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62화 (162/272)

제162화. 신앙 선택 (1)

견습들, 그리고 사제들, 하다못해 기사들과 황궁 사람들까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 저게 뭐야?”

“저, 저거 청이지? 청 맞지?”

아이작은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빛을 받는 아이작은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빛이 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눈부신 빛이었다.

빛이 날 수밖에 없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렇게 호사스러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값비싼 보석들을 두르고 있으니.

질이 좋은 보석은 반짝임이 남다르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이작의 주변으로 빛이 끊이질 않았다. 그가 지나간 자리로 반짝임의 궤적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장식도 그냥 장식이 아니었다.

사소한 잠금쇠의 부분까지도 촘촘하게 보석이 세공되어 있고, 사제복을 엮고 있는 실 한 올까지 전부 금이다.

보이라고 만든 자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모자부터 시작해서 귀장식, 영대, 목걸이, 팔찌, 벨트, 반지, 옷의 장신구, 신발까지. 흡사 황제나 교황을 방불케 하는 자태에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막대한 재력의 귀족들이 보기에도 숨이 턱 막힐 정도면, 아이작이 두른 게 얼마나 비싼 건지 견적이 나왔다.

그래. 한마디로 사치!

이보다 호사스러울까 있을까 싶은 사치!

“처, 청이……!”

“그 검소한 청이……!”

“저런 사치를!”

슈리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아이자아악!’

이 미친놈아, 저게 무슨 꼴이야! 설마 가방에 들어 있던 게 전부 보석이었던 거냐?!

‘목걸이만 도대체 몇 개를 두른 거야…. 미친 놈!’

목이 보이질 않는다.

‘무겁지도 않냐?!’

앉아있는 추기경들도 드물게 아연실색한 얼굴로 아이작을 쳐다보다가, 청의 추기경에게로 스윽 눈길을 돌렸다.

할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 천장을 보고 있었다. 소가주 자리를 준 걸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모습이다.

심지어 천상천하 유아독존, 마이 웨이의 흑의 추기경조차도 기가 찬 듯한 얼굴이다. 저 사람이 저런 표정을 짓게 하는 건, 온 대륙에서 아이작이 유일할 것이다.

기가 막힌 건, 또 묘하게 잘 어울린다.

다른 사람이 둘렀으면 졸부나, 보석에 먹혀버린 촌뜨기로 보였을 텐데, 저 보석 더미를 두르고도 기가 막히게 소화하고 있다.

‘역시 얼굴인가? 얼굴이 다 했나?’

게다가 저놈이 두른 푸른 옷감!

‘에슈아 블루’라 불리는 저 염료는, 에슈아에게 은혜를 입은 다른 나라 황제가 전설적인 장인을 불러 오직 에슈아만을 위해서 만들어준 색이었다.

대륙에 있는 모든 푸른색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평가받는 유일무이한 색이지만, 손톱만 한 원단을 물들이는 데에도 억 소리가 날 정도로 비싼 염료였다. 대귀족들이나 왕족들조차 엄두를 못 내는 색이다.

그래서 공작가 사람들조차도 신의 재단에 바치는 공물 용도로만 조금씩 썼었는데!

그런데……!

‘이 새끼, 소가주가 되고 제일 먼저 한 짓거리가 신의 재단을 턴 거였냐!’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검소함이 미덕인 청이 저런 사치의 모습이라니……!”

에슈아 사람들은 탄식을 내뱉었다.

“안 그래도 청은 신입도 없는 판인데, 더 떨어져 나가게 생겼…….

“청 부자였어……?”

“청…. 돈 많았구나.”

“?!”

어린 견습 졸업생들이 황홀한 얼굴로 아이작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제국에서 가장 명예도 높은데, 돈도 많았어……!”

“이제 보니 돈은 많은데 검소한 것이었어…….”

“빌어먹을…. 굳이 티를 내지 않아도 여유로울 정도로 부자였단 건가!”

“가진 자가 오히려 겸손하다더니……!”

“시발…. 개멋있어! 나 청으로 갈까……?”

아니, 왜 효과가 있는 거지?!

재물에 홀려버린 견습들의 모습에, 슈리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졌다.

난생처음 보는 영롱함에 어린 견습들의 눈이 이상해져 있었다. 물론 그럴 만한 나이긴 했지만 말이다.

실제로 보석에 넋을 잃고 바라보던 선배 사제들은 아차 싶었는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누가 저런 보여주기에 넘어간다고…….”

“너 눈을 못 떼고 있던데…….”

“크흠! 어쨌든 쇼가 아닌가. 애들도 바보는 아냐. 저딴 걸로 청을 선택하기엔 위험부담이 크다는 건, 다들 알 것…….”

그런데 그때였다.

아이작이 이걸로 끝일 것 같냐는 듯,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 물건에 흠칫 놀란 건, 다름 아닌 금의 추기경과 적의 추기경이었다. 왜 저게 저기서 나오냐는 얼굴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사제들이 크게 술렁거렸다.

“저건 금가의 물건 아냐? 교황 성하의 인장이 찍혀 있잖아……!”

“금이 청을 지지하고 있단 의미인가?”

아이작은 아주 잘 보라는 듯 까치발까지 하고선, 휘휘 몸을 돌려 이리저리 보여주다가 목에 슥 걸었다.

사제들과 견습들의 눈빛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설마. 올해는 청을 택하라는 교황 성하의 숨은 계시인가?’

‘청 혼자라면 몰라도, 금의 지지를 받는 청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는데?’

동시에 이를 보는 금의 사제들은 뒷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만…! 저건 또 누가 준 거야? 왜 가문의 보물이 저기에 있어?”

“이러면 신앙 선택에 영향이 갈 텐데……!”

그들은 원망에 찬 눈으로 금의 추기경을 보았다.

깊은 한숨을 쉬는 금의 추기경은 고개를 숙이며 이마를 짚었다. 누가 저걸 가져다줬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키나…….”

한편, 백의 추기경은 웃겨서 죽으려고 했다. 웃음 참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배를 잡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하지만 팔짱을 끼고 있는 적의 추기경도 얼굴 근육이 씰룩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이작이 금의 목걸이에 이어, 이번엔 적의 루비를 보란 듯이 보여주고 다녔다. 사제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적가의 휘장이 아닌가!”

“적도 청을 지지하고 있다는 건가?”

순간 웃고 있는 적의 추기경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꼬맹이가…….”

나이저한테 형법의 신의 일로 아이작과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이거는 아니지. 소가주가 된 마당에 저걸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됐으니까. 빨리 1위 소감이나 말하게 하고 내려보내.”

이번 건은 할 수 없으니 봐주겠지만, 당장 눈앞에서 치우라는 적의 추기경의 지시였다.

그 지시에 놀란 의전 사제가 재빨리 아이작에게 다가가 다급히 속삭였다.

하지만 아이작은 눈살을 찌푸릴 뿐이다.

“어엉? 시간 없으니까 빨리 진행하라고?”

끄덕끄덕.

아이작은 헛웃음을 흘리면서 ‘뭐, 좋다’라고 말하는 듯 제자리에 섰다.

의전 사제는 드디어 해결됐다는 듯,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그럼 졸업 대표자의 축사가 있겠습니다. 그간의 견습 생활을 되돌아보며, 선배들께 감사를 드리는 인사를…….”

“잘 들어라. 청은 이제부터 달라진다.”

“!”

“!?”

“……?!”

졸업 인사를 하라고 했더니, 난데없이 청의 소개를 하기 시작한 아이작이었다.

추기경들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아니, 축사 자리에서 지금 저놈이 뭘 하는 거야? 신입들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하라고 올려보냈더니, 신앙 선택에 개입을 하고 있어?

하지만 그 표정들을 본 아이작은 푸웁, 웃었다. 왜? 졸업 대표자는 모든 신입 앞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할 시간을 주잖아?

‘이런 끝내주는 홍보 타임을 내가 놓칠 것 같냐?’

이런 게 싫었으면 졸업 대표자 자리를 주지 말았어야지!

[아니…. 저놈들도 주인님이 이러실 줄은 몰랐겠죠…….]

실제로 추기경들은 물론, 다른 신앙의 사제들도 당황하고 있다.

아니, 신앙의 홍보는 지금이 아니라 졸업식 이후에 해야지! 여기서 하면 어떡해! 이건 반칙이지!

하지만 소가주라는 아이작의 위치로 보나,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으로 보나. 무턱대고 끌어낼 수도 없다.

“조, 졸업 대표자. 졸업과 무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주시고, 지금은 선배들과 신들께 감사의 인사를…….”

그러나 독무대를 받은 아이작은 이를 무시하고 씩 웃었다.

“잘 들어라. 청으로 오면, 금이 주는 급료의 두 배를 주겠다.”

“뭐?!”

“이는 적과 흑의 세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백과 비교하면 네 배에 이르는 금액이겠군.”

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견습들은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웅성거렸고, 다른 신앙의 선배 사제들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청도 급하긴 급한 상황인가 보구나.”

“그러게. 소가주가 저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안쓰러울 지경이다.”

“뭐, 청의 급료가 짰던 건 사실이니까. 저 정도는 해야 겨우 우리들과 비슷해지는…….”

“참고로 주급이다.”

“뭐가 어째?!”

이번엔 선배 사제들조차 눈이 돌아갔다.

사제들은 고용인이 아니지만 일단 각 가문에 소속되어 임무를 받으니, 그에 해당하는 수당을 받긴 했다. 급료도 그것의 연장선이었다.

하지만… 청, 미쳤어?

갑자기 이렇게 수당을 올려버린다고?

하지만 놀랄 만한 건 그뿐이 아니었다.

“성직자들의 의식주도 개편한다.”

“!”

“내 모습은 그것에 대한 포부. 이는 아주 작은 예시일 뿐이다.”

사제들이 술렁거렸다.

“청, 검소의 신앙 아니었냐고!”

“이제 처우를 좀 개선해 주는 건가?”

“조건이 좋으면 청도 생각해볼 만하지.”

그러자 어디에선가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뭐라는 거야. 청은 사유재산 인정이 안 되잖아. 저렇게 받아도 결국 기본 생활비를 제하고 나머지는 뱉어내야 하니까, 거의 남는 게 없…….”

“청도 이제 사유재산을 허가한다.”

“?!”

뭐가 어째?

이번엔 다른 의미로 회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사유재산을 인정해준다고?”

추기경들도 당황한 듯 청의 가주를 보았다. 협의가 된 내용이냐는 것이다.

그러자 청의 가주는 미간을 짚었다.

“아니, 알아서 하라고 했는데.”

나도 저럴 줄은 몰랐지.

그 반응에, 추기경들도 대충 상황을 눈치챘다. 아이작이 판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금의 추기경과 적의 추기경은 묘하게 불길해졌다. 다른 사람이면 무리수를 던진다고 하겠지만, 그게 아이작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괜히 무서워지는 것이다.

다른 신앙의 사제들도 기가 찬 듯 외쳤다.

“거짓말이지! 일단 신입들을 데려가려고 저러는…….”

“아니…. 거짓말이면 나중에 폭동 일어나죠.”

하지만 애초에 그 이전의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돈을 줘봐야, 청은 미래가 없잖아.”

“!”

사제들이 회의적인 말을 했다.

“저거 다 위험수당이야. 마족 잡다가 대부분이 죽으니까, 목숨값으로 주는 거라고.”

“청은 비전도 못 쓰는데, 마족 잡다가 죽을 일 있냐.”

그 말에 견습들의 절반은 괜히 혹했다는 듯 얌전해졌다.

그럼에도 연회장이 여전히 소란스럽자, 금의 추기경은 빨리 넘어가라는 듯 의전 사제에게 손짓했다.

그래, 여기까지는 봐준다. 청도 신입이 5년 동안 없었으니 급할 만하니까, 이 정도는 넘어가줄 수 있다.

어차피 저런다고 한들, 졸업식이 끝난 후에 전부 뒤집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한번에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추기경들은 행여나 견습들의 마음이 바뀔까, 서둘러 지시했다.

“빨리 졸업 대표자의 축사나 하게…….”

“자, 그러면 다음으로 비전을 보여주겠다.”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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