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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50화 (150/272)

제150화. 아, 성질 좀 죽이쇼! (1)

진마의 땅.

마족 최고의 두령답게 진마의 영역은 여러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역사적인 장소가 있었다.

바로 신성제국의 옛 도시로, 원래는 신탁의 도시였던 곳.

‘델로스.’

동시에 그곳은 몇백 년 전 해골왕에게 빼앗긴 땅이자, 해골왕이 사라진 후에는 진마가 자리 잡은 곳이었다.

하물며 델로스에 있는 놈들은 특히나 더 악랄하고 교활한 걸로 유명했다.

그 증거로 숱한 모험가들과 토벌대들이 그들에게 속고 유린당해 먹이가 되었다. 어쨌거나 살아 돌아오기 힘든 장소란 뜻이다.

그러니 애초에 가지 못하게 하는 게 맞는데.

“으악씨! 여기에도 없다고??”

델로스로 가는 길.

할아버지를 쫓아온 아이작과 슈리는 미치고 팔짝 뛰는 중이었다.

사실 아이작은 비전을 테스트하자마자 급히 할아버지를 찾았다.

하지만 이게 웬걸.

-뭐라고? 할아버지가 벌써 집을 나갔다고? 우이씨!

그사이 가주가 진마의 땅, 델로스로 떠나버린 것이다.

에슈아 공작령에서 북쪽에 있는 델로스까지는 대략 보름 정도 거리. 꽤 먼 편이었다.

급히 쫓아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거니 해서, 아이작은 짐도 대충 챙기고 따라갔다.

무엇보다 델로스로 가는 길은 하나밖에 없기도 했고, 그 외에는 전부 마수가 나오는 산악지대였다. 그만큼 할아버지가 머물 마을들도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당연히 마을에서 따라잡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랬는데!

-시발! 뭐라고? 벌써 이틀 전에 떠났어???

마을에 도착한 아이작과 슈리는 할아버지를 찾지 못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쯤엔 이미 가주는 마을을 떠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마을이니, 뭐.

-괜찮아! 다음 마을에서 따라잡으면 된다!

-조금만 더 서두르자!

델로스로 가는 길에는 무려 7개의 마을이 있었다. 그 안에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할부지도 나이가 있으니까, 그렇게 무리해서 가진 않겠지. 낌슈리! 우리가 자는 시간을 아끼자!

-그래!

그래서 자지도 않고 발에 땀이 날 만큼 다음 마을로 달렸더니, 뭐가 어째?

-아, 에슈아 공작님이요? 예예, 이 마을에 오셨죠! 마을에 오셨을 땐 간소한 차림이셨지만 워낙 눈에 띄시는 분이니까요. 그분을 모를 리 없죠!

-게다가 바쁘실 텐데도 마을에 있는 환자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주시고! 마을을 노리는 마물까지 퇴치해주셨는걸요!

-오오!

역시 할아버지! 괜히 추기경이 아니다!

곧 할아버지가 퇴치했다는 마물을 본 아이작은 내심 감탄했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 가볍게 말하길래 무슨 고블린 급의 조무래기 마물들인 줄 알았건만.

-6계위 놈들이 수십 마리가 있었잖아?

보통은 군대가 동원되어야 할 수준이었다.

실제로 영주의 병사들도 그들과 싸우다가 많이 죽은 모양이었지만, 그마저도 할아버지에겐 적수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심지어 혼자서 단번에 끝내셨습니다! 역시 추기경 각하!

과연 청의 우두머리답다… 싶지만, 사실 아이작에게 중요한 건 공작의 위엄이 따위가 아니었다.

‘뭐, 그 정도로 힘을 썼으면 푹 쉬고 있겠네.’

6계위 마족을, 그것도 수십 마리를 혼자서 상대하고 마을 환자들까지 봐줬다? 이 정도면 백 프로 휴식 각. 드디어 따라잡았다!

-그럼 여기에 계시는 거죠?!

-이미 3일 전에 떠나셨는데…….

-몸풀기도 안 되셨다면서…….

할부지이이이!!

젠장. 할아버지를 너무 얕봤다.

-어떻게 환자들 치료에 마족 퇴치까지 했는데도 못 따라잡을 수가 있지??

-심지어 3일 차이?? 왜 더 늘어나는 거야!

-역시 할아버지…. 대단해.

물론 일라이가 대단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망할 놈의 청. 그 미친 체력과 강인한 몸뚱이에는 아이작도 질릴 지경이었다.

-야, 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안 돼. 더 확실하게 지름길로 가서 앞지르자.

결국 아이작은 위험을 무릅쓰고 마물이 나오는 숲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인도로 가면 안전하지만, 이대로는 할아버지를 따라잡을 수 없다. 반면 숲을 일직선으로 통과하면 마을 두세 개는 그냥 건너뛸 수 있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숲으로 갈 수 있다는 경우의 수도 있었지만, 목적지가 무려 진마의 땅이었다. 굳이 숲을 통과해서 힘을 낭비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성직자들은 보통 ‘사람들을 돌본다’는 공통된 교리가 있었고, 청이라면 더욱 ‘작은 자’들. 즉 제국민들을 살피며 가려 할 것이었다. 어지간하면 마을들을 거쳐 갔다.

그래서 아이작 일행은 숲을 가로질러 가장 마지막 도시에 도착을…….

-아! 에슈아 공작님이요! 알죠알죠! 그 유명한 분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바로 어제 오셔서 지금 저희 영주님 성에 머물고 계십니다!

-오오!

-젠장, 드디어! 아이작한테 시달리면서! 마물 퇴치를 하면서! 숲을 두 개나 가로지른 보람이 드디어!

그래! 맞다! 드디어!

드디어 할아버지를 따라 잡았……!

-뭐? 공작님이 오전에 떠나셨어?! 어제 오셨잖아?

-그게… 갈 길이 있으시다면서…. 영주님께서도 부디 더 오래 머물다 가시라고 하셨지만 모두 사양하고 떠나셨습니다.

…시발!!

할아버지이익!!!!

결국 그쯤 되자, 슈리와 아이작은 주저앉으며 욕을 할 수밖에 없다.

“찌발! 노인네가 뭔 놈의 체력이 그렇게 좋아!”

“역시 할아버지…….”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사실 젊고 건장한 청의 기사들보다 더 팔팔한 게 청의 가주였다. 괜히 청의 기사들이 훈련에서 일라이보다 먼저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후…. 우리도 보름이 걸리는 길을 7일 만에 달려온 건데 말이지.”

죽겠다.

진짜 죽겠다.

게다가 아이작과 슈리도 하도 급하게 나오느라 종도 데리고 오지 않은 상태였다.

몰골이 엉망이 된 그들이 숙소에서 헥헥거렸다. 그러자 함께 온 레아가 동생들을 토닥여주었다.

“괜찮니? 여기 먹을 것 좀 사왔으니 기운부터 차려.”

빵을 받는 아이작은 음식을 받으면서도 의외라는 듯 레아를 보았다.

‘솔직히 이 녀석이 나를 따라올 줄은 몰랐는데.’

레아는 차남 벤야민의 딸로, 멜리사와 함께 있던 성녀였다.

그녀는 아이작이 에슈아 저택을 떠날 때 자신들을 쫓아왔다. 게다가 비전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직 슈리 외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레아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둘을 따라온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를 말리기 위해 나서는 아이작이 걱정된 듯했다.

‘내가 그냥 말리러 간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뭐 레아가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과분할 정도로 엄청 도움받았지.

솔직히 마물이 나오는 숲에서 하루 만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레아의 공로가 100%로였다.

안 그랬으면 여기까지 할아버지를 따라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역시 성녀. 강하긴 졸라 강해.’

사실 이번 대 성녀들의 힘은 처음 본 셈이었는데, 레아는 멜리사만큼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아니지. 어떤 의미로는 더 우위일 수도 있었다. 현역 때 멜리사보다 더 능력치가 높아 보였으니까.

그런 녀석이 멜리사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괴물이지.’

실제로 진마들의 명을 받은 건지, 인간을 습격하는 데 익숙해진 마물들의 처리도 한 방이었다. 검술 솜씨가 이미 인간의 경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데 아직 정식 성녀가 아니라니.’

에슈아의 여아들은 전부 성녀로서 길러졌다. 그리고 편의상 모든 여아들을 성녀라고 부르고 있는 듯하나, 엄밀하게 따지면 ‘후보’들이었다.

9계위에 도달해야 정식 승계 의식을 치르고, 정식 성녀가 되어 다른 성녀들을 이끈다.

물론 지금은 아직 9계위에 도달한 성녀가 없어, 이번 대는 아직 공석인 듯하지만……

‘아직 9계위가 아니라고?’

아무튼 비전을 안 써도 이 정도인데, 그걸 쓰게 해주면 얼마나 괴물이 될까. 뭐, 그전에 할아버지부터 막아야겠지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레아가 말했다.

“여기 바로 다음이 델로스야. 사실상 진마의 땅에 가기 전에 할아버지를 막는 건 실패한 셈이고.”

레아의 말에 슈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진마의 땅이 어떤 곳인지 익히 듣고 자란 만큼, 미래가 그려지는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동강 나는 모습을 떠올리는 슈리였지만, 정작 아이작은 침착하게 물었다.

“낌슈리. 할아버지한테 서신은 보냈냐? 비전에 대해서도 말했고?”

“그래. 이미 저택을 나올 때 보냈었지. 답장도 오늘 받았어.”

슈리는 품속에서 푸른 서신 하나를 꺼냈다.

그걸 받아 펼친 아이작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염려 말고 돌아가라. 돌아가지 않으면 즉시 후계 자리를 박탈하겠다.

뭐, 예상은 했다만. 참 할아버지답다.

하긴, 나라도 ‘비전을 쓰게 됐으니 할아버지 돌아오세요…!’라고 하면 코웃음을 치겠네.

그래서 직접 보여주는 게 답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쫓아온 것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급한 대로 샤브나크를 보냈으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뭐, 지금까지의 정황을 봐선 할부지가 너무 빨라서 샤브나크가 쫓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추기경이다. 쉽게 안 당하겠지.’

진마의 함정에만 안 빠지면 사실 문제는 없을 것이었다. 이번 임무는 진마의 퇴치가 아니라, 성소의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제일 좋은 건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스톱을 시키는 거다. 그랬기에 아이작이 말했다.

“일단 한 통 더 넣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또 보내면 진짜 화내실 것 같긴 하다만.”

할아버지의 엄격함을 잘 아는 슈리는 걱정스럽게 보았다.

“후계 이야기까지 꺼내는 걸 보면 이거 진짜 화나신 거야.”

그러나 아이작은 귀를 후볐다.

“아, 후계 자리 협박은 됐으니까 일단 멈추라 해. 할아버지 얼굴 안 보면 우리도 진마 땅에 들어갈 거라 해. 우리 이 근처라고. 콱 들어가 버린다고 협박해!”

이놈이 미쳤나?

“야, 그런 게 먹힐 것 같냐?”

“맞아. 그건 아니야.”

레아의 동의에 슈리도 보라는 듯 말했다.

“봐, 안 통한다는……”

“쓸 거면 아이작이 진마한테 붙잡혔다고 써.”

…예?

슈리는 당황해서 레아를 보았지만, 정작 레아는 진지하게 한마디 했다.

“진마가 아이작을 인질로 잡고 농성하고 있다고 해. 그럼 바로 오실 거야.”

“……??”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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