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0화 (170/272)

제170화. 와라! 노비들아! (4)

“옘병하네.”

청의 가주의 말에 다들 당황한 기색이었다. 교황의 시종도, 추기경들도 마찬가지였다.

‘지, 지금 뭐라고?’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적, 금, 흑은 청을 보았고, 청 다음 차례라 준비하며 서 있던 백도 당황한 기색이다.

“에, 에슈아 공작 각하?”

무릎을 꿇지 않는 일라이를 보며, 교황의 시종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눈치를 줬다.

충성의 인사를 하지 않는다니. 교황은 청의 가주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미묘한 감정이 느껴져 아이작은 가증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래, 당황스럽겠지.

‘보나 마나 할아버지의 충성심을 확인하러 왔을 테니.’

그런데 이놈이 충성심은 안 보이고 반항을 하네? 조올라 당혹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이 상황은 아이작이 오히려 바라던 상황이다.

[주인님은 백의 토템에서 발견하신 게 교황과 연관이 있다고 하셨죠?]

‘그래.’

[그걸로 교황가를 협박하려고요?]

내가 괜히 교황을 기다렸겠냐?

[…기다리셨습니까?]

해골왕이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백 프로 싸움이 일어난다는 신호인데.

하지만 교황을 보는 아이작은 푸훗 웃었다. 뭐, 교황이 여기까지 온 이유는 빤했다.

‘저놈들 입장에선 청이 부활해버리면 곤란하겠지.’

하지만 교황이 직접 나서면 할아버지도 굴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콧대 높은 추기경들을 유일하게 무릎 꿇릴 수 있는 건, 이 대륙에서 오직 교황 하나뿐이니까.

때문에 지금도 교황이 할 행동이 예상이 갔다.

‘아마 청의 신입들도 형평성을 위해 다른 신앙에 분배하라고 할걸?’

하지만 미쳤나?

자신의 목을 졸라오는 놈들한테 ‘어이쿠, 주인님 충성하겠습니다’ 하고 개처럼 꼬리나 흔들게?

‘성물을 가진 우리가 갑이라는 걸 인지하셔야지.’

곧 교황의 시종이 교황과 꼿꼿하게 서 있는 일라이를 보며 난색을 표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라이가 저러는 게 본인의 행동 실수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엔 좀 더 공손하게 몸을 낮춰 일라이에게 말했다.

“청의 차례이십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청의 가주는 움직이지 않는다. 교황의 시종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뭐지?

왜 가만히 있지??

이쯤 되면 고의인데??

하지만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청의 가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고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낮춰 충성을 증명하는 것 대신, 본론을 꺼냈다.

“토템에 마충이 들어 있었다는군.”

“!”

“토템은 교황의 소관이 아니었나?”

떨어진 그 말에 추기경들은 경악했다.

‘청 미쳤어?’

‘인사를 생까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이쯤 되면 충성의 인사를, 청의 가주가 강제로 종료시켜버린 꼴이다. 그보다 대뜸 교황을 범인으로 지목하다니!

‘무슨 생각이냐, 청……!’

‘교황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 광경에 아이작은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뭐, 할부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미 알았겠지.’

누가 토템에 장난질을 했는지.

그리고 할아버지라면 아마 이미 짐작했을 수도 있다.

‘교황이 청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고.’

그리고 단순히 짐작하는 것과, 고의가 가득한 심증이 계속해서 나오는 건 이야기가 완전히 달랐다.

‘교황한테 충성할 마음이 생기겠냐?’

[하지만 청의 가주는 교황과 절친이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뭐, 어릴 적 동무이자 동기라곤 들었다. 교황도 베리트의 가주였으니, 5대 가문으로서 교류가 있었겠지.

‘뭐, 지금은 절친이 아니라 원수로 보인다만.’

그리고 그 점이 아이작에겐 오히려 좋다. 그 역시 교황은 좋아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왜냐고?

‘역시나군.’

교황을 바라보는 아이작의 눈초리가 올라갔다. 교황의 몸에서 검붉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역시 <생존을 방해하는 자>의 표식.’

반드시 처리해야하거나, 피해야 하는 적에 대한 경고다. 내버려 두면 아이작의 생존이 위험해지든가, 간접적으로 위험하게 만들었다.

뭐, 교황들은 해골왕 때도 매번 저게 떴었지만 말이다. 심지어 교황의 세대가 바뀌어도 계속.

그래서 그 이유가 좀 궁금하긴 했지만…….

[정말 저자가 토템에 장난질을?]

‘당연하지. 애초에 흑의 추기경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게 누구였겠어?’

추기경들 중엔 제일 콧대가 높은 놈이었다.

황태자가 자신과 친해지고 싶다고 하니까, 지멋대로 X 꼴리는 대로 납치 계획을 세운 미친놈이고 말이다.

[주인님은 사실 5년간 신입이 없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눈치채셨군요? 교황의 짓이라는 걸?]

‘뭐, 그렇지. 도대체 교황 놈은 옛날부터 뭐 그리 청에 원한이 많을까.’

[옛날? 원한이요?]

아이작은 대답 대신 웃으며 이를 빠득 갈았다.

아이작 역시 교황에게 원한이 없다면 거짓이다. 물론 그건 과거의 일이니 현 세대에게는 원한을 안 품으려 했지만, 이딴 식으로 나오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아니나 다를까, 그는 청의 가주 때문에 인사도 못 하고 어정쩡해진 백의 추기경에게 얄밉게 속삭였다.

“백의 토템에는 무한 마충은 아니지만, 신수에게 치명적인 벼룩이 있었어요. 전염병을 퍼트리는 벼룩이요.”

“……!”

백의 추기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를 리 없다.

만약 아이작이 토템을 바꿔주지 않았다면, 싸우는 백의 사제에게 벼룩이 옮겨붙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제들이 평소대로 신수를 돌보는 곳에 왔다면……!

“교황 성하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의미는 알아서 해석하시길 바라죠.”

“……!”

왜 교황께서 그런 짓을 하느냐는 시선이었지만, 아이작은 웃었다.

뭐, 목적까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사실인데 어쩌겠어. 진짜 교황의 흔적이 있었는데. 하지만, 대충 상상을 마구 부풀리게 해줄 순 있지.

악마처럼 웃는 아이작이 슬쩍 속삭였다.

“아세요? 베리트 가문이 새 사업을 진행 중이라는데, 그게 신수와 연관된 것 같아요.”

“……!”

신수라고?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런 백의 추기경의 표정에, 아이작이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저도 키나한테 몰래 들었어요.”

“?!”

아이작은 히죽 웃었다.

그래, 안 넘어갈 수가 없지.

다른 사람의 정보도 아니고, 무려 베리트가의 후계자가 한 말인데. 그가 터무니 없는 정보겠나?

“제가 키나하고 몹시 친하잖아요. 각하께만 특별히 말씀드리는 거니까, 비밀로 해주세요.”

동시에 뭘 짐작한 건지, 교황을 보는 백의 추기경의 눈에 분노가 돋았다.

‘설마 금의 사업을 위해 백을 공격한 것인가!’

그 표정에 아이작은 푸흐흐 웃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다. 키나는 진짜로 자기네 사업에 대해서 말해줬거든.

‘같이 신수 타고 여행을 가자고 하더라.’

[백을 노린 사업은 아닐 수도 있지 않나요?]

알 게 뭐야?

‘난 정보를 말해줬을 뿐이고, 원래 상상은 자유지.’

그리고 백의 토템에도 좋지 않은 벌레가 들어가 있던 건 맞다. 이미 거기서 끝났지.

그 증거로 백의 추기경은 뭔가 결심을 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청의 가주가 살벌한 눈으로 물었다.

“왜 교황의 소관인 토템에. 청을 해하는 벌레가 있었는지. 납득이 되게끔 설명해줬음 하는데.”

“……!”

말은 정중하게 하고 있지만, ‘새끼야, 니가 범인이지?’ 하고 돌려 말하는 것…….

“니 새끼가 수작질했냐?”

아니, 돌려 말하지도 않네!

“…라고 추기경들을 추궁해 보았습니다만, 도저히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지 않아 교황 성하께 여쭙습니다. 무례를 용서해주시길.”

이 양반! 작정했어!

그러자 교황은 인사는 됐다는 듯, 토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청의 기분이 상한 것은 잘 알았네. 조사를 시켜보도록 하지.”

“!”

아이작은 속으로 풉 웃었다.

아, 그래. 시치미를 뗄 생각이군.

‘조사?’

보나 마나 범인은 없었다는 둥 단서가 부족하다는 둥 시간을 끌다가, 유야무야 묻을 생각이겠지. 일단 조사를 하고 있으니, 청은 아무런 말도 못 할 테고.

그렇게 둘 것 같냐?

곧 아이작이 운을 뗐다.

“아뢰옵기 대단히 민망한 내용입니다만,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

아이작이 끼어들자 모두가 놀랐다.

“무한 마충을 가져오신 건 다름 아닌 흑의 추기경이실 텐데요?”

무례한 말투는 둘째 치고, 다른 이들은 아이작이 한 말에 깜짝 놀랐다.

뭐야. 설마 흑의 추기경한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흑의 추기경도 불쾌한 듯 아이작을 쏘아보았다. 청의 가주도, 이건 예상 못한 듯 아이작을 힐끔 보았다.

그래서 뭐라고 운을 떼려 했지만, 바로 그때였다.

“흑의 추기경을 움직이실 수 있는 건, 이 제국에서 위대하신 교황 성하밖에 없으십니다. 아시잖습니까?”

“……!!”

듣고 있던 이들은 아예 얼어붙었다.

무슨 말을 하려나 했더니!

슈리는 속으로 아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니, 이 미친 새끼야! 이런 곳에서 대놓고 교황을 범인으로 지목하겠다고?!

그러나 아이작은 천 년 묵은 능구렁이를 삶아 먹은 듯, 능청스럽게 말했다.

“설마 위대하신 교황 성하께서 쪼잔하게 마충을 청의 토템에 넣으라 하셨을 리도 없고요. 세상에, 이건 교황 성하의 사칭 문제입니다!”

추기경들의 얼굴이 볼만했다.

…뭐? 사칭?

“황제 폐하와 교황 성하의 사칭은 국가반란죄이며, 역모에 해당하는 최고형의 중범죄입니다. 교황 성하의 권위를 넘보는 행위이기에 단순한 조사로 끝나면 안 됩니다.”

“!”

한마디로 유야무야 넘어갈 생각은 하지도 말란 의미다.

동시에 아이작과 흑의 추기경의 눈이 마주쳤다. 흑의 추기경은 아이작에게 몹시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아이작은 큭 웃었다.

왜? 설마 여기서 네놈이 ‘아닌데요. 범인은 교황인데요.’라고 하진 못하겠지.

아이작의 말에 주변에서도 수긍했다.

“누군가가 교황 성하를 사칭하여 청을 해하려고 한 것이라면, 이는 청의 개인적 문제가 아닌, 국가적 문제입니다.”

아이작은 신난 듯 끼어들었다.

“예, 모든 사제들이 동원되어 철저하게 범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황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잡아야 합니다! 황태자 전하라면 충분히 도와주실 거고요.”

“…….”

교황의 얼굴이 썩는 게 보여, 아이작은 푸핫 웃었다.

푸핳. 이거야!

이렇게 사건을 끌어올리면, 교황도 대충 묻지 못한다.

더 나아가 모든 신앙이 청의 토템을 조사하면 모두가 교황의 단서를 찾게 되겠지. 교황도 함부로 못 움직일 거고!

그 속내를 읽은 걸까. 교황은 불쾌한 듯 아이작을 힐끗 보았다. 동시에 무슨 생각인지 그가 아이작에게 다가왔다.

“청이 뛰어난 인재를 두었군. 듣자 하니 청의 비전을 청의 소공작이 부활시켰다고.”

“예. 그래서 최고신도 드릴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비전을 받을 필요도 없겠네요. 찾아온 성물은 저희 보수로 생각해도 될까요?”

아이작의 말에 모두가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이봐, 청! 니들 이리 나와도 되냐!

하지만 아이작은 웃었다. 일부러 자신들을 억누르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난 모양인데.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건 교황 역시 마찬가지거든?

교황은 그저 칭찬하듯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 비전을 내게도 보여주겠나?”

뭐, 인마……?

갑자기 비전을?

“100년 만에 부활한 청의 비전을 내 눈으로 보지 못 하다니.”

교황이 손을 내민 순간, 아이작은 흠칫 놀랐다. 교황의 손에서 검붉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아이작은 금방 그 기운의 정체를 눈치챘다.

‘<생존을 방해하는 자>의 기운!’

아이작은 교황이 무슨 짓을 할지 눈치챘다.

‘이 자식, 내 비전에 무슨 짓을 할 생각인가?’

어이가 없네.

아이작이 막으려는 그때, 그런 그를 방해하려고 하듯 돌연 아이작의 발밑이 갈라졌다.

콰직!

‘!’

거대한 구멍이 생기며, 아이작은 그리로 떨어지려고 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교황의 기운이 들이닥쳐 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팡!

“!”

누군가가 교황의 기운을 날려버리고, 아이작을 훌쩍 안았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오, 좋아! 누군지는 몰라도 오히려 잘됐…….’

“괜찮으냐! 손주야!”

아니, 시바?!

아이작은 본인을 안고 있는 여자를 보고 기겁했다.

“멜리사 님이시다!”

“성녀님!”

교황은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을 방해한 멜리사를 보았다.

아이작은 거품을 물었다.

‘젠장, 왜 여기서 멜리사가!’

“네가 아프다고 해서, 직접 와 봤다!”

아니! 널 보니 더 아파질 것 같은데!

하지만 더욱 기가 찬 건 그게 아니었다.

번쩍!

교황과 반대되는 밝은 빛이 솟아올랐다.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

지금까지 본 기원 반응 중에서, 최고로 밝은 빛이었다. 릴라이나, 가주나, 황제, 황태자들 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이 정도면 운명의 상대 정도…….

‘아냐!’

기원아, 틀렸어!

그거 아냐! 아니라고옭!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