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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69화 (169/272)

제169화. 와라! 노비들아! (3)

모두가 기가 차다는 듯 탄식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 아이작 저놈이 이렇게 말하는 거지? 백의 토템에서 마충을 발견해서, 백의 토템을 황실의 토템으로 바꿔놓으셨다고?

추기경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황실에서 어떻게 토템을 가져왔는지도 의문이지만.’

황실이 성직자에게 황실의 물건을 내줄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황실이 아니다. 신경이 쓰여도, 지금은 아이작이 사기를 쳤다는 게 더 중요한 거지.

“원래 백의 토템은?”

본래의 물건을 조사해보면 답은 나온다. 아이작의 말이 거짓이고, 자신들은 결백하다는 걸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금의 추기경이 험악하게 손을 내밀었다.

“원래있던 토템을 내놔.”

백하고 사이가 틀어지면 자신들이 곤란해진다.

하지만 아이작은 방긋 웃었다.

“아이고 죄송해요, 처리해 버려서 보여드릴 수 없는데, 어떡하죠?”

금의 추기경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처리해 버렸는데, 네 말은 믿어야 한다?”

“예!”

아이작이 해맑게 웃자, 여우 같은 적의 추기경도 드물게 기가 찬 듯 웃음을 흘렸다.

“와, 이놈 새…. 청이 지금 다른 추기경들을 우롱하네?”

청의 가주의 눈빛에 슬쩍 말투를 고치는 적의 추기경이었지만, 분노를 참을 수는 없다.

“내놔라.”

드물게 적과 한마음이 된 금의 추기경이 손을 내밀었다.

그 강압적인 손짓에 겁을 먹을 만도 한데, 아이작은 무려 추기경을 셋이나 적으로 두고도 여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능글맞았다.

“정말 보여드려도 괜찮겠어요? 보여드리면 오히려 각하들께서 매우 곤란하실 텐데요?”

“……??”

아이작의 능글맞은 웃음에 손을 내민 금의 추기경이 도리어 당황한 눈치였다. 벽돌처럼 딱딱하고 고압적인 눈썹이 드물게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적의 추기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지? 뭐가 있길래 이리 당당한 거지?’

분명히 확인했을 때 백의 토템에는 아무것도 없었는데? 흑의 추기경은 당황하진 않았지만, 관심을 가지듯 아이작을 빤히 보았다.

그쯤 되자, 오히려 부하가 먼저 걱정할 수밖에 없다.

[…구라 쳐도 괜찮습니까?]

‘구라 아닌데?’

[예? 백의 토템에는 무한 마충이 없지 않았나요?]

‘그래. 무한 마충은 없었지.’

[……!]

아이작은 방긋 웃으면서 백의 추기경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나중에 백의 추기경 각하께는 따로 보여드릴게요.”

[와…. 저 가증스러우신 미소.]

위스퍼는 소름 끼쳐 했다. 표정 관리 안 되던 갓난아이 시절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아이작이 그리 나오자, 다른 추기경들은 오히려 불안한 눈치였다.

‘뭐지? 뭘 가지고 있는 거지?’

모두가 아이작의 속내를 알아내려고 했지만, 정작 백의 추기경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눈치였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아이작의 꿍꿍이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백의 물건에까지 신경을 써준 점에 감사드립니다.”

“!”

아이작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백의 토템에 뭔가가 있었다는 건 사실이다.

아니, 애초에 숭고한 신앙 선택의 장에서 마충을 심는 등,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거기에 추기경들은 해당 일을 방치하기까지.

사실 백이 무슨 피해를 입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이번엔 백이 아니라 청이 그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청도 본인들의 일로 정신이 없으셨을텐데요.”

“……!”

백의 말에, 다른 추기경들이 움찔했다.

“그런 상황에서 안전한 물건, 하물며 그 귀한 황실의 토템으로 바꿔주시다니요. 하물며 본인들의 물건도 아닌 백의 물건에요.”

“……!!”

“그리고 무엇보다…”

백의 추기경의 싸늘한 시선이 다른 추기경들을 향했다.

“동료분들이 평소 어떤 행동과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셔서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아니……!”

추기경들이 뭐라고 하려 하자, 그 말을 자르듯 백의 추기경이 아이작에게 말했다.

“백의 수장으로서 청에게 고마움을 표하게 해주십시오.”

백의 추기경의 말에, 아이작은 속으로 히죽 웃었다.

그렇지!

이거야! 이걸 기다렸어!

하지만 너무 좋아하는 걸 티 내면 안 되니까. 아이작은 약간 난처한 척, 싫어하는 척을 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각하. 성직자로서 당연한 도리를 했을 뿐입니다.”

[주인님, 침은 좀 닦고.]

청의 가주는 저거 저거 탐욕보라는 듯, 손자를 보았다.

백의 추기경은 역시 청답다는 듯 방긋 웃었다.

“말만 하십시오. 개인적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은 겁니다.”

미간을 짚은 아이작은 굉장히 고심하듯, 곤란한 척을 했다.

“아아, 그러면 실은 청이 신입들에게 줄 돈이 좀 부족한데, 백한테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고…….”

“아, 그런 이유라면 문제없습니다.”

백의 추기경이 생긋 웃으면서 다른 추기경들을 보았다.

“다른 분들이 대주시면 되겠네요.”

…ㄴ…뭐?

추기경들은 제 귀를 의심하듯 백의 추기경을 보았다.

우리가?

청의 신입들한테 가는 돈을 대주라고?

우리가 왜?

신입을 빼앗긴 것도 서러운데 우리가 왜???

그러자 백의 추기경이 화사하게 웃었다.

“아, 네. 안 하셔도 돼요. 양심이 없으셔서 안 하시겠다는데, 저희가 뭐라고 하겠나요?”

“……!”

“저희도 그저 고객들과 오가며 이야깃거리로 삼을 뿐인 거죠. 그러다가 타국 분들의 귀에도 들어가고, 저희도 양심 없는 사람들과의 거래를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대들이 하는 말은 백 번 더 의심해보고, 그럴 뿐이죠. 사소한 일이니 서로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이렇게 나오겠다고……?

‘젠장, 제대로 찍혔다.’

백이 ‘한 번 더 생각해본다.’라는 건, 정말 한 번 더 생각해보겠다는게 아니었다. 저 녀석들이 한번 더 생각해보고 의심해 본다는 건, 사실상 교류를 끊겠다는 의미다.

무엇보다 백의 추기경은 상냥하지만 다른 의미로 가장 무섭고 강하다.

“설마 존귀하신 추기경들께서 신입들을 키우는 일에 앓는 소리는 안 하시겠죠? 아니면 설마 청의 신입이니까, 이번처럼 모르는 척 버리실 생각이신가요?”

“…….”

공손하게 묻는 백의 추기경의 아름다운 눈엔 드물게 혐오감이 섞여 있었다. 실망시키지 말라는 말을 돌려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쯤 되자, 적의 추기경은 쯧, 혀를 찼다.

‘백이랑 척을 지면 곤란하지.’

결국 알겠다는 듯 적이 말했다. 백에게 잘 보이려는 듯한 행동이었다.

“뭐, 어느 신앙이든 헬라의 성직자들이라는 건 변함 없으니까. 기꺼이 지원을 해주지. 필요한 걸 써서 보내라…. 어?”

적의 추기경의 말에, 아이작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지금… 이 새끼가 ‘필요한 걸’ 써서 보내라고 한 거야?

그런 거지? 어?

물론 흑은 같잖다는 듯 순순히 응하지 않을 기세였지만, 이 새끼는 필요한 걸 써서 보내라고 한 거지? 그치?

그런 아이작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적의 추기경이 드물게 움찔했다. 이거 잘못하면 한두 푼 뜯기는 걸로 안 끝난다는 걸 깨달은 눈빛이다.

“…아니! 생각해보니, 같이 해줄 사람이 있는 것 같군!”

적의 추기경이 금의 추기경의 팔을 필사적으로 꽉 붙잡았다.

“같이 해주실 거다!”

물귀신 작전에 금의 추기경은 이 또라이 개새끼가 미쳤냐는 듯, 적의 추기경을 노려보았다.

“뭐 하는 짓이야?”

“친구 좋은 게 뭔가.”

누가 니 새끼 친구냐는 듯 금의 추기경이 적의 추기경을 밀칠 때, 백의 추기경이 아이작에게 물었다.

“아이작 공자는 무한 마충을 넣은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기색이군요.”

아이작은 큭 웃었다.

“궁금하세요?”

범인?

이건 뭐, 말할 것도 없지.

“누구겠습니까. 교황청과 관련된 분이죠.”

그러자 다들 약속이나 한 듯 금의 추기경을 아주 빤히 보았다.

금의 추기경은 기가 찬 듯 썩은 표정을 지었다.

“난 아니다.”

“그럼 누가…….”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슬슬 오실 때가 된 거 같은데.”

“예?”

바로 그때였다.

“교황 성하께서 오셨습니다!”

* * *

콜로세움 장에 교황이 나타났다.

교황의 등장에 콜로세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교황 성하께서 왜 이런 곳까지……!”

“세, 세상에……!”

견습들은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황급히 적의 대기실에서 나가 예를 차리는 추기경들도 드물게 당황한 눈치였다.

물론 신앙 선택 때 교황께서 참여하실 거란 소문은 들었지만, 정말 오실 줄은 몰랐다.

‘모든 신입들의 거처가 정해지고, 축복식을 할 때나 잠깐 오실 줄 알았는데.’

교황은 신입들이 가득한 청의 대기실 쪽을 보았다.

“청이 부흥했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

교황의 말에, 금의 추기경의 낯빛이 좀 바뀌었다. 그 말이 의미하는 게 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때, 교황이 교황의 반지가 낀 손을 내밀며 소매를 정리했다. 그 행동의 의미를 잘 아는 모든 성직자들이 바로 긴장하며 몸을 가다듬었다.

그건 바로 교황에게 충성의 표현을 하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교황을 모시는 사제가 외쳤다.

“교황 성하께 예를 표하시오!”

콜로세움에 있던 모든 견습들과 사제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장엄한 광경이었다.

뒤이어 사제가 말했다.

“추기경들은 인사를 올리시오.”

그 말에, 금과 적의 추기경이 먼저 움직였다

“신의 영광이 교황 성하와 함께 하십니다.”

그들은 교황의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반지에 입을 맞췄다. 이건 본인을 죽이고 교황을 따른다는 추기경들의 충성의 서약이자, 인사였다.

아이작은 그 광경을 가증스럽다는 듯이 눈에 담았다.

‘충성을 강요하고, 추기경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거지.’

원래는 이런 장소에서는 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키느냐?

‘청에 신입이 몰렸으니까. 청한테 기고만장하지 말라는 거다.’

아마 비전 건도 있고, 청의 가주한테 경고하러 온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때였다.

금을 필두로 적, 흑의 인사가 끝나고 나자, 사제가 청의 가주를 보았다.

“청의 차례요.”

그러나 청의 가주와 아이작은 무릎을 꿇지 않고 물끄러미 교황을 볼 뿐이었다.

교황의 시종과 다른 추기경들도 의아한 듯 보았다.

“청?”

사제가 당황한 듯 눈치를 주었다.

교황도 청의 가주를 빤히 보았다.

곧 교황의 시종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말을 하려 할 때, 청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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