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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57화 (157/272)

제157화. 놀라게 해드리겠습니다 (1)

에슈아의 광할한 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름에 걸쳐 도착한 이곳 에슈아는, 호수의 마을이라고 불렸다. 그만큼 보석처럼 아름답기로 유명해 누구나 눈을 뗄 수 없는 곳이었다.

뭐, 정작 그 광경을 보고도 눈이 썩어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와 시바. 할아버지 진짜 개 빠르네.”

아이작은 질린다는 얼굴로 마차에 누워 있었다.

일라이는 부모님의 유품을 찾자마자, ‘나 먼저 집으로 가겠다. 너희는 천천히 따라와라.’라는 말만 남기고 슝 사라져버렸다.

좀 쉬고 가라고 했지만, 일라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또 뛰어서 가버렸다.

할배한테 지기 싫어서 나름대로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것도 다음 마을에서 포기했다. 쫓아간 릴라이하고 청의 기사들만 불쌍하지.

“젠장, 노인네. 도대체 뭔 놈의 체력이여? 뒤지라고 해도 안 뒤지겠네.”

아이작의 말에, 슈리는 제발 말투 좀 고치라는 듯 눈을 질끈 감았지만, 정작 아이작은 끊임없이 툴툴거렸다.

“빌어먹을 성녀 집안. 자랑할 건 체력과 통뼈밖에 없지.”

“아이작…! 너 진짜! 레아 누님도 계시는데!”

[그보단 주인님의 체력이 문제 아닐까요?]

시발! 나 같은 고급 두뇌 인재한테 성기사 같은 바퀴벌레 체력을 바라지 마!

[본인도 성기사의 대장인 성녀 핏줄이면서…….]

“악! 망할 성녀부터 없애버릴 테다!”

“아이자아악!”

하지만 그런 아이작의 모습에 레아가 간식을 뜯어주며 웃었다.

“할아버지가 가문의 중대사에 대해 말씀하실 생각인가 봐. 그래서 급하게 가신 것 같아.”

그들 중에선 유일하게 레아가 멀쩡했는데, 그녀로서는 동생들의 속도가 답답해서 먼저 갈 법한데도 굳이 아이작과 함께했다.

“그리고 멜리사 할머님을 만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윽.”

멜리사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로 얼굴이 썩는 아이작이었지만, 정작 슈리는 부러운 듯 말했다.

“아이작이 비전을 부활시킨 일 때문이겠죠? 와, 가모님이 진짜 너 예뻐할 거다.”

아니. 멜리사의 예쁨 따위 필요 없으니까!

“아니면 델로스에서 되찾은 성물 때문일지도.”

“!”

그들은 아이작의 옆에 있는 상자를 보았다. 상자 안에는 교황이 찾아오라고 했던 성물이 담겨있었다.

솔직히 놀랐다. 성물이라고 해서 평범한 물건은 아닐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상상을 초월한 가치의 물건이었던 것이다.

“설마 초대 교황께서 쓰시던 물건일 줄이야.”

신성제국에서 초대 황제와 초대 교황의 존재는 거의 우상의 존재에 가까웠다.

그들이 쓰던 물건은 역사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값을 매길 수 없었다.

“왜 그만한 물건이 델로스에 버려져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어쨌거나 이거 엄청난 거다.”

뭐, 그렇겠지.

이만한 성력을 가졌으면…….

“새로운 신앙 하나가 탄생할 수 있을 수준이다.”

‘흐흐, 내다 팔면 얼마야. 마도제국에 팔아서 매국노짓이나 해?’

아이작의 입꼬리가 귀에까지 걸렸다. 위대한 조상의 물건이 마도제국에 팔리면, 교황 얼굴 좀 볼만하겠네. 푸헿!

[그냥 쓰셔도 추기경의 비전을 익힐 수 있고, 성력을 마력으로 바꾸셔도 어마어마한 힘을 얻으시겠죠.]

어쨌거나 교황의 얼굴을 구겨지게 할 좋은 인질을 얻었다는 것이다.

‘뭐, 진짜로 이걸 구해올 줄은 몰랐겠지만.’

하지만 성물과 별개로 아이작이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바로 부모의 존재다.

“내 부모님은 날 밖에서 낳아 기르다가, 그 델로스 땅에서 변을 당한 거지?”

“어? 어어.”

“왜 내 부모님은 에슈아 저택이 아니라, 밖에서 날 낳은 거야? 사생아도 아니고. 굳이 저택 밖에서 낳을 이유도 없지 않나?”

그 말에, 슈리는 그러고 보니 그렇다는 듯 의아해했고, 레아가 그 답을 해주었다.

“아이작, 네 위로 피붙이가 있었던 건 알지?”

“아, 어어. 죽었다면서.”

“그 아이가 태어날 때, 분만 중인 너희 모친께서 습격을 받았어. 그래서 네가 생겼을 때도 또 그렇게 될까 봐, 아이가 생긴 것도 비밀로 하고 밖에서 낳으신 게 아닐까 싶어.”

습격이라고?

“아무튼 이미 첫째가 죽은 일도 있고, 위험하다고 느끼신 거지.”

그래서 자신은 태어나자마자 저택 밖에서 그 고생을 했던 거군. 에슈아 사람들도 늦게 알 수밖에 없었고.

슈리도 납득했다.

“장남의 아이면 높은 확률로 가주가 될 테니까. 미리 처리한 거군요?”

“아니면… 네가 성자란 걸 알고 미리 수를 쓰신 걸지도. 아, 도착했다.”

저택에 도착한 그들은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부가 좀 어수선했다.

“손님이 오신 건가?”

“손님이라고 하기엔 뭔가 좀 분위기가…….”

묘하게 눈치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시종들의 얼굴이 화가 나 있다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곧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도련님! 무사하셨군요!”

아실리가 아이작에게 뛰쳐왔다.

“도련님, 편지만 놓고 사라지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그런 곳에 가시는데 절대 쫓아오지 말라고 하시다니……!”

사실 아이작은 떠나기 전 유모에게 편지를 남겨놓았다. 너는 집에 남아 노엘의 감시를 하고 있으라고.

“별일 없었고?”

“별일 없긴요. 가주님과 도련님이 사라지신 사이에, 노엘님이 에슈아 사람들의 모든 여론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도련님이 가주님을 따라가셔서 더욱 저쪽의 기세가 높은 상황입니다.”

한마디로 노엘이 호랑이가 없는 곳에서 호랑이 행세를 하며, 본인이 가주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단 소리다. 아이작을 헐뜯으면서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어수선해? 누가 왔어?”

“아…….”

아실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런가 싶었는데, 그럴 만하긴 했다.

“사실 교황가에서 사람들이 왔습니다.”

“교황가? 그놈들이 왜?”

“도련님들이 델로스로 가신지 한 달쯤 지나지 않았습니까?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신년회가 시작될 텐데… 그 비전 거래 건은 어떻게 할 거냐고 사자를 보내와서요.”

아. 그러니까, 재수없게 닥달하는 놈을 보내왔단 거군.

“교황이 제시한 기한이 신년회였지?”

“예. 기간도 짧고, 아마 성물을 못 가져올 거라 생각하고 있겠죠. 그걸 알기에 일부러 사자를 보낸 걸 겁니다.”

아실리가 힐끗 응접실을 보았다.

곧 아이작이 응접실에 귀를 댔다.

아니나 다를까, 응접실에서 교황의 사자들의 득의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청은 비전을 되돌려받고 싶지 않은 겁니까?”

“…그게 아니라.”

교황의 사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원로와 차남 벤야민은 끙 이마를 짚고 있었다. 일라이는 멜리사를 만나러 가서 부재중이었다.

그 사실을 들은 교황의 사자들은 가주의 부재를 뭐라 생각한 건지. 오히려 더 콧대를 세우고 있었다.

“진마에 땅에 가셨다는 분이 난데없이 멜리사 성녀님을 뵈러 가셨다니. 아무래도 성물을 찾는 건 실패하신 모양이죠?”

“이번엔 멜리사 성녀님을 데리고 진마의 땅에 가시려는 모양인데, 기한이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애초에 기간이 너무 짧지 않았소.”

“왜 그러십니까. 기한이 문제면 다른 걸 주시면 되지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최고신님과의 계약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 계약은…….”

분위기가 왜 이 모양인가 했더니, 아무래도 교황가가 최고신에 대해서 제시한 모양이었다.

노엘 측 장로들은 오히려 잘 되었다는 얼굴이었다.

“최고신님과의 계약을 양도해드리는 걸로 비전을 찾을 수 있다면, 그 무엇보다 좋은 것이 아닙니까.”

“아이작도 가문을 위해서라면 흔쾌히 양보하겠지.”

“가문을 위할 수 있다니 그 아이에게도 영광일 것이오.”

에휴. 저 새끼들 저거, 저럴 줄 알았지.

문에 귀를 대고 듣고 있던 아이작이 쯧 혀를 찼다. 슈리도 한숨을 쉬면서 아이작을 말렸다.

“어차피 가주님 오시면 해결될 문제야. 지금은 일단 기다리…….”

하지만 아이작은 듣지도 않고 응접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그 광경에 슈리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이작은 당당하게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사자들과 에슈아 사람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뭔 소리를 지껄이나 했더니. 찌발 놈들이 멍멍 짖고 있었네.”

“아이작!”

이게 무슨 결례냐는 얼굴들이었지만, 아이작은 빙긋 웃었다.

“어이고, 멀리서 찾아오시느라 고생은 하셨는데, 어쩌죠? 최고신은 못 내드릴 것 같은데요.”

“청은 비전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아이작!”

장로의 호통에 아이작은 풉 웃으면서, 손짓했다.

그러자 슈리가 이마를 짚으며 성물이 담긴 상자를 들고 왔다.

“니들이 찾는 게 이거냐?”

“어, 어어?”

상자를 열고, 나온 내용물에 응접실 내부에 있던 모두의 표정이 볼만해졌다.

“자, 잠깐…! 저건!’

“성물?”

“설마 저걸 찾아왔단… 잠깐, 뭐?!”

원로들과 장로들은 입을 떡 벌렸고, 교황가의 사자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최고신과의 계약을 양도해주겠다는 확언을 들으려고 온 것이었지만, 성물이 눈앞에 있다? 이건 상황이 또 달라진다.

교황가의 사자들은 벌떡 일어났다.

“그, 그걸 정말 찾아오신 겁니까?”

“역시 청입니다! 청의 추기경께서 여유를 보이셨던 이유가 있으셨군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뀐 그들의 태도에 아이작이 큭 웃었다.

그래, 이거야! 이게 몹시 탐나겠지. 탐날 거야.

그의 예상대로 사자들이 언제 청을 무시했냐는 듯 웃었다.

“역시 청이라면 교황 성하의 임무를 완수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거라면 비전과도 바꿔드리겠습니다. 자 그걸 이쪽으로…….”

하지만 아이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뭐?

그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아이작은 푸웁 웃었다.

“이 성물을 왜 너희한테 줘야 하냐고요.”

사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청은 비전이 필요 없다는 말씀입니까?”

“비저언? 풉!”

그 웃음소리에 사자들은 영문 모를 표정을 지었지만,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이미 그거 있는데?”

…뭐라고?

“그러니까 이 성물도 우리거.”

……잠깐, 뭐?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아이작의 입꼬리가 묘하게 사악했다.

하지만 뭐라고 질문하기도 전에 아이작이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미 비전이 있어서 그거 이제 안 받아도 된다고요. 하지만 니들은 이거 필요하지?”

아이작의 눈이 고소하다는 듯 초승달로 휘었다.

“뭐, 이걸 돌려받고 싶으면, 그쪽이 가지고 있다는 청의 힘을 내놓으시든가. 아 그걸로는 한참 부족하려나? 뭐, 조건에 따라 생각해보도록 하지.”

뭐가 어째……?

“자, 어떻게 할래? 상황이 역전된 거 같은데.”

…이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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