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7화. 비전? 그게 뭐가 어려운데? (4)
-꺄아아아악!
마치 귀신을 본 듯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빛의 신은 자신에게 말을 건 게 누구인지 바로 눈치챈 기색이었다.
결국 숨이 넘어갈 것 같은 비명에 한쪽 귀를 막은 아이작이 눈썹을 치켜떴다.
“아니… 이 녀석이 해골, 아니 사람을 보자마자 비명을 지르는 건 무슨 경우냐.”
그러나 빛의 신은 멘붕에 빠진 듯했다.
-종자, 종자는 어찌 되고 네가 있는 건데!
그러자 아이작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네 종자는 지금 자고 있어. 그래서 내가 대신 상대해 주려고 왔지. 150년간 잘 지냈어?”
성화는 슬그머니 사라지려 했다.
-…연결하신 대상이 자리에 없어, 다음에 다시 연결해 주시기 바랍…….
그러자 아이작은 방긋 웃으며 기절한 슈리에게 속닥였다.
“슈리야. 우리 같이 암흑 사제의 길을 걸어볼까? 빛의 신하고 계약할 정도면 해골왕도 가능하겠는데?”
-아아악! 안 돼에!
절규하는 빛의 신은 황급히 성화 속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150년 전이었을까. 사실 해골왕을 봉인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도, 그녀는 반신반의했었다.
-천하의 해골왕을 봉인한다고? 그 해골이를 봉인할 수 있는 녀석이 있을 것 같아?
그럼에도 만약에 정말 가능하다면, 대충 50년, 100년 정도 있다가 깨워주면 그 못된 성미도 조금은 고쳐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뭐라고? ‘태고의 술법’을 쓴다고?!
하필 그 봉인의 수법이 사기 계약이며, 벌레에 가두는 고대 술법인 걸 깨닫고는 이건 아니다 싶어 막으려 했었다.
그런데 말리러 가는 길에 의식이 끊겼고, 눈을 뜨니 새까만 곳이었다.
심지어 움직이지도 못하지, 힘은 못 쓰지. 하다못해 청에 계속 계시를 보냈지만, 목소리조차 닿지 않지.
관짝에 갇힌 것처럼 캄캄한 곳에서 끙끙거리다가, 겨우 최근에 힘이 코딱지만큼 돌아와 에슈아를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대충 10년 전이었다. 그래서 겨우 종자들을 살필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는데!
-야, 낌슈리. 띠지고 싶냐?
-꺄아아아아악!
뭔데!
왜 해골왕이 자기 가문에 있는 건데!
한눈에 영혼을 알아본 빛의 신은 멘붕에 빠졌다.
해골왕이 어째서 인간 젖먹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에슈아가 멸망한다!’
하필 마왕이 성직자 집안에 태어나다니!
그래서 필사적으로 가주부터 시작해서 릴라이 등, 모든 에슈아 사람들에게 ‘저놈은 안 된다…!’, ‘빨리 위험을 눈치채거라…!’, ‘집 내부에 사악한 사탄 놈이 있다…!’ 등의 사념을 보냈지만…….
-아이고! 우리 아이작! 네가 우리 에슈아를 구할 운명인가 보다!
-예! 아이작 도련님이야말로 에슈아의 빛입니다!
아니! 망할, 아니라고! 그거 아니라고옭!
그자식, 에슈아를 멸망시키러 온 놈이라고!
하지만 이 망할 종자들이 신앙심을 개나 줘버린 건지,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듣지 못했다!
심지어 멜리사나 가주조차도!
-왜 청의 신께서 계시를 내리지 않으시는 걸까.
-정녕 우리를 버리신 건가.
이 망할 자식들아! 지금 목이 쉬도록 외치고 있다고! 니들이 못 듣는 거라고!
그렇게 눈물을 머금으며 해골왕과 종자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빛의 신이었다.
어디 그뿐이야? 아이작이 교황의 모가지를 따겠다고 했을 땐, 빛의 신은 정줄을 놓었았지.
‘저 녀석…. 내버려 두면 이 제국이 망하겠구나.’
아니 그 전에 에슈아가 저놈의 손아귀에 넘어가겠다! 그런데 그럴 때,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와 만났던 것이다.
-종자여…!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헉, 누구야!
그게 바로 슈리였다.
-드디어 내 목소리를 듣는 종자가…!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신이 신에게 기도할 정도로 기뻤던 빛의 신은 필사적으로 슈리와 계약을 하고, 계속해서 계시를 보냈다.
그곳은 위험하다…. 해골왕을 멀리해라…. ‘멀리해라…. 그곳은 위험하다…. 대충 그런 식으로.
그런데 겨우 계약한 종자가 순진해서, 그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니!
“돌아가기만 해봐, 네 종자를 바로 타락시킬 거니까. 해골왕을 섬기는 암흑사제로 타락시킨다.”
-꺄아악! 안 돼!
빛의 신은 절규했다.
‘어떻게 찾은 계약자인데……!’
-제발 에슈아만큼은 건들지 말아라…. 해골아.
“너 하는 거 봐서.”
아이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어디에 있냐? 진짜 그 벌레에 있어?”
-모른다…. 굉장히 깜깜해서.
‘뭐 그렇겠지. 벌레니까.’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질문을 했다. 청의 신이 벌레에 갇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내심 신경 쓰이던 부분이었다.
“신들이 내가 갇혀있는 줄 알고, 벌레에 고문을 했다는데. 너 설마 고문당했냐?”
그러나 빛의 신은 뭔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거렸다.
-뭐? 고문? 아니? 당한 적 없는데?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문을 당한 적이 없다고?’
뭐지? 벌레 새끼 거죽이 그렇게 두꺼운가……?
물론 신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나름 친구가 자기 대신 갇힌 셈이었다. 약간은 미안했던 참이었다.
‘그래도 고통은 받지 않아서 다행인가?’
[아뇨…. 주인님 때문에 정신적 고통은 비교할 바가 아닌 듯합니다만??]
‘흠, 나처럼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친구가 가문을 맡아주니 녀석도 안심하겠군.’
[주인님이 제일 문제라니까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방이 뭔가 마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아이작의 얼굴은 더더욱 이상해졌다.
‘마력?? 신계에?’
뭐지? 신들은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뭐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너 거기서 나올 순 있겠냐?”
이건 중요한 문제였다. 일단 청의 신이 풀려나야 청도 힘을 쓰고, 비전을 쓰든지 말든지 한다.
그러나 빛의 신은 슬퍼했다.
-지금 내 의지론 꼼짝도 할 수 없어.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래. 예상은 했지. 사실 형법의 신을 통해 <재해진멸>. 그러니까 ‘벌레 봉인’에 대해서 이미 전달받았던 것이다.
신수가 영약과 함께 고서를 전달해 줬고, 술법의 원리도 모두 숙지했다.
물론 다른 신들이라면 원리는 개뿔. 그냥 책 외우듯이 술법을 달달 외워서 발동하는 것이 고작이었겠지만, 아이작은 달랐다.
대마도사들도, 심지어 마법의 신들까지 굴욕을 느끼고 간 게 해골왕이란 존재였다.
‘대충 원리도 이해했고, 해독도 끝났어. 이 정도면 응용해서 봉인을 깨는 술법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엔 작은 난제가 있었다.
‘응, 내 힘으로는 아직 불가능한 영역이지.’
괜히 해골왕을 봉인하려던 고대의 술법이 아니었다.
[최고 난이도의 술법이란 거죠?]
그래. 솔직히 말해서 해골왕일 때도 불가능했을걸?
봉인까진 가능했겠지만, 풀어내는 건 난이도가 더 올라간다. 애초에 깨지 못하게 만든 봉인술법이라 그랬다.
뭐, 이 성자의 몸이라면 이제 충분히 가능한 경지겠지만…….
‘시간이 걸리지.’
마법 계위도 최소 9계위여야 한다.
[주인님은 아직 마법 6계위 정도에서 멈추셨죠?]
마왕이니만큼 몸을 혹사시키면 더 상위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으나, 한계가 있다.
물론 그걸 커버할 방법으로 드래곤의 힘을 빌려도 되겠지만, 하필 자신이 드래곤들에게 지명수배를 당해서 원.
한마디로 청의 신을 풀어내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청의 신을 풀어주지 않으면 비전을 못 쓰고……
‘그러면 내가 가주가 못되고…’
끄으응.
아이작의 얼굴이 복잡해지는 그때였다.
-그래도 힘은 이제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뭐라고? 힘을 보낼 수 있다고?
“진짜냐?”
-그래! 연결이 되었으니까! 임시방편이 있다!
오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푸른 성화가 높이 치솟았다.
그 불 폭풍에 아이작은 큭, 살짝 물러났지만, 곧 성화의 불똥이 다른 형태로 바뀌며 눈처럼 떨어졌다.
그건 빛으로 이루어진 깃털이었다.
[오! 이건 빛의 신의 깃털이 아닙니까!]
빛의 신은 기쁘다는 듯 목소리가 밝아졌다.
-지금 내 힘으로는 아직 그것밖에 보낼 수 없지만, 그거면 내 육신에서 힘을 끌어다 쓸 수 있을 것이다!
“!”
청의 신이 보낸 건 바로 매개체였다.
원래는 신이 인계에 힘을 보내주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종자들이 직접 힘을 퍼갈 수 있도록 매개물을 준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물에서 직접 물을 퍼가라고 바가지를 준 셈이군.’
확실히 이거면 비전도 쓸 수 있다. 신의 힘을 쓸 수 있으니, 다른 에슈아 놈들의 힘도 업그레이드시켜 줄 수 있다.
빛의 신은 고맙다는 듯, 또 한편으로는 기대한다는 듯이 아이작에게 말했다.
-그걸 내 계약자인 슈리에게 줘라. 그 아이가 그걸로 성장해서 가주가 되면, 청도 강해질 거야.
“오, 슈리를 가주로 만들라고?”
-그래, 그거면 내 힘의 전부는 아니어도, 청도 힘을 쓸 수 있을 거다. 네 실력이라면 슈리를 가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슈리가 날 여기서 꺼낼 수 있게 도와다오.
“꺼내주면 어떻게 할 건데?”
-어떻게 하긴! 널 바로 그 몸에서 꺼내서 교육…아, 아니.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겠지.
그 말에 깃털을 입가에 가져간 아이작은 어째서인지 씨익 웃었다.
“꺼내줄 순 있는데, 지금 당장은 못 꺼내. 슈리도 하루아침에 강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 그 점은 나도 납득하고 있다. 나도 최대한 도울 테니…….
“차라리 내가 구해줄게. 널 풀어줄 봉인 술법을 만들고 있으니까.”
-정말이야?!
“그러니 이 깃털은 내가 가져간다?”
-뭐?
얼어붙은 빛의 신은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이작은 풉 웃었다.
“걱정 마. 금방 구하러 가줄게. 대충 내가 가주가 된 후에?”
-뭐라고?! 가주?!
“뭐 어때? 신들한테 100년쯤이야 몇 년 수준이잖아. 에슈아는 나한테 맡기고 넌 푹 자고 있어. 네 힘은 내가 알아서 끌어다가 쓸 테니.”
-아, 아니 잠깐?!
“참, 낌슈리한테 내 이야기 하면 평생 안 꺼내줄 거니까.”
-자, 잠깐…! 해골아?! 안 돼! 잠깐! 내 말 들어!
아이작의 입꼬리가 탐스럽게 올라갔다.
“에슈아는 내가 탐스럽게 키워서 먹고 있으마.”
청의 여신은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