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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49화 (149/272)

제149화. 비전? 그게 뭐가 어려운데? (6)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아니, 가문의 비전이란 게 왜 저기에… 아니, 그 전에 왜 기저귀?

“너 그거 뭔데!”

“뭐긴! 내가 전에 쓰던 기저귀잖아!”

“그걸 누가 몰라? 왜 기저귀가 그 비싼 아공간 주머니가 되어 있는 건데… 아니, 도대체 언제부터?!”

그러자 아이작은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듯, 혐오스럽게 형을 보았다.

“애초에 젖먹이 시절, 성녀보물고에서 내가 그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들고 나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정도는 상식 아닌가?”

슈리는 기가 찼다.

뭐? 상식?

“상식 아니거든?! 도대체 어느 나라 상식이냐! 그보다… 어떻게 다 들고 나왔냐니…. 설마 거기서 책 말고 뭘 더 가져온 거야?”

“응. 볼래?”

아이작이 작은 기저귀 안에서 물건들을 쑥쑥 꺼내 던졌다. 척 봐도 비싸 보이는 보물이며, 유서가 깊어 보이는 귀한 무기들에 방어구들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좀 기다려. 한번에 꺼낼 수 있는 숫자는 아니라.”

그러자 팔짱을 끼는 슈리는 같잖다는 듯 혀를 찼다.

‘허이고.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10개는 들고 나왔… 아냐, 아냐. 상대는 천하의 저놈이다. 최소 50개는 예상해 두자.’

하지만 50개는커녕 100개. 아니, 탑처럼 쌓여가는 물건들에 슈리의 얼굴이 점점 볼만해졌다.

“나도 적당히 추려서 가져온 거라 개수는 별로 안 되지만, 뭐.”

마침내 천장까지 닿을 것 같은 보물들의 향연에 슈리는 동공이 풀렸다.

뭐…? 개수가 별로 안 돼?

…이 미친 새끼가?

하지만 정작 방을 한가득 채운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쨘. 이걸로 끝. 성녀보물고 컬렉션 완성.”

“이놈이 진짜 미쳤나! 지금껏 안 걸린 게 기적일 정도네!”

“왜? 보물고에서는 보물을 전부 가지고 나오는 게 당연한 상식 아닌가?”

“상식 아니라고!”

애초에 돌잡이에선 보물을 한 개만 들고 나오는 게 룰이 아니었던가!

“하나만 들고 오랬는데, 도대체 몇 개를 들고 온 거야!”

“역시 좀 적지? 팔아치운 것도 있어서 좀 줄었다.”

“야!!”

슈리는 뒷목을 잡았다.

“아니, 어떻게 이걸 담아서 가져올 생각을……!”

“그래, 나도 안다. 나도 기저귀에 담아오긴 싫었어.”

“아니, 기저귀 문제가 아니라니까?!”

“설마 기저귀에 특상 아공간 각인이 부여될 줄 누가 알았겠어.”

“기저귀가 문제가 아니라고! 미친 새끼야!”

하지만 슈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작은 푹 한숨을 쉬었다.

사실 10년 전. 성녀보물고에 들어가기 전에 아이작은 기저귀에 마법을 써 아티펙트로 만들어두었다. 빈손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인 만큼 담아올 가방이 필요했으니까.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저급 아티펙트를 만들었던 것뿐인데,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들어졌다.

‘비유하자면 적당히 노멀급 아이템을 만들려고 했더니, 난데없이 전설급이 떠버린 상황?’

그 뒤로 가방에도 마법을 걸어 아공간 아티펙트를 만들었지만, 이걸 이기는 게 없었다.

하물며 성자의 몸이라 그런 걸까.

‘오래 지니고 있어서 그런지, 질도 올라가더라.’

아실리도 기념품이라며 버리지 않았고, 천 기저귀라 계속 빨아서 깨끗하긴 하지만, 에휴.

“그래, 다 안다. 쓰는 나는 얼마나 현타가 왔겠냐.”

“…이, 말을 말자!!”

물론 슈리는 다른 의미로 뒷목을 잡고 있던 것뿐이지만 말이다. 곧 슈리가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성을 되찾았다.

“아무튼 그래…. 훔쳐 온 것까진 좋다. 그런데 비전이라니, 그건 뭔 소리야? 이 책이 정말 성녀보물고에 있었다고?”

“뭐야. 그것도 몰랐냐?”

“당연하지! 어른들한테 들은 적도 없었을뿐더러! 그게 있는 걸 알았으면 진작 눈에 불을 켜고 들어가려고 했겠지!”

“하긴.”

아이작이 비전을 찾아낸 것도 사실 굉장한 우연이긴 했다.

‘애초에 비전이 숨겨져 있던 곳이 희한했지.’

비전은 해골왕의 뼈가 있던 재단 안에 숨겨져 있었다. 문제는 그 물건이 마법으로 봉인된 상태였다는 거지. 보통의 성직자들이라면 마법이라 눈치도 못 챘겠지만, 아이작에게는 너무 잘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구미가 당겼었다.

‘미쳤네, 도대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이면 마법으로 봉인을 해놔? 변태인가?’

아무튼 그렇게 꺼냈더니 숨겨진 물건이 쨘! 바로 비전이었네?

하지만 그래서 사실 이상하긴 했다.

‘그 재단은 마족의 마력을 써야 열리는 구조였거든.’

어떤 미친놈이 성녀의 비전을 마족만 꺼낼 수 있게 만들어놓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마력핵이 가득했던 에슈아의 별채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거기서도 별채를 잠그고 있던 봉인 방식이 바로 마법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별채는 귀신 들린 저택이라 불렸다. 당시엔 마력핵도 있는 만큼, 가문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일부러 신성드래곤의 마법을 걸어뒀나 했지만…….

‘비전까지 마법으로 숨겨놔?’

하물며 걸어둔 마법도 드래곤보단 마족의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마족에겐 쉽지만, 인간들에겐 좀 어려운 술식이었는데.

‘뭐, 오히려 그랬기에 나 외엔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던 거겠지만.’

아이작으로서는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마치 해골왕이 에슈아에 태어날 걸 아는 누군가가 봉인해 놓은 것 같지 않은가.’

꼭 자신에게 꼭 발견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뭐, 그럴 리가 없나?’

정상적이라면 성녀 가문 사람들이 마족의 힘을 쓸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슈리가 비전을 보며 고개를 붕붕 저었다.

“어우, 이거 하나도 못 읽겠다. 수련이 부족한가?”

“푸핫! 그건 아니고.”

위스퍼도 낄낄 웃었다.

[고대 언어로 쓰여 있으니, 저깟 인간 나부랭이들이 읽을 수 있을 리 없죠.]

아이작은 웃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뭐, 처음 에슈아에 왔을 때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

옛날에 비해 약해졌다고 느끼고는 있었다.

‘옛날 성녀들은 비전을 썼으니까. 그 차이만큼 위화감이 있던 거였어.’

맨 앞장에 있는 기초 술식. 그러니까 성화를 만드는 등의 기본 중의 기본은 신의 도움 없이도 쓸 수 있었지만, 본격적인 전투 성법은 청의 신이 없으면 쓸 수가 없었다.

즉, 지금까지는 빛의 신이라는 연료가 없어서 발동을 못 했지만 이젠 이야기가 다르다!

번쩍!

아이작이 사기를 쳐서 얻은 깃털에 성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깃털이 빛을 내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헉! 뭐야!”

아이작의 몸에서 빛이 치솟아올랐다. 마치 폭주하듯이 불어나는 성력에, 슈리의 입이 떡 벌어졌다. 원래는 신이 보내주는 힘을, 아이작이 스스로 퍼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양의 신성력에 짓눌린 위스퍼는 압살당하듯 비명을 질렀다.

[끄악! 주인님! 저 깔립니다! 너무 많이 퍼오시는 거 아닙니까…?]

‘응, 이것도 소분한 거라. 인제 1회 차야.’

[1… 1회 차? 퍼올 때마다 이리 퍼오면 빛의 신, 남는 게 없겠는데요?! 등골이 휘겠습니다!]

‘응, 괜찮아. 이 정도로 골골거릴 놈이 아니거든.’

[아니! 제 등골이 휘겠다고욝! 어풉, 주인님의 몸이 얼마나 작은데! 이리 꾸겨 넣으시면! 키야악! 단칸방도 이것보단 넓겠네!]

‘좀만 참아라. 금방 이 성력을 마력으로 바꿔줄 테니까.’

[헉, 그게 가능하십니까?!]

‘내가 왜 그렇게 흑의 펜타곤의 보상품에 눈독을 들였겠냐?’

[!]

흑의 펜타곤의 보상품은 ‘전환의 성물’이었다. 독을 약으로, 성력을 마력으로, 마력을 성력으로.

힘을 반대로 바꿔주는 물건이었다.

어떻게 이런 게 나올 수 있나 싶지만, 흑의 신앙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놈들이었다. 마족 토벌에 도움이 된다면 시체까지 이용해 뭐든 만들어냈다.

‘마족부터 드래곤, 마물. 도움이 되는 재료는 죄다 연구하며 쓰는 놈들이니, 이런 성물이 나오는 거지.’

남들은 마력을 성력으로 바꿔서 힘을 키우려고 눈독을 들였겠지만, 아이작은 정반대였다.

‘나는 성력을 마력으로 만든다!’

에슈아 공작령에 오기 전에 교황청에 들러 흑의 펜타곤의 보상품을 받은 아이작이었다.

당연히 보상품을 써보았고, 성력을 마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이 끝났다.

그게 무슨 말이다?

청의 신한테서 힘을 빡빡 긁어와야 한다는 의미였다.

‘마력으로 전환시킬 분까지 생각하면, 최소 10배는 더 퍼가야 해! 푸히푸힣히힣!’

[…아니, 마력으로 쓰란 말은 안 하지 않았나요……?]

‘하지만 청의 신을 구하려면 마력 계위를 올려야 하는걸?!’

[아니, 해골왕에게 도움이 되라고 준 힘은 아닐 텐데요……?]

‘뭐 어때? 나도 에슈아인걸?’

아이작의 눈이 초승달로 휘었다.

애초에 이 깃털은 에슈아 사람이 아니면 쓸 수가 없었다. 그 말인즉, 자격이 된단 뜻이었다.

‘종자를 위해서 쓰는 거니까, 우리 신께서 고생 좀 해주셔야지! 푸헿!’

[빛의 신이 울고 있겠네요. 계약자는 내팽개치고, 엄한 놈이 힘을 퍼가고 있다고…….]

‘그러게 누가 날 에슈아에서 태어나게 하래?’

[청의 신한테 인정받아 가주가 돼야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러다 천벌 받습니다…….]

그러자 아차 싶었던 아이작이 깃털을 슈리의 이마에 1초 정도 대줬다. 그러자마자 슈리의 눈이 회까닥 돌아갔다.

“으악, 우와 미친! 힘이 끓어오른다! 이거 뭐야!”

“청의 신의 힘.”

“뭐?!”

“계약자 몫도 분명히 챙겨줬다? 뭐라고 하기 없기다?”

“뭐, 뭐?”

몫이라기엔 코딱지만 한 수준인 게 문제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청의 신의 힘도 끌어왔겠다, 아이작은 바로 비전의 힘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성녀들이 대충 이런 식으로 썼던 것 같은데…….’

아이작이 스윽, 손을 까닥거린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쾅!!!

“허억!”

아이작의 손짓에 맞춰서 방 한편이 날아갔다.

난생처음 보는 그 광경에 슈리는 얼어붙었다.

“뭐야! 너 뭐 했어?!”

하지만 아이작은 대답 대신 씨익 웃었다.

좋다, 이거면 됐다. 이거면 노엘도, 교황의 입도 닥치게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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