후계 자리는 자연스럽게 노엘 뭐시기에게 가겠군요?]

그래. 그럼 청의 가주자리는 교황 세력이 잡게 되는 셈이니, 교황으로서는 사실 성공해도 실패해도 큰 이득인 거래라는 것이다.

치사하다면 치사하다.

교황도 비전 때문에 포기 못 하는 걸 알 테니, 에슈아를 조종하려는 걸 테지.

하지만 어쩌지?

그 비전, 나라면 바로 부활시킬 수 있는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