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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1화 (171/272)

제171화. 와라! 노비들아! (5)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

뭐, 한마디로 인생에 도움이 되는 놈이다. 그것도 그냥 도움이 아니라 인생이 바뀔 정도의 대운이며, 귀중하고 중요한 인물이었다.

이건 생존 기원의 유용한 점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이 기원의 알림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실제로 이번 생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릴라이, 황제, 할아버지? 모두 아이작의 적을 견제해주고, 자신의 앞길을 열어준 장본인들이었다.

그리고 황태자? 걘 해골왕 빠돌이야! 무슨 말이 더 필요해??

아직 인간으로 산 지 11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아직 단편적인 것들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마 미래에는 그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해골왕일 당시에도 유용한 지표였다. 덕분에 수많은 생사를 넘었고, 최고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 능력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히려 인간이 되어 생존 기원을 백 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더 큰 힘을 발휘하겠지.

그런데 뭐? 멜리사?

멜리사가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라고?

‘응. 기원, 니가 잘못 본 거야.’

번쩍!

‘아냐, 새끼야. 니 새끼가 잘못 본 거라니…….’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번쩍!

아이작은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숭고한 빛에, 눈을 질끈 감았다.

시발…! 너 이 새끼, 장난해?

그렇지 않은가! 멜리사가 어떤 존재인 줄 아는가?!

‘해골왕을 동강 내서 죽이려 했던 극악무도한 숙적!’

[음… 주인님이 한 짓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인 거 같은데요.]

‘닥쳐! 내 정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녀석이라고!’

[황태자도 알아챈 거 같은데요.]

‘닥쳐! 내 정체를 알아내면 날 죽일 자야!’

[몰라도 이미 배때기 갈라져서 죽을 뻔하셨어요.]

아, 됐고! 아무튼 날 죽이려는 녀석이라고!

봐, 그 증거로 기원이 반응하잖아! <생존을 방해하는 자>의 검고, 사악하고, 음흉한 반응이…….

반짝. 반짝. 반짝!

부정하지 말라는 듯, 기원이 반짝인다.

심지어 이게 네 운명의 상대라는 듯, 찾아냈으니 칭찬해달라는 듯, 지금껏 본 적 없는 섬광을 뿜어낸다.

[주인님, 눈을 못 뜨시는데요.]

…시발! 아니라고오오오!!

이번 생에서 제일 만나기 싫은 녀석이라고!

하지만 정작 아이작과 만난 멜리사는 몹시 기뻐 보였다.

“처음으로 얼굴을 보는구나! 손주야!”

난 처음 아냐!

“이 할미가 안 보고 싶었더냐!”

보고 싶겠냐?

“이 할미는…! 네가 걱정이 되어서 잠도 못 잤다!”

난 너 때문에 이제부터 잠을 못 잘 거 같아.

그보다 그 얼굴로 자꾸 할미, 할미 하지 마라. 레아의 언니라고 해도 믿을 만한 모습이라 인지 부조화가 온다.

그보다 나랑 동시대 사람이면서, 어? 양심도 없어! 한참 어린 신랑이랑 결혼을 해! 어? 우리 할부지랑 결혼하는 바람에, 어? 내가 니 손주가 됐잖아, 시발!

[그건 신을 원망해야죠.]

닥쳐!

[…그리고 드래곤의 혼혈이면 사실상 엘프랑 똑같으니 젊은 편 아닌가요? 예쁘면 장땡…….]

닥쳐!

아무튼 멜리사의 핏줄인 숙부들은 쿼터 혼혈. 자신도 그 귀한 드래곤의 피가 섞여 있으니, 그간 본 비상식적인 신체 능력과 동안도 이해가 간다. 아마 수명도 평범한 인간들보단 좀 더 길겠지…는 그게 중요한 게 아냐앍!

‘걸리면 죽는다!’

하지만 정작 멜리사는 손주가 몹시 소중하다는 듯, 가슴에 꼭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보고 싶었다!”

찌발!! 살려줘어!

숨 막혀서 도망가고 싶어도 멜리사의 힘이 보통이 아니다. 멜리사에게 귀여움을 받는 아이작은 급히 슈리와 팀원을 찾았다.

‘새끼들아 도와줘! 압사하겠어!’

하지만 정작 멜리사를 보는 구조자들은 넋을 놓고 있었다.

“오오…. 멋져.”

“역시 강하다…….”

“멜리사 님, 실제로 보니 천상의 아름다움……!”

“인간이 아닌 것 같아…….”

망할! 이 도움 안 되는 새끼들!! 콜로세움에 있는 모두가 멜리사의 외모에 다들 정신을 놓고 있었다.

뭐,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다! 괜히 정신력의 절정에 오른 검성들조차도 멜리사와 조우하면 흔들리는 게 아니다!

솔직히 이 녀석이 속세에 나오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황궁에 드나들기라도 했으면 나라는 이미 기울었어!

아이작은 최대한 의젓하게 말했다.

“가모님. 내려 주십쇼.”

가모님이라는 말에 멜리사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것도 엄청 시무룩해졌다.

아이작으로서는 기겁할 수밖에 없다.

뭔데! 이 표정!!!

왜 서운해하는 건데?!

뭔데! 비 맞은 강아지야?!

“그리 격식을 안 차려도 되는데.”

뭐! 어쩌라고!

“쭉 안겨있어도 되는데.”

싫거든?!

아이작의 째려봄에, 멜리사는 할 수 없다는 듯 아이작을 놓아주었다.

“그래, 재회했다고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지.”

“!”

멜리사는 교황을 스윽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 무장해제를 했었냐는 듯, 눈빛이 한순간에 변해있었다. 교황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빛이 서늘하기 짝이 없다.

아니, 서늘한 수준이 아니다. 교황의 목을 딸 기세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죽고 싶냐는 듯 험악하게 읊조렸다.

“우리 아이작에게 무슨 짓이지?”

반면 교황은 시치미를 뚝 뗐다.

“무슨 짓이라니?”

“교황이 3품 사제에게 해를 가하려고 하다니.”

“해를 가해?”

교황은 귀찮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오랜만에 보는 귀한 얼굴이다 싶었건만, 헛다리를 짚는 건 여전하군.”

그 말에 멜리사가 방긋 웃었다.

“아. 그런가? 헛다리였구나. 그거 미안하네.”

그 아름다운 미소에 모두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다른 추기경들은 안도했고, 교황도 알면 됐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알았으면 됐…….”

하지만 그 순간.

멜리사가 맨주먹으로 벽을 쳤다.

쾅!

단단한 콜로세움의 벽에 구멍이 났다. 동시에 주먹이 닿은 부분부터 벽이 쩍쩍 갈라졌다.

우직, 우직, 콰직!

견습들은 입을 떡 벌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장까지 타고 올라간 균열은 콜로세움의 벽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콰르릉! 쾅! 쾅!

“커헉!”

“아악!”

10층 높이의 콜로세움의 벽 한쪽이 애들 벽돌 장난감처럼 무너져 내렸다.

쾅!! 쾅!!

물론 사람이 없는 텅 빈 공간에, 잔해들은 땅에 닿기도 전에 재가 되어 흩어졌지만, 사제들은 오히려 그래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 베리트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공간이 박살이 난 건 둘째치고, 잠깐… 건물을… 박살 내?

그것도 맨주먹으로??

저게 인간이 가능한 힘인가?!

모두가 얼어붙었을 때, 방긋 웃고 있던 멜리사가 언제 웃었냐는 듯 교황을 쏘아보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뒤지고 싶냐? 얼마나 날 좆밥으로 본 거야?”

“……!”

“방금 아이작의 성력맥을 막으려고 했잖아? 신성력을 영원히 못 쓰게.”

멜리사의 말에, 사제들은 크게 당황한 듯 술렁거렸다.

뭐라고?

이번엔 추기경들도 놀란 듯했다.

성력맥이란, 성력을 흘려보내고 몸에 머물 수 있게 하는 길이다. 그걸 막아버리면 사제로서는 불구의 몸이 된다.

신의 축복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사제의 수명을 끊어버리는 행동이라, 이건 적가에서도 최고형에 속하는 행동이었다.

‘멜리사 성녀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고.’

그녀는 이 제국에서 유일하게 교황과 비등한 위치에 있다는 최강의 성녀였다. 이게 사실이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동시에 멜리사가 화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아이작은 다른 의미로 동공 지진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은 무너진 콜로세움을 향하고 있었다.

‘찌발…. 해골왕인 거 들키면 뒤진다.’

진짜 뒤져!!

[어우야…. 뼈도 안 남겠네요.]

하지만 생존 기원은 보았냐는 듯 더욱 반짝반짝 빛을 냈다.

멜리사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그리고 화를 내는 멜리사를 향해 교황은 가볍게 웃었다.

“애석하게도 또 자네 착각이야. 맥을 막는 성법을 쓴 것은 맞지만, 막을 대상은 해골왕의 마력. 기껏 청의 비전을 부활시킨 인재인데, 해골왕 따위의 마력을 가지다니, 비운이 아닌가. 친히 썩은 부위를 도려내주려고 했지.”

“아. 그래? 이사악의 마력을 막아주려고 했다?”

“오히려 내게 고마워해줬음 하는데. 그런 식이니 해골왕을 잡는데도 실수를 하지.”

“기가 차서 말이 안나오는 군.”

“원한다면 여기서 보여줄까?”

교황이 아이작에게 다가오자, 아이작은 수작이 보인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날 망가트려서 청의 비전을 영원히 지울 생각이겠지.’

위스퍼는 놀라워했다.

[성녀의 말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정확히는 청의 비전까지 훔쳐 가려 했지만.’

[예?!]

그래서 아이작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씨익 웃었다.

그리고-

“으윽……!”

“아이작!”

아이작은 괴로운 듯 배를 잡고 쓰러졌다.

“가모님…! 배가 아파요. 성력을 쓰려고 할 때마다 몸이 찢어질 것 같아요.”

일부러 교황의 술법에 당한 척을 했다.

그러자 참고 있던 멜리사의 눈이 뒤집혔다. 동시에 멜리사의 힘과 교황의 힘이 맞부딪쳤다.

쾅!

그 압도적인 힘에 사제들은 비명을 질렀다. 추기경들도 당황한 듯 그들을 말렸다.

“역시 저 두 분이 마주하면 이 꼴이 될 줄 알았어!”

“항상 주변이 남아난 적이 없다니까!”

곧 금과 적의 추기경이 멜리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고정하십시오. 예하께서 아이작 에슈아에게 손을 대려 했다는 건 오해……!”

“크윽!”

“컥!”

멜리사의 손에 추기경들이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그 광경을 보며, 쓰러진 척하는 아이작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의도한 상황이긴 하지만 역시 멜리사. 인간이 아니구만.

그 광경을 보는 견습들은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 미쳤어! 너무 강해!”

“왜… 저만한 힘을 가지신 분이 해골왕을 못 잡으신 거지?”

왜긴 왜야.

이 몸이 더 세니까.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아이작은 내심 감탄했다.

뭐지? 의왼데?

‘이 자식 더 세졌는데?’

진짜 기원의 말을 믿어도 되겠는 정도인데?

그 순간, 거대한 폭발과 함께 모두가 비명을 질렀다.

교황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 성력을 회수했다. 그리고 아쉽다는 듯 돌아섰다.

“오늘은 주변의 눈도 있으니 여기까지로 하지.”

“!”

교황으로서 방법은 많다는 의미였다.

그가 사라지자, 추기경들은 당황스러워했다.

‘이렇게 그냥 돌아가시다니.’

그들로서는 오히려 상황이 안 좋은 셈이었다.

왜냐고?

“와…. 청 멋져.”

“교황 성하하고도 대등할 정도의 힘!”

“청에 들어가면 저렇게 될 수 있는 거야?”

젠장…!

교황이 나서는 것으로 신입들이 흩어질 것을 기대했건만! 오히려 확신만 심어주게 된 셈이 되어버렸다.

곧 멜리사가 쓰러져 있는 아이작에게 급히 다가왔다.

“아이작! 괜찮으냐!”

몹시 걱정하는 얼굴에, 아이작은 또르륵 눈알을 굴렸다. 물론 멜리사는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이지만 이 정도로 강하면 뭐. 좀 참아볼까?

‘교황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으니.’

<생존에 도움이 되는 자>로 인정하고 곁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아이작은 연기하듯 천사처럼 방긋 웃었다.

“예, 가모님. 저는 괜찮…….”

“세상에…! 비전을 쓰게 되었다는데 아직 해골왕의 냄새가 심하구나!”

덜컹.

웃는 아이작의 얼굴이 약간 굳었다.

곧 멜리사가 킁킁 아이작의 몸에 코를 가져가며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안쓰러운 듯 아이작을 살폈다.

“안 되겠구나, 이제부터는 내가 꼭 붙어서 냄새를 지워주마.”

“…….”

“24시간 내내 계속 붙어서 훈련도 시켜주고!”

견습들은 환호했다.

“청에 들어가면 비전도 쓰고, 멜리사 님한테도 교육받을 수 있는 거야?”

그 말에 이미 다른 가문에 들어가기로 했던 가신들까지도 눈빛이 흔들렸다.

곧 멜리사가 아이작을 꼬옥 끌어안았다.

“걱정 말거라! 내가 널 지켜주마!”

아이작은 하늘을 보았다.

…찌발. 역시 이 녀석은 싫다.

빌어먹을 청…….

“꽥.”

“아이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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