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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66화 (166/272)

제166화. 공평하게 해야지 (3)

“가라! 노비들아!”

아이작의 외침에 청의 성직자들이 뛰쳐나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뭔가 귀를 의심할 만한 호칭을 들은 것 같은데.’

‘노, 노비?’

‘잘못 들은 거겠지.’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건 마물의 처리!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실수를 만회하는 것!

‘가주님과 소가주께서 믿어주신 만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일 먼저 청의 기사가 검에 성력을 실었다. 푸른빛을 발산하는 화려한 검날이 넝쿨을 잘라냈다.

마치 빛의 검을 보는 듯한 화려한 자태에 이어, 청의 사제도 퇴마의 성법을 썼다.

번쩍!

흡사 지면에서 광맥이 치솟는 듯한 빛줄기가 마물에게 정확히 작렬했다.

하지만 그들은 알았다.

이 정도로는 저만한 놈을 처리할 수 없다. 지난 5년간 치가 갈리는 경험이 알려준 사실이었다.

‘또 다시 덤벼올 거다!’

‘그래! 바로 다음 준비를……!’

[뀨, 뀨에에엑…….]

…죽었어?!

바로 다음 공격을 하려던 청의 성직자들은 당황했다.

뭐지? 왜 덤벼오지 않아?!

왜 한 방에 죽는 건데!

그들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서로를 보았다.

아이작은 그 광경을 보며 뿌듯한 듯 미간을 부여잡았다.

캬아, 그거지!

내 원숭이들아! 잘한다!

더해! 어서 더!

아이작은 내심 그들이 기특했다.

단순히 상급 마물을 처리해서?

아니다.

사실 저들로서는 비전을 지키지 못한 직계들을 원망하면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웃음거리가 되는 건, 전부 직계들 때문이라고. 우리가 비전만 쓸 수 있으면 이런 수모는 안 당했을 거라며 책임을 떠넘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저들은 그저 본인들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믿고 맡겨준 선배들과 가주께 폐를 끼친 것이라고.

그 마음이 어찌 갸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마음껏 재롱을 펼쳐라, 내 원숭이들아!’

약장수 소가주의 외침이 통했는지, 청의 성직자들은 다음 마물도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아니, 어렵지 않은 수준이 아니다.

쾅!!

단 일격으로 마물이 소멸했다.

그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으어…? 왜지? 왜 쉽지?!’

‘비전을 쓴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콜로세움에서 거대한 탄성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오, 청! 대단해!”

“벌써 처리했어!”

“그렇지! 이래야지!”

“역시 신성제국 제일의 퇴마 신앙답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환호성에 청의 성직자들은 울컥했다.

항상 그따위로 할 거면 집어치우라는 둥 꼴찌라는 둥 야유만 듣다가, 처음 들어보는 함성에 그들은 이것이 꿈인가 싶었다.

마물을 가까스로 처리한 백의 사제들도 내심 놀란 듯이 청을 보고 있었다.

‘압도적이다.’

‘예년과는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에 비하면 다른 신앙 쪽은 어떠한가.

“끄악!”

“사, 살려줘!”

식물의 넝쿨에 붙잡히고, 도망치고, 손을 쓰지도 못했다.

물론 이럴 리가 없다면서 비전과 여러 성법을 써서 공격했지만, 되레 자극만 하는 꼴이 되었다.

아니, 자극만 하고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지.

“으아악!”

“꺄악!”

근처에 있던 백의 사제들에게까지 피해가 날아왔다.

그쯤 되자, 지켜보던 추기경들은 당황한 듯이 자리에서 전부 일어났다. 백의 추기경은 뭔가 기시감을 느낀 듯 다른 추기경들을 보았다.

“이상하네요. 저 모습… 예전에 청이 곤란해 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지 않나요?”

“뭐?”

“물론 청은 저리 붙잡히진 않았지만, 마물이 재생하는 형태라든지 행동이라든지…….”

“……!”

동시에 뭔가 눈치챈 다른 추기경들은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설마……!”

“저놈이!”

“……!”

다른 세 추기경들의 반응에, 백의 추기경은 몹시 이상하게 보았다.

“왜 그러시죠?”

흑의 추기경은 귀찮게 됐다는 듯 쯧 혀를 찼다.

“청이 눈치챘나 보군.”

“눈치를 채다니요?!”

어떻게 들어도 이들이 청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거기에 청이 반응을 했다는 듯한 말들이 아닌가.

“설마 당신들, 청에게 무슨 짓을 하셨었나요?”

백의 추기경의 날카로운 눈빛에, 적의 추기경이 억울한 듯 한마디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한 건 아니지.”

“예?”

그 순간 비전의 빛과 함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꺄아악!”

“아악!”

마물을 처리하려는 세 신앙의 힘에 자극받은 마물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다.

하물며 난사되는 비전의 힘에 휘말린 백의 사제들은 졸지에 마물에게 끌려갔다.

그 광경에 열 받은 백의 추기경이 다른 추기경들을 노려보았다.

“이봐요! 청에게 무슨 짓을 했던 거죠? 우리까지 피해를 입었잖아요, 당장 말하세요.”

적의 추기경이 달래듯이 말했다.

“아니. 오해야. 아이작 에슈아가 우리를 물 먹이려고 작정한…….”

“아니, 안 보이세요?! 백은 청이 아니라 그대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잖아요!”

백의 추기경이 목소리를 높이자, 다른 추기경들은 골치 아파했다. 치유를 맡는 백을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건 그들도 잘 알았다.

적의 추기경이 말했다.

“진정해. 우리는 정말 아무 짓도 안 했어.”

흑의 추기경도 시니컬하게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단지 청의 토템에 뭔가 장치가 있단 걸 눈치챘을 뿐이지.”

그러나 백의 추기경은 더욱더 기가 찬 시선을 보냈다.

“장치라니요? 설마 그게 청이 골골대던 것과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심지어, 뭐? 그걸 알고 있었다고요?”

백의 추기경의 눈빛에 추기경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잘라버린 건, 금의 추기경이었다.

“그럴 때가 아니야. 마물이 폭주한다.”

“!”

그들은 황급히 담장을 넘어 시연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시연장 위에 나타나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뭐야, 추기경들 아냐?”

“추기경들께서는 원래 참관만 하시지 않아?”

그 외침에 마물에게 붙잡혀 있는 사제들은 얼어붙은 시선으로 추기경들을 보았다.

살았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만인의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자각한 얼굴이었다.

심지어 추기경들이 직접 나서게 하다니! 문책을 받을 걸 떠올린 그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외쳤다.

“가, 각하! 죄송합니다! 서둘러 처리할 테니!”

금의 추기경이 꺼지라는 듯 말했다.

“비켜라. 너희로는 저걸 상대할 수 없다.”

“예……?!”

금의 추기경은 빡친 듯 아이작에게 소리쳤다.

“아이작 에슈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그러자 상석에서 느긋히 즐기고 있던 아이작이 페헹, 웃음을 흘렸다.

“왜에? 청이 겪던 걸 고스란히 돌려줬을 뿐인데?”

“!”

아이작은 큭큭큭 웃었다.

사실 그는 청의 토템에서 벌레를 뽑은 후, 벌레를 분열시켰다.

그 기생충은 분열의 속성이 있어서, 몸통을 잘라내면 잘라낸 곳 모두 생명체가 된다. 이를테면 이 등분하면 두 마리, 세 등분하면 세 마리가 되는 식이다.

그래서 신나게 증식시켜서 각자의 토템에 넣어둔 것뿐이었다. 아, 물론 백의 토템에는 넣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남의 토템에 ‘무한 마충’을 넣어놓고도 그냥 넘어가려고 했었냐?”

아이작의 말에, 붙잡혀 있는 다른 신앙의 사제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한 마충이라니!’

“서, 설마 그 무한 재생하는 그거……?”

“죽여도 죽지 않는 기생충……?”

마족까지는 아니지만, 마족과 짐승의 사이에 있는 마충으로, 꽤 귀한 벌레였다.

숙주에 기생해 무한재생을 시키고,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 속성을 가지게 하기에,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에서 병사들에게 쓴 적도 있을 정도였다. 시체에 넣어 병력으로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망자에 대한 예의를 차려야 한다며, 인간 진영에서는 암묵적으로 터부시한다.

“그간 우리가 잡았던 거랑 똑같은 걸 준 것뿐이야, 새끼들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그 말을 들은 시연 사제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청이 잡았던 거랑 똑같은 거라니……!

‘저 미친 놈들, 5년 동안 상대한 게 이런 거였다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다는 거야?’

잡는 데 오래 걸린다며, 피투성이가 된 채 싸운다며, 비웃을 만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죽이긴 했다는 게 놀라울 지경이다.

‘잡는 게… 가능하긴 한 건가?’

그럴 때 추기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마물들을 확인했다.

그들이 손가락을 튕기며, 성법을 날렸다. 화려한 공격 성법이 식물을 불태우며 완전히 소멸시키려 했지만, 쉽게 죽지 않았다.

화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다.

이유를 깨달은 추기경들은 빡친 얼굴이었다.

“이 새끼가…….”

“도대체 벌레를 몇 마리나 처넣은 거야???”

재생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아니, 재생하는 게 아니라, 아예 식물의 객체 수가 늘고 있다. 기생충이 생명력을 끌어올려 식물이 분열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면 벌레 한두 마리 수준이 아니라, 수백, 아니 수천 마리가 들끓고 있다는 소리다.

객체 하나하나는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그런 게 수천 마리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만한 걸 한번에 처리하려면 9계위 공격 성법을 갈겨야 하는데, 그러면 붙잡힌 놈들도 문제고, 이만한 인파 앞에서 쓰기엔 화력이 너무 세서 다같이 휘말린다.

솔직히 벌레를 잘라내서 증식시켰을 텐데, 이 정도면 벌레를 증식시킨 그 집념이 무서울 정도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짓을!’

그런데 그때였다.

서걱! 서걱!

“!!”

청의 기사와 사제가 비키라는 듯 나섰다.

푸른 성력을 머금은 검이 단번에 식물을 잘라내고 넝쿨에 붙잡혀 있는 사제들을 구해냈다.

심지어 청의 사제가 날리는 성력에 반응해 녹아내리는 식물도 있었다.

“우오오오!!”

“청 강하다!”

“저걸 처리했어!”

청의 성직자들은 이를 악물었다. 괜히 모든 마물들을 파악하고 있는 퇴마의 신앙인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마물이 아니라 벌레라는 걸 알았다면, 오히려 처리하기는 쉬웠다. 지금까지는 기생충이 싸움을 포기할 때까지 싸워서 처리를 했지만, 벌레에겐 벌레의 급소가 있는 법.

무한 마충은 어두운 곳에 숨는 버릇이 있어 일단 빛에 약하다. 눈을 멀게 하면 약간의 텀이 생기는데, 그걸 이용해 급소를 노리면 끝이다.

숙주? 기생충을 처리하면 저깟 마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쾅!

“오오오! 청이 처리를 했어!”

“대단하다! 청!”

“추기경들도 처리 못 한 것을!”

“역시 퇴마의 신앙인가!”

“결국 중요할 때 도움이 되는 건 청이구만!”

그 광경에 추기경들은 아이작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의 노림수를 파악한 것이다.

‘저놈의 수작이다.’

일부러 이런 상황이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걸로 청의 이름값을 올리려고!’

신앙끼리 비교를 시키고, 누가 더 우위인지 각인하기 위해!

그렇게는 안 된다는 듯 추기경들이 나서려고 했지만-

쾅!!

공격탄이 추기경들의 앞에 떨어졌다.

추기경들은 당황한 듯 아이작을 보았다.

그제야 자신의 차례라는 듯, 단상 위에 올라선 아이작이 히죽 웃었다.

“아이고오, 소인이 아직 조준이 미숙해서 빗나갔네요. 각하들. 죄송합니다.”

저놈이??

미쳤나?

하지만 가장 높은 곳에 선 아이작은 푸헤헿 웃었다.

캬, 상황 좋고, 무대도 계획대로 잘 만들어졌고! 모두의 시선은 이쪽을 향하고 있고!

“이런 기가 막힌 홍보 기회를 놓칠 거 같냐!”

…뭐?

지금 저게 뭐라고 했나? 홍보??

곧 아이작이 아직 처리되지 못한 마물들을 보며 외쳤다.

“으하하하하! 각하들께서도 골머리를 썩으시는구나! 이러어면 할 수 없지이이! 다른 신앙이 못 잡으면 청이 뒤처리를 해줘야지!”

아이작이 손으로 낯익은 형상을 그리자, 추기경들은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게 손짓의 모양은 비전의 식!

…저놈. 설마!

마침내 콜로세움을 뒤덮는 찬란한 푸른빛이 아이작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청의 비전!’

“자, 실컷 봐라! 청의 비전을!”

강렬한 푸른빛이 반원 모양으로 치솟아 올랐다.

모두에게 잊혀졌던 청의 비전이, 약 백 년 만에 모두의 눈앞에서 부활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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