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나라를 없앨 예정인데요-172화 (172/272)

제172화. 와라! 노비들아! (6)

올해의 <신앙 선택>은 역대 중에서 여러모로 가장 화제가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청의 비전의 부활부터 교황에 멜리사까지 등장한 초유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이작의 괴기에 가까운 금품쇼 묘기에 사제들도 동요할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제국의 대신들도 상당히 궁금해했다.

“이번 신앙 선택은 어느 쪽이 이길까요?”

“올해 졸업생들은 특히나 뛰어나다고 했으니까요. 무조건 많이 데려가는 쪽이 이득이죠.”

“이번 성패로 귀족들의 투자 방향이 갈리겠군요.”

“역시 불멸의 교황가인 금이 쓸어갈까요?”

“에이, 그래도 올해는 청의 활약이 꽤 인상적이지 않았소?”

“어허, 그래도 기존의 신앙은 못 이기지…….”

“하긴, 그도 그렇군요. 하하하.”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서 에슈아 저택이 발칵 뒤집혔다.

“뭐?! 올해 졸업생이 전부 청으로 들어왔다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저택에서 보고를 받은 차남 벤야민은 기가 막혔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교황청에서 전달 온 공식 명단을 다시 살폈다.

다시 보고 다시 봐도 위조문서는 아니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이상하다.

“졸업생 532명 중, 512명이 청을 선택…….”

벤야민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졸업생 전원이 전부 들어온 거잖아?”

이미 다른 신앙 소속이라 들어올 수 없는 가신들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졸업생이 청을 택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솔직히 기사들은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처음엔 교황청 새끼들이 금의 명단을 잘못 보냈다고 화를 내려 했지만, 보고 또 봐도 공식 문서가 확실하다.

‘세상에, 어떻게 청에 이런 일이……!’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금도 아니고, 청에 이런 인파가 쏟아지다니?

하물며 올해는 유독 뛰어난 인재들이 많다고 소문난 기수였다. 그런 대단한 녀석들이 청에 들어오다니!

보고를 하러 온 기사들과 벤야민의 부하는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기뻐하십시오……!”

“드디어 청에도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 기뻐할 일이지. 기뻐할 일인데…….”

정작 기뻐해야 하는 벤야민은 전혀 기뻐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신입 명단과 함께 날아온 날아온 종이가 문제였다.

그 종이의 이름은 다름 아닌 ‘청구서’.

읽어도 읽어도 끝나지 않는 문서를 인내심을 가지고 읽던 벤야민은 결국 폭발했다.

“신입은 좋다 치고, 도대체 이건 뭐냐!”

탕!

부하들은 서류째 책상을 내리치는 벤야민의 모습에 당황했다.

“도, 도대체 무슨 청구서이길래…….”

“직접 봐라!”

서류를 본 부하들은 흠칫 놀랐다.

-벤야민 숙부님께.

청의 신입 교육을 위해 아래의 물품 대금을 청구합니다.

-다이아몬드 무기 (신입교육용)

-루비 상의 (동절기) (신입교육용)

-루비 하의 (동절기) (신입교육용)

-금사 신발 (동절기) (신입교육용)

-허리끈 (에슈아 블루) (신입교육용)

-명품 가죽 가방 (보석 장식 필수) (신입교육용)

-다이아몬드 상의 (하절기) (신입교육용)

-순금 하의 (하절기) (신입교육용)

-순금 신발 (하절기) (신입교육용)

-소가주 접대용 예비 보석 (신입교육용)

총 127품목, 각 512개씩 청구.

-사랑하는 조카, 아이작 드림.

“신입 교육용은 무슨! 전부 지 사리사욕비잖아!”

게다가 마지막은 뭔데!

“이 자식이, 욕망을 숨길 생각도 없는 거냐!”

하지만 문제는 아이작의 청구서뿐만이 아니었다. 그것과 함께 날아온 또 하나의 청구서가…….

-아들 벤야민에게.

아이작의 보신을 위해 아래의 물품을 청구한다.

-최고급 영약 (기력 회복) (아이작 용)

-최고급 식재료 (기력 회복) (아이작 용)

-허리띠 (성력 증강) (아이작 용)

-백의 신앙 물약 (키 성장 촉진) (아이작 용)

-보석 상의 (정신 회복) (아이작 용)

-보석 하의 (자신감 회복) (아이작 용)

-명품 가죽 가방 (정신 회복) (아이작 용)

총 150품목.

-아들을 사랑하는 멜리사가.

“어머니는 또 왜 이러시는 건데!!”

그리고 묘하게 아이작의 입김이 들어간 것 같은 이 목록은 또 뭐야!

벤야민은 빡친 듯 서류를 탕탕 쳤다.

그리고 비슷한 시각, 에슈아 저택 연무장.

‘왜 이렇게 됐지.’

아이작은 동태 눈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면 청의 사제들은 부럽다는 듯 아이작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이작의 주변에 온갖 물품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니까, 영약부터 시작해서 영약과 영약, 영약이…….

“자, 아이작, 아- 해 보거라.”

아이작은 자신에게 숟가락을 내미는 멜리사를 보며 이마를 짚었다.

찌발. 이거 뭔가 잘못됐어!

“왜, 할미가 주는 보약이 싫은 것이냐?”

싫은 건 영약이 아니라, 너야. 이 자식아!

멜리사는 아이작이 교황의 힘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 건지, 엄청난 양의 보약과 영약을 싸 가지고 왔다.

심지어는 먹여주기 스킬까지 발휘했다. 그것도 난생처음 보는 미소 가득한 얼굴로. 아이작으로서는 소름이 끼칠 수밖에 없다.

‘들키면 죽음이다…. 죽음이야.’

그리고 그런 아이작을 향해 슈리가 한마디 했다.

“왜 가모님만 보면 죽을 상이냐?”

같은 보약을 받은 슈리는 황송하다는 듯 잼 형태의 영약과 보약을 퍼먹고 있었다.

슈리는 나라를 기울게 할 수 있을 파괴력을 가진 경국지색의 멜리사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기껏 귀한 걸 주시는 건데, 잘 먹어둬라, 자식아.”

꺼져. 너 같으면 원수가 주는 걸 잘도 먹겠다! 그리고 애초에 장난하나? 어디서 성직자들의 보약 따위를 마왕에게…….

동시에 그런 아이작을 멜리사가 수상하게 보았다.

“성직자들의 보약을 싫어하다니, 역시 너는…….”

“쿨럭, 콜록콜럭!”

아이작은 황급히 보약을 퍼먹었다.

“맛있네! 혀가 살살 녹네!”

시무룩해하던 멜리사는 몹시 기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안쓰럽게 아이작을 보았다.

아무래도 아이작이 해골왕의 육신을 먹은 게 못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사악의 냄새가 사라지지 않는 걸 보니, 내가 더 노력해야겠구나.”

아니, 노력 안 해도 되거든! 제발 아무 노력도 안 하고, 호호할미처럼 지내줄래?

하지만 그 말에 슈리는 걱정되는 듯, 그러나 결심하듯 멜리사를 보았다.

“그… 외람되오나, 가모님은 사실 해골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다고 하셨죠?”

뭐, 인마?

그러자 멜리사는 굉장히 미안한 기색으로 답했다.

“레아에게 들었나 보구나. 그래, 그 부분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내가 그때 이사악을 잡았다면, 에슈아가 저주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아니. 에슈아에 저주를 내린 건 내가 아니라고, 쨔샤. 그보다 날 죽일 수 있는 기회라니? 그런 게 있었어?

동시에 죄인이 된 듯한 멜리사의 표정에, 슈리가 화들짝 놀라 답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궁금했습니다! 저희도 성자로 인정받으려면 해골왕을 잡아야 할 텐데, 가모님은 죽일 기회가 있으셨다고 해서요. 해골왕의 약점이 뭔지 궁금해서……!”

슈리의 말에 위스퍼가 푸큽 웃었다.

[해골왕을 잡으면 성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겁니까?]

‘뭐, 가장 빠른 길이긴 하지.’

아이작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성자 후보들이 하나같이 마족 무리를 노리고 있을 것이란 건.

다시 부활했다는 해골왕 군대를 없애는 것 이상의 공적이 존재는 할까?

동시에 멜리사는 측은한 듯, 질문을 한 슈리를 보았다.

“아마 너희가 생각하는 그런 약점은 아닐 거다. 이사악은 약점이 없는 강자였으니까. 적이지만… 대단한 자였어.”

“그럼 가모님은 언제…….”

“그저 내 마음이 약했던 것뿐이야. 이사악을 소멸시킬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한 번은 필리아 전투에서, 또 한 번은 드래곤 전쟁에서.”

그 말에, 아이작은 ‘아.’ 하고 알은체을 했다.

[필리아 전투는 신들의 강림에 인간들의 나라가 휘말렸을 때죠?]

뭐, 그랬지. 신들은 내가 침공한 거라고 구라를 쳤지만.

아무튼 그때가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드래곤의 전쟁은 어느 시점을 말하는 건지 정확하게 알겠다.

‘신의 사자에게 공격받았을 때군.’

아아, 그때는 아이작도 솔직히 위험하다고 여길 때였다. 드래곤의 협공으로 손을 쓰지 못할 때였는데, 멜리사의 기운까지 느껴져서 X 됐구나, 싶었지.

하지만 의외로 공격 안 하고 그냥 지나가길래 자신을 못 봤나 싶었는데.

‘못 본 척해준 거였나?’

그때 공격당했으면, 진짜로 소멸당하든가 다시 지옥으로 돌아가 레벨 1의 스켈레톤이 되었겠지.

어떤 의미론 정말 죽음이다.

[어찌 보면 은인이긴 한 거군요?]

그 말에 아이작은 눈을 또르륵 굴렸다. 그런다고 내가 마음이 약해질 줄 알아? 이 가문은 내 거야.

하지만 해골왕을 떠올리는 멜리사는 옛날 생각이 난 듯, 몸을 파르르 떨었다.

“아무튼… 이사악. 그 녀석은 한 번을… 한 번을 나와 제대로 싸워주지도 않고, 도대체 왜…….”

멜리사의 피어오르는 분노의 성력에 슈리는 흠칫 놀랐고, 청의 기사들은 오열하며 분노했다.

“그게 다 청의 명예를 더럽히는 방법이었던 거죠! 싸우러 온 기사를 얼굴도 보지 않고 날려보내다니! 이는 명백한 모멸입니다!”

“맞습니다! 임무 실패 후 신성제국에서 욕이나 먹으라는 거죠!”

“전대 성녀님들도 전부 그런 식으로 미로에 처박지 않았습니까!”

“초반에는 그래도 싸워줬다고 하던데. 막판엔 싸우기도 귀찮아진 건가!”

“역시 치졸하기 짝이 없는 놈! 없어져야 하는 쓰레기 같으니! 그러니까 머리나 벗겨지지!”

“…….”

[주인님. 이 새끼들 욕하는데요? 대놓고 앞담 까는데요???]

‘됐어. 얘들은 해골왕을 미워하는 게 나아.’

[예?]

아이작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까마득한 옛날의 일이다.

-이삭아, 이삭아. 내가 네 저주를 풀어줄게. 우리가 화친을 맺고 안 싸우면, 우리도 너희도 평온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한 성녀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이젠 아무도 모르지. 그 이름조차도.

교황에 의해 깨끗하게 지워졌으니까.

‘성녀와 마왕이 친해지는 것 따위.’

교황이 용납할 리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계속 원수로 지내자.’

애초에 그는 교황을 처리하고, 이 집안과 재산, 나아가 이 나라까지 자신이 접수할 생각이었다.

‘뭐, 그러려면 일단 9계위까지 올려야겠지만.’

이번에 교황과 조우한 것으로 대충 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했다.

‘멜리사가 있긴 하지만, 나 역시 맞대응하려면 힘을 키워놓긴 해야겠지.’

일단 청의 비전도 완성의 단계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이 쓴 비전은 아직 1단계 상태로, 발화 단계였다. 그걸 키우며 청도 함께 키워놔야겠지.

‘뭐, 그 전에 일단 내 노비들부터 확인해야겠지만.’

아이작이 히죽 웃으며 일어났을 때, 그런 아이작을 나무라듯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이자아악!!”

“!”

연무장에 울려 퍼지는 벤야민의 외침에 모두가 흠칫 놀랐다. 벤야민은 씩씩대며 아이작을 찾고 있었다.

“얘 어디갔어!!”

그러자 연무장에 있던 청의 가주와 릴라이가 뭔가 눈치챈 듯, 재빨리 벤야민을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아이작이라면, 신입들을 만나러 갔다.”

벤야민은 빨리 아이작이나 내놓으라는 듯 종이를 흔들었다.

“신입은 개뿔이, 이 말도 안 되는 청구서는 뭡니까! 아버지도 이딴 걸 사는 걸 보고도 그냥 계셨던 겁니까?!”

“괜찮다.”

“괜찮다니요?!”

“맞습니다. 괜찮습니다.”

“릴라이!!!”

“형님! 해골왕을 무찌를 무인들을 기르는 데 그깟 돈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새 피! 인재들입니다! 좀 먹이고 입히는 데 돈 좀 들면 어떱니까!”

“…….”

이… 빌어먹을! 뇌 속에 해골왕밖에 없는 놈이!

“누가 니들 입는 거, 먹는 거를 책임진다고 보는 거냐! 예산을 우습게 보는 거냐!”

“까짓거 좀 덜 먹고 덜 쓰죠, 뭐.”

“야!!”

“나도 아끼마.”

“아버지!!!”

벤야민은 속이 터진 다는 듯 뒷목을 잡았다.

“그 많은 신입들을 다 받으면 걔들은 누가 먹여 살린다고!”

그런데 그때.

“벤야민 님. 아이작 도련님이 이걸 전달해달라고 하십니다.”

“……?”

기사가 들고 온 종이에, 벤야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 뭔 청구서를 주려고… 응? 지원금?”

적하고 금으로부터 뜯어낸 돈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 아이작의 멱살을 잡으려는 기세의 벤야민은, 청구서를 눈으로 촤르륵 살피느라 곧 얌전해졌다.

“벤야민 님?”

“…어. 이러면 대충 맞는데.”

“예?”

“…아니, 오히려 남는데?”

벤야민은 커흠, 기침했다. 그리고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돌아섰다.

“형님?”

“아이작한테는… 잘했다고 해라.”

“예?”

청에 새바람이 불고 있었다.

* * *

에슈아 훈련장에 모여든 500명의 신입들은 모두 기대하는 얼굴로 서 있었다.

그중엔 아이작에게 늘 시비를 걸던 적의 팀도 섞여 있었다.

“와, 기대된다.”

그들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아이작의 금품쇼에 비전까지. 많은 것을 봐온 만큼 기대치가 높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이작…. 아니, 소가주가 직접 훈련을 시킨다고 했지?”

“어떤 훈련을 하실까?”

“그보다 진짜 그 많은 급료를 준다니…. 흐흐흐.”

그런데 그때였다.

“왔냐, 내 노비들아.”

“……?”

낯익은 목소리와 함께, 아이작이 그들 앞으로 나섰다. 아이작은 언제 상냥한 얼굴을 했냐는 듯 헤죽,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내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네?

“크흐흐흐. 이제부터 뒤지게 굴려주지.”

……네???

0