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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65화 (165/272)

제165화. 공평하게 해야지 (2)

“우와, 사람 진짜 많다.”

“제국민들까지 입장할 수 있는 거였어?”

콜로세움에 들어온 졸업생들은 감탄 중이었다.

콜로세움 안에는 견습들과 행사를 준비하는 사제들 외에도, 구경꾼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모두 비전 시연식을 보러 온 이들이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원래 비전 시연식은 외부인한테 공개 안 하지 않았어?”

“그러게. 원래 비공개 행사였는데.”

그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추기경들이 잘도 공개를 했다는 것이다.

“그게, 황태자 전하께서 갑자기 올해는 외부인에게도 공개를 하자고 했나 봐.”

“뭐? 황태자 전하께서?!”

황태자의 제안이라면 사실상 제안이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겠지. 추기경들로서도 황실의 눈 밖에 나면 좋지 않은 걸 아는 만큼, 좋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신앙의 영향력을 올릴 수 있는 만큼, 본인들에게도 좋은 일이고 말이다.

황태자가 어쩐 일로 교황청과 친화적인 제안을 하나 싶었지만, 견습들은 오히려 잘되었다 싶었다.

외부인에게도 공개한다면, 비전 시연식도 필연적으로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신앙의 얼굴이 걸린 만큼 더 공을 들이겠지.

평생의 신앙을 골라야 하는 신입들 입장에선 엄청난 참고가 될 터.

“우리가 비전을 언제 볼 수 있겠냐. 이때가 아니면 못 본다.”

“캬, 우리도 언젠가는 비전을 쓸 수 있겠지.”

비전은 신앙의 수호자들인 직계들이 비전 원전을 지키고 있는 한, 사제들도 도제식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다. 상급 사제가 되는 게 우선순위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견습들로서는 미래의 자신이 될 수도 있으니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이왕 진영을 고르는 거, 제일 좋은 곳으로 가고 싶은 게 사람으로서 당연한 본성이 아닌가!

“역시 금이 압도적이겠지?”

“당연하지. 금의 비전은 교황 성하의 힘이기도 한 거잖아.”

“청은? 조건은 이번에 개 좋던데.”

“야, 조건이 괜히 좋겠냐? 작년에도 실망이었대.”

“하긴, 우리 형도 작년에 봤다는데 별 볼 일 없었다더라.”

“보는 사람이 민망했대.”

“우리 누나는 청에 대해서 약간 동경심도 있었는데, 좀 쪽팔렸다더라.”

견습들이 청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고 있을 때, 귀빈석 역시 비슷한 이유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다름 아닌, 자리에 참석한 황태자 샤블리스 때문이다.

“전하. 왜 추기경들께 외부인 공개를 제안하신 겁니까?”

“외람되오나… 전하께서는 청을 좋게 보고 계셨던 것이 아니셨는지…….”

심복들이 매우 걱정스럽게 바라보자, 샤블리스는 눈썹을 치켜떴다.

“청이 왜?”

“예? 아, 아니 그…! 청은……!”

당황한 심복들은 말문을 잇지 못했다.

샤블리스는 청을 좋게 보고 있으니 청에게 도움이 되는 쪽을 생각하고 있겠지만, 외부 공개는 오히려 청에게는 악재다.

그간 신앙 선택 때 청의 결과를 보면 더욱 그렇다.

‘퇴마의 신앙이 마물을 제대로 토벌 못 해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 성직자들한테만 창피를 당했다지만, 이젠 만인의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생겼군.’

‘청을 믿으시려는 것 같지만, 전하께서 부디 큰 상처를 받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심복들의 반응에 샤블리스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부하들은 황태자가 성직자들을 싫어하니 그들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하지만 사실 샤블리스는 심복들보다 더 성직자들에 대해 잘 알았다.

원래 적일수록, 원수일수록 더욱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한다고 보는 쪽이었으니까.

그래서 사실 샤블리스는 아이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고?

비전 시연식을 외부 공개해달라고 요청해온 건 다름 아닌 아이작이었으니까.

그는 토템을 빼앗아가고 나서 생각났다는 듯 샤블리스에게 속삭였다

-아, 맞다맞다, 전하. 올해는 추기경들을 설득해서 비전 시연식을 제국민들에게도 보여주시죠?

솔직히 아이작의 요청에 황태자가 더 당황스러웠다. 예의 없는 말투에, 건방지게 황실의 토템을 빼앗간 건 둘째치고…….

-청이 그래도 되겠는가?

-암요. 되고 말고요. 푸헤헿. 청이 돈을 좀 벌어야 하거든요.

-……??

일단 아이작이 부탁했으니 들어주긴 했으나,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왜 자충수가 될 짓을 하는 거지?’

그리고 황태자조차 아이작을 못 믿는 상황이 되자, 비전 시연식을 담당한 사제들은 큭, 웃고 있었다.

“그래, 이 반응이지.”

“졸업식 때는 아이작 에슈아 때문에 좀 놀랐지만, 청에 신입들을 보낼 것 같냐.”

적과 금의 사제들은 청의 기사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들은 6계위와 7계위 성직자들로, 매년 비전 시연식을 해온 장본인들.

보통 비전 시연식은, 신입들에게 ‘너희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사기를 올리기 위해, 직계가 아닌 다른 신앙에 소속된 상급 성직자가 도맡는다.

이는 그들로서도 영광스러운 기회였다.

하지만.

‘해골왕도 못 잡으면서 무슨 교황이랑 맞먹는다고. 건방지게.’

금으로서는 교황에게 충성하지 않는 청이 마음에 들 리 없고, 현실에 타협하려는 다른 사제들로서는 바른 말을 하는 청을 예뻐할 수가 없다.

교리 자체가 그런 신앙이니 그러려니 해도, 원래 세상은 눈에 띄는 놈이 돌을 맞는 법이다.

게다가 아이작이 에슈아의 소가주?

‘곧 죽어도 에슈아는 교황 성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거군.’

금의 사제들은 시연 준비중인 아이작을 보며 쯧 혀를 찼다.

‘올해는 인지도를 올려보겠다고 직접 나온 것 같은데.’

그런 만큼, 올해 확실히 날개를 꺾어주겠다. 가장 최선을 다했을 때 꺾어버리면, 다시 날아오를 생각도 못 하겠지.

흑도 저들답게 새침 떨고 있지만, 청을 무시하는 걸 모를 리 없다.

‘에슈아 따위에게 사제들을 가르치며 기를 자격을 줄 것 같은가?’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청의 성직자들은 의기소침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소가주님.”

“뭐가?”

아이작이 갸웃거리자, 비전 시연식을 담당하는 두 명의 청의 성직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 명은 기사였고, 한 명은 사제였다.

“저희가 그간 비전 시연식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가주가 되실 분께 이런 모욕을 안겨 드리다니.”

“너희가 그간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비전 시연식을 해온 녀석들이냐?”

그 말에 그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저희 때문에 청에 신입이 없고, 비웃음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때마다 매년 더욱 최선을 다했지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작년에도 책임을 지고 물러서겠다고 했지만, 가주님께서는 그럴수록 최선을 다하라고 하셔서…….”

그러나 아이작은 픽 웃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어.”

“…예?”

아이작은 같잖다는 듯 웃었다.

“혹시 너희가 비전 시연식을 망치게 된 게 5년 전부터 아냐?”

“…그렇긴 합니다만, 마침 그때가 저희가 선배님들의 뒤를 이어받아 처음 진행했을 때라서요.”

“아. 그러면 니들 입장에선 한 번도 잘한 적이 없었단 거군.”

얼어붙은 청의 성직자들은 더더욱 고개를 숙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냐. 시간은 오래 걸렸어도, 니들이 마물을 죽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소가주님!”

청의 성직자들은 울려고 했다. 그들은 아이작이 자신들을 위로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정작 아이작은 푸우웁 웃었다.

‘오히려 비전도 없이 대단한 거지.’

그 기생충에 감염된 마물은 상급 사제들도 버거워하는 존재거든. 오히려 이놈들이라 그 정도나 해낸 것이다.

아마 똑같은 것을 상대하면 저쪽은 난리가 날걸?

“올해는 다를 거야. 진짜로.”

“소가주님!”

그런 아이작의 웃음을 뭐라 생각한 건지, 다른 신앙의 시연 사제들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고, 될 것 같냐.”

“야, 봐줘라. 5년이나 죽을 쑨 놈들을 교체도 안 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시연 사제들은 어차피 청이 안 된다는 걸 안다.

왜냐고?

‘올해도 청의 토템에 장치가 되어 있는 거겠지?’

‘뭘 장치했는지는 몰라도, 고전하겠지, 뭐.’

백과 청을 제외한 이들은 사실 청의 토템에 문제가 있는 걸 안다.

솔직히 5년이나 청이 죽을 쑤고 있으면, 이상해서라도 추기경에게 물어보는 게 정상이었다.

그때마다 추기경들은 ‘비전을 못 쓰니까 그런 것’, ‘너희는 신경 쓸 것 없다.’라고 답했지만, 그들이 그리 눈치가 없을 리 없었다.

‘뭔가 있긴 하구나.’

물론 토템에 대해서 청에 말해줄 수는 있었지만, 자신들이 왜? 청에 갈 신입들이 자신들에게로 온다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

게다가 추기경들의 반응을 보면 비전만 쓸 수 있으면 문제가 없는 것이 틀림없었다.

‘으휴, 그러게 누가 비전을 못 지키래.’

‘다 비전을 못 지킨 지들 잘못이지, 뭐.’

그렇게 그들이 콜로세움 위로 올라섰다.

물론 그냥 올라서진 않았다.

“올해는 객빈들도 많은데, 한꺼번에 시연식을 하죠.”

“!”

청의 성직자들은 놀란 듯이 다른 사제들을 보았다.

“왜? 청이 하도 잡는 데 오래 걸리니까, 우리가 빨리 처리하고 도와주겠다는 건데.”

“!”

“너희도 이 객빈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긴 싫을거 아냐?”

“푸하핫, 동기 좋은 게 뭐냐!”

다른 사제들의 말에, 청의 성직자들은 수치스러움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그럴 필요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아이작이 나섰다.

“굳! 좋아! 환영이야! 좋은 생각이네!”

“……!”

청의 성직자들은 더욱 죄송한 듯 고개를 떨궜다.

소가주께서도 내심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구나……!

“니들, 말 바꾸지 마라!”

크윽…! 우리 때문에 일부러 당당한 척까지!

하지만 아이작은 하늘이 돕는다는 듯 성직자들을 얼른 올려보냈다.

그러자 의전 사제들이 콜로세움 한가운데에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토템이 들어 있는 그 상자였다.

교황의 휘장은 아이작이 붙잡았던 교황청 사제를 이용해 다시 멀쩡하게 씌워놓았다.

“자. 그러면 토템을 개방합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토템이 하늘 위로 던져졌다. 동시에 토템을 봉인하고 있던 술식을 풀기 위해, 적의 추기경이 손짓을 했다.

번쩍!

그 손짓에 맞춰 모든 토템의 봉인이 풀리고, 콜로세움에 본모습을 찾은 마물들이 나타났다.

[크어어어어!]

모두 5객체로, 마수보다는 식물에 가까운 마족들이었다.

마치 식물이나 꽃들이 그대로 커진 것처럼, 거대한 덩치였다. 그것들이 넝쿨을 길게 늘이며 성직자들을 노렸다.

그 순간. 각 신앙의 시연 사제들이 재빠르게 비전을 발동했다.

제일 먼저 금의 사제들이 금빛의 성력을 불러오고-

<금의 비전-선의의 배척>.

금빛이 성력이 바닥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그 선 위로 방벽이 치솟아 오르면서, 넝쿨들을 가로막았다.

콰직! 콰직!

‘배척의 벽’에 부딪친 넝쿨들은 사정없이 소멸했다. 이제 이 넝쿨을 시작으로, 그 존재 자체가 사라질 것이다…….

아니, 사라져야 하는데…….

“크허어억!”

“?!”

넝쿨이 금의 사제들을 습격했다. 그들은 당황한 듯 마물을 보았다.

“뭐야, 저게 왜 다시 살아나… 끄악!”

금의 사제들이 넝쿨에 잡혀가고, 적의 사제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고문의 비전을 사용했다.

“병신들, 사람들이 본다고 긴장했냐!”

그들은 자신들이 대신 처리해 주겠다는 듯 손짓했다.

<적의 비전-지옥고>.

곧 붉은 번개가 마물 위에 떨어졌다.

“고마워해라! 우리가 대신 처리했다. 병신들아… 으악!”

고문의 비전을 쓰던 적의 사제들도 도리어 역공을 당했다. 곧이어 가면을 쓴, 까마귀 같은 모습의 흑의 사제들도 합세했지만-

“꺄아악! 흑의 사제님들이 붙잡혔어요!”

이번에도 모두 제대로 비전을 써서 처리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마물에게 역공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마물을 없애고 있는 건, 청과 백 정도였다.

특히 청이 압도적이었다. 그렇기에 청의 성직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뭐지? 어어?’

‘왜 올해는 쉬운 거 같지?’

사람은 바뀌지 않았다. 하물며 상대하는 마물도 다른 이들과 똑같다.

그런데 왜 다르지?

뭐가 달라진 거지?

몇몇 추기경은 뭔가 잘못됐다는 듯 일어섰다.

그 광경에 아이작은 씨익 웃으며 소리쳤다.

“가라! 노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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